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고난과 생명의 면류관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골로새서 1장 24-29절, 요한계시록 2장 8-11절

설교문

[아시아의 꽃 서머나]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교회에게 보내는 요한계시록 저자의 편지를 살펴봅니다. 오늘은 서머나 지역에 있는 교회인데,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 본문을 보니 주님께서 이 교회에게 하시는 첫마디 말씀이 이것입니다.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이 한마디를 통해 우리는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도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처럼 로마 지배 아래에서 큰 핍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서머나라는 도시는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항구도시로 현재는 튀르키예 이즈미르입니다. 지금 이즈미르에는 50만 넘는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서머나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고대 그리스의 식민 도시였는데, 성경과 더불어 서양 문명의 근원이 되는 대서사시를 남긴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Homeros: Homer, 주전 800~750년)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바로 호메로스의 작품이지요. 서머나는 기원전 627년에 리디아(Lydia) 왕국에 의해 멸망했지만, 기원전 330년대에 알렉산드로스 장군이 정복하여 파고스 언덕(Pagos hill)에 거대한 성채를 쌓고, 산 밑 해안지역에 그리스식 대도시인 서머나를 재건설합니다. 파고스 언덕에 올라서면 서머나 전체가 보일 뿐만 아니라 서머나를 넘어 에게해(海)까지,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파고스 언덕 위의 성채부터 에게해 쪽으로 뻗은 산기슭에 지어진 찬란한 건물들이 고대 요새 도시의 웅장함을 보여주는 데다가, 바다에서 불어오는 미풍으로 사시사철 내내 신선하고 시원한 기후를 유지합니다. 에베소보다는 작은 도시이지만, 요한계시록이 쓰일 당시 약 7만 5천 명이 살았고, 에베소처럼 2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야외 원형극장을 비롯해 운동 경기장, 로마식 공동목욕탕, 대규모 광장(아고라)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로마에 편입된 이후로는 더욱 발전하였고, 여기도 에베소만큼이나 로마문화와 종교가 압도했습니다. 기원전 195년에 로마의 여신들을 위한 신전들이 세워지고, 기원후 26년에는 티베리우스 황제를 위한 신전이 만들어지지요. 서머나는 늘 에베소와 버가모와 더불어 소아시아 지역의 제일의 도시(Metropolis)가 과연 누구냐를 두고 다투었고, 에베소가 "아시아의 빛"이라고 불렸다면, 아름다움에서 결코 밀릴 수 없는 서머나는 "아시아의 꽃", 또는 "아시아의 면류관"으로 불렸습니다.

[서머나 교인들의 곤경]

그러나 언제나 화려함 뒤에는 칙칙하고 어두운 그늘이 존재하는 법이지요. 서울 곳곳에 높이 솟은 건물들이 휘황찬란함을 자랑하지만, 언제나 잘 보이지 않는 뒷골목에는 가난과 고된 노동에 지친 이들이 있습니다. 기후 위기로 날로 심해지는 무더운 여름에 에어컨 하나 없이 힘든 삶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로마 시민과 서머나의 상층 계급들은 서머나를 매우 아름답고 소아시아 제일의 도시라고 자랑하고 싶어했지만, 로마 정권의 정복과 약탈, 정글 한복판의 경쟁 속에서 밑바닥을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했던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은 매일 환난과 궁핍의 삶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오늘 성서는 말씀하시는 주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분이 말씀하신다." 세상의 시작과 종말 모두를 언급하고, 죽으셨다가 살아났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한마디를 통해 우리는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이 환난과 궁핍 속에서 죽음에 이른 사람도 여럿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소망과 바람이 부활하신 주님께 투영되는 것이지요. 동시에 세상의 처음과 마지막 즉 종말을 언급하고 싶을 만큼 지금의 세상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삶이 너무 고달픈 사람에게는 세상만사가 모두 다 싫은 법입니다. 이 세상이 모두 망해버리면 차라리 좋겠다고 생각하지요. 중국의 고대 사회의 전제 정권하에서 신음하던 백성들도 고된 노동 속에서 이런 노래들을 부르곤 했습니다. "이 해는 언제 떨어지려나, 내가 너와 함께 망하리라!"(湯誓曰: 時日害喪, 予及女偕亡.) 지금 서머나 교인들의 마음이 이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되시는 분으로서 우주 전체를 이끄시는 분"이라고 강조하면서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결국 주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다독였던 것입니다.

