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하나님께서 대통령이라면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마태복음서 20장 1-16절

설교문

[<기독교와 현대사회> 교양 수업 이야기]

제가 이번 가을에 연세대학교 1학년 신입생들만 모여있는 인천 송도 국제캠퍼스에서 <기독교와 현대사회>라는 교양 수업을 맡아 강의하고 있습니다. 연세대학교는 기독교 학교인 관계로 교양 필수로 글쓰기와 함께 반드시 기독교 관련 과목을 수강해야 합니다. 제가 맡은 반은 50명 정원인데, 이 중 그리스도인들은 10명 정도 되고, 30명은 비그리스도인이고, 나머지 10명 정도는 어릴 때 교회 다녀본 적이 있지만 지금은 다니지 않고, 부모님은 교회를 다니지만, 자신은 신앙인이 아니라고 하는 친구들입니다.

그동안 저는 다양한 곳에서 신학 강의를 해 왔는데, 청중 대부분이 신학 전공생 또는 신앙인, 아니면 신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는데, 필수과목이기에 원치 않아도 들어야 하는 20살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우선 매시간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를 고려해야 합니다. 아주 기초적인 정보도 제공해야 하고, 그리스도교 진리가 지니는 깊은 의미도 전해야 합니다. 신앙적 언어를 일상의 언어로 재서술하면서 가능한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여, 관심을 불러일으켜 보려고 꽤 애를 쓰고 있습니다. 공부와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로 당근을 삼아 어르기도 하고, 성적이라는 채찍을 가지고 살짝 으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일하기 싫어하는 소에게 코뚜레를 끼워 억지로 끌고 가는 모양새가 될 때가 있습니다. 학생 전부를 만족시키는 강의가 되지는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도 이 학생들에게 그리스도교의 핵심 진리와 가치를 가르쳐야 하기에 중요한 내용들은 과제를 통해 반드시 살펴보도록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서 말씀은 마태복음서에만 나오는데, 이 본문은 마태가 경험한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만들어가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본문을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읽히고 싶어서 과제를 냈습니다.

"이 본문을 읽고, 본문에 나오는 갈등 상황을 요약 분석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서술하고,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A4용지 1페이지 이상 2페이지 미만으로 쓰시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는 다소 집중하지 못해도, 성적은 잘 받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과제 제출은 잘합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재밌는 내용들을 소개도 하면서 저는 오늘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뜻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누가 공정한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할까?]

오늘의 갈등 상황은 아주 분명합니다. 한 학생이 이렇게 적었습니다. "같은 강도의 노동을 서로 다른 시간 동안 했는데, 받은 품삯은 동일하기에 갈등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습니다. 노동 시간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고 임금을 지불하는 상황에서 12시간 일한 사람이 있고, 1시간만 일한 사람이 있는데,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았으니, 12시간 일한 사람의 입에서 불평이 나오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요.

그런데 이야기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12시간 일한 사람이 포도원 주인과 합의한 금액이 한 데나리온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은 불평을 하지만, 주인 입장에서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주인은 두 가지나 더 자신이 타당한 이유를 댑니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주인은 분명 12시간 일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고, 그 사람에게 약속대로 지불 했습니다. 그런데 이 주인은 오후 5시에 와서 1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포도원 주인의 뜻은 이 두 사람에게 모두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입니다. 이런 포도원 주인의 뜻을 누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무슨 권리로 남의 자유로운 권리행사를 침해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주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12시간 일한 사람의 불평에 대해 한마디 거듭니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 눈에 거슬리오?" 그렇습니다. 사실 포도원 주인은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호의를 베푼 것입니다. 수학적으로 계산하여 12시간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지불했다면 오후 5시에 온 사람에게는 12분의 1 데나리온을 지불해야 하는데, 12분의 11을 더 제공한 것이지요. 즉 주인이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후한 인심을 베푼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차분히 읽으면서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부당하다고 불평하는 일군과 부당하지 않다고 대답하는 포도원 주인 사이에서 우리는 모두 주인 편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의 마음은 저절로 12시간 일한 사람에게 기웁니다. 만약 내가 종일 일한 사람과 같은 처지였다면 나 또한 비슷한 감정이 들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학생은 주인의 이런 처사를 두고 이 주인이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이 포도원에는 아침 일찍부터 일하러 나올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이 포도원 주인은 아침에는 일군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아침에 온 사람이나 저녁에 온 사람이나 똑같이 돈을 주면, 사람들이 다 저녁에 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장기적으로 주인은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미래에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벌어진 일에만 주목해야합니다. 한 학생의 예측이 상당히 일리가 있지만 정말 그렇게 될지 어떨지는 아직은 모릅니다.

