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율법의 감시와 믿음의 성취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갈라디아서 3장 21-29절

설교문

[밀려오는 세상의 풍랑 속에서]

중국의 고전 중에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주며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장자』(莊子)입니다. 장자의 외편 중에 '잘 사는 법'을 다룬 「달생」(達生)이라는 편이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여량(呂梁)이라는 곳으로 놀러 갔는데, 거기는 30길이나 되는 폭포가 있고, 빠르게 흐르는 물살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40리 넘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온갖 물고기뿐만 아니라 큰 거북과 악어도 살고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자 일행은 거기에서 어떤 사람이 헤엄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공자는 그가 목숨을 끊으려고 투신한 것으로 생각하고, 제자들을 시켜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그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수백 보의 거리를 헤엄쳐 내려간 뒤 이내 물 밖으로 나와서는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콧노래를 부르며 강둑을 따라 유유자적하게 거니는 것이었습니다. 공자가 곧바로 그의 뒤를 쫓아가 물었다. "당초 나는 그대가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귀신이 아닐까 생각했소. 이제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이 틀림없구려. 그런데 물속을 헤엄치는 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것이오?"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합니다. "없소. 나에게는 비결이 따로 없소. 다만 본래 타고난 소질 그대로 자맥질을 시작하고, 습성을 좇아 물과 더불어 성장했으니, 주어진 것을 이룬 것뿐이요. 소용돌이와 함께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용솟음치는 물의 흐름에 따라 물 밖으로 나온 게 전부요. 물의 이치를 좇을 뿐 내 멋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내가 물에 들어가 헤엄친 비결이라면 비결일 것이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엄청난 물결이 소용돌이치면서 우리 삶을 압박해 오고 있습니다. 물의 양이 적고 그 흐름이 느릿느릿하다면 그 흐름에 맞서서 굳건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이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장자 이야기에 나오는 수영의 달인(達人)처럼 그 물결의 흐름을 타고 함께 흘러가는 것이 잘 사는 길입니다.

거대한 강물의 흐름만큼이나 역사와 시대의 흐름도 비슷합니다.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는 개인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를 무시하고 해 오던 대로 자기에게 편한 것만을 고집하다가는 어느새 외따로 떨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대를 읽어내고, 그 흐름을 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더 나은 사람은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흐름의 방향을 이쪽이나 저쪽으로 틀 수도 있습니다.

[시대를 바꾼 바울]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주인공 바울은 바로 시대를 새롭게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가 지닌 한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정복 전쟁으로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노예를 공급하여 제국을 다스려온 로마의 방식은 지속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매번 전쟁을 치른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비용과 엄청난 손실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고,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갈망 때문에 남 밑에서 굴종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노예제도가 영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피라미드식 계급사회였던 로마 제국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 각 계층에 따라 한 공동체를 이루며 자기 삶을 유지했습니다. 마냥 당하기만 하는 삶을 살 수는 없었기에 서로 힘을 합쳐 강한 힘을 가지고 로마 제국과 대등한 협상을 하려고 했지요. 강력한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집단들이 형성되었습니다. 어떤 집단은 혈연과 민족으로 똘똘 뭉치고, 어떤 집단은 같은 사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어떤 집단은 종교적 신념으로, 어떤 집단은 이익에 따라서 동맹관계를 맺었습니다.

