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거울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거울

                                                                                                                                          이상 (김해경)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握手)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시인(1910-1937)은 거울을 검열의 현장으로 암시한다.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이 현실 속의 자기와는 반대임을 언급하면서 자아분열 등의 성찰을 하는 듯이 보이는 것은 검열을 의식하여 은폐적인 글쓰기를 한 것이다. 그가 은폐한 것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야 했던 지식인의 좌절감이다. 이는 저항의식의 이면적 표현이다. 모든 것을 되비추는 거울은 극심한 검열의 상태를 상징한다. 검열은 투명성을 지향하므로 마치 거울과 같은 세상을 추구한다. 식민지의 억압적 분위기 아래서 검열을 통과한 나와 검열되지 않는 본래의 나, 즉 "참나"라고 표현한 존재는 상응할 수가 없다. "거울속의나"는 시인이 소설로도 구상한 날개 꺾인 지식인의 모습을 연장한다. 사실상 그는 식민지 사회의 숨 막히는 압제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

그가 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거울속"은 "조용한세상"이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문장이 "조용한" 상태를 시각화한다. 거울에 비친 바깥세상은 소리로 요란스럽지만, 그의 눈에는 세상의 요란스러운 소리와 절연된 정밀(靜謐)의 세계가 두드러진다.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찬양인 듯 들리지만 흔쾌하지 않다. 오히려 공기조차 없어 소리가 전해지지 않는 공간이라고 지적하는 듯 들린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서 귀를 먼저 주목함으로써 소리를 듣고자 함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소리가 요란스럽다면 그것은 생명의 요란스러움이기 때문이다.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울속"은 비생명적 공간인 것이다. 거기서는 소리 없이 도로 비추는 동작만이 기계적으로 진행된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마는 공기가 없어 소리가 전달되지 않으므로 그 귀는 딱할 따름이다.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여기서 거울에 비친 상과 나의 모습 사이에 괴리가 생겼다. "내말을못알아[들으니]"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아니다. "조용한세상"이 나를 왜곡시켰으므로 "내말을못알아[듣게]" 하는 검열의 압력이 현존한다. 식민지 사회의 조용함은 곧 소통의 억압을 의미한다. 로마 제국의 폭력적 평화를 연상할 수 있다. "딱한귀"는 그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이다.

말로만 소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접촉 자체가 불가능하다. 물리적인 접촉이야 가능하겠지만 나의 오른손과 상대방의 오른손을 맞잡는 악수가 불가능하므로 사실상 소통의 불가능성을 제기한다.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握手)를모르는왼손잡이오." 내가 오른손을 내밀어도 거울 속의 나는 왼손을 내밀기만 하므로 소통은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태이다.

정밀한 세계가 모순되게도 숨 막히는 억압의 반영이듯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나를 만져보지도 못하게 하는 장벽이 된다. 물론, 나를 비추어주므로 나를 만나게는 했으니 그만한 효용은 인정할 수 있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고난이 자기 자신을 비추어보는 계기이기는 하나 누구도 반기지 않는 상황인 것처럼 식민지의 현실이 나라와 지식인의 현황을 바라보게는 하지만 소통을 억압하는 현실을 누가 반길 것인가? 어쨌든, 나를 돌아보는 계기로서의 효용은 인정하되 흔쾌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거울에 비친 나는 궁극적으로 말해서 거울 속에 갇힌 나이기 때문이다. "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거울이 없어도 거울 속의 나의 형상을 그릴 수 있으므로 그 속의 나는 거울 속에 갇힌 자로서 박제되어 나의 뇌리에 새겨져 있는 셈이다. 그렇게 소통이 차단된 채 살아야 한다면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 그가 골몰하고자 하는 "외로된사업(事業)"은 그가 홀로 고안한 활동이다. 예를 들면, 띄어쓰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검열로써 숨을 쉬지 못하게 압박했으니까 숨을 쉬지 않겠다고 저항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수동적 저항이다. 갇힌 자로서 박제되어 온갖 투명성의 검증을 거치며 검열된 영혼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다.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닮았소." 거울 속의 나와 대비되는 나를 "참나"라고 지칭한 데서 검열당한 나를 자신으로 여기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거부의 몸짓을 보이지만 현실 속의 나도 과연 "참" 나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검열을 당하는 현실이 "꽤닮았소." 띄어쓰기를 거부하는 수동적인 저항의 행위 자체가 내가 거울 속의 나처럼 갇힌 존재임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내가 나의 갇힌 상태를 점검하고 진찰하여 해결의 방안을 찾을 수가 없으므로 "퍽섭섭하오."

권력은 압제로써 그 존재를 증명하고 그 자체를 즐긴다. 압제는 물리적인 압박과 더불어 정신적인 검열을 통해서도 가해진다. 피압제인이 검열에 걸리지 않고서 자신의 신념을 표명하기 위해서는 은폐적인 글쓰기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로마 시대에 황제숭배가 횡행할 때 바울 사도가 로마서를 집필한 방법도 검열에 걸릴 만한 예민한 용어를 은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 당시에 무리가 생각하던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은 애국주의와 편승하여 중요한 검열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그들이 희구하던 하나님의 나라는 "참" 하나님의 나라를 반영하기는 하나 하나님의 "말을못알아듣는" 상태에 있었고 하나님의 "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 채 자기 몽상에 갇혀있었다. 예수는 그들의 몽매함을 깨치고자 했으나 검열의 압박을 우회하고자 비유를 사용하셨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참" 하나님의 나라를 검열하여 그의 표상인 예수를 억압함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도모하고자 했다. 권력이 있는 곳에는 검열이 발생하고 그로써 그 압박에 저항하여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은 은폐적 글쓰기를 할 수밖에 없다. 권력은 그 거울 앞에서만 진리를 확인할 뿐 그 이면까지 파악하지는 못한다.

※성경을 읽을 때 "자세히 보아야/ 예[쁜]" 성품을 찾을 수 있다. "오래 보아야/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말씀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이처럼 성경 읽기의 과정을 형상화한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시의 형상화 기능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과정에 적용하면 그 말씀의 의미를 형상으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소박한 논리를 따라 의미의 형상화 작업에 시와 하나님의 말씀을 결부해보았다. 글쓴이는 반포소망교회에 시무하는 이인기 목사다. 매주 한편의 시를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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