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방문객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시인(1939- )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어마어마한" 일로 본다. 우리는 날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모두가 우리의 인생을 방문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만나는 누군가는 자신의 존재를 우리 인생 안으로 들여놓는다. 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자식도 마찬가지다. 마치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지만 바람조차도 기억을 남기므로 모든 것은 존재의 흔적을 남기게 된다. 그러고 보니까 그 방문은 그냥 들렀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접속 혹은 접목되는 것이다. 그렇게 인연을 맺으면 그 사람의 일생,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공감할 기회가 열린다. 그 사람의 역사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의 역사는 우주와 맞닿아 있으므로 어쩌면 인연은 우주의 방문일 수 있다.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이 그들 나름의 역사를 지닌 존재임을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연속선상에 우연히 스쳐가는 그림자 정도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의 눈이 우리 자신만을 주목하고 있어서 그들의 존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가족과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가족을 한 몸이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마음속 밑바닥에는 가족도 결국 타인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쉽다. 아마도 개별적인 실체로서 존재하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관습이 그 원인일 수 있다. 만일 가족이 그처럼 그림자라면 가족 바깥의 이웃도 그림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림자는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가 그림자가 아니듯이 그들도 그들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를 지닌 존재이다. 숱한 시간을 살아온 일생의 이야기를 품은 존재인 것이다. 시인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행을 바꾸어 구분한 것은 그 한순간 한순간이 모두 의미를 지녔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존재의 만남은 역사가 담긴, 실제로 걸어온 족적과 현재의 고민과 앞으로의 소망이 고스란히 실린, 일생끼리의 만남이다. 역사와 역사의 접목인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인연을 이처럼 "어마어마한" 일로 확인할 통로가 있을까? 시인은 그 통로로서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을 제시한다. 그 마음은 상처의 기억을 담고 있다. 사람의 일생을 상처의 기억으로 보자는 말이다. 상처 없는 사람이 없다. 상처가 없다는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모두 상처를 공통분모로 갖고 있다. 상처는 사람들끼리 공감할 토대인 것이다.

시인은 그러한 공감의식의 형질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그 의식이 바람과 같다고 말한다. 바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람은 살갗을 더듬으며 위안을 준다. 우리의 마음이 바람처럼 다른 사람의 상처를 더듬어 위로해준다면, 그때가 비로소 우리가 우리 자신과 그 사람을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들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도 된다. 시인은 우리에게 바람을 흉내 내라고 이르고 있다. 바람을 흉내 내어 우리의 손길이 다른 사람의 상처의 갈피를 더듬게 될 때 그 상처는 이제 기피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 상처로 인해 상대방도 우리처럼 역사를 지녔고 상처의 역사를 서로 비추어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은 필경 상대방을 환대하는 행위이다.

바람의 흉내를 내어보자. 그것은 다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내 인생으로 들어오는 일이다. 하나님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지닌 존재로 믿어지는 일이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들을 환대했다가 그들이 천사인 것을 알게 되었다(창세기 18장). 이에 대해 히브리서의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브리서 13:2). 그는 나그네들을 거창할 정도로 정성 들여 대접했다. 이런 환대를 베풀어본 사람만이 하늘의 존재를 맞이하게 된다. 존재의 순간(the moment of being)을 각성하는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천인이 인간을 방문한 상황이지만 그 순간에 그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깨달았다. 즉, 깊게 공감할 줄 아는 자신이 바로 자기의 인생을 찾아온 "어마어마한" 방문객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오늘 내가 환대할 대상은 누구인가?

우리는 근원적으로 상처 입은 존재이다. 원래 우리는 시간을 초월한 존재이었으나 죄로 인해 시간의 세계에 종속되었으니까 존재론적인 상처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그로써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를 지닌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기피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와 동등한 존재가 되어 직접 상처를 입으셨다. 우리의 역사에 그분의 역사를 접속하셨다. 이것이 우리에 대한 그분의 마음이다. 그 마음은 우리 존재의 갈피를 이렇게 더듬었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로마서 8:30).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형상으로서 예정된 삶을 살게 되어 있었으나 죄의 상처 때문에 스스로 그림자가 되어버렸다고 여기시고, 우리를 불러서 우리의 존재가 의롭다고 말씀하신 뒤 그분의 형상을 회복하는 영광의 자리로 인도하셨다. 그분은 우리가 죄 속에 있었음에도 우리를 의롭다고 칭하심으로써 우리의 겉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본질과 잠재된 가능성을 인정하신 것이다. 그렇게 그분은 우리를 환대하셨다.

그분이 보여주신 대로 우리도 다른 존재를 환대할 수 있어야 하겠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을 그림자처럼 대하면 우리도 그들에게 그림자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세심한 손길로 대하면 그들도 내게 세심한 손길이 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존재의미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이 과거, 현재, 미래를 꽉 차게 지닌 존재라고 여기게 될 때, 그들도 우리처럼 상처를 벗어나 온전하게 회복하고자 하는 존재라고 인정할 때, 그래서 그 상처의 갈피를 더듬어 위로할 때, 우리도 그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일생을 "어마어마한" 역사로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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