교계/교회

[설교] 코 아마르 야훼 כֹּה אָמַר יְהוָה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아모스서 7장 10-17절

[기후 재앙을 대비하여]

전국이 계속해서 폭염과 폭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난 13일부터 내린 폭우로 현재까지 50명에 이르는 사람이 죽거나 실종되었습니다.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로 인한 인명 피해를 비롯하여 산사태가 일어나고, 주택과 농경지가 침수되고, 가축이 폐사하는 등 수많은 피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쏟아붓는 비 앞에서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는 곳도 있습니다만 엄청난 강우량에도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군산입니다.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군산 시내에는 평균 498.3㎜의 비가 내렸고, 어청도에는 무려 712.4㎜였습니다. 7월 18일 기준으로 평균 500㎜에 육박한 비가 군산에 쏟아졌는데, 이는 기상 관측 이래 역대 최고 강수량이고, 군산에서 60년 만에 발생한 역대급 폭우였습니다. 도로 침수 130건, 주택·상가 침수 88건, 토사 유실 84건, 기타 도로파손 148건 등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피해 속에서도 단 한 건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데에는 군산시의 대비와 노력이 있었습니다.

상습 침수지역이 많았던 군산은 수해 방지 예산을 10억에서 20억으로 늘리고, 그것으로 교차로나 각종 도로 빗물받이를 기존 2개에서 6-7개로 최대한 많이 설치하고, 하수도 등을 재정비하였습니다. 지난 13일 호우예비특보 발령과 함께 오후 9시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곧바로 가동하고, 14일부터는 전 직원 비상조치를 발령했습니다. 산사태에 취약한 급경사지나 범람할 것으로 예상되는 하천 등을 미리미리 살피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칩니다. 산사태 징후가 포착된 지역주민 28세대의 52명을 대피시키고, 침수 위험이 있는 지하차도는 폭우 당시 즉시 통제하고, 지하차도에 있는 휴게소 또한 재난종합상황실에서 실시간 모니터하며 위험 상황이 예측되면 경찰이 현장 경광등을 울리며 차량을 직접 통제하였습니다. 군산시의 전직원들의 비상근 발령과 경찰의 협조, 군산 시민들의 긴요한 상황 공유로 60년 만에 가장 많은 비가 내렸던 날에도 군산에는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것입니다.

군산시의 사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큽니다. 끔찍한 자연재해도 함께 미리 준비하면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거의 매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지구 전체에 몰아닥칠 기후 재앙으로 많은 사건과 사고가 벌어질 것입니다. 재앙은 전 세계적이겠지만,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지난 코로나 19 세계 대유행에서 이미 보았듯이 책임지는 정부와 공권력, 위기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지도자를 가진 곳은 관민이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더 살기 힘든 나날이 지속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마샤와 아모스의 대결]

오늘 우리가 함께 다룰 예언자는 아모스입니다. 호세아가 "사랑의 예언자"라면 아모스는 "정의의 예언자"입니다. 그는 사회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했고, 그의 예언 활동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줍니다. 그래서 그의 예언 활동은 온전히 기록되었고, 그래서 아모스는 최초의 문서 예언자가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아모스서 전체 구조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단락으로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고,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모스가 예언했던 상황과 그의 예언이 당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습니다.

베델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 2세에게 사람을 보내 아모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나라 한가운데서 임금님께 대한 반란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이 나라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아모스는 '여로보암은 칼에 찔려 죽고, 이스라엘 백성은 틀림없이 사로잡혀서, 그 살던 땅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아모스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선견자는, 여기를 떠나시오! 유다 땅으로 피해서, 거기에서나 예언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시오. 다시는 베델에 나타나서 예언을 하지 마시오. 이 곳은 임금님의 성소요, 왕실이오."