지금 서머나 교회는 이중 박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로마제국의 폭력 아래에서 신음하는 것이고, 둘째는 유대 사람들로부터도 미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 교인들은 이방신으로 가득한 로마문화에도 물들지 않고, 유대인들이 강조하는 과거 회귀적 율법 준수에 저항하다가 감옥에까지 가게 되고, 또 생각지도 못한 고난을 입게 되었던 것이지요.

로마는 정치적 반란이나 항거에는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하지만, 고대 종교와 문화에 대해서는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유일신을 오래도록 믿으며 경건한 삶을 살아온 유대인들은 로마제국 치하에서도 여러 사람의 존경을 받았고, 다소 혜택을 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실제적인 생존을 위해서라면 로마에 잘 보이는 것이 필요했기에, 그리스도교 교회 내부에서도 유대교의 그늘아래 피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주장이 계속 일어나기도 했지요. 예루살렘 교회에서부터 그런 과거 회귀적 모습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고집스럽게 그 주장에 반대합니다.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철저하게 섬기며,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웠던 평등의 정신으로, 모든 이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순결함을 지켜내려고 했던 것이지요.

[사실 너는 부요하다]

그래서 서머나 교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칭찬을 듣고 있고, 그 어떤 책망의 말도 듣지 않고 있습니다. 우선 이들이 들었던 칭찬의 말을 함께 생각해 봅시다.

지금 서머나 교회의 상황은 이것입니다.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환난은 위에서 충분히 말씀드렸고, 이들이 궁핍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들이 노력을 하지 않아서일까요? 능력이 부족해서일까요?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들이 가난한 이유는 로마가 제공하는 경제 정책이나 소비 진작 또는 생산 및 다양한 문화 활동 등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우리 교단의 발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참여하는 모임이 하나 있습니다. 한신대와 교단을 연결하고 함께 일을 도모하는 교학협력센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교단의 실태를 파악하고자 목회자와 장로님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중 하나의 문항이 이렇습니다. "귀하는 아래 사항 중 기독교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음주, 2) 흡연, 3) 주식 투자, 4) 부동산 투자, 5) 복권 구입, 6) 카지노 출입, 7) 이혼, 8) 비혼 출산, 9) 낙태, 10) 안락사, 11) 성 노동, 12) 군사 훈련, 13) 무기 수출, 14) 목회자의 정당활동, 15) 온라인 예배, 16) 타종교의 진리 인정, 17) 원자력발전소 건설, 18) 동성애 인정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이 항목들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한 선택을 하리라 생각합니다만, 오늘날에도 비종교인이 일상 삶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행동 중에 그리스도인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총선 이후 제22대 국회가 출범하고 각 상임위원회에서 다양한 법 제정을 위한 입법청문회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노라면, 거짓말하는 사람과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이 세상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어느 편에 서야 할까요? 서머나 교회 교인들은 세상의 불의와 폭력에 물들거나 가담하지 않으려 했고, 기득권 눈치 보지 않고 진실편에 서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환난과 궁핍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그런 서머나 교인들 편이 되어 주십니다. 뭐라 말씀하십니까?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너는 부요하다." 겉으로 볼 때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이 지켜내는 신앙과 정신은 참으로 두텁고 단단하며 깊고 넓다는 칭찬입니다. 저는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이런 칭찬을 듣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에게 가해지는 핍박과 고난, 어려움들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이겨내서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덮어 둔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그리고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복음서 10장 26-28절)

예수님의 이 말씀은 복음 선포와 하나님 나라 선교의 위험성에 대해서 잘 말해 줍니다. 순교의 가능성마저도 내포하고 있는 말입니다.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보다 둘 모두를 지옥에 던지시는 분을 두려워하라는 말은 인생에 있어서 생물학적이고 육체적인 목숨의 보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런 신앙에서만 오늘 서머나 교회에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환란과 궁핍 중에서도 진정으로 부요한 방법을 체득하고 몸은 죽어도 정신은 살아 있는 참된 신앙인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으로부터 바로 이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삶]

