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마음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마음

곽재구

아침 저녁

방을 닦습니다.

강바람이 쌓인 구석구석이며

흙냄새가 솔솔 풍기는 벽도 닦습니다.

그러나 매일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은

꼭 한 군데입니다

작은 창 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떨어지는 그곳

그곳에서 나는 움켜쥔 걸레 위에

내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들을 쏟아 붓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찾아와 앉을 그 자리

언제나 비어 있지만

언제나 꽉 차 있는 빛나는 자리입니다.

시인(1954- )은 마음을 닦는 일을 방을 닦는 일에 비유한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마음을 닦으니까 그의 마음은 늘 정갈하고 영롱하게 빛날 듯하다. 방을 구석구석 닦고 벽도 닦다 보면 강바람의 흔적과 흙냄새까지도 훔쳐내게 된다. 강바람과 흙냄새가 목가적인 연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그것들은 닦일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몸담고 지내는 생활세계의 온갖 경험들과 상관있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그 경험들은 분별의 대상이다. 강바람과 흙냄새가 곰팡이를 슬게 할 조건이기도 한 반면에, 우리를 각성시키고 성숙한 식견을 갖게 할 계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을 닦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두 가지 양상을 먼저 분별할 수 있어야겠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마음을 닦게 되는 과정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닦는다는 것이 순수를 지켜내고자 하는 행위이고 보면, 순수는 무엇이며 어떤 상태인가?

아마도 순수는 마음에서 "매일 가장 열심히 닦는 곳"에 있을 듯하다. 방을 아침저녁으로 닦더라도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이 있고, 그곳이 그 행위의 진수가 바쳐진 곳이므로 가장 깨끗하고 가장 순수할 것이다. 그러나 그 순수는 본질적이지는 않다. 본질적인 순수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지도 못한다. 우리는 경험의 세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 세계에서는 모든 것을 비교한다. 격차를 통해서 서로를 분별하고 그 분별이 상대방의 의미가 된다. 그래서 우리에서 순수란 상대적 순수일 뿐이다. 이는 우리의 실존적 조건이다. 우리는 상대적 순수를 추구하면서 사는 것이다. 본질적 순수가 현현하는 것을 체험하거나 각성할 수는 있어도 그 시간이 영구하지 않다. 우리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사라진다. 시간의 풍화를 견딜 것 같은 그 순간의 명징함도 망각 앞에서는 흐려지고 만다. 따라서 우리는 순수의 형상을 조형해갈 뿐이다. 그 노력이 순수가 우리에게 내재된 것 같게 느끼게 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존재 안에 있으면서 존재의 순수를 판별할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바깥으로 나와서 분별해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매일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을 순수의 자리라고 보자. 그곳은 "꼭 한 군데입니다." 거기다 순수의 이름을 붙이자.

그곳은 "작은 창 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떨어지는 그곳"이다. "작은 창 틈"은 매일 아침저녁을 맞이하는 방에 햇살이 들게 하므로 습관적 일상의 폐쇄성을 깨트리는 해방의 통로이다. 당신이 그리워 살포시 내다본 그 틈으로 당신의 소식이 먼저 오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곳은 기대와는 달리 먼지가 비산하는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넓은 창문 앞에서 보이지 않던 먼지도 작은 틈 사이로 비친 햇살에는 또렷이 드러난다. 간절한 소망은 일상의 먼지를 예민하게 드러내는 법이다. 그 먼지에는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나는 움켜쥔 걸레 위에/ 내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들을 쏟아 붓습니다." "내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은 진심을 담아 정성껏 그 먼지를 닦아낸 노력을 가리킨다. 그래야 그 먼지의 더께 가장 안쪽에 묻혀 있던 당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떠났던 때만큼 실감 나게 그만한 어두운 기억과 아픈 상처를 찾을 수는 없겠으나, 이제는 그러한 감정의 함정에 매이지 않고 당신이라는 존재를 침착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당신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순결한 그 순간에 그가 쏟은 숨결의 언어는 당신을 기다린다는 고백에 해당한다.

그 자리는 "언젠가 당신이 찾아와 앉을 그 자리"이다. 이제껏 그 자리는 "언제나 비어 있지만/ 언제나 꽉 차 있는 빛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는 "내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이 아침저녁으로 쏟아부어지므로 "언제나 꽉 차 있는" 자리이고, 가장 순결하기에 빛나는 자리이다. 비산하는 먼지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가 가장 빛나는 자리이니까 그 모순을 촉발한 계기인 당신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언젠가 찾아올 당신이므로 헤어진 연인일 수 있겠다. 마음의 자리라면, 당신이란 존재는 잃었던 소망일 수 있다. 당신 때문에 방을 닦으니까 당신은 소망이다. 소망이 있을 때 마음의 곰팡이를 닦아내고 소망의 자리를 찾아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들을 쏟아 붓[기]" 때문이다. 그 자리는 "꼭 한 군데"일 수밖에 없다. 당신이 둘일 수는 없으니까.

사랑도 한 사람을 향할 때 순결하다고 일컫듯이 소망도 한 곳을 지향할 때 순수한 열망이라 불린다.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 순결의 정의이다. "작은 창 틈으로" 바라보므로 한 곳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자리를 "언제나 비어 있지만/ 언제나 꽉 차 있는" 자리로 믿는 것이다. "작은 창 틈으로" 간절히 바라보는 당신을 위한 자리이므로 지금은 언제나 비어 있는 듯하나 당신의 존재로 언제나 꽉 차 있는 공간이다. 공교롭게도 그 자리가 빛나는 순간은 그 주변에 먼지가 비산할 때이다. 오염물질이 그 소망을 어지럽게 유혹하는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매일 가장 열심히 닦[음]"으로써 순결에 이르게 되니까 그 과정의 노력이 빛나게 된다. 경험의 세계에서 순수를 이루는 것이다. 이 역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침 저녁/ 방을 닦[아야]" 한다. "꼭 한 군데"를 "가장 열심히 닦[아야]" 한다.

신앙생활은 한 마음을 품도록 훈련한다. 하나님 앞에서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 믿음의 요체이다. 예수께서는 두 주인을 언급하며 그 사실을 확인하셨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24). 재물의 유혹이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는 것이 신앙의 순수에 도달하는 길이다. 야고보서는 직접적으로 훈계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야고보서 1:6-8). 재물과 하나님 사이에 서면 의심이 생기고 의심은 요동하는 물결처럼 믿음을 흔든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예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8)라고 말씀하신 것도 단일한 마음이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임을 알려준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두 마음을 품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뜻이다. 마음의 "작은 창 틈 사이로" 당신을 간절히 소망하며 바라보듯이 한 곳을 지향하며 아침저녁으로 마음의 방을 닦는 것이다. 그렇게 순수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 "자세히 보아야/ 예[쁜]" 성품을 찾을 수 있다. "오래 보아야/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말씀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이처럼 성경 읽기의 과정을 형상화한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시의 형상화 기능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과정에 적용하면 그 말씀의 의미를 형상으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소박한 논리를 따라 의미의 형상화 작업에 시와 하나님의 말씀을 결부해보았다. 글쓴이는 반포소망교회에 시무하는 이인기 목사다. 매주 한편의 시를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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