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소망의 편지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베드로전서 4장 7-16절

설교문

[소망의 편지 - 베드로전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베드로전서는 흔히 소망의 편지라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편지를 받는 교인들이 주변으로부터 점점 더 심하게 적대와 멸시를 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는 이들에게 희망과 삶의 방향을 제시하려고 쓰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베드로가,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서 사는 나그네들인, 택하심을 받은 이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베드로는 당시 소아시아 오늘날로 말하면 튀르키예 전역에 포진해 있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흩어져서 사는 나그네들"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흩어져 사는 나그네"라는 말은 원래 팔레스티나를 떠나 외국에 사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가리켜 쓰던 말이지만, 지금 베드로는 이방인 사회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그렇게 부릅니다. 베드로는 이들을 여러 번 나그네라고 부르는데(1:17, 2:11), 이것은 당시 이방 사회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처지가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처럼 로마제국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위에 언급된 도시들은 전부 로마의 지배 아래에 있었고, 로마는 철저하게 계급과 신분을 나누고 힘으로 다스렸습니다. 그런 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평등을 외치며 상호 존중을 말하고, 계급과 신분을 넘어서서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회에 혼란을 가져오는 자들로 여겨졌습니다.

로마제국의 도시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국가 권력자에게 충성을 다하라는 저들의 명령 앞에서 어떻게 행하면 좋은지(2:13-17), 노예이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주인으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하고 역경을 겪을 때 또 어떻게 처신하면 좋은지(2:8-25),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했을 경우, 또는 결혼한 상태에서 한쪽만 신앙인이 되었을 때 생기는 갈등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은지(3:1-7), 교회 내부의 제도와 지도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당면하는 유혹과 어려움의 문제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5:2-7), 여러 고민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5:12),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받아 고난 가운데 있는 것 자체가 오히려 하나님께 선택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면서, 하나님만 믿고 꾸준히 선을 실천해 나간다면 바로 거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던 참된 믿음과 새로운 희망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2:15, 20, 3:6, 17, 4:19)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시험하려고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그만큼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 중략 ~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욕을 당하면 복이 있습니다. ~ 중략 ~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당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생명 사랑 나그네들]

저는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처한 현실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즉 우리 교회의 이름처럼 오로지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신앙의 토대에서 모든 생명을 살리고 사랑을 넘치게 하려는 사람들은 이중의 고난을 겪게 됩니다.

