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의인 10명"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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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창세기 18:20-32, 갈라디아서 6:7-10, 누가복음 10:8-12

설교문

창세기 18장에는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리는 울부짖음의 소리를 들으시고 무슨 일인지 직접 그 땅에 내려가 사태를 파악하기로 하셨다는 독특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아우성을 나는 차마 들을 수가 없다. 너무나 엄청난 죄를 짓고들 있다. 내려가서 그 하는 짓들이 모두 나에게 들려오는 저 아우성과 정말 같은 것인지 알아보아야 하겠다."(20-21절, 공동번역) 하나님의 귀에까지 들린 저 아우성은 어떤 아우성이었을까요?

'아우성' 혹은 '부르짖음'(개역개정)이나 '울부짖음'(새번역)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즈아카'(זעקת)입니다. 즈아카는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떤 영어성경(GNB)은 이를 법적 고소와 관련이 있는 "accusation"으로, 다른 영어성경(TEB)은 "complaint"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들으신 울부짖음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에스겔서도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무엇이었는지 이렇게 회고합니다. "네 동생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다. 소돔과 그의 딸들은 교만하였다. 또 양식이 많아서 배부르고 한가하여 평안하게 살면서도, 가난하고 못 사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 주지 않았다."(에스겔 16:49, 새번역) 소돔과 고모라의 죄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돌보지 않고 거만하여 억압한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려오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소리(outcry)를 들으시고 실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직접 내려오십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목적은 조사가 아닙니다. 하나님 방문의 목적은 죄의 확인이 아니라 심판입니다. 누가 이 심판을 피해갈 수 있겠습니까.

이때 아브라함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23절) 하나님이 악인과 함께 의인을 멸하시는 게 과연 옳으냐는 질문입니다. 아브라함의 항변은 예리합니다.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25절)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의인 50명을 제안합니다.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24절) 하나님께서는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26절) 하십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브라함은 50명이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정의의 공정성을 물으며 큰소리쳤지만, 막상 50명을 찾을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급 소심해진 아브라함은 협상(bargain)을 시작합니다.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라고 입을 열며,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28절) 하십니다. 의인 다섯 명을 줄였지만, 다시 생각해도 자신이 없는 아브라함이 또 입을 뗍니다.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하나님은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29절) 하십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삽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물었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30절) 하셨습니다. 그도 끝이 나이었습니다. 불안한 아브라함은 다시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하니 하나님께서는 다시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31절) 하셨습니다. 벌써 네 번이나 재협상을 시도했지만 거기서 멈추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32절) 하셨습니다. 50명에서 시작한 의인은 45명 - 40명 - 30명 - 20명 - 결국 10명으로 결판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왜 10명에서 중지했을까요? 그보다 더 아래를 제안했더라면 소돔과 고모라가 살 수도 있진 않았을까요? 적어도 자기의 조카 롯(Lot)이 그곳에 살고 있었으니 기왕 체면을 구긴 거 '의인 1명'만 있으면 심판을 멈춰달라 했어야 최고의 협상가로 칭찬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왜 아브라함은 10명에서 멈추었을까요?

구약성서에서 10은 완전수입니다. 집단의 최소 단위가 10명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위에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웠는데(출애굽기 18:25), 이 말은 열 명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최소 단위 숫자였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의로운 개인 10명을 제안한 것이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는 개인들의 윤리적인 죄가 아니라 한 사회의 관계적이고 집단적인 죄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이 말했듯이 소돔의 죄악은 교만이었고, 양식이 많아서 배부르고 평안하게 살면서도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주지 않은 죄였습니다.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주지 않았으니 낯선 방문자나 나그네들에겐 오죽했겠습니까. 실로 예수님은 소돔과 소모라의 죄악이 나그네를 영접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세상에 파송하실 때의 일입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에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태복음 10:14-15 / 누가복음 10:10-12)

