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야고보서 1장 22-27절, 3장 13-18절
설교문
[총선의 결과와 낙관적 기대]
지난 4월 10일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거는 "범야권 압승, 여당 참패"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 임기 중에 치러지는 선거는 보통 국정을 평가하는 성격을 지니게 됩니다. 대체로 정권심판론이 작동하지만, 한편으로 현 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과 여당이 지닌 프리미엄(premium)으로 인해서 늘 선거의 결과는 예측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범야권이 192석을 가져가고, 여당이 108석을 얻게 된 결과는 국민이 확실하게 현 정부를 심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에 대해서 긴 설명이나 촘촘한 분석을 할 필요는 거의 없어 보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에게 불과 0.73퍼센트 표차로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이 마치 100퍼센트의 권력을 가진 것처럼 행동했는데도, 경제와 민생, 물가를 비롯해 거의 모든 분야에서 명백한 퇴행을 보여 왔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하계 동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른 나라가 세계 잼버리 대회 하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세계적 조롱거리가 되었고, 전날까지만 해도 이길 수 있다면서 홍보한 부산 엑스포 유치는 사우디아라비아 119표, 우리나라 29표라는 초라한 결과로 실패했습니다. 국정의 실패와 정치의 퇴행은 곧바로 국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게 되고, 많은 사람이 더 많은 고통에 시달리게 했습니다. 이태원 10.29 참사, 오송 참사, 채 상병 사망 사건이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물가는 치솟는데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 가격"이라는 대통령의 한마디는 지금 현 정부가 국민의 삶과는 전혀 다른 가상현실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부자 감세로 국가 재정이 열악해지자, 국가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R& D 예산을 대폭 삭감해 버렸습니다. 지난 2년의 세월 동안 이러다가 나라가 망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으로 보내야 했기에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묻는 설문에 국민의 3분의 2 이상은 일관되게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고, 총선 직전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34%가 긍정 응답, 58%가 부정 응답을 했습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취임 이후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본다. 검찰총장을 하던 때의 연장선상에서 명령하고 밀어붙였을 뿐이다."(시사 IN, VOL. 866. 14쪽)
지금의 현 정부는 여소 야대 상황에서 탄생했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야당의 협조가 필요했는데, 야당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고, 국회가 통과시킨 여러 법안을 별다른 근거와 명분 없이 거부하면서 하위법률인 시행령을 개정하여 입법안을 무력화하는 등 국정을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국정 실패를 전 정부 탓으로 돌리는 등 무능함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이 이번 선거에서 심판한 것입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매우 더디지만 한걸음 한걸음 진보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의 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를 실행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주권자인 시민들이 자신들을 대신해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려 줄 대표자를 선택하고, 그 대표자들에 의해 구성되는 대의 정부(representative government)가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지요. 대의 민주주의의 성패는 첫째 선출된 권력이 시민들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습니다. 둘째로는 사회 전체 구성원인 민주 시민이 성숙하고 높은 사회의식을 지니는 것입니다. 좋은 일꾼을 잘 선택하는 안목이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검찰 권력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급조된 조국혁신당이 급부상하고, 환경, 노동, 여성주의의 가치를 표방한 녹색정의당이 안타깝게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는데, 이것은 국민의 대변자들이 국민과 시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 때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 줍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과정에서 보인 민주당 당원들의 적극적 참여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지난 2년 동안 거대 야당이면서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사람들을 전부 공천에서 탈락시켰습니다. 자기가 던지는 투표 한 장의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를 이제야 우리 국민이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대화입니다. 대화를 통해 이견을 수용하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하면서 전 국민의 통합을 이뤄가고, 어제보다는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해 가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이번 선거는 대화보다는 자기 고집을 부린 이들을 심판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이 절묘하게 집단 지성을 발휘해서 나라가 망하는 것을 막았는데, 이제 뽑힌 대표들이 어떻게 국민의 뜻을 잘 이어가는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입니다만, 저는 이번 총선을 통해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는 희망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누가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가?]
기성 질서 안에서 새로운 변혁을 추구하는 '비판법학 운동'을 벌인 로베르트 웅거(Roberto Mangabeira Unger) 하버드 대학 로스쿨 교수는 "정치의 가장 큰 야망은 사람들에게 질서가 아니라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치조차도 생명을 말하고, 실로 좋은 정치인들은 시민들에게 살맛 나는 세상을 맛보게 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집니다. 저마다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 덕에 그래도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살만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100년의 세월 동안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을 해왔습니다. 이제는 정치도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서구에서 들여온 민주주의도 나름 이 땅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교는 어떤가요? 시대의 변화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지면서 이전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을 하는데, 우리 그리스도교 교회는 새로운 시대에 또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 시민들은 점점 더 깨어나고, 성숙하고 있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더 깊은 신앙에 도달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지혜와 은총을 맛보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야고보서의 저자 주님 예수의 동생 야고보는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 질문을 이렇게 저렇게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역사가 이제 150년을 향해 나아가는데, 한국 그리스도교에서 내로라 할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우리 생명사랑교회에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과연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얻어 주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세상 모든 일에서 분별력을 갖추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우리는 뭐라 답해야 할까요?