지금 아모스가 예언하는 장소는 베델입니다. 베델은 북이스라엘의 거룩한 장소로서 특별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창 12:8, 13:3 이하)과 이스라엘의 시조 야곱(창 28:11 이하, 31:13, 35:1)과 밀접하게 관련된 곳입니다. 그리고 여로보암 1세가 남 유다의 예루살렘과 경쟁하기 위하여 세운 두 개의 제단 가운데 하나가 있는 곳입니다. 아마샤는 베델을 가리켜 임금님의 성소요, 왕실이라고 말합니다. 즉 지금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성소와 임금의 궁전이 있는 곳, 즉 북이스라엘의 핵심 장소에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언의 내용이 북이스라엘의 멸망이며, 왕의 죽음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왕이 죽는다는 심판의 예언을 좋아하는 왕실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샤가 아모스에 대해 반란을 선동하고 있다고 표현한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아모스는 남 유다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선견자(先見者)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사회적 불의에 비판적 기능을 했던 예언자를 뜻하는 '나비'(נָבִיא)가 아니라 앞일이나 내다보면서(先見) 밥벌이를 하는 '호제'(‎חֹזֵה)로 낮게 부르면서 남유다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다시는 베델에 와서 예언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만약 제가 북쪽 평양으로 올라가서 김정은은 죽을 것이고, 북한은 망해서 인민들은 전부 일본이나 미국으로 끌려갈 것이라고 예언한다면 저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지금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의 유서 깊은 땅, 베델에 가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마샤의 반응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아모스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자기는 원래부터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 수련생도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집짐승을 먹이고, 돌무화과를 가꾸고, 양 떼를 치는 평범한 농부였는데 주님께서 붙드셔서 예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마샤 제사장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시키는 예언을 하지 못하게 한 것 때문에 심판에 날에 엄청난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모스가 이런 예언을 할 당시에 아모스의 예언을 곧이듣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남 유다의 평범한 일개 농부의 이야기를 북이스라엘의 최고 권력자들과 이스라엘 지배층들이 들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런데 놀랍게 역사는 아모스의 예언대로 이루어지고, 그래서 아모스서가 기록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아모스는 북이스라엘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해야 했을까요? 북이스라엘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실제로 멸망당하고 치욕을 겪고 곤경에 빠지게 된 것일까요?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

아모스의 예언을 알기 위해서 우선 여로보암 2세 때의 이스라엘이 어떠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호아스 왕의 아들 여로보암은 주전 786년에 왕위에 올라 746년까지 40년을 다스립니다. 이 시기는 앗시리아 제국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북쪽 아람 왕국도 쇠퇴하였는데, 여로보암 2세는 이 틈을 타서 북이스라엘의 옛 영토, 즉 다윗과 솔로몬이 다스리던 시절의 영토를 회복하고, 오므리 왕조 시절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됩니다(왕하 14:23-25). 그래서 이 시대를 은의 시대(silver ag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주변 강대국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그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과 모압, 암몬, 에돔 등이 정치적 독립을 꾀하였고, 성공한 이스라엘은 주변 나라들과의 긴밀한 외교 관계 속에서 정치 경제적인 안정을 획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 나라들의 다신 종교들이 유입되고, 바알 종교가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그런데 부귀영화를 누리는 북이스라엘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절대다수의 국민이 빈곤한 모순된 사회였습니다.

아모스서 2장의 말씀을 일부 보겠습니다.

"나 주가 선고한다. 이스라엘이 지은 서너 가지 죄를,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들이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팔고, 신 한 켤레 값에 빈민을 팔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 처넣어서 짓밟고, 힘 약한 사람들의 길을 굽게 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자에게 드나들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 그들은 전당으로 잡은 옷을 모든 제단 옆에 펴 놓고는, 그 위에 눕고, 저희가 섬기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벌금으로 거두어들인 포도주를 마시곤 하였다."(6-8절)