부당하다는 일군과 정당하다는 주인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은가에 대해서도 학생들은 여러 의견을 주었습니다. 상당수의 학생이 일단 두 당사자 사이의 대화와 이해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둘이 더 충분히 대화를 나누면 거기에서 뭔가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어떤 학생은 주인과 노동자가 정확한 계약서를 썼어야 했다고 말합니다. 구두 계약으로만은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또 어떤 학생은 계약할 때 시급으로 임금을 정했어야 했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학생은 일군들이 일하는 영역을 달리해서 일찍 온 사람과 나중에 온 사람을 만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임금 지불을 할 때도 모두가 보지 않는 곳에서 따로따로 하라는 제안도 하고요. 이 모두가 참 일리가 있습니다. 저는 시급으로 계약서를 쓰라는 말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아마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실 맨 먼저 온 사람부터 일당을 주고 돌려보냈더라면, 학생의 말대로 서로서로 보지 않는 곳에서 일당을 지급했더라면 오늘의 갈등도 없었겠지요. 그런데 성서는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일당을 주고 그렇게 해서 일부러 맨 먼저 온 사람으로 하여금 불평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핵심 중 하나입니다.

[갈등의 원인은 마음에 있다]

실로 많은 학생이 지적도 했지만, 오늘 이야기 갈등의 핵심에는 남과의 비교가 들어 있습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일꾼들은 일당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정말로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이들입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일정한 기간 동안 고용된 사람이 아닙니다. 당일 일을 얻지 못하면 근심 걱정으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이들이지요.

게다가 당시 일용직 노동자들은 노예보다도 못한 취급을 당했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재산 품목으로 간주되었기에, 역설적으로 주인은 노예를 아끼고 소중하게 대했습니다. 그런데 일용직 노동자는 하루 이상을 고용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을 정도로 어떤 사회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일회용품과 같이 사용되었습니다. 로마의 농장주들은 일용 노동자들의 상황을 일부러 불리하게 만들고 임금을 낮추기 위한 온갖 전략들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성경은 주인이 9시, 12시, 3시, 그리고 5시에도 일군을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왜 당신들은 온종일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소?"라고 묻는 포도원 주인의 질문에 뒤늦게 일자리를 얻게 되었던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이 대화는 1세기 갈릴리가 극심한 실업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일자리를 얻고 싶어도 얻지 못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애환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마 이른 아침에 일자리를 얻었던 사람은 자신이 선택되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일을 얻지 못해 속 태우던 시간들, 쏟아지는 눈물을 훔쳐냈던 그 시간들을 보낸 이 사람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일을 얻었다는 안도감, 일하면서 누리는 보람, 가족의 일원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고, 단 하루라도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만족했을 것입니다. 저도 인력 시장을 통해 막노동을 한 적이 있는데, 새벽에 일을 구하러 가면 노동현장으로 가는 차가 오고, 거기에서 젊은 사람들부터 먼저 일자리를 구하게 됩니다. 보통은 아침 이른 시간에 일자리 배분이 마감되고, 어떤 분은 끝내 선택받지 못하고 그날은 일을 못하는 경우가 있지요. 공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바로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가족 보기가 미안해서입니다. 그러면 공원을 어슬렁거리다가 저녁 늦게 돼서야 휑한 마음 달래려고 소주 한 병 사들고 들어가곤 하지요.

