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성상파괴한 개신교인들, 왜 성지순례 중단 안할까?

손은실 교수, 기독교 성지순례 변천사 관통하는 질문 "성스러운 장소는 신성과의 만남을 매개하는가?"에 응답

서울대 손은실 교수(종교학과)가 기독교 성지순례 역사를 개관하며 기독교 순례의 변천사를 관통하는 "성스러운 장소는 신성과의 만남을 매개하는가?"란 질문에 대해 탐구했다. 2024년 「종교연구」 최신호(제84집 1호)에 실린 연구논문에서 손 교수는 먼저 기독교 전통에서 순례가 갖는 의미, 동기, 그리고 주요 순례지를 소개하고 물리적인 '성스러운 장소'의 개념과 특정 장소로의 순례에 유보적이었던 초기 기독교에서부터 4세기 말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 계기, 그리고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일어난 순례의 부흥, 쇠퇴, 재생의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손 교수에 따르면 기독교 순례의 변천사는 순례에 대한 옹호자와 비판자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는데 성지순례를 옹호한 사람들은 순례를 영적 변화와 신앙의 성장을 위한 중요한 영적 여정이라고 본 반면, 반대자들은 순례가 물질적인 요소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육체적이며 도덕적인 위험에 순례자들을 노출하고, 진정한 영적 성장과는 거리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종교개혁가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반대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손 교수는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은 중세 말 횡행했던 순례의 왜곡된 형태를 강하게 비판하고, 신의 편재성과 모든 신자가 하느님의 성전임을 강조하면서, 특정 장소로의 순례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가톨릭 신학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손 교수는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순례 비판에 맞서 트렌트 공의회와 이냐시오 같은 가톨릭 신학자들은 순례와 성인 공경이 영적 헌신을 증진하는 수단임을 강조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 교수는 "성지순례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우선 전자가 성지순례의 긍정적인 역할에, 후자가 왜곡과 남용에 시선의 초점을 맞추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그러나 두 관점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는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성지순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신의 은총을 매개하는 성지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반해, 비판자들은 이러한 역할을 경시하거나 부인하는 경향에 있다"고 전했다.

이에 손 교수는 "성지순례에 대한 계속된 비판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성지순례가 이어져 온 사실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면서 순례라는 종교적 실천이 감각을 매개로 신성과의 구체적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차원이 있음을 밝힌다"고 주장했다. 성지순례가 신성과 맞닿는 통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손 교수에 따르면 중세와 그 이후의 기독교 순례의 변천사는 이랬다. 중세시대에 순례는 종교적 헌신의 으뜸가는 표현으로 부상했고 칭송받을만한 일로 간주됐다. 이에 유럽 전역의 길과 바다는 이름난 순례지로 향하는 순례자들로 넘쳐났다.

순례의 증가에 따라 악용 사례도 늘어났다. 손 교수는 "성지에서의 면벌부 수여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가 십자군에게 이 세상의 모든 죄로부터 완전한 면제를 약속하는 교황령을 내림으로써 면벌부의 개념이 확립되었고, 이후 성지에서의 면벌부 수여가 더욱 빈번해졌다"고 전했다.

면벌부를 부여하는 순례의 제도화로 인해 "순례는 대중화 되었고 순례의 본리 정신이 상실되며 종교 사기꾼들이 면벌부와 성유물을 한 보따리씩 팔았다"고 손 교수는 말했다.

또 "십자군 전쟁을 거치며 성지로부터 유럽으로 성유물이 대거 유입되었고, 성유물 거래가 속출했다"며 "에라스무스는 이 현상을 비판하며, '진짜 십자가'수없이 복제되어 마치 배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많아졌다고 지적했다"고 덧붙였다.

중세에 칭송받던 성지순례는 15세기 후 급속한 세속화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손 교수는 "1560년부터 깔뱅의 종교개혁 도시들에서 성상 파괴 행위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신자들 사이에 순례가 완전히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손 교수에 따르면 1970년대 대중 종교에 관한 역사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개신교의 설교와 교리 교육에도 불구하고, 시골에서 가톨릭 신자들과 접촉하는 개신교 신자들 사이에서 성지순례는 은밀하게 행해졌고, 18세기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치유 기적이 일어나는 곳으로 알려진 장소에 개신교 신자들의 순례가 빈번했다.

19세기 20세기에 들어서 프랑스 혁명기에 훼손되거나 파괴된 마리아 성지들이 극적으로 복구되는 일도 있었다. 파리의 뤼 뒤 박(rue du Bac)의 "기적의 메달"(La Medaille miraculeuse, 1830), 라 살레트(La Salette, 1846), 이수덩(Issoudun, 1857), 포르투칼의 파티마(Fatima, 1917)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는 게 손 교수의 설명이다.

20세기 전반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중세의 주요 순례지에 다시금 많은 순례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손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 영성 사이의 경직된 구분이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모든 교파의 기독교인들이 성지를 비롯한 해외 주요 순례지를 방문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성지순례가 일종의 종교관광으로 변모된 것도 원인이었다.

손 교수는 "19세기와 20세기 교통수단의 발달과 경제적 수단의 증가와 함께 관광산업이 출현하면서 고전적 순례는 다른 형태로 조정되고 변형되는 경향이 있다"며 "오늘날 성스러운 것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 가운데 하나는 종교 관광이다. 종교 관광은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종교적 동기를 가지고, 성지순례 혹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이유로 수행되는 여행과 밀접하게 혹은 느슨하게 연결된 관광의 한 형태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손 교수는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 순례에 대한 비판이 계속해서 제기되었음에도, 순례가 지속되어 온 사실은 미쉘 멜렝의 말처럼 "순례 장소가 감각을 매개로 신성과의 구체적 만남을 가능하게(M. Meslin 1988, 181)"하는 차원이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지순례가 신성과의 만남을 매개하는 가능조건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 대목에서 손 교수는 381년부터 384년 사이에 성지를 순례한 에게리아의 순례기를 인용했다. 에게리아는 예수께서 수난을 받은 성지에서 참여한 성 목요일과 성 금요일 전례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겟세마네에 도착한 다음, 적절한 기도와 찬송을 한 후 주님이 체포된 장면을 들려주는 복음서 구절을 봉독합니다. 봉독이 끝나자마자 온 회중이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커서 도시 전역의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에게리아 순례기, 36, 3).

성경을 낭독하고 기도를 바칠 때마다 온 회중이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는 광경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어른, 아이를 막론하고 그날 세 시간 동안,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수난을 당하셨다는 것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웁니다(에게리아 순례기, 37, 7).

손 교수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장소 순례에 대한 계속된 비판에도 불구하고 순례가 살아남은 중요한 동력은 위의 인용문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신성과의 만남을 매개하는 장소의 영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며 "물론 그렇다고 장소가 그 자체만으로 신성과의 만남의 1차적 원인을 제공한다는 말은 아니다. 장소가 종교적 경험을 매개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는 인간의 조건, 즉 영혼과 몸의 복합체인 인간의 본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전하며 글을 맺었다.

김진한 편집인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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