하나님 앞에서 만인의 평등을 강조하는 야훼 종교 대신 불평등을 용인하고 승자독식의 분위기를 인정하는 바알 종교에 물들어 버린 이스라엘 모습이 이러했습니다. 아모스는 "사람들이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팔아버린다"고 말합니다. 아모스가 말하는 의로운 사람이란 옳은 일을 행하는 도덕적 사람이라기보다는 단지 법정용어로서 고소당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여로보암 2세 시절 북이스라엘의 번영할 수 있었던 하나의 주요한 원인은 국가가 주도한 집약농업 정책이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지배층들과 함께 전 국토를 대단위 영농단지로 조성하고, 현금 가치가 높은 수출용 3대 작물인 밀과 포도주와 기름을 최대한 생산해 냈습니다. 그런데 이 정책은 대대로 내려오는 농촌의 전통적인 혼합영농법을 무시한 처사였고, 그 결과 장기적으로 토질이 안 좋아지고, 생산은 감소하며 궁극적으로는 소작농들이 채무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빚을 진 자영농들은 부재지주들에게 채무불이행이라는 사유로법정에 고발되었고, 불의한 자들의 카르텔 속에서 부자들 편이 되어 버린 재판정에서 담보로 잡힌 토지와 가옥, 가족 등을 빼앗기고 일일 날품팔이가 되거나 종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모스가 "신 한 켤레 값에 빈민을 팔았다"고 하는 것, "사람들이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들을 팔아 버린다"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 속에서 나온 말입니다.

여로보암 2세의 농업의 상업화 정책은 국가 지배층의 배를 불려주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다수 국민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다수를 빈곤하게 만든 정책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의 지배자들에게 심판을 전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죄를 징벌하는 날, 베델의 제단들도 징벌하겠다. 그 때에 제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겠다. 또 내가 겨울 별장과 여름 별장을 짓부수겠다. 그러면 상아로 꾸민 집들이 부서지며, 많은 저택들이 사라질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3:14-15)

"사람들은 법정에서 시비를 올바로 가리는 사람을 미워하고, 바른말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너희가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그들에게서 곡물세를 착취하니, 너희가 다듬은 돌로 집을 지어도 거기에서 살지는 못한다. 너희가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어도 그 포도주를 마시지는 못한다. 너희들이 저지른 무수한 범죄와 엄청난 죄악을 나는 다 알고 있다. 너희는 의로운 사람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법정에 가난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였다."

(5:10-12)

"너희는 망한다! 상아 침상에 누우며 안락의자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골라 잡은 어린 양 요리를 먹고, 우리에서 송아지를 골라 잡아먹는 자들, 거문고 소리에 맞춰서 헛된 노래를 흥얼대며, 다윗이나 된 것처럼 악기들을 만들어내는 자들,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며, 가장 좋은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의 집이 망하는 것은 걱정도 하지 않는 자들, 이제는 그들이 그 맨 먼저 사로잡혀서 끌려갈 것이다. 마음껏 흥청대던 잔치는 끝장나고 말 것이다."(6:4-7)

북이스라엘 내부의 사회경제적 불의는 결국 나라를 패망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습니다. 다시 강력해진 앗시리아에 의해 불의한 정권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던 것입니다.

[코 아마르 야훼, 네움 야훼]