오늘 주님의 동생 야고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순결함이며, 평화롭고, 친절하고 온순하며,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다고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지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 땅에서 말하는 지혜와 위로부터 오는 지혜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늘로부터 지혜를 얻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른다고 해도, 분명한 것은 하늘의 지혜는 우리의 마음과 입술,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우선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절대 하늘의 지혜를 얻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지혜는 분명히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을 마음에 품지는 않습니다. 대신 방금 전에 말한 온갖 선한 가치들이 우리의 삶과 행동에서 드러나도록 합니다. 위선과 편견 없이 순결하게 모든 사람과 평화를 도모하면서 타인에게 친절하고 온순하여 삶에서 선한 열매가 풍성하다면 일단 그것 자체로 하늘의 지혜를 간직하고 있다고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선한 열매들은 구체적으로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는 것, 즉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말라고도 하는데, 남을 위해, 특히나 고통당하는 이를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하려는 사람은 세속에 물들 시간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온갖 불공정과 불평등, 분열과 싸움을 없애고 평화를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의의 열매이며 위로부터 얻는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높은 도덕성과 고매한 인격, 그리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헌신의 모습을 보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성경 말씀은 2,000년 전부터 우리에게 들려 왔지만, 저에게는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으로 다시 들립니다. 그리스도교의 존폐와 흥망성쇠는 궁극적으로 신앙인의 구체적인 삶에 묻어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의 밀도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개신교의 명과 암: 과거의 빛과 현재의 어둠]
우리 한국 개신교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개신교가 성장하고 부흥할 때는 역시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때였습니다. 구한말 망해가는 조선 사회에 개신교가 들어와서 조선 민중에게 이 세계가 얼마나 크고 넓은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낡고 미신적인 사유, 답답하고 위계적인 질서 속에서 신음하고 고통받던 이들에게 새롭고 합리적이며 훨씬 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은 분명 그리스도교였습니다.
한글 성서의 보급은 까막눈이었던 이들의 눈을 뜨게 했고, 천국의 소망은 현실의 고난과 어려움들을 이겨 나가는데 큰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전국 각지에 새롭게 세워지는 교회들은 마을을 떠나고 친족과 헤어져 허전함을 달랠 길 없는 이들에게 새로운 가족이 되어 주었습니다. 매주 모여 예배하며 부르는 찬송은 마음속 쌓인 한(恨)들을 어루만져 주었으며, 설교를 통해 들리는 하나님 말씀은 험한 세상을 살아갈 때 일어나는 온갖 유혹과 속임수에서 자신을 붙들게 하는 버팀목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사귀며 드리는 기도는 한편으로는 깊은 자기의 내면을 돌아보고 성찰하게 하면서, 동시에 주님 앞에서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윤리적 인간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군사 독재 정권의 엄혹한 시절에도 우리 개신교는 불의와 죄악의 세력에 맞서 싸웠고, 이 땅의 민주화를 이루어 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사람들은 개신교에 환호했고, 한국 교회는 동아시아에서 유래 없는 성장세를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를 정점으로 해서 지난 30년간 한국 개신교는 퇴보의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어느 시점에선가 삶의 희망과 더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는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인간의 종교적이고 세속적 욕망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왜곡되었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분수령이 된 것은 역시 대형교회의 등장입니다. 번영 신앙을 주음으로 하면서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굴러가는 대형교회는 교인들에게 높은 도덕성과 고매한 인격을 강조하기보다는 사회적 성공을 마치 하나님의 축복인 양 말하면서 가진 자들의 네트워크 형성의 장으로 변질 되었습니다.
둘째, 우리 사회의 발전에 따라 그동안 종교가 제공했던 모든 사회 복지적 차원의 기능이 전부 정부와 사회단체가 맡아서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교 복음의 핵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예전에는 교회가 제공하는 다양한 사회적 기능에 반응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셋째는 이것이 결정적인데, 부흥해서 나름의 힘을 가진 교회들을 중심으로 더 큰 권력을 유지하고 누리기 위해 세속적 힘과 결탁했기 때문입니다. 극우 정치 세력과 한 몸처럼 움직이고, 거대 재벌과 언론과 짬짜미를 하는 형식이 그러합니다. 만민이 기도하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것입니다. 교회에도 복음이 필요하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이 한국 개신교에 너무나도 딱 들어맞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다가 복음을 수호한다면서 난무하고 있는 왜곡된 가치관들이 더욱 한국 개신교를 혼탁하게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반공 이데올로기, 이웃 종교인 배척,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를 마치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켜내는 십자군이 된 것인 양 가르치고 배우면서 세상과 불통하는 종교가 된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교회가 타자를 위한 존재로 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속과 자기 힘의 재생산에만 골몰했기 때문에 지금 한국 개신교는 사회에서 고립되어 퇴보하면서도 여전히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 전염병이 돌았고, 코로나 19는 가뜩이나 어려운 교회에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미래가 성큼 다가왔고, 더욱 더 복잡하고 빠른 변화 속에서 대다수의 한국 개신교회는 어리둥절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계속 헤매고 있습니다.
