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향기와 용기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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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호세아 14:5-7, 갈라디아서 6:14-18, 요한복음 16:33 -

설교문

산길을 걷다 보면 잘 쌓인 돌탑을 볼 때가 있습니다. 목사인 저도 돌탑에 작은 돌 하나 더합니다. 무슨 소원을 빈 것은 아닙니다. 저는 돌탑을 보면 미신적인 주술이라는 생각보다는, 무언가에 기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봅니다. 자신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굳이 돌탑 같은 걸 쌓으려 하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인간은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아는 순간, 그 찰나의 순간은 인간이 한없이 겸손해지는 순간이요 사람이 자라나는 순간입니다.

지난 88년, 절대 적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와 해방, 분단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친 장고한 세월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시간이 우리가 이룬 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로 살아왔다고 느낄 때, 그 순간은 우리가 자라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로 우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가 당신을 알기 전부터 당신은 이미 나를 알고 계셨군요 / 내가 당신을 바라보기 전부터 당신은 이미 나를 보고 계셨군요 / 내가 당신을 선택한 줄 알았는데 당신이 먼저 나를 선택해주셨군요... / 나의 앞이 아닙니다, 멀찍이 뒤도 아닙니다 / 바로 옆자리, 아니 나의 안에 들어와 당신은 나와 함께 숨 쉬고 있었습니다."(나태주, <또 하나의 고백>) 오늘 우리가 드린 공동의 기도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안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이미 우리를 알고 계셨고 바라보고 계셨고 선택하셨습니다. 대학교회로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라고 하면서 바울은 "형제[자매]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고린도전서 1:25-26) 했습니다. 어떤 부르심입니까? 이 나라 대학교회의 효시(嚆矢)인 이화의 대학교회는 어떤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까?

어느 카페에 재미있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메리카노 - 싱거운 놈 / 에스프레소 - 독한 놈 / 카푸치노 - 부드러운 놈 / 카페라테 - 고소한 놈 / 마키아토 - 달달한 놈 / 카페모카 - 복잡한 놈." 다양한 커피를 종류별로 별명을 붙여 놓은 것이지요. 한국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커피를 많이 마신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 많은 커피 중에서 양도 아주 적은 데다 진하고 써서 아무도 안 마실 것 같은 커피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독한 놈'이라는 별명이 붙은 에스프레소입니다. 아무도 안 마실 것 같지만, 이상하게 에스프레소가 없는 카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에스프레소가 모든 커피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에스프레소에 넉넉하게 뜨거운 물을 부으면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됩니다. 차가운 물에 얼음 좀 띄우면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됩니다. 따뜻한 우유를 넣으면 카페라테가 되고, 우유 거품을 진하게 낸 다음 계핏가루나 초콜릿 가루를 뿌리면 그게 카푸치노가 됩니다. 캐러멜 시럽을 첨가하면 캐러멜마키아토가 되고, 초콜릿 시럽을 넣으면 카페모카가 됩니다. 이렇게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다양한 커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프레소를 일컬어 '커피의 심장'이라고 부릅니다.

의사들이 사망 선고를 내릴 때 기준이 되는 건 심장이 멈춘 상태라고 합니다. 심장이 멈추면 죽었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예수라는 심장이 멈추면 그 신앙은 죽은 믿음이 됩니다. 예수라는 분이 내 삶에 아무런 활기도, 기쁨도 아니라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죽었습니다. 심장이 뛰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심장이 뛰지 않기에 한국교회가 사망 선고를 받았습니다. 『예수 없는 예수 교회』(한완상, 김영사, 2008)라는 제목의 책을 보셨는지요. 책의 맨 앞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교리로 박제된 예수는 교회 쇼윈도우에 아름답게 진열되어 있지만... 나사렛 예수는 없다." 저자가 말합니다. "한마디로 한국의 예수 교회에는 예수님이 안 계십니다... 교세의 양적 팽창과 대외적 선교열을 그토록 자랑하는 한국 교회와 교인의 삶 속에서 나사렛 예수, 갈릴리의 예수를 만날 수가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위기라 하겠습니다. 그분의 체취, 그분의 숨결, 그분의 꿈, 그분의 정열, 그분의 의분, 그분의 다정한 모습[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그분의 체취,' 곧 '그리스도의 향기'가 교회 안에 없다는 말은 교회가 죽어서 악취가 난다는 말이 아닐까요. 바울은,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고린도후서 2:14-15, 새번역)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어떤 향기입니까?

