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과 한국기독교'라는 주제로 기독교인 죄책고백 세미나가 6일 오후 1시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렸다.
NCCK 인권센터, (사)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 예수살기, 기장 교회와사회위원회 등이 공동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는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의 축사 순서가 있었다.
이 전 위원장은 "뉴라이트의 도발로 촉발된 역사전쟁이 학계와 정계를 비롯한 사회 각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국가 정체성 논쟁이 새롭게 불붙고 있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이런 시기에 '국가폭력과 기독교'라는 주제로 자신의 과거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한 것은 한국 기독교가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성숙의 기회로 가려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전 위원장은 "그동안 '국가폭력'과 '한국기독교'와의 관계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때문에 '기독교와 폭력'을 연관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하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 세미나의 주된 내용은 해방 직후의 '대구 10월 사건'․ '제주 4.3 사건'․ '여순 사건' 및 '한국전쟁 중 발생한 민간인학살', 이런 것들과 기독교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다"라고 세미나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기조 발제자로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이사(민중신학 연구자)가 나서 발표했다. 김 이사는 기독교를 "사과해야 하는 종교"로 규정했다. 그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은 개신교가 당시 다른 어떤 종교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심각한 폭력의 가해자였다는 것이다"라며 "해서 지금 개신교신자인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개신교의 역사적 과오들을 들추어내고 피해자들 앞에서 그리고 역사 앞에서 통렬히 사과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김 이사는 특히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사회정치적 이슈의 하나인 '적폐청산' 담론이 개신교를 주요 과녁으로 삼고 있는 것은 결코 과장되거나 오인된 것이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한국개신교는 자신의 과오에 대해 통렬히 사과하거나 자기성찰하려는 노력을 너무나 게을리 했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포럼은, 비록 한국개신교 내의 작은 몸짓에 지나지 않지만, 너무나 필요한 일이며 또 도처에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역사전쟁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이승만'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 이사는 "이승만은 대통령으로서 한국사회를 기독교국가로 만들려는 꿈을 꾸었던 인물이다. '기독교국가론'은 한국개신교의 보수파 사이에서 강조되어온 가장 대표적인 정치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두 인물이 이 담론을 상징하고 있다. 한경직과 이승만이다"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한경직과 이승만은 둘 다, 하느님의 뜻이 관철되는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 근본 취지라는 점에서 일치하고,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극우반공주의와 친미주의가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둘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승만이 리더십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폭력성도 짚었다. 김 이사는 "이승만은 군과 경찰, 공무원에 대한 장악력이 확고해지고, 정당도 좌지우지하는 절대 권력을 갖게 됩니다. 브루스 커밍스가 이승만을 '마키아벨리적 지도자'라고 평했는데, 이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통치자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결과다"라며 "특히 그는 국가가 창건되는 최초 헌법에 의해 추대된 대통령임에도 그 추대문서에 서명한 잉크도 마르기 전에 법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계엄을 포고한 인물이다"라고 했다.
아울러 김 이사는 이어 "나아가 법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예외적 상태(state of exception)의 공간으로 가장 원초적 폭력성(originary violence)의 존재인 민병대(militia)를 파견한다"며 "요컨대 저 치명적 학살사태는 바로 이승만이 만들어 놓은 '예고된 폭력'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수록 그에게는 전체주의적 권력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덧붙였다.
특히 서북청년단과 서청특수부대의 만행을 고발했다. 그는 "그들의 만행은 사실 어느 정도 과장되어 있다. 이승만을 추종하는 청년조직의 범죄 모두를 사람들은 서북청년단이 저지른 것으로 오인하고 있기도 하다"라며 "하지만 그렇다고 서북청년단의 존재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충성스런 폭력성은 이승만이 개신교에 베풀어준 지나친 특혜의 필요조건이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기독교의 폭력을 용인하고 부추기는 행보를 보인 이승만을 미화하고 추앙하려는 최근의 시도에 대해서는 △'부성적 권위주의'에 대한 갈망 △'종족적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에 대한 갈망 △'공격적 반공주의'에 대한 갈망 등을 꼽았다. 특히 종족적 민족주의와 관련해 다문화 사회에서 피로감을 느낀 이들을 중심으로 "다분히 순혈주의적인 강성의 자민족주의(hard nationalism) 성향이 강한 '종족적 민족주의'가 소리 높게 외쳐지고 있다"고 했다.