어린 시절부터 목수 아버지 요셉을 따라다니며 날품팔이 경험을 했던 예수님의 삶이 여기에 녹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가 자란 나사렛은 세포리스라는 도시로부터 약 10km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예수가 아버지로부터 목수일을 배울 때, 세포리스 도시는 한창 재건 중이었습니다. 어쩌면 마리아의 아들이라 불린 예수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그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종종 세포리스로 일하러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치는 날이 일하는 날보다 더 잦았던 탓에, 시름에 가득 차서 되돌아 와야 했습니다. 해는 저물고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예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 자신이 농민이자, 목수이고, 목동이자, 날품팔이였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에 일자리를 얻어서 기뻤던 사람이, 불평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된 것은 한 시간 일하고도 한 데나리온을 받은 사람을 보고 자기는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주어진 것에 만족하였더라면, 아침의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비교했기 때문에 불평을 하게 되고, 주인과 다투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포도원 주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일군들이 일자리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가 하늘나라의 비유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논의를 확대해 보자면, 우리의 생명, 우리의 재산, 우리의 능력 그 모두가 사실은 창조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이 세상을 창조하면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미 주어진 많은 것들을 공짜로 이용하면서 이어져 갑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스펙을 자랑하고, 그 능력과 스펙으로 성공했다고 하지만, 사실 모든 성공에는 자연적 운과 사회적 행운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고, 더 한발 들어가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창조주께서 허락하시고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생명이 그렇게 주어진 값진 선물인 줄 알고 산다면, 우리는 기쁨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안다면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남과 비교하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들의 불만과 짜증이 대부분 자족하지 못하고 비교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남는 문제: 왜 1데나리온인가?]

이렇게 생각을 해 보아도 여전히 남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선물로 주실 것이라면 통 크게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에게 12데나리온을 주시면 얼마나 좋은가?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선 이런 질문부터 풀어야 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왜 한 데나리온으로 품삯을 정하는가? 그리고 왜 그는 9시 12시 3시 5시에도 계속 일군을 구하고 있는가? 자신의 포도원에서 일할 거리를 계산해서 이른 아침에 일군들을 전부 고용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는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포도원 주인이 효율성을 제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의 행동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그는 자본증식을 하려는 자본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는 포도원을 통해 이익을 얻기 보다는 포도원을 통해 일군들에게 일감을 주고, 그들을 먹여 살리려는데 더 관심이 많습니다. 이 포도원 주인은 빈둥거리는 일꾼들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포도원의 일은 오전 6시에 계약한 사람이 하면 충분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비유의 포도원 주인은 사람들이 빈둥거리며 놀고 있기 때문에 일꾼들을 고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비유를 시작하면서 미리 언급했던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그는 이익 창출을 위해 일군을 고용한 것이 아니라, 그냥 빈둥거리는 일군을 찾아서 고용합니다. 9시에도, 12시에도, 3시에도, 그리고 5시에도 말이지요. 우리는 첫 구절을 읽으면서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 따라 당연히 이윤을 얻으려는 농장주를 떠올리지만 오늘 비유에 등장하는 주인은 그런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농장주들은 대개 삶을 터전을 도시에 둔 엘리트로서, 대리인을 통해서 농촌에 있는 농장들을 관리하곤 했습니다. 보통 그들의 관심은 농장으로부터 나오는 이익이었습니다. 포도 농사를 짓는 것이 바로 그러한 전략 중 하나입니다. 포도 농사는 다른 곡식에 비해 손이 덜 가고, 수확철에만 집중적으로 인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싼 품삯으로 일시에 노동을 투입하여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작물이 포도였습니다. 또 포도는 일용할 양식으로 쓸 수는 없기에, 갈릴리 농부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하는데, 그럴수록 농장주는 낮은 임금으로도 일군을 고용하기 쉬워졌고, 부를 늘릴 수 있습니다. 사실 오늘 비유에서도 이른 아침 즉 6시에 포도원 주인과 노동계약을 한 일군은 그의 가족들이 간신히 하루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한 데나리온의 최저 생계비의 계약 조건에도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 슬슬 한 데나리온의 비밀이 풀립니다. 왜 한 데나리온인가? 왜 주인은 전부 한 데나리온만을 주는가? 1시간 일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면 12시간 일한 사람에게는 열두 데나리온을 주고, 12시간 일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면 1시간 일한 사람에게 12분의 1데나리온을 주지 않고, 왜 모두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는가 하는 것이지요.