아모스는 진정한 예언자는 어때야 하는가를 정확하게 보여 주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우선 그는 왕실에 빌붙어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예언자 집단에 기대지도 않습니다. 그는 평범한 농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부름받은 뒤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인 "코 아마르 야훼"는 예언자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할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문구입니다.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우리 성경에는 "나 주가 선고한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아모스는 주변 국가들과 사마리아,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마다 "코 아마르 야훼"라고 말합니다. 말을 마치고 나서는 "야훼 하나님의 말씀이다."(네움 야훼 הוהי־םאנ)라고 끝을 맺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예언자들이 활약하던 당시 주변 국가들에서도 미래의 일을 점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점을 치는 복술자(코셈 신명 18:10, 왕하 17:17, 이사 3:2, 44:25, 에스겔 21:21), 꿈과 환상을 보는 자들(할롬: 에스겔 27:9), 각종 마술을 펼치는 술사들(오넨:왕하 21:6, 레위 19:26, 에스겔 27:9; 카샤프: 에스겔 27:9)들을 소개합니다. 메소포타미아에는 천체나 행성의 운행이나 천체에 나타나는 기형적인 징조를 해석하여 월(月)과 일(日)의 불길한 날을 예견하는 점성가(툽샤루)가 있었고, 제물의 내장이나 그릇에 담긴 물의 모양을 보고 미래의 일의 길흉을 점치는 창자 점쟁이(바루)도 있었고, 마술로서 질병을 치유하고 축귀를 행하는 아쉬프, 꿈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샤브루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신의 뜻을 해석했으며 왕에게 나라의 길흉을 전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예언자들은 이들과 다릅니다. 우선 구약의 예언자는 역사에 관심을 가집니다. 힘 없는 이들의 입장에서 민중과 바닥 사람들의 역사와 사회를 속속들이 파헤칩니다. 이들에게는 사회의 사소한 불의도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며 느긋하게 안정을 즐기던 권력자들과 부유층들의 양심을 뒤틀리게 합니다. 예언자들은 단순히 신탁 전달자에 머물지 않고, 자기 시대, 역사를 바라보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전합니다. 때로 고난과 박해가 찾아오고, 당시 백성들의 다수의 생각과 반대되기도 했지만, 시대와 타협하지 않고 당당하게 전합니다(미가 3장; 예레 26:18-19; 20:8-9). 예언자는 자기 시대를 평가하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었는지를 분별하는 일이 필요했는데, 따라서 예언자들은 옛 선조들로부터 전해 받은 이스라엘의 신앙 전승의 관점에서 자기 시대를 재해석했던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호 2:14-15; 9:10).

예언자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예언자 자신이 신비한 하나님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은 환상이나 소리, 징조나 신비한 지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영에 부딪치는 자신만의 거룩한 체험을 합니다. 이 경험은 한 사람의 존재를 뒤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 경험을 한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두고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고 되새기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독특한 경험을 야훼 하나님 신앙에 입각하여 해석해 내고, 마음속에서 스스로 일정한 논리를 획득합니다. 시대의 아픔을 진단하고,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발견하며, 모순을 일으키는 원인과 구조를 파악하고 이제 그 대안까지도 생각해 냅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이제 백성들에게 선포할 수 있는 언어로 자신의 체험을 설명해야 합니다. 때로 효과적인 설명이 되기 위해 문학적 표현법을 사용합니다. 시적 운율을 입히기도 하고, 과장하거나 강조 용법을 쓰고, 수사학을 사용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문장이 되도록 합니다. 즉 예언자들은 황홀경에 빠져서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비판적 안목과 냉철한 분석을 통해서 말로 몸으로 하나님의 뜻을 펼쳐냅니다.

예언자들이 만난 야훼 하나님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하나님과 다릅니다. 플라톤의 신은 쾌락과 고통을 초월하여 어떤 재앙도 입지 않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신은 세계 밖에서 홀로 자기 명상을 하면서 고독하게 서 있는 존재였습니다. 이스라엘 주변에 있던 고대 근동 제국의 신들은 힘 있는 자를 축복하고, 그들이 가진 권력과 물질적 풍요라는 축복의 근거가 되며, 억압과 착취가 벌어지는 현장에서도 현실 질서와 체제를 보존하고 유지하길 원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들이 만난 야훼 하나님은 인간이 지은 죄로 인해 가슴이 아프고 후회하고 근심하며 때로 분노하고 질투하기도 하면서 인간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예언자들은 불의한 일을 저지르는 이들이 지혜와 건강, 부유함과 힘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우상숭배라고 외칩니다. 따라서 예언자의 예언의 밑바탕에는 고통당하는 인간들의 아픔과 그 아픔에 함께 동참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과 정의가 녹아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고 그분의 뜻을 깊이 묵상하여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오늘날의 예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시대를 분별하고 비판적 안목으로 살펴야 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교만과 탐욕스러운 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예언자들을 이어서 말해야 합니다. "코 아마르 야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오늘날 과연 누가 예언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누가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편에서, 불의와 폭력에 희생당하는 사람들 곁에서 "코 아마르 야훼"라고 외치고 있습니까? 예언이란 미래의 일을 점치는 것이 아닙니다.

