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차든지 뜨겁든지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마태복음서 25장 24-30절, 요한계시록 3장 14-22절

설교문

[올림픽 정신을 새삼 기억하며]

지난주 화요일에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소수 정예' 규모(144명)로 출전해서 역대 최고 성적을 낸 한국 대표 선수단이 돌아왔습니다. 경제불황이 계속되고, 푹푹 찌는 더위에, 별로 반갑지 않은 정치 뉴스들 한복판 속에서도 자신이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들을 마음껏 펼치며 멋진 메달까지 획득하는 선수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요즘에는 올림픽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예전 같지 않지만, 한때는 온 국민이 멀리 해외에서 들려오는 메달 소식에 열광하고, 매일매일 메달 숫자를 세며 우리나라가 이번 올림픽에서 몇 위나 하는지 온 관심을 쏟던 때도 있었습니다. 승패가 있는 경기에서 선수들은 모두 이기기를 바라고, 오늘날 고도로 전문화된 스포츠 경기에서 메달 순위는 일종의 국력을 보여 주는 지표가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근대 올림픽 경기의 창시자로 알려진 프랑스의 교육자 쿠베르탱이 내세우는 올림픽 정신은 이와는 다릅니다. 올림픽 하면 오륜기나 성화(聖火) 같은 상징물이 떠오르는데, 올림픽에는 표어와 신조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들어 보셨겠지만, 올림픽 표어는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힘차게"(Citius, Altius, Fortius)입니다. 그럼 올림픽 정신을 드러내는 올림픽 신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것입니다. "올림픽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잘 싸우는 것이다."(THE OLYMPIC CREED : The important thing in the Olympic Games is not winning but taking part. The essential thing in the life is not conquering but fighting well. - Baron pierre de Coubertin, founder of the Modern Olympic Games)

이 올림픽 신조는 쿠베르탱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지만, 이 말을 하도록 만든 것은 사실 성공회 주교인 에텔버트 탈보트(Ethelbert Tarbot)입니다. 탈보트 성공회 주교는 1908년 여름, 세계 성공회 주교 회의인 람베스 회의 참석차 런던에 방문했다가 성 바울 대성당 예배 설교자로 초청을 받게 됩니다. 당시 런던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는 시기였기에 예배에 운동선수들과 올림픽 관계자들이 특별히 초대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탈보트 주교는 이렇게 설교합니다.

"우리는 방금 위대한 올림픽 경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전 세계 각지에서 건장한 청년들이 몰려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이것은 또 어떤 위험이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냉혹한 국제정세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입니다. 운동선수들은 스포츠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조국을 위해서 노력할 것이고 그래서 새로운 경쟁이 발생합니다. 강 위에서 영국이 패하고 또 육상 경기에서는 미국이 앞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또 미국이 한때 가졌던 힘을 잃는 일이 생긴다면, 음~, 과연 어떻게 될까요?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안전을 기할 수 있는 길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로 진정한 올림픽의 교훈은 경쟁과 경쟁에서 이겨 얻는 상보다는 올림픽 그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상 자체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우리의 추구해야 할 진정한 상은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니라 불멸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림픽에서 오직 한 사람만 월계관을 쓸 수 있겠지만, 참여하는 모두가 대회의 기쁨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나는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한 이들, 곧 활력 있고 공정하며 깨끗한 경기를 통해 인간의 정신을 회복하는 데 관심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큰 격려를 보냅니다."(Ture Widlund, 『Ethelbert Talbot-His Life and Place in Olympic History』, Citius, altius, fortius: the ISOH journal, vol. 2, no 2, 1994, 7-14.

https://library.olympics.com/network/doc/SYRACUSE/2288474/ethelbert-talbot-his-life-and-place-in-olympic-history-by-ture-widlund?_lg=en-GB)

당시 주일 예배에 참석했던 쿠베르탱은 탈보트 주교의 설교를 매우 인상 깊게 들었고, 며칠 후, 영국 정부에서 올림픽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연회에서 탈보트 주교의 설교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연설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것에 있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몸부림입니다. 본질적인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잘 싸웠다는 것입니다."

쿠베르탱은 1912년과 1920년 올림픽에서 재차 올림픽 정신으로 이 말을 강조했고,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개막식에서 경기장 대형 점수판에 선명한 글자로 등장하면서 올림픽 신조가 됩니다.