포도원 주인이 보여준 자비와 은총은 임금의 풍족함에 있지 않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한 가족이 하루를 간신히 먹고 살 최저생계비였습니다. 오히려 포도원 주인의 자비는 사람들을 고용한 것에 있습니다. 포도원에 할 일이 많이 없는데도 일부러 일꾼을 고용하고 적당한 품삯을 지불하려는 그 마음이 바로 자비입니다. 특히 오후 5시에 와서 한 시간만 일하고도 한 데나리온을 받은 사람은 주인의 자비와 은총을 한껏 입게 됩니다.

이른 아침에 와서 일한 사람이 놓친 주인의 마음은 이것입니다. 왜 주인은 계속 인력시장을 서성거리는 것일까요? 주인은 사람의 생명에 관심이 있습니다. 모두의 생명을 동등하게 살리고 싶은 것입니다. 능력주의와 비교 의식에 사로잡힌 일군은 다른 일군들과 자기를 구별하면서 더 많이 일한 만큼 더 받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와 남을 구별하며 분열을 일으키고, 모두가 일자리를 얻어 함께 삶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을 받았을 때, 카인이 동생을 진실로 사랑했다면 함께 기뻐하고 축하했을 것인데 그만 살인에 이르게 된 그 비극이 오늘도 다른 모양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는 정확한 계약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납니다. 일한 만큼 결실을 얻습니다. 공정하게 대우해야 하고, 그래야 정의가 살아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네 삶에는 은총이 있습니다. 덤으로 얻는 것이 있습니다. 되로 주지만 말로 받기도 합니다. 불행은 아무런 이유 없이 불현듯 찾아오고, 행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고, 용서하며 받아 줍니다.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삶을 누리도록 허락합니다.

오늘 성경에 불평하는 사람에게 포도원 주인이 "이보시오"라고 말한 것으로 번역되었는데, 원문을 보면 "친구여"(Ἑταῖρε)입니다. 이 포도원 주인은 모든 일군들을 자신의 동료로 여기고, 정의와 사랑, 일한 만큼 주어지는 계약 관계와 일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은총의 관계를 모두 행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습니다. 맨 마지막에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고, 이른 아침에 온 사람에게 열 두 데나리온을 주면 더 풍성한 호의를 베풀었다고 칭찬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포도원에서 나는 이윤은 무한대가 아닙니다. 지금 주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안에서 최대한 모든 사람을 살려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만약 이른 아침에 일한 사람의 요구대로 다 주려고 했다면 포도원 전체가 망했을 것입니다. 주인이 9시 12시 3시에 만난 일군들에게 "적당한 품삯"을 주겠다고 했는데, "적당한 품삯"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도 살리고, 계약 관계에 있는 노동자도 살리고, 일자리를 얻지 못해 서성거리며 근심에 쌓인 이들도 살려내려 합니다. 바로 모두가 상생하고 공존하는 미래를 만들어 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 어떤 것도 잃어버리지 않고 모두를 고려합니다.