'의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신과 인간 사이의 가장 유명한 담판으로 알려진 오늘의 창세기 본문에서 의인의 숫자가 50명에서 결국 10명까지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저는 하나님은 '다수의 악인'보다 '소수의 의인'을 더욱 중요하게 보시는 분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인간의 편에 서서 항변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더육 사랑하시며 그들이 멸망하는 걸 더 원치 않으셨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의인의 숫자가 50에서 10까지 줄어든 것은 하나님이 협상에 실패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은 어떻게든 소돔과 고모라를 살릴 방법을 찾으시려는 자비와 인내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출애굽기 34:6)은 죄악이 창궐한 세상에서 '다수의 악인'보다 '소수의 의인'을 더욱 중요하게 보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이 소수의 의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부끄럽게도 / 여태껏 나는 / 자신만을 위해 울어왔습니다. // 아직도 / 가장 아픈 속울음은 / 언제나 나 자신을 위하여 / 터져 나오니 // 얼마나 더 나이가 먹어야 / 마음은 자라고 / 마음의 키가 얼마나 자라야 / 남의 몫도 울게 될까요 // 삶이 아파 섧은 날에도 / 나 외엔 볼 수 없는 눈 / 삶이 기뻐 웃는 때에도 / 내 웃음소리만 들리는 귀 // 내 마음 난쟁이인 줄 / 미처 몰랐습니다 /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유안진, <키>)

의인은 먼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가 느끼는 부끄러움은 개인의 도덕적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인간의 사회적 관계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입니다. 제 삶의 설움을 위해서 울기도 바쁜 게 사람의 인생인데, 다른 이의 아픔을 제 몫처럼 울지 못해 부끄러워하는 이가 바로 의인입니다. 이런 예민한 사회적 감수성과 연대의식을 가진 의인이 소돔과 고모라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언제나 내가 한 어떤 것이 아니라 내가 하지 않은 어떤 것입니다. 내가 항상 미루고 있는 사회적 연민입니다.

"당신이 하는 일이 문제가 아니다. / 당신이 하지 않고 남겨 두는 일이 문제다. / 해 질 무렵 /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 / 잊어버린 부드러운 말 / 쓰지 않은 편지 / 보내지 않은 꽃 / 밤에 당신을 따라다니는 환영들이 그것이다. // 당신이 치워 줄 수도 있었던 / 형제[자매]의 길에 놓인 돌 / 너무 바빠서 해 주지 못한 / 힘을 북돋아 주는 몇 마디 조언 / 당신 자신의 문제를 걱정하느라 / 시간이 없었거나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 사랑이 담긴 손길 / 마음을 어루만지는 다정한 말투. // 인생은 너무 짧고 / 슬픔은 모두 너무 크다. / 너무 늦게까지 미루는 / 우리의 느린 연민을 눈감아 주기에는. // 당신이 하는 일이 문제가 아니다. / 당신이 하지 않고 남겨 두는 일이 문제다. / 해 질 무렵 /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 (마거릿 생스터, <하지 않는 죄>)

오늘 밤 해 질 무렵, 무엇이 또 내 마음을 아프게 할까요. "너무 늦게까지 미루는 / 우리의 느린 연민을 눈감아 주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은 것 같습니다.

평생 그림만 그리고 살았을 것 같은 빈센트 반 고흐는 이런 삶의 신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그의 삶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 10명'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반 고흐의 <내 삶의 신조>입니다. "나는 침묵하고 싶다. / 그러나 내 생각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사랑하고 사랑 받고 / 살고 생명을 주고 / 생명을 갱신하고 회복시키고 / 생명을 보존하고 싶다. / 그리고 일하고 싶다. / 생기 위에 활기를 더하고 / 다른 무엇보다도 유익하고 유용한 사람 / 뭔가 도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이를테면 불을 지펴준다거나 / 어린이에게 빵 한 조각과 버터를 주거나 / 고난 받는 이에게 물 한 잔 주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데 추운 사람에게 불을 지펴주고, 굶주린 아이에게 빵 한 조각 나누고, 고난 속에 있는 자에게 물 한 모금 마시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의인 10명'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고 부패해도 그런 '최소의 의인'만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이 세계를 멸하시지 않고 구원하실 겁니다.