오늘 우리는 주님의 진리를 위하여 환란과 궁핍을 자청하고, 그 가운데서도 더 넉넉한 삶의 참된 의미를 누리는 서머나 교인들을 통해서 신앙의 힘이 어디에 있는지 배워야 합니다.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고 교회에 나가고 하나님을 믿는 이유를 물어본다면, 아마도 구원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배웠던 시절에는 영원한 지옥불의 심판을 피해 주님과 함께 참된 안식을 누리는 천국에 가는 것을 구원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가르치는 구원은 단순히 내세에만 관련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지금-여기'에서 구원을 이루는 법에 대해서 고민한 사람들에게 구원은 사실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현재 주어진 삶에서 참된 자유와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 고통을 양산하는 죄를 멀리하고, 하늘의 지혜로 세상의 어리석음을 넘어서고자 하지요. 이런 면에서 보면 구원은 궁극적으로 고난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참된 신앙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오늘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은 뻔히 알면서 환란과 궁핍을 자처하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고난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것이고, 그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참아냅니다. 순전히 참된 신앙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돈이 전부인 사회에서, 돈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고, 돈으로 사람의 인격마저 재단되는 사회에서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면서 바른 인격이 되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주머니를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 없다는 속담처럼 돈이 전부인 사회에서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때에 생기는 곤란함과 궁핍이 있습니다. 6월 명랑책방에 나오신 이상춘 집사님이 언급하셨듯이, '예수님이라면 과연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당하게 되는 불이익과 손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은 하나님을 배반하기보다는 차라리 환란과 궁핍을 겪는 것을 택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골로새서의 말씀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기는 어려움을 견디는 것에서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신으로 채워간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발적으로 고난의 현장으로 나아갑니다. 바울의 이런 신앙고백을 들을 때마다 저는 불교의 지장보살이 떠오릅니다.

경전에 따르면, 지장보살은 총 4번의 전생을 거쳤는데, 그중 두번째 생애에선 인도 바라문의 딸이었는데 부처의 가르침에 귀의를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딸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부처의 가르침을 비방하고 다녔습니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마태 10:36)이라는 예수님의 말처럼, 딸이 부처님의 제자인데, 어머니가 부처님을 비방을 한 것이지요. 지장보살은 어머니가 죽자 지옥에 떨어졌으리라 생각하여 진심으로 공양하였고, 각화정자재왕여래의 힘을 빌어 지옥 여행을 떠납니다. 지옥의 참상을 보고 지장보살이 어머니가 있는 곳을 물었는데, 자기가 공양한 공덕에 힘입어 어머니가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다른 죄인들과 함께 천상에 올라간 지 3일이 지났음을 전해 듣게 됩니다. 이제 가족과의 모든 인연에서 자유롭게 된 지장보살은 집으로 돌아와 "지옥에 빠진 모든 중생을 건질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地獄未濟 誓不成佛)라는 큰 뜻을 세우고 미래에 미륵보살이 출현하기까지 온 세상의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게 됩니다. 즉 지장보살은 어머니 덕에 지옥을 경험하고 거기에서 고통당하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여 그들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해탈마저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부처님인 것이지요. 바울 사도와 매우 비슷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기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권하며,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이 일을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작용하는 그분의 활력을 따라 수고하며 애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일을 위해서 당하는 고난과 수고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일이라 고백합니다.