첫째 고난은 돈과 권력을 쟁취하라며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는 지금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입니다. 능력을 키우고 그 능력으로 경쟁에서 이기고, 이기면 남 위에 우뚝 서서 제 맘대로 살아가며 남을 부리는 것이 행복이라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참고 견디며, 거저 주고 내어주는 사람은 바보천치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고난은 놀랍게도 같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고난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언론을 통해서 또는 일반 대중들에게 보이는 주류 교회의 모습으로 보이는 이들의 신앙 형태는 나사렛 예수의 복음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먼저 성서를 문자 그대로 읽으면서 그것에 기반하여 온갖 폭력을 자행합니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에 대한 혐오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이웃 종교들을 무시하며,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노력에 대해서 빨갱이 몰이를 하는 데다가, 너무나 명징한 역사적 사실조차 왜곡합니다. 과학도 모르고 신학도 아닌 창조과학에 경도된 사람들이 진지하게 공부하고 가르치는 교수들을 정죄하고,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예수의 복음을 뒤집어 죽어서 가는 천국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합니다. 이웃 사랑을 말하고, 구제와 세상을 위한 봉사도 제법 하지만, 가만 보면 그 모두가 결국은 자기들의 존속과 성장,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만 작동합니다. 정교분리를 외치고, 세속을 떠나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강조하지만 오히려 기득권 정치 세력과 손잡고 세상 사람들보다 더 세상 욕망에 충실합니다. 그래서 지금 건전한 시민 사회로부터 조롱과 비난과 멸시를 당하는데, 문제는 이런 교인들이 한국 교회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 놓여 있기에 우리는 이중의 어려움과 유혹에 노출됩니다. 때때로 너무나도 약삭빠른 세상 사람들 속에서 정말로 나만 바보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불안에 빠질 때가 있고, 나와는 너무 다른 교인들 사이에서 답답하고 낯설고 외로움을 느끼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도 한때는 세상을 좇던 사람들이었고, 아직도 부분적으로는 그런 유혹을 떨치지 못했으며, 우리 또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에 머물러 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자라났고, 이제 우리의 신앙은 젖을 먹어야 하는 유치한 정도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아직도 더 자라나야 하지만, 무엇이 진정한 예수의 복음인지, 참된 그리스도교는 어때야 하는지 정도는 분간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가 소망의 편지가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 편지 저자가 베드로라고 명시되어 있고, 설사 베드로가 저자가 아니더라도 베드로의 정신을 이어서 쓴 것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베드로의 삶이 하나의 희망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베드로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동이 몰려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다가 예수를 따라나선 베드로를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 베드로는 일자무식의 어부에 불과했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베드로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 다녔지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 자기 집을 내어 드리는 열정과 헌신이 있었지만, 감정에 치우쳐 섣부르게 나섰다가 낭패를 보기도 하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떠들어 대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다 알다시피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자신도 물 위로 걷게 해달라고 했다가, 바람에 겁을 먹고 물에 빠지기도 하고, 예수께서 산 위에서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말씀을 나누시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예수님의 뜻과는 반대로 초막 셋을 짓겠다고도 한 것이 베드로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시겠다는 예수님의 멱살을 잡고 싸움을 걸었다가 도리어 예수님에게 "사탄아 뒤로 물러가라"라는 저주의 말을 들었고, 예수님이 체포당하실 때 칼을 뽑아 말고의 귀를 자르기도 했지만, 결국은 일개의 여종과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것도 베드로였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당대 철학자들과 맞서 토론했던 지성인 바울과 비슷한 논조의 설교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 보십시오. 베드로의 엄청난 활약과 담대하고 용기 있는 설교, 그가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행했던 놀라운 기적들을 만나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 지독한 훈련 과정을 통해 "실력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지만, 사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내내 늘 흔들렸던 인물입니다. 그랬던 베드로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고 최고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편지를 눈물로 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문맹이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글자 하나 모르던 베드로가 이렇게 놀라운 편지를 지금 쓰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변한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실수를 하더라도 앞장서서 도전하고 배우는 것에 게으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할 일을 하자]

지금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아직도 유아 단계에 머물러 있는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이중의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귀한 사명들이 있습니다. 세상보다 못난 교회에서 상처받고 너무나도 크게 실망해서, 그리스도인이면서도 교회에 나가지 않는 가나안 교인들이 200만 명이 넘습니다. 무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시들시들 시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일 계속해서 뉴스에 나오지만,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기후 재앙 한복판에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결코 안전하지 못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운 여름, 물난리가 예고되는 여름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모든 경제지표는 바닥을 치고 있는데, 그래서 지난 4월 22일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즈는 '한국의 경제 기적이 끝났는가?(Is South Korea's economic miracle over?)'라는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나그네는 미래를 향하여,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하여 길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나그네들인 우리는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길을 내는 사람들로 부름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의 한복판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불평 없이 서로 따뜻하게 대접하십시오. 각 사람은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으로서 서로 봉사하십시오.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답게 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사람답게 하십시오."

정말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모든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면서 늘 주님과 의논해야 합니다. 신앙의 동지들끼리 무엇보다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허다한 잘못을 품어 않으면서 불평보다는 서로 따듯하게 대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저마다 가진 재능들을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봉사해야 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베드로처럼 또한 소망의 편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적대적 이념을 녹여내는 따뜻한 스프 한 그릇]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르치는 은사를 주셔서, 3월부터 6월까지는 여러 곳에서 또 강의를 합니다. 이번에도 인천 송도에 있는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에서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기독교와 현대사회>라는 수업을 합니다. 교양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키우고, 비그리스도인 청년들에게 예수님의 진리를 소개하는 이 수업에서 제가 다큐멘타리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보고 감상문을 써내라는 숙제를 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함께 이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지만, 이 영화는 제주 4.3을 겪은 한 여인의 삶을 다룬 정말로 좋은 영화입니다. 아직도 보지 못하신 분들은 꼭 보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를 보게 한 이유는 한국 사회의 복잡한 역사와 양극적 이데올로기가 맞부딪혔던 우리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참된 인간의 삶이란 과연 무엇이며, 예수께서 실천하셨던 밥상 공동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우리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느끼게 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이 낸 영화감상문 하나를 여러분에게 읽어 드리려고 합니다.(학생에게 허락 받음)