[기품 있는 신앙, 깊이 있는 영성]
주님의 동생 야고보, 첫 그리스도교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2대 담임목사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말씀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한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하여 그의 행실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그 일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마십시오. 이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게 속한 것입니다.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하늘의 지혜와 하나님의 이해력은 착한 행실로 드러나는데,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핵심은 온유함으로 행하는 착한 행실입니다. 이것은 순결과 평화, 친절과 온순함, 편견과 위선 없는 자비 안에서 작동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이런 온유한 착한 행실에 이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 생활 신앙 실천 십계명을 지켜내면서 나름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 교단의 어른이신 장공 김재준 목사님은 스스로 열 가지 생활 좌우명을 만들고 평생을 실천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1.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2. 대인관계에서 의리와 약속을 지킨다.
3. 최저생활비 이외에는 소유하지 않는다.
4. 버린 물건, 버려진 인간에게서 쓸모를 찾는다.
5. 그리스도의 교훈을 기준으로 "예"와 "아니오"를 똑똑하게 말한다. 그 다음에 생기는 일은 하나님께 맡긴다.
6. 평생 학도로 산다.
7. 시작한 일은 좀처럼 중단하지 않는다.
8. 사건 처리에는 반드시 건설적, 민주적 질서를 밟는다.
9. 산하와 모든 생명을 존중하여 다룬다.
10. 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배려한다.
(젊은 시절부터 나는 이 열 가지를 정하여 바로 살려고 노력하였다)
앞으로 우리 생명사랑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 개신교의 존폐는 교회가 기품 있는 신앙인을 양육해 내는가? 깊이 있는 영성을 담보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십계명에서도 보듯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종교 행위들, 예배를 비롯해서 교회의 모든 활동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소금과 빛이 되게 하도록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한국 개신교의 위기에 직면하여 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이 교회를 살리는 방법으로 교회에 모이는 것을 강조하면서 예배 출석에 공을 들이고, 또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전도하려고 합니다만, 교회가 다시 사는 길은 교회에서 예수님 닮은 인격을 길러내는 것에 있습니다.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생활 좌우명 중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가 제일 처음 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장공은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듣는 것에 더 힘쓴 사람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리고 말을 해야 할 때면 "예"와 "아니오"를 똑똑하게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기품 있는 신앙과 깊이 있는 영성은 하나님 앞에 고요히 머물러 듣기 훈련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장공 목사님은 평생 배움에 뜻을 두시고,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과 생명들을 사랑으로 배려하고 존중하겠다고 말합니다. 최저생활비 이외에는 소유하지 않는다고 하시는 말씀에서 우리는 그가 소유 중심의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존재가 되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신앙생활은 조금이라도 더 예수 닮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예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의 말씀이 권위가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고, 정말로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1세기 사람들 또한 기품 있는 신앙과 깊이 있는 영성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과 신앙의 선배들을 본받아,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일상의 삶에서 끊임없이 주님 닮아가기를 소망하고 실천하는 여러분에게 주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자녀로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게 하여 주소서.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너무나 빠르게 변화합니다. 그 속에서 실로 많은 사람이 정신적 고단함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참된 인생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 줄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작은 일에 마음 상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넓은 품을 허락해 주시고, 넉넉히 용서하며 배려하고 여유 있는 자세를 견지하게 도와주소서. 우리의 믿음이 말과 행실을 통해 드러나게 하시고, 바르게 믿고 옳게 행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부활절 넷째주일을 보냅니다. 오늘은 또한 장애인 주일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작은 장애를 가지고 불편한 가운데 살아갑니다. 장애인을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일이 없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지닌 작은 장애를 통해 우리의 유한성을 더 깊이 성찰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께 예배하며 주님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가 땀 흘려 일한 것을 정성 모아 주님께 드립니다. 기쁘게 받아 주소서. 드리는 손길을 기억하여 주시고, 우리는 주님께 드리며 감사한 마음이 가득 차게 하소서. 주님께 드리는 예물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이 되는데 쓰이게 하소서. 물질을 드릴 때마다 우리가 빵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임 또한 마음에 새깁니다.
우리들의 실수에 눈감아 주시며 언제나 넉넉한 마음을 베푸시고 품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교회당에서 드리는 예배는 마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우리의 삶을 산 제물로 드리는 진정한 예배가 시작됩니다. 어디에 가든지 선한 행실로 복음의 씨앗을 뿌려 사랑과 정의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 축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셔서 무지에서 지식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불행에서 평안으로, 오류에서 진리로, 죄에서 승리로 옮기셨습니다.
이제는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과 거룩한 영의 사귐이 기품 있는 신앙인으로, 깊이 있는 영성으로 충만하려는 생명 사랑 가족들에게, 지금 우리와 함께 예배하고 선교하는 전국의 모든 성도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