"예언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의 아픔을 표현하라고 빌려주신 말이며 착취당한 가난한 자들과 세상의 불경스런 부자들에게 내리신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삶의 양식이며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만나는 접촉점입니다. 하나님은 예언자의 말을 통하여 분노하시는 것입니다."(아브라함 요수아 헤셀 선집 1, <예언자들 상권>, 1996, 종로서적 12쪽.)

예배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의 자리가 야훼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극한 폭염 속에서 극한 노동으로 애쓰는 이웃들 곁에서,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맞서서, 아직도 돈과 권력을 쫓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모두가 주님의 뜻대로 살아내고 나서,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말씀"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뉴욕 맨하탄의 한 흑인 거지가 썼다고 알려지는 시 한구절을 읽고 오늘 설교를 마칠까 합니다.

내가 배가 고플 때, 당신은 인도주의 단체를 만들어 내 배고픔에 대해 토론해 주었소. 정말 고맙소.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당신은 조용히 교회 안으로 들어가

내 석방을 위해 기도해주었소. 정말 잘한 일이오.

내가 몸에 걸칠 옷 하나 없을 때, 당신은 마음속으로

내 외모에 대해 도덕적인 논쟁을 벌였소.

그래서 내 옷차림이 달라진 게 뭐요?

내가 병들었을 때, 당신은 무릎 꿇고 앉아 신에게

당신과 당신 가족의 건강을 기원했소.

하지만 난 당신이 필요했소.

내가 집이 없을 때, 당신은 사랑으로 가득한 신의 집에 머물라고

내게 충고를 했소. 난 당신이 날 당신의 집에서 하룻밤 재워 주길 원했소.

내가 외로웠을 때 당신은 날 위해 기도하려고 내 곁을 떠났소.

왜 내 곁을 떠났소. 왜 내 곁에 있어 주지 않았소?

당신은 매우 경건하고 신과도 가까운 사이인 것 같소.

하지만 난 아직도 배가 고프고, 외롭고, 춥고,

아직도 고통받고 있소.

당신은 그걸 알고 있소?

(류시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1998, 열림원, 52-53쪽)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예언자 아모스는 오늘날도 외칩니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흘러넘치는 사회를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음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 굶주리고, 주님의 영을 받지 못해 목말라 합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주님 계신 곳을 다시 바라보게 하소서. 진지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게 하여 주소서. 부와 권력에 한눈팔지 않게 하여 주소서. 내 문제에만 매몰되지 않게 하여 주소서. 그야말로 하나님의 뜻과 정의와 공의가 넘쳐흐르게 하는 일에 힘을 쏟게 하소서.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께서 우리 생명 사랑 믿음의 식구들을 오늘의 예언자로 불러 주소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장마가 전국적으로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사고 소식도 들리고, 비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한숨 또한 늘어납니다. 장마가 그치고 다시 일상을 회복할 때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모두가 서로 돕는 마음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통해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지의 구름이 걷히고, 우리의 모든 이웃이 주님의 향기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나의 고집과 아집, 편견과 무지를 깨고 주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신 은혜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삶과 예물을 드립니다. 꼭 필요한 곳에 써 주소서.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곳에, 생명을 살리고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곳에 쓰이게 하소서. 생명사랑교회의 모든 사역을 통하여 우리 믿음이 굳세어지고 더욱 더 주님과 가까워지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코 아마르 야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라고 외칠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여러분들의 삶에서 주님의 말씀이 들리게 하십시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친교가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로서 살아가는 생명사랑 교우들 위에, 전국 각처에서 우리와 함께 예배하고 선교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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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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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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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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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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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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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