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낮은 곳을 향하여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낮은 곳을 향하여

                                                                                                                                                  정호승

첫눈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내린다

명동성당 높은 종탑 위에 먼저 내리지 않고

성당 입구 계단 아래 구걸의 낡은 바구니를 놓고 엎드린

걸인의 어깨 위에 먼저 내린다

봄눈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내린다

설악산 봉정암 진신사리탑 위에 먼저 내리지 않고

사리탑 아래 무릎 꿇고 기도하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늙은 두 손 위에 먼저 내린다

강물이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야 바다가 되듯

나도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야 인간이 되는데

나의 가장 낮은 곳은 어디인가

가장 낮은 곳에서도 가장 낮아진 당신은 누구인가

오늘도 태백을 떠나 멀리 낙동강을 따라 흘러가도

나의 가장 낮은 곳에 다다르지 못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도 가장 낮아진 당신을 따라가지 못하고

나는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다

시인(1950- )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야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길을 모색하고 있으니까 그는 허울에 싸인 인간과 참 인간을 구별하고 있다. 여기서 허울은 허영의 상태라기보다 세상의 상식적 관점을 가리킨다. 그 관점에 따르면, 높은 곳, 혹은 성취를 지향하는 것이 옳다. 물론, 향상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나 그것을 명분으로 욕심을 상식화하면 인간성이 왜곡된다. 인간성의 왜곡은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왜냐하면, 첫눈이나 봄눈이 하늘에서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내림으로써 그 뜻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높은 곳을 우러르며 지냈던 자신의 모습을 내심 꾸짖는다. 그는 욕심을 비우고 참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어 한다. 그 순간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때 다가오지만,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상의 상식을 넘어서고자 하므로 그 시도는 종교적이다. 종교 체제마저도 그 상식에 젖어 있는 현실에서 그는 초월을 시도하고 있다.

"첫눈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내린다." 첫눈은 겨울의 전령이다.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서곡일 수 있다.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한 하늘로서는 죽음을 예감하는 자에게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겨울은 "계단 아래 구걸의 낡은 바구니를 놓고 엎드린/ 걸인"에게는 죽음의 시간이다. 그러나 시인은 "명동성당 높은 종탑"을 우러르며 그 걸인을 지나쳤다. 그 후 그는 하늘의 뜻이 고상한 종교 체제의 수립에 있지 않고 생명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임을 깨달았다. 첫눈은 "걸인의 어깨 위에 먼저 내린다." 그가 놓고 엎드린 "구걸의 낡은 바구니"는 생명에의 원초적인 욕구를 가리킨다. 낡도록 그 욕구를 붙들고서 그는 엎드려서라도 생명을 지키고자 한다. 하늘은 욕심껏 쌓아올린 성취의 고상함보다는 그러한 생명의 열의에 주목한다. 시인은 높은 곳에 눈이 먼저 내린다는 세상의 상식적인 원리를 하늘이 뒤집는 뜻을 깨달았다. 생명의 가치는 "높은 종탑"이 아니라 죽음의 경계에 내몰린 자의 어깨를 먼저 다독여 주는 일에 의해 증명된다. 죽음 앞에서 간절히 생명을 바라고, 또한 그 염원에 공감하는 것이 하늘이 준 생명을 품은 인간의 본래 모습이다. 그래서 하늘은 삶의 짐을 진 "어깨"를 먼저 다독인다.