오늘의 신약서신 본문은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편지의 맨 마지막 부분입니다. 보통 편지는 좋은 말로 끝내기 마련입니다. 바울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좋은 권면의 말씀을 합니다.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갈라디아서 6:14, 공동번역) 유명한 구절이지요. 그리고 "할례를 받고 안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하고선 이렇게 인사말을 합니다. "이 법칙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있기를 빕니다."(갈라디아서 6:15-16, 공동번역) 여기서 끝났으면 참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갑자기 느닷없이 한 마디 던집니다. "앞으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내 몸에는 예수의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갈라디아서 6:17, 공동번역)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마도 갈라디아교회 누군가가 목회자인 바울을 심하게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바울의 권위에 대해 의심하고 폄하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편지 맨 뒤에 불쑥 이런 말을 던졌겠습니까. "앞으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그런데 이 말에서 놀라운 것은, 앞으로 바울을 괴롭히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바울이 제시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내가 너희보다 더 배운 사람이다'라거나, '내가 삳의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이다'라거나, '내가 너희를 위해 얼마나 고생한 줄 아느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 몸에는 예수의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했습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개역개정) 혹은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짊어]지고 다닙니다"(새번역)라고 말했습니다. 예수의 '낙인' 혹은 '흔적' 혹은 '상처 자국'은 모두 원어로 '스티그마'(stigma)입니다. 스티그마란 본래 어느 짐승의 주인이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해 짐승의 몸에 찍는 낙인입니다. 여기서는 바울이 예수님 때문에 받은 상처 자국들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이 예수의 권위 있는 사도임을 증명하는 증거물로 학식이나 재산이나 지위를 제시하지 않고 그가 예수로 인해 받은 상처 자국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받은 박해의 흔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인이 말했습니다. "흉터가 돼라. 어떤 것을 살아 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네이이라 와히드, <흉터>). 흉터는 감추고 싶기 마련인데,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살면서 받은 상처는 인생이 그에게 던진 수많은 시험과 시련에도 그가 꺾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증거이니까요. 그러므로 그것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살면서 어떤 흉터, 상처 자국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 흉터와 상처 자국은 여러분이 삶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가에 대한 산 증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의 옆구리와 손바닥엔 깊은 '스티그마'가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 쇠못이 뚫고 들어간 상처 자국과 날카로운 창이 옆구리를 뚫고 들어간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의 상처 자국은 부활을 믿지 못하던 도마에게 믿음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은총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나무마다 '옹두리'라 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울퉁불퉁하고 단단하고 못 생긴 부분입니다. 옹두리는 나무가 외부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생깁니다. 그래서 보기 흉합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나무의 가장 깊은 향을 간직한 곳이 바로 옹두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무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몸부림친 바로 그곳에서 나무의 가장 아름다운 향기가 납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바친 세 가지 예물 중 하나인 유향(乳香)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요즘 많이 들어보신 단어이지만 보스웰리아(Boswellia)라고도 불리는 유향은 유향나무의 상처에서 흐르는 진액을 말린 것입니다. 그 향이 얼마나 좋은지 맡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우리말에 "옹두리가 많은 모과나무가 과일 망신시킨다"라는 말도 있지만, 열매에까지 옹두리의 향을 품게 하여 사랑받는 과일이 되었으니 그 상처가 어찌 의미 없는 것이겠습니까? 심지어 나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려다 얻는 상처도 나를 돌아보게 하는데, 예수의 길을 따라 걷다 얻는 상처는 나를 하나님 앞에서 향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Christian Dior"가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향기는 우리가 예수를 따라, 예수가 가신 길을 가다가 거기에서 받은 상처 자국에서 나는 향기입니다. 나무의 옹두리에서 나는, 가장 깊고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오늘 나에게서 이런 향기가 납니까? 우리 교회에서 이런 향기가 납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며 나아가는 길은 / 화려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 예수님을 따르려면 / 나의 것을 벗어버리고 /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야 함을 나는 압니다... // 예수님을 사랑하는 길은 /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사랑하는 길이요, /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 가난하고 병든 자를 돌보아주는 일임을 나는 압니다. // 예수님, 복음서에 기록된 말씀이 나의 삶에 /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 되게 하시어, / 예수님께서 삼십삼 년 동안 / 나누신 사랑, 베푸신 사랑, 이루신 사랑, 치료하신 사랑, 구원의 사랑을 알게 하소서... 나의 삶이 주님을 닮아가게 하소서."(어느 수인, <예수님을 따르려면>) 감옥에 갇힌 어느 수인의 기도입니다.