김 이사는 "이런 상황에서 종족적, 성적 순혈 주의적 민족주의를 갈망하는 이들이 이승만을 호출하는 것은 꽤 이승만에게 부합하는 이미지이긴 하지만 대중적 호소력이라는 관점에선 그리 효과적이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종족적 민족주의자들을 흡수하는 문화적 페스티벌이 그들의 욕구를 정치화하는 행보에 훼방을 놓고 있고, 성적 민족주의는 점점 금단의 열매처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규범이 그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또 공격적 반공주의에 대해서는 "다짜고짜 '네 죄를 알렸다'라고 호령하고 온갖 고문을 가하면 실토하고 마는 그런 빨갱이 발명 말입니다. 마치 서양의 '마녀 사냥'처럼 빨갱이 사냥은 색출의 명분으로 타자를 낙인찍고 공격하는 것에서 짜릿한 집단적 가학성의 쾌감에 중독되곤 한다"며 "문제는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빨갱이 사냥의 권리는 공권력에 독점되기 마련이다"라고 김 이사는 주장했다.
김 이사는 "최근 우리사회에서 온라인공간은 과거의 계엄령 하의 공간과 비슷한 조건을 만들어냈다. 하여 오늘날 많은 극우주의자들이 온라인공간에서 활개치고 있다"며 "하지만 이 경우도 레거시미디어나 뉴미디어의 많은 담론들이 극단주의적 가학성에 대해 강력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점점 그런 상생의 담론은 약화되고, 적대의 담론이 더 활발히 소비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곳에 포퓰리스트 정치가들이 있다. 이승만은 그런 포퓰리스트 정치가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표상이다"라고 했다.
끝으로 한국 개신교가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특히 웰빙 보수주의가 주도하는 개신교의 공간을 주목했다. 그는 "웰빙보수주의가 주도하고 있는 개신교의 공간은 정치적으로는 훨씬 모호한 장소가 되었지만, 사회적으로는 권력을 독과점한 자들에게 점유되어 있고 그들의 권력세습의 제도가 작동하고 있는 신귀족주의적 보수주의가 일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해서 그들만의 신귀족사회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에게는 절망과 열패감의 원인 제공자인 셈이다"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개신교에서 웰빙보수주의가 주류적 그리스도교 현상이라면 극우주의는 주변화된 신앙 현상이다. 그런 관점에서 주변화된 신앙 현상인 극우주의는 개신교의 약한 고리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김 이사는 "개신교에 대해 불쾌감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극우주의적 개신교 현상은 공격하기 좋은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라며 "반면 웰빙보수주의는 사회 곳곳에서 품격 있는 문화현상처럼 모방되고 공유되곤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주류적 그리스도교 현상으로 굳어진 웰빙보수주의를 겨냥해 "바깥의 대중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은, 자신들만의 폐쇄공간을 향유하고 있지만, 그런 이들의 교회는 더 많이 기부를 하고 더 호혜적인 언어가 녹아 있는 신앙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며 "그런 웰빙보수주의적 신자들은 교회에서 '당신은 축복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향긋한 복음을 선사받고 있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그런데 그 반대편에서는 위악적인 행동에 이끌리는 극단주의자들이 교회 안팎으로 활개치고 있고, 그런 위악적 행동 때문에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세계의 고통의 피라미드 말단에서 폭력과 절망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절망과 폭력으로 자아가 훼손되고 관계가 치명적으로 산산 조각나고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어떤 말과 행동으로 사과를 표현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며 강연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