"봄눈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내린다." 봄눈은 겨울이 그 죽음의 위세를 내려놓는 신호이다. 생명의 태동조차 하늘은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게 한다. 땅에서 움이 트지 않는가? 생명의 근원을 가장 낮은 곳에 두는 것은 자연의 원리이고 하늘도 그 원리를 승인한다. 그러나 인간은 봄눈이 "설악산 봉정암 진신사리탑 위에 먼저 내[리는]" 것을 당연시한다. 어떤 형태로든 부활하고자 하는 욕망을 성스럽게 포장하여 영구화하려고 시도한다. 시인도 그 시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거룩한 사리탑을 경모하느라 "사리탑 아래 무릎 꿇고 기도하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를 보지 못했다. 그녀의 "늙은 두 손"에 담긴 간절한 염원을 함께 빌어주었어야 했다. 그 두 손은 그 아들을 키웠던 기억을 생생히 안고 있다. 그 기억을 담아서 올린 염원은 참척(慘慽)의 한을 달래며 부활의 소망을 표명한다. 하늘은 그 손을 먼저 잡는다. 왜냐하면, 그 진실한 소망이 하늘이 원하는 인간의 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늘은 인간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 기회를 열어준다. 첫눈과 봄눈뿐만 아니라 세상살이와 자연의 섭리 속에도 기회를 베푼다. "강물이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야 바다가 되듯/ 나도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야 인간이 [된다]." 참 인간이 되고자 모색하는 사람에게는 그 기회가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가장 낮은 곳은 어디인가"이다. 하늘이 "가장 낮은 곳"에 생명이 놓여 있음을 깨닫게 하는데 나는 어디서 그 생명을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늘이 첫눈과 봄눈을 내려서 초월적으로 하늘의 뜻을 알리므로 나의 삶에도 초월적으로 깨달음의 기회를 베풀었을 수 있다. 따라서 그 기회를 탐색하며 고민할 일이 남았다. "가장 낮은 곳에서도 가장 낮아진 당신은 누구인가." "가장 낮은 곳"은 내가 생명의 가치를 발견한 현장이므로 거기서도 "가장 낮아진 당신"은 그 가치를 깨달은 자로서의 본래 모습을 가리킬 것이다. 어쩌면 이 모습을 찾고자 성찰하는 과정이 인생의 여정일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태백을 떠나 멀리 낙동강을 따라 흘러[간다]." 그 여정에서 "높은 종탑"과 "진신사리탑"처럼 높은 업적을 이루고자 하는 욕심을 비우고 동료 인간으로부터 생명의 가치를 공감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의 가장 낮은 곳에 다다르지 못[한다]." 욕심을 비우고 깨달음을 얻기는 해도 "가장 낮은 곳에서도 가장 낮아진 당신을 따라가지 못하고/ 나는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다." 세상의 원리를 초월한 "당신"을 따라 "가장 낮은 곳"에 이르고자 시도해보지만, 그런 지향조차 "다다르지 못[한다]"거나 "따라가지 못[한다]"라는 성취적 의식에 의해 평가받는다. 그러면 성찰의 여정도 또 다른 "높은 종탑"과 "진신사리탑"을 쌓으려는 시도와 다르지 않게 된다. 인간 세상의 원리가 지배하는 공간에서는 초월의 시도 자체가 마치 벗어날 수 없는 함정 안을 맴도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하늘은 상식의 원리를 역전했는가? "가장 낮은 곳에서도 가장 낮아진 당신"에게서 배우려는 역전의 원리는 무엇인가?

모순되게 들리지만, 시인은 그 원리가 종교적이라고 암시한다. "높은 종탑"이나 "진신사리탑"은 기존의 종교 체계가 그 원리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증거인데, 세속의 원리에 젖어 있는 자기를 비우는 일은 세상을 초월하는 일이므로 그 차원에서 종교적이다. 예를 들어서, 생명을 얻기 위해 생명을 버리는 것이다. 이 역설은 세상의 상식과는 맞지 않되 하늘의 뜻을 대변한다. 하늘은 그 뜻을 구현하여 보여주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빌립보서 2:6-9). 예수는 "가장 낮은 곳에서도 가장 낮아진 당신"이 되었다. 그러나 "당신"을 따르고자 해도 상식적 원리에 육신과 영혼조차 침윤된 상태에서는 "나는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다." 어쩌면, 생명을 지닌 인간이 이룰 수 없는 경지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 경지에 이르기를 염원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참 인간의 길이다. 시인이 동료 인간의 모습에서 생명의 간절하고 진실한 가치를 깨닫고 자신의 삶을 성찰했듯이 그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깨달음이 참 인간에로의 여정을 안내할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 "자세히 보아야/ 예[쁜]" 성품을 찾을 수 있다. "오래 보아야/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말씀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이처럼 성경 읽기의 과정을 형상화한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시의 형상화 기능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과정에 적용하면 그 말씀의 의미를 형상으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소박한 논리를 따라 의미의 형상화 작업에 시와 하나님의 말씀을 결부해보았다. 글쓴이는 반포소망교회에 시무하는 이인기 목사다. 매주 한편의 시를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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