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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묵상] 서시(序詩)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서시(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인(1917-1945)의 시적 상상력을 저항의식과 연결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문학작품은 작가의 체험이 토대가 될 때 개연성이 높아지고 실질적인 감동을 주기는 한다. 일반적으로 이 시는 일제 강점기를 사는 지식인의 고뇌를 읊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 이 시가 오늘날에도 독자에게 감명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대적 배경을 초월하는 인생 일반의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서시(序詩)>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의 서두에 배치되며 붙여진 제목이지만, 인생을 한 편의 작품이라고 볼 때 이 시는 그 작품의 머리글로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화자는 시인의 속내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그는 1-4행에서 평생 부끄럼 없이 살기를 노력했는데 괴롭기만 했다고 고백한다. 그 고백은 "하늘을 우러러" 보며 하늘의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그는 자신이 "한 점 부끄럼"도 없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알고 있다. 하늘의 눈에 비추어볼 때 그가 부끄러워할 일이 무엇이었을까? 그 일은 5-8행에 실린 그의 다짐 속에 암시되어 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는 자신이 그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 다짐을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그 "길"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죽어가는 것" 때문에 부끄러워하는가? "모든 죽어가는 것"은 인간의 실존적 조건을 가리킬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는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에 대한 그의 자의식을 싣고 있다. 억압과 압제 때문에 자신을 비롯하여 모두가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현실에서 왜 그는 그것들을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자책하는가? 그것은 자기 방식의 사랑과 암울한 현실 사이의 격차 때문이다. 그의 사랑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과 상관있다. 그 사랑은 독립투쟁 등의 현실참여적 헌신과는 거리가 있다. 그가 "하늘을 우러러" 보며 자신을 돌아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상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고뇌하는 것이다.

그가 노래하는 별은 어두운 하늘에서 빛나므로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지향할 이상을 상징한다. 그 이상 때문에 그는 억압적인 현실 아래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지 못했음을 자책하고 있다. 그 사랑을 위해서라면 그는 독립투쟁을 결행해야 했다. 그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살며시 부는 바람 소리, 예를 들면, 지인의 한숨 소리만 들어도 괴로울 정도로 그는 현실참여적이지 못한 것에 대해 깊이 자책하고 있다. 그만큼 현실에서는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짐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죽음 같은 상황에서도 시인으로서 노래하고자 한다. 척박한 산문적 환경에 대해 시적 상상력으로 버티려는 다짐 자체가 별의 노래로 들린다. 비록 그것이 현실참여적이지 않더라도 "나한테 주어진 길"이라 확인한다.

하지만, 그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실이 그 다짐을 다시금 자책으로 변질시킬 압력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구절이 그러한 현실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오늘 밤"은 '밤과 같은 오늘'의 시적 표현이다. 밤과 같은 현실 속에도 이상을 품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죽어가지만 그것들을 사랑하고자 하는 다짐은 밤하늘의 별과 같다. 그러나 그 별을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여기서 바람은 이상의 불가능성을 암시하는 현실적 기운 혹은 영향이다. 당시의 비관주의적 분위기를 대변한 것일 수 있다. 그가 괴로워한 것도 그 "바람" 때문이지 않은가? 바람은 그에게 괴로움을 불러일으켰다. 이로 보건대, 그가 다짐하더라도 그가 견디며 나아가야 할 현실이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 아마도 그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다시 괴로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다짐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상황을 통찰하면서도 그는 바람을 불가항력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 현실을 비관주의의 틀 속에 가두고 있지 않은 것이다. 억압적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다짐과 그 다짐의 실천이다. 다짐하는 가운데 죽어가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죽는 날"까지 사랑하다 보면, 비록 세상의 "모든" 것들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평생만큼의 '모든' 것들은 사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이 될 터이다.

기본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한 점도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를 다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기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얼마 있지 않아 깨닫게 된다. 이는 인간이 결국 죽을 존재이므로 죽음의 세력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는 사실과 상관한다. 변질이 정해진 경로인 것이다. 아니면, 인간은 그렇게 어둠의 현실을 살아가도록 운명지어졌을 수 있다. 이러한 조건에 주목하면 인간에게는 소망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구원의 길은 있다. 별이 있지 않은가?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는 자신의 사랑하지 못함을 회개할 수 있다. 회개는 "나한테 주어진 길"을 다시 걸어가도록 빛을 비추어준다. 그 빛은 자책에서 그치지 않고 새롭게 다짐하며 그 다짐을 실천하게 한다.

한편,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다. 그분은 죄로 인해 죽게 될 인간을 사랑하여 십자가의 위대한 슬픔을 감당하셨다. 그분은 초극의 세계인 하늘에 계시다가 가시적인 빛으로 이 땅에 임하신 "별"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신 분이다. 사실상 그분도 그 여정에서 별을 노래하셨다. 따라서 그분이 그러하셨듯이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품는다면 그 "별"을 바라보며 그 "별"이 빛을 비추는 대로 따르고자 다짐해야 한다. 다짐은 옥합 속에 갇혀 있던 사랑의 능력을 비산시키는 발화점과 같다. 사랑만이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살려낼 수 있고, 사랑만이 암울한 현실에서도 생명의 기회를 부여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이 길에 암운이 계속 드리우더라도 사랑의 다짐을 다시 새롭게 해야 한다. 그러면 그 마음속의 향기가 지쳐버린 영혼의 후각을 일깨운다. 그 사랑의 향기가 억압적 현실에 저항하는 생명의 힘을 공급한다. 그 힘으로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다시 다짐할 때, 사실상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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