기원전 587년에 나라를 잃고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과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적 신념을 공유하면서 로마 제국 아래에서 매우 강력한 집단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공동체에 들어가면 로마 제국의 폭력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었고, 황제 숭배의 제의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일정한 삶을 유지할 수 없던 뜨내기들, 직업을 찾아다니는 외국인 노동자들, 주인으로부터 추방당한 방출 노예들, 가정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성과 어린아이들은 이런 유대인 공동체에 들어가서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 무장한 엄격한 유대주의자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민족적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 줄 수 있는 할례를 비롯해서 온갖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했습니다. 율법은 원래 인간의 들쑥날쑥한 마음, 종잡기 어려운 육체적 욕망, 권력을 향해 멈출 줄 모르는 탐욕을 제어하고, 하나님의 올바른 길로 이끄는 좋은 선생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 유대주의자들은 이 율법을 가지고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며, 사랑의 하나님이 아끼시는 백성들을 소외시키고 차별하는 데 사용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완전히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거듭나게 되는데,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갈라디아서 3장 27절과 28절에 정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려고 했던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자유인이나 종을 구별하여 차별하지 않고 모두 한 가족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1세기 바울의 예수 운동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과 똑같이 세상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제국 전역을 다니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회(民會), 백성들의 모임인 에클레시아를 조직했고,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는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함께 상생하는 삶을 살아내겠다는 사람들로 가득하였습니다. 교인들이 교회를 통해 느낀 사람다운 삶, 존중받고 서로 섬기며 아끼는 삶은 로마 제국의 불평등한 위계질서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고, 결국은 인류 사회에 진정한 의미에서 "모든 인간의 타고난 존엄성"이라는 고귀한 사유가 어떻게 실생활에서도 실현 가능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교회는 로마 제국이 가진 한계를 무너트리면서 빠르게 확장되었습니다.

지금 전 세계의 정치 제도는 민주주의를 지향합니다. 즉 국민이면 누구나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여 자기 삶의 터전을 일구는 일군을 선출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많다고 하여 여러 표를 행사할 수는 없습니다. 나이나 성별, 학업의 우열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하는 선거 제도는 이렇게 바울 사도의 예수 운동으로 인해서 인류 사회에 조금씩 정착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이방인과 유대인의 차별, 남자와 여자 사이의 차별, 종과 자유인의 위계질서를 무너트렸고, 모든 인간은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천명했는데, 그것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가열 찬 외침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꿈과 비전은 아직도 계속 실천되어야 하는 과제로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노예제도는 사라지고 없지만, 우리네 인생에서 겪게 되는 차별과 불평등, 불공정과 폭력적 상황들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강대국들 전쟁 놀음에 시달리는 약소국가들,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의 횡포에 신음하는 서민들의 아픔과 고통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인류의 평등과 존엄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생명의 평등과 존엄함을 깊이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구 전체의 모든 생명을 고려하지 않으면 인류도 살아남을 수 없음이 명백해졌고, 기후 재앙이 바로 그 예증입니다.

[우리도 새 시대를 만들 수 있는가]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이루며, 폭력적 지배가 아닌 사랑으로 섬기는 세상을 만들어 누구나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실현하려 했던 바울의 이상은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직도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고, 우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기후 재앙 속에서 우리의 삶의 양식이 변해야 하는 것도 마땅합니다. 모든 자연과학의 발달이 지향하고 있고, 인류 문명을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키려는 모든 노력은 바울이 보여준 비전 안에 사실은 이미 다 들어 있습니다.

최근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계 가전제품 박람회(CES, Consumer Electronics Show)를 보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150여 개국에서 4,000개가 넘는 기업이 참가했는데, 올해의 주제는 '올 온(All On)'입니다. 인류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의 기술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772개사가 참여해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입니다. 772개사 중 143곳이 혁신상을 받았으며, 최고 혁신상의 27개 제품 가운데 한국 기업은 8개를 차지했습니다.