영화를 보기 전 미리 영화의 배경지식이 될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주인공인 감독 어머니의 정보들 말이다. 4.3 사건 피해자, 조총련 활동, 아들 셋은 북송. 사실 교수님이 말씀하신 4.3 사건 피해자라는 정보를 제외하면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언론에서 부정적으로 다루는 조총련의 모순적 악명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또 아들 셋을 북한으로 보낸 것도, 그럼에도 딸은 영화감독으로써 남한에서까지 활동한다는 것도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북한이 어떤 곳인지 다 아는데 어머니와 딸은 일본에서 편하게 사는 걸까. 그리고 무섭게도, 이미 여기에서 내 머릿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잡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침내 틀게 된 영화. 영화는 역사 다큐멘터리 하면 생각나는 비장함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우리 할머니가 떠오르는, 너무나 친근하고 평범한 어머니. 덤덤해 보이지만 강력하게 느껴지는 외로움. 너무나 담담하게 말하는 4.3 사건의 고통, 아들들에 대한 그리움과 괴로움. 마치 절벽 꼭대기에서 땅바닥으로 낙하하는 사람처럼, 나의 생각도 부정에서 공감으로, 또 공감에서 죄책감으로 빠르게 낙하했다. 낙하하는 느낌은 나의 양심이 느낀 것 인지도 모르겠다. 누가 이분의 조총련 활동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한 명의 인간 앞에서 시대는 어찌 이리도 잔인했을까. 어머니가 북한 찬양가를 부를 때 녹아나온 미묘한 슬픔은 내가 잠시 화면을 끄게 만들었다. 내가 영화를 보기도 전에 가졌던 부정적인 생각들을 꺼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괴로웠다. 나는 어찌 이리도 무지하고 어리석을까. 나도 결국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현대인은 정보 의존적이다. 근대 이후 현대화의 이름 아래 이성은 빠르게 감성을 압도해 나갔다. 어느새 우리는 감정적 판단을 어리석은 판단의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현대인은 이성을 배 불릴 더 많은 정보를 갈구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4.3 사건도 알고 있었고, 조총련도 알고 있었고, 재외 한국인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중 단 하나도 느끼고 있지는 못했나보다. 정보 의존적인 나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잘 재단된 형태로만 알고 있었다. 고기를 썰듯 그 형태를 잡는 것이 물론 이데올로기일 것임을 상기하니 나는 섬찟 두려워졌다.

그리고 수프. 어머니는 평생 반대하셨던 딸의 일본인 약혼자에게 삼계탕을 끓여주셨다. 역사에 고통받은 어머니도, 긴장한 딸의 약혼자도, 카메라를 든 감독도, 그리고 화면 밖에서 괴로운 나까지도 수프 앞에서 평화를 느낀다. 어느새 다시 한번 우리는 시대의 피해자가 아니라 너무나 평범한 어머니를 본다. 그리고 잠시 괴로움을 잊은 나도. 수프가 마법이라도 부린 걸까.

우리는 그 마법이 무엇인지 안다. 바로 정(情)이다. 아이가 자라며 산타 할아버지가 진실에서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듯, 정(情)도 인간의 진실에서 허무맹랑한 마법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정을 포기했기에 인간의 인식은 더욱 멀리 가게 되었지만 깊게 가지는 못하게 되었다. 내가 좋은 예시다. 그 모든 걸 알아놓고도 전혀 느끼지는 못했다. 표면만 훑고 안다 떠들 뿐 깊이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정이 이데올로기가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가 눈감는 문제들 해결의 열쇠인 것은 아닐까. 어머니의 고통을 덜어드릴 방법도 이건 아니였을까. 교수님이 강의에서 말씀하셨던, 과학의 시대에도 남아있는 감성과 믿음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다큐멘터리였다.