초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곤경과 고난에서 구원받고자 신앙의 순례를 시작합니다. 돈과 힘, 기득권자들과의 친밀한 관계가 구원을 보장한다는 사회에서, 이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먼저 따르고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것, 또는 진정한 구원은 하나님에게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처럼 개신교의 신뢰도와 위상이 땅에 떨어졌을 때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구원을 위해 첫발을 뗀 신앙의 순례는 그 깊이와 넓이가 더해지면 질수록 나와 너,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그리고 내가 모르는 남, 낯선 이들의 구원을 위하는 자리에도 나아가게 됩니다. 그 경지가 더 깊어지면 죄인을 위한 구원의 자리,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으셨던 그 길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운다고 한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길,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탄탄한 모습으로 지속되는 길이 바로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고난을 피할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과 주님의 복음, 믿음의 형제자매와 이웃, 낯선 이들과 특별히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깊은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고난에 동참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만이 우리는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 생명사랑교회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님과 복음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고난을 무릅쓰는 성도들 덕에 이렇게 단단해질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리해야 합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길에 고난은 어쩌면 필수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고난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어떤 고난은 너무 급작스럽게 찾아와 대처할 일말의 여유도 없이 당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 고난에 맞서 싸우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지요. 신앙은 바로 그런 고난이 찾아왔을 때, 빛을 발합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은 신앙은 우리 주님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우려고 자발적으로 고난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해온 모든 목회를, 한걸음 물러서서 되돌아보면, 저 스스로 고난의 현장을 자초한 일들이 많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고, 마음 쓰고, 몸 쓰고, 돈 쓰면서 수고했고, 그러다가 때로 지치고 힘이 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서서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울 사도를 이어 주님의 남은 고난을 내가 채우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고, 참된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교가 2000년 역사를 지내오면서 수많은 잘못도 저지르고, 주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흘러가기도 하고, 오히려 성령을 모독하고, 주님의 길을 왜곡한 적도 있지만, 아직도 이렇게 남아 있는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 사람들이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저에게 희망을 주십시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사람이 됩시다. 우리가 주님의 남은 고난을 채울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보여주시고자 하는 비밀의 영광이 남김없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은 그저 허무한 고통으로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뜻을 간직한 고난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게 합니다. 고난과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 모든 생명체는 고통을 피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담은 수고와 고난, 아픔과 상처는 오히려 인생의 깊은 맛을 알게 합니다.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서머나는 아시아의 면류관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이번 일주일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시되, 그것이 고통이 아니라 보람과 벅찬 감동과 성령과 더불어 익어가는 순례의 길이 되시길 빕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는 서머나 교인들의 믿음과 삶을 살폈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은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처럼 로마제국의 이교문화 속에서 굳건하게 자신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환난을 당하고 궁핍했지만, 그들의 신앙은 그 누구보다 부유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날마다 주님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 가신다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믿음의 선배들을 이어 주님의 남은 고난을 채우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 누구보다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사람들 되게 하시고, 그 누구보다 부유한 정신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깊은 신앙으로 고난을 이겨내게 할 뿐만 아니라,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언제나 겸손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친구이시자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은혜의 주님, 이 시간 정성을 모아 귀한 예물을 드립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며,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 삶에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니 넘치는 감사를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으로부터 온 충만함과 감격으로 저희도 주님께 기쁨으로 드리게 하여 주소서. 저희가 세상의 헛된 욕망과 욕심을 버리고 주님 주신 것에 주목하며 늘 만족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가질 때보다 이웃과 나눌 때 더 큰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안의 감사와 기쁨으로 더욱 신실한 믿음직한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환난과 궁핍한 시절이 다가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픔과 고난의 시간을 성숙의 계기로 삼게 하시고, 때로 주님의 복음과 주님의 몸된 교회, 그리고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하여 몸소 고난의 현장으로 나가게도 하소서. 오늘 우리가 예물을 드립니다. 여기에는 물질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담겨 있습니다. 이 예물이 온전히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게 하여 주소서.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을 기억하고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님의 남은 고난을 우리가 채워갑시다. 환난과 궁핍 가운데서도 넉넉함을 잊지 맙시다. 부자라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누기 때문에 부자인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 축도

지금은 산 자에게 사랑을, 죽은 이에게는 평화를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사귐, 애틋한 위로가 사랑과 지혜의 영, 거룩한 영의 가르침에 따라 오늘도 변함없이 성숙한 신앙을 향해 줄기차게 정진하는 생명사랑 교우들 위에, 거룩한 영을 힘입어 주님의 자녀로 평화를 일구는 전국의 모든 성도들 위에, 이 땅에서 고난당하며 주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작은 형제자매들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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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외면하고 지상의 순례길 통과할 수 없어"

3월 NCCK '사건과 신학'에서는 4월 총선을 앞두고 '4월의 꽃, 총선'이란 주제를 다뤘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선거 참여와 정치 참여'란 제목의 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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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형상은 인간우월주의로 전환될 수 없어"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가 '기후위기 시대의 신학적 인간 이해'란 제목의 연구논문을 최근 발표했습니다. 박 교수의 창조신학을 엿볼 수 있는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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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물질 배제하고 내세만 추구해선 안돼"

장신대 김은혜 교수(실천신학)가 「신학과 실천」 최신호(2024년 2월)에서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지구 신학의 형성을 위해 물질에 대한 신학적 반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