가전제품 박람회라고 해서 가전제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뒤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게처럼 옆으로도 가는 자동차, 2028년부터 상용화를 꿈꾸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비롯해 온갖 인공지능 기술을 탑재한 다양한 신기술들이 펼쳐집니다. 투명 유리에 영상이 나오는 TV는 앞으로 거실 창문에서 영화를 보게 되는 날들을 기대하게 만들고, 몸에 착용하는 기계들로 노인이나 장애인들이 훨씬 더 수월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됩니다. 작은 무전기 같은 것을 들고 다니면서 온갖 일을 시키는 비서로 쓸 수 있고, 가정에서도 로봇들이 인간을 대신해 많은 것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물로 배터리를 만들어 저렴한데다가 화재 위험성도 없으며, 왕겨나 커피 찌꺼기로 플라스틱을 만들어서 독성도 없고 분해도 됩니다. 한 대의 버스 안에서 다양한 진료가 가능한 이동식 병원이 선보였고, 땅에서 식물을 키우지 않는 스마트 농장은 기존 농업에서 사용하는 물의 90%를 아낄 수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이런 신기술들을 차분히 생각해 보면 인류가 당면한 여러 위기와 좋지 않은 소식 속에서도 여전히 한 줌의 희망을 지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낳습니다. 그리고 많은 혁신 제품들이 모든 생명체의 상생(相生)을 고려하면서 만들어지는 경향이 강하고, 동시에 장애나 노화, 질병에서 오는 고통을 줄이는 것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박람회를 보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술적인 진보가 사회적인 수용력이나 제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거나, 또는 남용이나 오용, 자칫 왜곡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면 오히려 빈부의 격차를 늘이고, 소수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가는 식의 문제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가 늘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서로서로 이해하면서 가능한 모든 생명체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문명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작은 비행체인 드론이 물류나 의료, 방송 등에서 아주 소중하게 쓰이는 반면, 전투와 살상, 공격에도 어마어마하게 사용된다는 것을 우리는 늘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남자와 여자, 이방인과 유대인, 종과 자유인 사이의 건널 수 없는 분열과 갈등, 불평등과 혐오에 대해 우려하고 그것을 극복하려 애를 썼는데,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는 가장 큰 갈등과 어려움 중 하나는 바로 세대 갈등입니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못마땅해하고, 젊은이들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어른들을 무시하곤 합니다. 노인 빈곤율은 갈수록 커가고 독거노인으로 외롭게 사는 어르신들도 많지만, 동시에 참된 어른을 필요로 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홀로 외롭게 지내는 숱한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필요한 율법 선생과 신뢰를 통한 자유]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이 필요할 때가 있었고, 예수 안에서 자유를 보장하는 신뢰가 필요한 시대가 있음을 역설합니다. 오늘도 누군가에게는 율법의 감시가 필요합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믿음의 열매로 얻는 자유와 해방이 요청됩니다. 우리는 율법과 믿음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의 잔소리도 들을 필요가 있고, 어른들이 젊은이들의 지혜를 배울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들이 활약하도록 자리를 선뜻 내어주려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그 어떤 교회보다 더 젊은 교회가 되고 생기발랄한 교회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동시에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어떤 분야는 그 흐름을 타야 하지만, 동시에 어떤 것은 그래도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흐름을 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흐름이라면 그 흐름을 바꿀 강력한 뿌리와 정체성도 필요한 것입니다.

너무나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기 위해 여러분에게 임태주 시인의 시 한 편을 천천히 읽어 드리려고 합니다. 제목은 "어머니의 편지"입니다. 내용이 매우 길지만 깊이 깊이 생각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 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이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나는 뜻이 없다. 그런 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 리 없다. 나는 밥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 얻어다 맑은국을 끓였다. 가을에는 미꾸라지를 무쇠솥에 삶아 추어탕을 끓였고, 겨울에는 가을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끓여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너는 책 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아릴 것이다. 너 어렸을 적, 네가 나에게 맺힌 듯이 물었었다. 이장집 잔치 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제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 때 엄마는 왜 못 본 척 나를 외면했느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나는 여태 대답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지엄한 윤리와 법도를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겨우 알 뿐이다. 남의 예식이지만 나는 그에 맞는 예의를 보이려고 했다. 그것은 가난과 상관없는 나의 인정이었고 도리였다. 그런데 네가 그 일을 서러워하며 물을 때마다 나도 가만히 아팠다.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 되었다. 내 도리의 값어치보다 네 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는 걸 어미로서 너무 늦게 알았다. 내 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했더라도 애미를 용서하거라.