우리나라가 금 다섯 개 모두를 가져온 양궁 경기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한 선수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차드라는 나라의 마다예 선수입니다. 그는 김우진 선수와 64강 전에서 맞붙게 되었는데, 스폰서는 물론 유니폼이나 가슴 보호대도 없이 등장합니다. 2세트에선 1점을 쏘기도 했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선 거의 볼 수 없는 점수이지요. 김우진 선수에게 0:6으로 졌지만, 그는 프랑스 식민 지배에 시달리고 이웃 나라의 침공과 내전까지 겪는 나라에서 홀로 연습해서 올림픽에 도전했습니다. 장비도 없고, 코치도 없이, 국제양궁협회에서 보내준 종이 신문에 실린 양궁 선수들의 연습법을 참고하면서 생업도 잠시 미루고 연습해서 출전했던 것입니다. 마다예 선수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올림픽 정신을 보여 준 것이지요.

[차든지 뜨겁든지]

오늘 우리가 읽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요한의 편지에서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겠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여기서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는 말씀은 신앙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어중간하게 미적지근하면 주님으로부터 내침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고대 로마인들은 포도주를 마실 때, 포도주에 눈을 넣어서 차게 마시거나, 아니면 끓여서 뜨겁게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아아(Ice Caffé Americano)나 뜨아(Hot Caffé Americano) 중 하나를 마시는 것인데, 차지도 뜨겁지도 않을 때, "맛이 왜 이래!" 하면서 뱉었다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는 기원전 253년 안티오코스 2세가 자기의 아내 '라오디케'의 이름을 따서 건립한 도시입니다. 133년 로마에 편입되었는데, 소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상업과 무역이 성행함은 물론 섬유업, 금광업도 번창했고, 그래서 도시에 은행도 있고, 의학교도 있었으며, 약품을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기원후 60년에 대지진이 일어났는데, 로마가 도와주려고 하자, 그 도움을 거부하고 스스로 재건할 수 있다고 하면서 다시 일어설 만큼 넉넉함을 자랑하는 도시였습니다. 로마 황제의 신전은 없지만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위한 제단이 존재했습니다. 이렇게 풍요가 넘치는 도시 라오디게아에 있던 교회도 겉으로 볼 때는 풍족하여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3:17). 그런데 주님께서는 실상 라오디게아 교회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책망하시면서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건 주님께서 신앙의 눈으로 꿰뚫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주님을 "아멘이신 분이시오, 신실하시고 참되신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처음이신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아멘'이 명사로 쓰이면 '진리'라는 뜻을 가집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드려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보여 주시고, 지혜의 말씀이 되셔서 온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진리이신 예수님의 눈으로 라오디게아 교회를 살피면 화려한 겉과는 달리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받는 책망을 분석해 보면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우선 어정쩡한 신앙이 아니라 분명한 신앙을 지니라는 것이고, 둘째는 참된 신앙에 올바로 서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마음 깊이 새겨야 할 말입니다.

2021년 4월에 출판된 <태극기를 흔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목은 "개신교 극우 현상의 배경과 형성 그리고 극복"입니다. 제목에서 이미 많은 것을 알려 주는데, 이 책은 광화문 앞에 나아가서 태극기를 흔드는 극우적인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이들의 신앙 정체성과 정치의식에 대해 연구한 책입니다. 우리는 전광훈과 함께하는 교인들을 보면서 매우 몰지각하고 비논리적이며 과격하고 극단적인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에 의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면접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자기 스스로는 진심으로 애국의 마음을 지니고 성경 말씀에 따라 참된 신앙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극기를 흔드는 그리스도인들을 한발 물러서서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를 보면 이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반지성주의적 행태를 보이며, 모든 것을 선과 악, 또는 친구 아니면 적, 죄악 세상 대 교회 천국 등으로 양분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합쳐져서 스스로 논리적으로 말한다고 해도 대체로 편협한 안목과 시야를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분파적 성향이 강하고, 자기 의를 드러내며 남을 정죄하면서 타인에 대해 무례하거나 강압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신앙의 범위가 대체로 사적인 것 즉 자기중심적인 데에 머물러 있기에 공적인 인식이 약하고, 역사적 안목 또한 한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사회의 복잡성과 역사적 중층성에 대한 이해가 매우 약한 것입니다. 신앙의 내용은 기복적 성향이 강하고, 경직된 율법주의를 지니면서도 체면과 위신을 중시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여기에 성경이 강조하는 확고한 신앙을 내면화하면서 이것에 편승해서 극우적 신념, 정치적 편향을 종교적 신념으로 지니고 있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성경이야말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원천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때의 기준이라는 신앙적 고백이 이들에게는 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신봉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적으로 간주하고, 미국과는 무조건 친해야 하며, 전 문재인 정부와 현 야당의 인사들은 빨갱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예찬합니다. 신앙의 확신이 정치적 신념으로 교묘하게 전이됩니다. 이런 신념 속에서 극도의 편협성과 폐쇄성을 지니고 편을 가르며 상대방을 정복하고 타도하고 파멸하는 것이야말로 사탄에 맞서 싸우는 하나님의 승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우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시는 예수님은 과연 이들을 어떻게 보실까요? 겉으로는 투철한 신앙을 지닌 것 같지만, 그 신념 자체가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점에서 보자면 눈이 멀고 벌거벗어 수치스러운 것이 됩니다.