(나무의사 우종영 선생의 이야기를 옮겨봅니다.) "형님, 저 사람들이 대체 뭘 찍는 걸까요? 저런 낭떠러지에 뭐 볼게 있다고요." 초여름 햇살이 따가운 6월 어느 날, 함께 산행 중이던 후배가 맞은편 암벽 능선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그가 가리킨 곳을 보니 깎아내린 듯 아찔한 절벽 바위틈에 몸을 간신히 붙이고 사람들이 카메라로 무언가를 연신 찍고 있었습니다. 다가가 보니 높은 산꼭대기 바위틈에 자라는 야생의 백리향(百里香)이었습니다. 백리향이란 이름은 향이 100리까지 퍼져나간다기보다 발끝에 묻은 향기가 100리를 지나도록 오래 남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처음 백리향을 본 사람들은 그저 야생의 들꽃이라 생각할 뿐 그것이 나무인 줄 모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리향은 해가 내리쬐는 높은 산 절벽의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는 마치 바위 위에 얹어진 이끼처럼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낮게 엎드려 줄기를 뻗다가, 어느 순간 작고 여린 가지를 비스듬히 세우고는 새끼손톱만 한 자홍빛 꽃을 소담스레 피웁니다. 그리고는 능선을 지나는 바람에 짙은 향을 실어 인근에 있는 벌들을 부릅니다. 그 벌들에게 자신이 어렵게, 어렵게 마련한 꿀을 내주고는 자신의 분신이 이제 다른 바위틈에서 자라나기를 조용히 기다립니다.

이런 백리향의 꽃에서 한 번 맡으면 잊을 수 없는 향기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온실 안 화초와 견줄 수 없는 그 깊은 향기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인고(忍苦)의 시간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척박한 삶의 수많은 상처들을 이겨낸 인고의 시간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백리향 꽃의 꽃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백리향 꽃의 꽃말은 두 가지나 되는데, 바로 '향기'와 '용기'입니다. 향기만이 아니고 용기입니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 위에 용감하게 자리잡고 세상 어느 향기보다 짙고 깊은 향기를 내는 백리향을 보고 있으면 왜 누군가 그 꽃에게 그 두 어울리지 않는 듯한 꽃말을 동시에 헌사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설교의 제목도 그래서 '향기와 용기'입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꽃과 나무에 향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향기를 지닌 존재입니까? 꽃과 나무에 향기가 있듯이 교회에도 향기가 있습니다. 이 나라 대학교회의 효시(嚆矢)인 이화대학교회는 어떤 향기를 품은 교회입니까? 우리에게서 나는 향기는 인공적인 향수를 뿌려 나는 향기입니까, 아니면 예수의 상처 자국에서 나는, 나무의 옹두리에서 나는 향기입니까? 그런 '용기 있는 향기'가 나에게서 납니까? 오늘 내 삶 속에는, 이화의 대학교회 안에는 예수라는 심장이 살아서 힘차게 뛰고 계십니까?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했습니다. 우리의 부르심은 무엇입니까? 많고 많은 교회 중에 우리를 '대학교회'로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든여덟 살 맞은 이화의 대학교회는 이제 100년을 향해 갑니다. 우리 교회에서 백리향, 곧 '발끝에 묻은 향기가 100리를 지나도록 오래 남든다'는 향기가 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를 진심으로 따르고 그를 닮아 살려 애쓰다 난 상처 자국에서 나는 향기가 온 나라를 감싸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우리]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우리]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을]"(호세아 14:5-6)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복음 16:33) 하셨습니다. 이 예수께서 "앞으로도... 나와 함께 / 어려운 길 가고 벅찬 길 오르고 마지막 날까지... 그래주실 줄"(나태주, <하나의 고백>) 믿습니다. 이제 창립 100주년을 향해 나아가는 이화의 대학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진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백리향 꽃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시다. "주님, 나는 당신 앞에 / 언제나 향기로운 꽃이 되고 싶습니다. // 그 향기 / 악취만 가득한 세상에 / 퍼져나가 / 주님의 사랑을 알리고 싶습니다... // 날마다 당신 앞에 흘리는 / 내 눈물방울이 꽃잎이 되어 / 메마른 세상 위에 덮이도록...... // 주님, 나는 언제나 당신 앞에 / 향기로운 꽃으로 드려지고 싶습니다."(강선영, <향기로운 꽃>)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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