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안재웅 목사 "박형규 목사...활력의 아이콘"

수주 박형규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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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수주 박형규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행사가 6일 오후 5시 한신대 신학대학원 예배실에서 열렸다.

수주 박형규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행사가 6일 오후 5시 한신대 신학대학원 예배실에서 열렸다. 이날 기념예배에서는 안재웅 목사(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가 '활력의 아이콘'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전했다. 설교 후에는 김상근 목사(전국 비상시국회의 상임고문)의 축도와 권호경 목사(박형규목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본지는 설교자의 동의를 얻어 설교문 전문을 게재한다.

활력의 아이콘

마태 5:13-16

오늘 우리는 수주 박형규 목사님의 탄신 100주년기념예배와 이어지는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이렇게 모였습니다. 목사님은 1923년 12월 7일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2016년 8월 18일, 93세를 일기로 서거하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8월, 목사님의 묘소에서 가족들과 서울제일교회 교우들, 그리고 여러 민주인사들이 모여 7주기 추모예배를 드렸습니다.

목사님은 한 평생을 세상에 등불을 밝히는 삶을 사셨습니다. 어둡던 군부독재에 맞서 3선 개헌반대 운동과 1973년 남산 부활절 사건, 그리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등 여섯 차례에 걸쳐 옥고를 치르셨습니다. 암흑의 세상에 빛이 되고자 감옥 속으로 고행을 이어 가셨습니다. 목사님은 자기 자신을 불태워 어둠을 밝히는 삶을 사셨습니다.

Mother Teresa는 "와서 나의 빛이 되어 주소서"(Come Be My Light)" (2007)라는 그의 저서에서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의 존재에 관해서 의구심이 생겼다"라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Teresa수녀는 의심이 생길 때 마다 하나님께 "지금 오셔서 나의 빛이 되어주소서"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림으로써 의심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는 소회를 남겼습니다.

박형규 목사님은 달랐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너희는 세상이 빛이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이와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14절-16절)라는 말씀대로 빛의 사도답게 사셨습니다.

우리는 광화문광장에 모여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라는 구호를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또한 "빛이 있는 곳에 사랑이"라는 노래를 힘차게 부르기도 합니다. 마치 옛 소련연방체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성인들의 아이콘을 보며 어둠의 세력을 이겨내고자 했던 그 엄숙한 내공을 연상하면서 말입니다. 점점 퇴행하는 비민주적인 현실을 볼 때 마다 목사님은 세상에 빛을 비추는 아이콘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목사님은 독재의 횡포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아이콘입니다.

목사님은 민주화운동의 선두그룹으로 고난의 길을 뚜벅뚜벅 걸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과 함께 이 행렬에 동참하여 이 땅에 민주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 마침내 민주화를 쟁취했습니다. 목사님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으로 선임되어 한국 민주화운동의 아이콘이 되셨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위원장과 인권센터 이사장으로 오랫동안 일한 경험이 큰 자산이 되었다고 봅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NCCK) 김관석 총무님을 정점으로 두 분은 한 팀이 되어 험난한 민주화를 이루어 내는데 큰 몫을 한 우리들의 아이콘입니다.

목사님은 맹자(孟子)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사셨습니다.
"가는 사람은 쫒지 않는다.
오는 사람은 거부하지 않는다.
나에게서 떠나는 사람은 떠나는 대로 두고
가르침을 받고자오는 사람은
그 사람의 과거에는 구애됨이 없이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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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안재웅 목사

목사님께서는 이런 마음으로 사셨기에 서울제일교회에로 많은 젊은 학생 청년들이 몰려오게 되었습니다. 어찌 떠나는 사람들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목사님은 기왕 떠날 사람은 떠나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한 때 서울제일교회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텃밭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한국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많은 청년 학생들의 아이콘입니다.

1960년대 중반 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성서연구 책임자였던 Hans-Ruedi Weber는 그리스도인들은 소금처럼 살아야 할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그의 이런 구상은 "소금 같은 그리스도인"(Salty Christian)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 세계에 캠페인을 벌렸습니다. 한국에서는 목사님을 비롯한 에큐메니컬 지도자들이 이 캠페인을 주도하였습니다. 특히 학생기독교운동 단체들을 중심으로 Salty Christian 구호를 외치면서 세상에 소금의 역할을 하고자 대대적인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데가 없음으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13절) 목사님은 Salty Christian의 아이콘으로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넣으셨습니다.

목사님은 특수선교분야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한국의 학생기독교운동과 도시빈민선교는 물론 기독교언론과 에큐메니컬운동의 중심에서 지도력을 발휘하셨습니다. 1964년 세계학생기독교연맹(WSCF) 중앙위원회가 아르헨티나에서 열렸을 때 "학문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현존"(Christian Presence in the Academic Communities)이라는 연구 결과물을 전 세계에 보급하면서 "그리스도인의 현존"(Christian Presence)이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한국기독학생회(KSCM) 총무로 재직하는 동안 학문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현존"을 소금과 빛의 역할로 규정하고 현장을 바꾸어 나가는 일에 열정을 쏟으셨습니다.

목사님은 1968년 연세대학교에 도시문제연구소를 설립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해외에서 자금을 확보한 후 연세대학교 노정현 교수로 하여금 소장을 맡게 하고 목사님은 도시선교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지역조직(Community Organization/CO)을 묶어내는 실무자 양성훈련에 전념하셨습니다. 이 자금은 미국장로교의 George E. Todd 목사님이 주선하셨습니다. 목사님은 빈민선교 실무자들의 영원한 아이콘이기도 합니다.

목사님은 평생을 성직자로 사시면서 목회와 기독교기관, 시민운동, 그리고 민주화운동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셨습니다. 목사님은 '한국의 복음화'라는 구호 대신 '기독교의 한국화'를 위해 평생 심혈을 기우리셨습니다. 목사님은 서울제일교회를 20년 넘게 목회하시는 동안 6년여를 중부경찰서 앞에서 노상예배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당국의 방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잘 이겨내셨습니다. 목사님은 회고록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2010)에서 길 위의 예배를 끝내는 소회를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길 위에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태어난 아이들이 적지 않아서 그 아기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린이로 자라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도 있었다. 6년 동안 많은 시련을 겪었고, 또한 많은 기쁨도 맛보았다. 신앙의 힘, 진리의 힘을 체험했을 때의 기쁨이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기쁨이기에 세상의 기쁨과는 다른 것이었다." (455) 성직자로써의 면모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마도 성경말씀 가운데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갈 2:20)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회고록을 정리해낸 신홍범 선생은 "나이드신 분들에게는 '체험'이었던 것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역사'가 되었다."라면서 "폭력을 이겨낸 비폭력의 신앙인, 불꽃같은 삶 헛되지 않았다."라고 끝을 맺었습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아이콘 박형규 목사님은 아들 박종렬 목사에게 "나의 시대는 끝났다. 나의 고난도 끝났다. 나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라는 말씀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시대의 선한 목자요, 참스승이며, 민주투사요, 정의의 방패였던 박형규 목사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김진한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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