한편 이런 극우적 신념을 가진 그리스도인들과는 말도 섞지 않으려는 이들, 나름 진보적이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그리스도인 중에도 오늘 라오디게아 교회가 받은 책망을 들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신앙이 적당한 것에서 멈추기 때문입니다. 즉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것이지요. 그리스도교 신앙이 하나의 악세사리 정도, 취미생활 정도에서 실행되는 경우입니다. 이들에게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참된 희생의 정신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간디 선생이 말한 사회악의 하나인 희생 없는 종교의 표본이지요. 이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불에 정련한 금을 사고, 흰옷을 사서 입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라! 상업행위가 가득한 라오디게아 문화 속에서 주님은 너희가 진정으로 사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소비주의 문화 속에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돈을 가지고 과연 무엇을 사고 있습니까? 오늘 성경은 좀 더 순수하고 깨끗하고 명징한 신앙을 사서 지니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너는 열심을 내어 노력하고, 회개하여라."(3:19) 우리 생명사랑교인들 중에는 광화문에 나가서 태극기와 이스라엘기를 흔들며 전광훈 같은 사람이 하는 말에 "아멘"을 외치는 분들은 계시지 않지만, 우리 또한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과연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을 분별하고 있는지, 우리가 미적지근하여 주님으로부터 내쳐질 상태인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해서 징계를 받는다면, 그럴 때에 우리는 더욱 열심을 내어 노력하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달란트 비유]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서의 달란트의 비유는 매우 유명하여 대부분 잘 아시는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살펴보지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신의 전 재산을 종들에게 맡기고 갔습니다. 이것은 곧 주인이 하던 사업이고, 주인이 하는 일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절에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고 했는데, 정말 그러합니다. 이 사람은 세 명의 종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모두 합쳐서 8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원래 달란트는 무게의 단위이고, 예수님 시대에는 약 35kg에 해당되었습니다. 이것을 로마의 은화인 데나리온으로 환산할 경우, 대략 6,000데나리온에 해당되며 노동자들이 16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돈이었습니다. 8달란트라고 하면 한 사람이 128년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충분한 돈이었고, 이렇게 큰 금액을 가진 사람은 당대에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주인은 자기의 사업 전체를 맡긴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이 없을 때 주인의 일을 맡은 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당연히 주인으로부터 위임받은 일을 성실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등장하는 세 명의 종들 중 두 명 즉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각각 자기의 능력에 따라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이 둘에게 모두 같은 말로 칭찬하고 주인과 함께 잔치에 참여하도록 합니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이 사람도 자기의 능력에 따라 한 달란트를 더 벌었을 것이라는 청중의 기대와는 달리 주인으로부터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놓고, 주인이 오자 다시 돌려줍니다. 그는 결코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인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며, 이전에 주었던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이에게 주었고, 이 종을 쓸데없는 종이라고 부르며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버립니다.

[악하고 게으르고 쓸모없는 종아]

큰 맥락은 알았으니, 이제 좀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지요. 오늘 비유의 주인은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을 세 가지로 규정합니다. 악하고, 게으르고, 쓸모없다는 것입니다. 16년의 노동자 품삯이라는 엄청난 자본을 가지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게으르고,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돈놀이하는 이에게 맡겨, 오늘날로 말하자면 은행에라도 맡겨 이자라도 받아야 하는데, 전혀 주인에게 이익을 주지 않았기에 쓸모없는 종이 된 것은 마땅해 보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긴 하나님 나라 사역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면 우리 또한 게으르고 무익한 종이라고 꾸중을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택하셔서 각자에게 능력과 소명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소명을 망각하고, 그 주어진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다른 것에 이용하거나, 아예 묻어두고 활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바로 그 능력을 가져다가 다른 사람에게 더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주인이 이 게으르고 쓸모없는 종을 왜 악하다고 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것은 바로 종이 주인을 비방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노력하지 않는 것에 대해 핑계하기를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굳은 분'이라는 말의 원어는 '가혹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성서는 무서운 분이라고 번역합니다. 즉 종은 주인을 아주 나쁜 성품의 소유자이며,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는 데서 모으는 사람은 오늘날 갑질을 일삼은 악덕 기업주 같은 이들인데, 사랑과 관용의 하나님을 이렇게 몰아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종은 게으르고 쓸모없을 뿐만 아니라 악한 종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비슷합니다. 자기 잘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바르게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은 보통 핑계를 댑니다. 자기 잘못보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크게 부각합니다. 교회에서도 교인으로서의 감당할 직분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교회의 다른 여러 조직이나 활동이나 교인들, 목사와 장로의 무능함을 헐뜯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타인을 평가하기 좋아하는 이들을 곰곰이 관찰해보면 입으로만 그렇게 떠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남에 대해서 말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남보다 늘 자신을 더 엄격하게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또 하나 주의 깊게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거의 모든 것을 맡기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일에 충실하지 않으면 우리는 오늘 심판받는 이의 처지가 될 것입니다.