"네 동생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다. 소돔과 그의 딸들은 교만하였다. 또 양식이 많아서 배부르고 한가하여 평안하게 살면서도,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 주지 않았다." 그랬습니다. 소돔의 죄악은 서로 연민하고 돌보지 않은 것뿐만이 아니라 지도층의 '교만'이었습니다. 교만(驕慢)이란 '잘난 척하고 뽐내고 건방짐'이란 뜻입니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은 자기가 모르는 것도 안다 하고, 자기 게 아닌 것도 자기 거라 하고, 자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독일의 전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동독 출신 목사의 딸입니다. 그의 기독교 신앙과 정치적 리더십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여러 연구가 있었습니다. 총리 재임 18년 동안 그는 성공적으로 8천만 독일인을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집권 18년 동안 메르켈 총리는 항상 같은 옷만 입고 나왔습니다. 보다 못해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항상 같은 옷만 입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다른 옷은 없습니까?' 그러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모델이 아니라 공무원입니다.' 또 다른 기자회견에서 어느 기자가 물었습니다.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도우미가 있습니까?' 총리는 웃으면서 답했습니다. '아니요, 저는 그런 도우미가 없고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남편과 제가 매일 일을 나눠서 합니다.' 그러자 다른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럼 누가 옷을 세탁합니까? 당신입니까? 당신 남편입니까?' 메르켈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옷을 손보고, 남편은 세탁기를 돌립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 일은 무료전기가 있는 밤에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아파트와 이웃 사이에 방음벽이 있어 이렇게 해도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메르켈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우리 정부가 한 일의 성과나 실패에 대해 질문해주기를 바랍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메르켈은 다른 시민들처럼 평범한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총리로 선출되기 전에도 그는 이 아파트에 살았고, 그 후에도 여기를 떠나지 않았으며, 별장이나 하인이나 수영장이나 정원 따위는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사 딸로 자라나면서 기독교적 가치와 정신을 깊이 체화한 메르켈은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이 위임된 권한임을 알고 자기를 부르신 그 부르심의 자리에서 성실하고 겸손하게 자신의 직분을 다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순박한 마음을 담은 공동의 기도를 함께 드렸습니다. 앳된 표현 속에 진실한 간구가 느껴져 오는 기도문입니다. "하나님 / 나를 얼마만큼 사랑하세요? / 하루에 몇 번이나 들여다보시나요? // 하나님 / 시기와 성냄과 욕심이 가득해요. /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 기도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해요. / 이런 나를 미워하실 건가요? // 하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 변할 수 있을 거예요. // 사소한 것도 처리할 수 없어요. / 참 바보 같고 어리석어요. //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해요. / 언젠가 그분을 만난 것처럼 편하고요. / 나도 변할 수 있나요? // 당신을 믿습니다. / 그래서 착한 일도 하고 싶고 / 천사처럼 아름다워지고 싶어요. // 나도 할 수 있나요?" (익명, <하나님, 나도 할 수 있나요?>)

성서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로마서 3:10-12)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오늘의 기도문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을 믿기에, 착한 일도 하고 싶고 천사처럼 아름다워지고 싶은 존재입니다. 비록 열심히 기도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미워하지 않으십니다. 의인 50명에서 45명, 40명, 30명, 20명, 그리고 최소한의 10명을 찾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를 도와 변화하게 하십니다. 나도 할 수 있게 하십니다. 나도 의롭고 선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미가 7:2)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마태복음 11:16-17) 한탄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는 먼 고대 도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만하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과 연대하지 않고, 나그네를 환대하지 않는 그곳이 오늘의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하나님은 '의인 10명'을 찾으십니다. '다수의 악인'보다 '소수의 의인'을 찾으십니다. 이 소수의 의인 10명이 되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시편 97:10)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신명기 6:18)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 했습니다. 겨울같이 차가운 세상을 살더라도 황량한 눈벌판 한구석에 무심히 서 있는 눈사람처럼 살지 말고,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간으로, 열정 어린 가슴으로, 사랑 없는 이 세상을 뜨겁게 사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죽는 날까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어두운 세상에 희망의 빛 한 줄 비추는 '의인 10명'으로, 하나님의 작고 가난한 등불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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