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신학과 레비나스의 철학을 비교 고찰한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김성호 박사(한신대 겸임교수)는 「신학사상」 최근호(제203집)에 발표한 논문 '민중신학과 레비나스'에서 레비나스와 민중신학 사이에 대화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며 이를 네 가지로 비교 고찰했다.
김 박사는 민중신학과 레비나스를 비교 연구하기에 앞서 민중신학을 우상화하는 경향을 우려하며 "민중신학자 서광선은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어 민중신학은 인식론적 '사다리'의 기능을 한다고 했다. 이것은 민중신학 자체가 진리는 아니지만 민중신학은 하나님의 실체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도구라는 의미다"라고 전했다. 민중신학의 인식론적 기능에 주목하며 그 자체의 목적화를 경계한 것이다.
김 박사에 따르면 민중신학과 레비나스의 대화지점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민중신학과 레비나스의 민중과 프롤레탈리아 개념 정의 비교였다. 그는 "민중신학자들은 다소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민중을 프롤레타리아에 국한시키지 않고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억압받는 모든 사람들로 정의하며, 특히 민중을 역사 변혁적 주체로 상정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레비나스는 "민중의 정신과 민중을 향한 지식인의 투쟁을 옹호했고, 비록 레비나스의 타자가 반드시 민중이 아니라 해도 타자의 얼굴을 통해 타자는 무국적자, 이방인, 가난한 자, 프롤레타리아, 고아와 과부, 거지 등 민중임을 밝혔다"고 그는 전했다.
김 박사는 또 " 레비나스는 시편 104편에 대한 해석을 통해 노동과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더 나아가 민중신학이 보는 역사 변혁적 주체로서의 민중의 모습처럼 프롤레타리아에게서 적극적이고 책임적인 민중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중신학의 민중과 다소 다르게 어쩌면 금욕적으로 보일 혁명가적 모습을 기대하는 것 같다. 이런 혁명가적 모습은 선(善)에 대한 애정에 봉헌된 절대적 나실인의 모습, 절대적 청년의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이어 두 번째로 민중신학에서의 그리스도와 이웃을 레비나스의 이웃 및 그리스도와 비교 고찰했다. 그는 특히 "서남동과 레비나스의 공통점은 양자가 이웃의 얼굴에서 신(그리스도)의 얼굴을 보고, 타자의 절규에서 신(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물론 케리그마적 그리스도와 우주적 그리스도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세 번째로 민중신학의 민중과 메시아를 레비나스의 메시아 또는 메시아주의와 비교 고찰했다. 그는 "레비나스에게서 타자들의 고통과 세계에 대해 책임적인 사람이 메시아 또는 메시아주의다. 그러므로 안병무의 자기 초월적 민중 메시아나 서남동의 메시아적 역할을 담당하는 민중 메시아 담론은 레비나스의 메시아 담론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레비나스와 강원돈을 비교하며 "레비나스의 신은 강원돈이 말하는 바, 전통적인 초월적 신에 가려져 은폐된, 역사적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 하나님의 존재방식과 일치한다"며 "그러나 강원돈이 존재론적으로 노동자를 하나님과 동일화하지 않고, 양자를 동일시할 경우에만 레비나스와 상통할 것이다. 왜냐하면 레비나스에게서 타자는 신의 흔적이지 타자가 곧 신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