오늘 한 데나리온이라는 적당한 품삯의 비밀이 놀라운 것은 바로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생태경제학적 사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경제학은 무한자원에서 무한적 이윤이 나올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지구는 유한합니다. 유한한 자원이라면 계속되는 성장이라는 신화는 거짓이고, 속임수입니다. "무한성장"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어느 정도 자라면 멈추고, 그리고 늙고 죽어야 합니다. 나누고 비우지 않으면서 저만 무한대로 자라려고 하면 결국 온 몸을 죽게 하는 암처럼 우리 사회를 망가트리게 될 것입니다. 한 명이 12 데나리온을 가져간다면 11명은 하루를 굶어야 하는 비참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우리 사회는 사람과 로봇, 남과 여, 아이와 어른, 동양과 서양, 과거와 미래가 서로 얽혀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어느 하나만을 고집하지 마십시오. 이것도, 저것도 모두를 품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능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 마태복음서의 본문은 하늘나라의 경영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두를 품으려고 하십니다. 만약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시라면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내년에는 총선이 있고,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고 운영하는 사람들을 선출합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떤 사람들을 뽑아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오늘 포도원 주인 같은 사람, 어느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그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마태복음서를 써 낸 사람들은 제법 부유한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율법을 재해석해 낼 수 있는 학문적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계속 관심을 잃지 않고, 주목하고 도우려는 이들은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입니다. 마태에는 "작은 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이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작은 자들에 대한 마태의 관심은 이루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이 공동체가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공동체인지 우리는 가슴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대통령이시라면 이뤄갈 세상이지요.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꿈꾸셨고, 마태 공동체가 만들려고 했던 하나님 나라, 그것을 우리가 이어갑시다. 무엇보다 생명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공동체에 속한 그 어느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생(寄生)도 공생(共生)입니다. 기생하는 생물을 벌레 보듯 하지 말고, 함께 품어 공생하는 삶을 만들어 갑시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 은사를 사용하여,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 능력으로 모두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나섭시다. 거기에 하나님의 높은 뜻이 있고, 미래가 달려 있고,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통령이시라면 이루어낼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 갑시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주님! 늘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지켜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험악한 세상, 주님의 은총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하루살이는 무척이나 고단했을 것입니다.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보아주시고, 생각지도 못한 호의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돌봐 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 닮아 넉넉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소서. 남과 비교하여 더 가지려고 하지 말고, 이미 가진 것을 내어놓아 더 큰 우리가 되게 하소서. 무엇보다 생명을 살리고, 사랑에 충만하도록 우리를 도우소서. 진정으로 소중한 가치를 깨달아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일에 온 힘을 다하게 하시고, 주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어 어리석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하여 주소서. 모두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어 생을 유지하게 하신 주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 모두가 지금의 삶에 자족하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좋으신 하나님! 맑은 가을 하늘, 선선한 바람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이 좋은 날 우리 모두를 주님 전에 불러 모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주님의 따뜻한 빛을 쪼이니 지난 삶의 구김살들이 살살 펴지고, 주님의 자애로움과 미소로 우리의 굳어진 마음이 부드럽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지의 구름이 걷히고, 우리의 모든 이웃이 주님의 향기임을 깨닫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은총에 감사하여 오늘 우리의 삶과 예물을 드립니다. 우리는 주님만으로 충분합니다. 주님 주신 선물에 만족하오니, 오늘 우리가 드린 예물을 꼭 필요한 곳에 써 주소서.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곳에, 돈이 맘몬신을 섬기는 도구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곳에 쓰이게 하소서. 특별히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는 생명사랑교회의 모든 사역을 통하여 우리가 날마다 진보하게 하시고, 더욱 더 주님과 가까워지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모두를 품어 안으시는 주님의 뜻을 깨달으십시오. 주님의 마음을 닮아 모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 축도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의 지식과 사랑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이제는 전능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의 사랑과 은총과 능력이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누구 하나라도 잃지 않고 모두의 생명을 책임지는 심정으로 모든 이에게 나아가는 생명사랑교우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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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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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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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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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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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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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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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