한 학생의 글을 소개했지만, 정말로 많은 학생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서로 자기 이념에 갇혀 반목하던 이들도 따뜻하게 나누는 할머니의 삼계탕 한 그릇이 담고 있는 의미를 발견하고, 예수님께서 차리신 식탁이 당대 사회에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만들었는지 느끼게 됩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20대 초반의 청년이 만나기도 쉽지 않고 알기도 어려운 조총련계 사람들, 그리고 재일교포, 우리 선배들이 겪었던 그 진하고도 아픈 역사를 배우면서 그들의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이 자라납니다.

좋은 영화 한 편이 이렇게 좋은 사람을 길러낼 수 있듯이, 실로 실력 있는 지도자 한 명은 더 많은 일을 해내고, 더 많은 좋은 사람들을 길러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운동을 위해 베드로와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다소 무지했지만 우직한 베드로를 쓰셔서 첫 교회의 기틀을 닦게 하시고, 그를 배운 사람 못지않게 만드셨습니다. 바울을 택하셔서는 그의 지혜와 논변, 뜨거운 열정을 사용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교회를 유럽 전역에 퍼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는 사이 교만했던 바울은 겸손해졌고, 세상의 높은 지식을 하늘의 지혜와 견주어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여러 면에서 서로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서로를 헐뜯고 적대시하고 싸우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둘 모두를 사용하셔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고 확장하셨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위험이 일상이 되고,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념의 대결이 갈수록 적대적으로 변하고 있어서 도처에서 생각지 못하는 불행과 비극적 사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도 좌절하지 않고 소망의 편지를 쓸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좋은 영화 한 편처럼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이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 하나님의 백성을 찾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편지가 되었고, 베드로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었듯이, 오늘에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거짓을 물리치고 온갖 불화를 녹여낼 수 있는 따뜻한 국 한 그릇 대접할 수 있는 사람들이면 좋겠습니다. 좀 더 넉넉한 마음을 지니고, 무엇보다 서로 뜨겁게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베드로 사도의 권면으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셔서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좌절과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의 편지가 되어 주십시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날도 세상 모든 피조물은 구원을 갈망합니다. 속수무책의 세상에서 힘겨워하는 이들은 여전히 주님 사랑에 목말라 합니다. 그곳에 우리를 보내 주소서. 우리가 소망의 편지가 되게 하소서. 깊고 넓은 인생의 바다에서 모진 풍랑에 지친 사람들에게 산같이 온순하고, 달같이 따뜻하고, 태양같이 밝고 빛나는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소음의 물결 속에서도, 깊은 안개 자욱한 답답한 세상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으로 예수님 닮아 더 깊이 사랑하는 사람 되게 하소서. 그 사랑 속에서 더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부활절 다섯째 주일을 보냅니다. 4월을 다 보내고 계절의 여왕 5월을 기다립니다. 도처에 만발한 꽃들을 보며 주님 사랑을 떠올리게 하시고, 푸르른 봄 사이로 불어오는 하늘 바람을 쐬게 하소서. 폭포수처럼 부어지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 주님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가 땀 흘려 일한 것을 정성 모아 주님께 드립니다. 기쁘게 받아 주소서. 드리는 손길을 기억하여 주시고, 우리는 주님께 드리며 감사한 마음이 가득 차게 하소서. 주님께 드리는 예물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이 되는데 쓰이게 하소서. 물질을 드림으로써 더 큰 자유를 누리게 하시고, 우리가 빵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소서.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늘 마음에 새기게 하셔서, 언제나 넉넉히 베푸는 손길이 되게 하소서.

우리들의 실수에 눈감아 주시며 언제나 크신 은총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는 소망의 편지입니다. 굳센 믿음을 가지고 뜨겁게 사랑하셔서 삶으로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여러분 되십시오.

* 축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셔서 무지에서 지식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불행에서 평안으로, 오류에서 진리로, 죄에서 승리로 옮기셨습니다.

이제는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과 거룩한 영의 사귐이 따듯한 마음으로 모두를 품으려고 늘 애쓰는 생명 사랑 가족들에게, 지금 우리와 함께 예배하고 선교하는 전국의 모든 성도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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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