비록 무식한 어부였지만, 충성되게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하늘문을 여는 열쇠를 받았습니다. 열심히 하는 자에게는 그런 보상과 능력이 따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 편이 되고 악의 무리와 함께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사탄의 편이 되어 심판하러 오시는 분을 모욕하고 못된 하나님인 것처럼 비방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자에게 주어지는 운명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서 거기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과 평화와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매진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갈수록 악해지고 그 피해는 다시 우리가 입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일에 헌신하고, 옳고 바르게 살아가면 그 사람의 인생은 더욱 반듯하여지겠지만, 함부로 몸을 굴리면서 서슴지 않고 악을 행하는 이들은 잠시 번성할지 모르지만 결국 악과 함께 망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잘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시고 과감하게 모험해 보라고 권면해 주십니다. 실패를 두려워 말고 과감하게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들을 해 보라고 합니다. 거기에 뛰어드는 사람은 반드시 이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그런 노력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도 늘어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질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설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하면서도 더 큰 어려움과 시련을 겪는다 해도,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영예이고, 궁극에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 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큰일을 맡기셨습니다. 그것을 땅속에 묻어두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맙시다. 차든지 뜨겁든지 합시다. 하나님만 믿고 나아가서 결국 하나님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 잔치에 참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참된 믿음을 주소서. 제대로 알고 바르게 믿어 참된 삶을 살게 하소서. 차든지 뜨겁든지 하게 하소서. 어정쩡한 믿음, 적당한 믿음에서 멈추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약속을 믿고 과감하게 나아가게 하소서.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에 충실한 제자가 되게 하소서. 자기 일은 하지 않으면서 남 탓하는 일 없게 하소서. 주님 앞에서 정련된 금 같은 신앙, 밝고 희게 빛나는 생명, 명료하게 깨닫는 하늘의 지혜를 얻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주님을 모시어 늘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게 하소서. 주님께서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하실 때, 여전히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빠르게 회개하고 더 열심을 내게 하소서. 우리의 친구이시자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인자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합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갈 우리에게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하시는 주님, 앞으로도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우리에게 드러내소서.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드리며 예물을 드립니다. 예물을 드릴 때, 우리에게도 기쁨이, 감사가, 자유가 넘쳐나게 하소서. 주님께 드리는 이 예물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사용되게 하소서.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헛되이 쓰지 않게 하시고, 더 많은 하나님 나라 사역으로 확장하게 하소서. 이 예물에 깃든 우리의 정성과 마음도 보아주소서. 생명을 살리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우리 생명사랑교회를 세워 주셨음을 압니다. 우리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겠습니다. 주님께 드린 예물로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감당할 사역을 잘 이뤄가겠습니다. 이 모든 감사를 주님께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차든지 뜨겁든지 하십시오. 주님 주신 달란트를 사용하십시오.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실 때 활짝 여십시오.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 주님의 기쁨을 함께 누리십시오.

* 축도

주님께 우리 손을 올립니다.

주님께 우리 머리를 숙입니다.

주님께 우리 사랑을 드립니다.

이제는

성부 성자 성령 성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선택된 여러분들에게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을

온 우주의 은총과 영원한 사랑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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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줄이는 것도 에너지 필요"

기후위기 시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배현주 박사(전 WCC 중앙위원, 전 부산장신대 교수)가 얼마 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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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의 인간론, 자연과학적 인간 이해와 대립하지 않아"

바르트의 인간론을 기초로 인간 본성에 대한 자연의 신학적 이해를 시도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이용주 박사(숭실대, 부교수)는 최근에 발행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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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의 뿌리는 철학과 기독교 사상의 이원론"

여성 혐오와 여성 신학에 관한 논의를 통해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며 성서적인 교회론 확립을 모색한 연구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조안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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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와 신성화라는 이중의 덫에 걸린 한국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최영 목사가 기장 회보 최신호에 실은 글에서 기장이 발표한 제7문서의 내용 중 교회론, 이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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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외면하고 지상의 순례길 통과할 수 없어"

3월 NCCK '사건과 신학'에서는 4월 총선을 앞두고 '4월의 꽃, 총선'이란 주제를 다뤘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선거 참여와 정치 참여'란 제목의 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