부박하기 그지없다. 네가 어미 사는 것을 보았듯이 산다는 것은 종잡을 수가 없다. 요망하기가 한여름 날씨 같아서 비 내리겠다 싶은 날은 해가 나고, 맑구나 싶은 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닥친다. 나는 새벽마다 물 한 그릇 올리고 촛불 한 자루 밝혀서 천지신명께 기댔다. 운수소관의 변덕을 어쩌진 못해도 아주 못살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 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는 거 별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애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 것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귀천이 따로 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 때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 때는 채를 가까이 끌어당겨 흔든다. 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 그런 것이다. 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 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혼곤하고 희미하구나. 자주 눈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물이 들어서 좋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마라. 부질없이 길게 말했다. 살아서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바울 사도가 믿음이 주는 자유와 열매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율법의 가르침과 율법에 따라 철저하게 살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열매를 말하고,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 그래도 행복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우리 어머니들의 잔소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도 잘 올라타시되, 늘 그리운 어머니의 잔소리도 잘 기억하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는 마음에서만 믿음의 성취가 값진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자유인으로 사시되 올 한해도 더욱 정성껏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새해를 허락하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 흐르고 보름 남짓한 시간이 벌써 지나갑니다. 세상은 매우 다양한 소식들로 우리를 어지럽게 합니다. 도도하게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시대의 흐름을 탈 줄 아는 지혜와 능력을 주소서. 동시에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지켜야 할 것들, 부단히 노력하며 애써야 할 것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새 시대를 열어감과 동시에 새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는 다짐과 실천 속에서 믿음으로 얻는 은총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고 느끼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하나님!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올 한해, 주님의 환한 얼굴을 대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이따금 비틀거려도 이내 중심을 잡고 일어서는 팽이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기어코 몸을 일으켜 주님의 마음에 잇댄 채 살아가게 해 주소서.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섬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런 우리의 소망이 물거품처럼 스러지지 않게 해 주소서. 오늘 우리는 주님의 은총을 기억하며, 우리의 전 삶과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로 예물을 드립니다. 이 예물을 받아 주소서. 움켜쥔 손을 펴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을 서둘게 하소서. 아픔과 고통이 있는 곳에서 부를 때에, 달려 나가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하여 늘 전진하기를 원합니다. 올 한 해 주님의 은총 안에서 더욱 넉넉한 품을 가지고 살기를 기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십시오. 그 흐름에 올라타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십시오. 동시에 소중한 것들을 잘 지키십시오. 하나님의 계명에 충실하되 하나님과의 깊은 신뢰 속에서 참 자유를 누리십시오.

* 축도

사랑하는 여러분!

새날이 밝았습니다.

오늘 떠오른 태양은 어제의 그 태양이 아니고,

지난밤 불었던 바람은 이제 다시 불지 않습니다.

새 역사에는 새바람이 불고 새로운 해가 뜹니다.

이제는 지난 세월을 지켜 주시고 새로운 한 해를 열어주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이, 주님의 말씀에 따라 모든 생명체들과 더불어 상생하는 삶, 공존하면서 서로 섬기는 삶을 살려는 생명 사랑 모든 믿음의 지체들 위에, 함께 예배하고 선교하는 전국의 모든 성도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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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학 5] 서구 그리스도교 신학의 터전을 마련한, 아우구스티누스!

"서방신학은 동방신학보다는 출발이 좀 늦었으나 곧 테르툴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 암브로시우스 등의 교부들이 주축이 되어 착실하게 발전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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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학 4] 카르타고 학파의 거침없는 변증과 교회론

"테르툴리아누스와 키프리아누스의 신학을 오늘날 살피는 것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이들의 신학은 현실적이고 참여적이고 실존적이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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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학 3] 안디옥 학파를 반대한 것은 "민중의 종교 감정"이었다고 틸리히는 말했다

동방교회에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함께 안디옥 학파도 있었다. 그러나 이 두 학파의 결은 사뭇 다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안디옥에서 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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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학 2]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신플라톤주의를 어떤 식으로 수용하였나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그리스 철학의 영향 가운데서 배양되었다. 당시 철학은 단순한 학문의 한 분과가 아니었다. 폴 틸리히는 "고대가 끝날 무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