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자화상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시인(1917-1945)은 자아성찰의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현재 우물물이 거울처럼 비추는 자신의 형상에 미움을 느끼는 것으로 보아 그는 회한과 반성의 눈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나르시스(Narcissus)는 아닌 셈이다. 그 눈은 자신을 "그 사나이"로 파악한다. 자신이 낯설다. 기대한 모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물에 비친 모습과는 반대일 것이다. 외면했으므로 그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분명하다. 왜 부끄러워할까? 조국을 잃은 상황에서 목숨 바쳐 투쟁하는 이들과는 달리 자신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의식 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외면했지만, "그 사나이"가 가엾고 그립다. 그 이유는 그가 분명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 애잔한 자화상은 현실의 굴레에 매여 있는 자아의 모습이다. 그렇게 그가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 그 자화상은 독자가 자기의 모습을 비춰보게 될 거울이기도 하다.

시인은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그가 "산모퉁이를 돌아" 간 것은 사람들이나 환경의 영향을 벗어나고자 한 의중 때문이다.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그가 하고자 한 일은 결심한 대로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다. 혹시, 현실의 압박으로부터 도피하여 자신의 내면에로 침잠하려고 하는가? 그러나 그가 우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보아 탐닉적 도피의 시도는 아닌 듯하다. "가만히"가 내면의 동요도 통제하며 집중하려는 긴장감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신 앞에 선 단독자의 심정이 이러할까?

우물은 우물물의 존재 때문에 의의가 있다. 그 물은 차별 없이 모든 것을 비춘다. 나르시스처럼 자신에게 도취하도록 미화하지도 않고 시냇물처럼 흐르지도 않아서 객관적 형상을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 거울은 밤이든 낮이든 계절이 변하든 거기에 비취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그는 우물을 찾지 않더라도 밝은 달과 흐르는 구름과 공활한 하늘과 선선한 가을바람을 보며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찾아간 이유는 그 우물물에는 모든 것이 왜곡 없이 비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우물물은 아무도 모르는 그 자신만의 내면적 거울일 수 있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기도 하므로 그 시야에는 그의 주관적 심정이 어릴 수밖에 없으나 그 거울의 순간은 그가 자신을 객관화하려는 시도의 결과이다.

그 시도로서 그는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우물은 그를 "한 사나이"로 비추었다. "그 사나이"는 그가 자신을 낯설게 여기고 있음의 표시이다. 자신이 생각하던 모습과 다른 것이다. 그는 그 이질적인 모습에 혐오를 느낀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그는 혐오감으로 인해 그 모습을 외면한다. 자기혐오는 자기의 본질적인 모습이 외부의 환경이나 경험의 압박으로 왜곡되었을 때 표출된다. 그가 <서시(序詩)>에서 고백한 바에 따르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는]"데, 그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어쩐지"는 그가 부끄러워하는 이유를 밝힐 수 없는 마음까지 담고 있다.

그러나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자기혐오의 원론적인 종결점은 죽음이지만, 그는 삶의 터전으로 돌아갈 것을 전혀 의심하고 있지 않다. 그 와중에 그는 그 터전에서 살아왔던 자신의 자화상을 자기혐오만으로 채색할 일이 아니라는 각성에 이르렀다. 상황과 경험에 억눌려 본질적인 모습을 잃어버린 자신에 대해 연민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물론, 자기연민이 왜곡된 본질을 회복하기란 역부족이다. 그는 여전히 현재의 자기의 모습과 자신의 본질적인 모습을 화해시키지 못한다. 이것이 그의 자화상이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본질적 모습이란 상황과 타협할 수 없는 고유한 주체성을 반영한다. 하지만, 고유성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압박적 현실은 마치 이유를 알 수 없으나 견뎌야만 하는 실존적 조건을 연상시킨다. 그 조건 아래서 자아가 왜곡된 것을 느끼기 때문에 그는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이제는 그 처지를 공감하게 되어 마음속 한 켠에 잔영으로만 남겨져 있게 될 그 모습이 그리워진다.

그 모습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그의 내면적 갈등에 전혀 관심 없는 듯한 상황과 환경이 여전히 그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고 달빛은 자기의 심정에 무관한 듯 밝기만 한데, 그만한 시간 동안 혼자만의 가슴앓이를 견디다 홀로 가만히 들여다본 마음속에 그 무정한 현실을 배경으로 "그 사나이"는 추억으로 서 있기만 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 추억은 애증을 담고 결국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리움은 공감의 진솔한 표현이다. 아마도 자아성찰의 보편적인 과정이 이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논가의 외딴 우물만 찾고자 한다면 무한반복하는 정서의 변화만 확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기의 심정에 영향을 받지 않고자 객관적인 거울을 보았으나 그 거울에 비친 형상 때문에 그의 심정이 미움과 가여움과 그리움의 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 또한 부끄러울 수 있다. 우물에 비친 하늘이 자기의 애잔한 모습에 배경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이때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물론, 시인은 하늘에도 부끄러움을 투영하기는 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말해서, 자아성찰은 부끄러움과 애증의 갈등을 벗어나기 위해 하는 것이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그의 상황적 한계가 부각되기도 하지만, 그 한계를 각성하는 것도 자아성찰의 핵심 중 하나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아성찰은 어떤 성격을 띠는가? 그리고 자아를 비추는 거울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말하자면, 구원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씀이 자아를 비추는 거울이고, 그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노력이 성찰의 과정이다. 그러나 이 명제에서는 초자아(super ego)의 압박이 느껴진다. 하나님이 초자아의 위치에 계신 것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그분은 냉정한 지침으로서만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 임재하여 우리 각자의 자아와 동행하며 그 가치를 함께 실현하고자 하신다.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논가의 외딴 우물을 함께 찾거나, 우물물을 들여다보면서 싫어지는 자기의 모습으로부터 함께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시는 것이다. 애잔한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다시 우물을 찾고자 할 때도 말없이 다시 동행하신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반복하더라도 죄로 인해 부끄러운 처지에 있는 우리는 스스로 참된 자아를 찾기가 어렵다. 그 자아를 알고 있는 그분이 우리의 삶에 공감하는 가운데 그 길을 깨닫게 하셔야 가능하다. 그때 "그 사나이"는 부끄러움과 가여움과 미움의 연무 너머에 있는 하늘을 거울을 통하지 않고 맑은 눈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 "자세히 보아야/ 예[쁜]" 성품을 찾을 수 있다. "오래 보아야/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말씀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이처럼 성경 읽기의 과정을 형상화한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시의 형상화 기능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과정에 적용하면 그 말씀의 의미를 형상으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소박한 논리를 따라 의미의 형상화 작업에 시와 하나님의 말씀을 결부해보았다. 글쓴이는 반포소망교회에 시무하는 이인기 목사다. 매주 한편의 시를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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