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피난처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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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시편 91:1-6, 히브리서 4:14-16, 마태복음 11:28-30

설교문

이화대학교회는 지금으로부터 89년 전 오늘과 같은 날에 탄생했습니다. 그해 이화가 정동에서 이곳 신촌으로 이사함에 따라 종래와 같이 정동제일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화보다 좀 더 일찍 신촌에 터를 잡고 있던 연희전문과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이화여전의 아펜젤러 교장과 김활란, 연희전문의 에비슨 교장과 백낙준 등이 연합교회로 '협성교회'(協成敎會, Union Church)를 세우기로 결의했습니다. 결국 1935년 9월 29일 주일 아침, 양교의 학생과 교직원이 연합하여 이화의 에머슨홀(지금의 중강당)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 대학교회가 시작됐습니다.

6년 뒤인 1941년, 일제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더욱 광란에 가까운 탄압 정책을 펼쳤습니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특히 모든 종교교육과 행사를 폐지하라 명령을 내렸습니다. 특히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조선 사람들에게 민족의식과 반일 사상을 고취하므로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 조치로 찬송과 노래가 그치지 않던 이화 교정에 노래가 사라졌고 예배가 금지되었습니다. 그 결과 '협성교회'도 1942년 10월의 마지막 예배를 끝으로 폐쇄되고 맙니다.

3년 뒤의 8.15 해방은 이화를 폐교의 위기로부터 구출했습니다. 이화는 1945년 10월 1일에 '이화여자대학교'라는 간판을 내걸고 희망찬 새출발을 다짐했습니다. 학생들이 먼저 교회를 부활시키려 움직였고, 1946년 10월 22일에 이화가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대학교로서 인가를 받아 교목이 임명되고 채플이 재개되었을 때 협성교회가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1950년에 6.25 전쟁이 터지면서 이화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피난지 부산에서 학교가 개교하면서 1951년 11월에 교회의 문도 다시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는 더 이상 '협성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피난지에서 이화는 단독으로 개교하였으나 연세는 '전시연합대학'에 참가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양교의 협력으로 운영되던 협성교회 체제가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피난지 부산에서 문을 연 이화의 대학교회는 천막교회였습니다. 전기와 수도, 그리고 난방도 되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교수와 학생들은 더욱 한마음이 되어 예배드리는 일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조인되자 이화도 부산의 가교사를 정리하고 8월 31일에 서울 교사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곳 서울 교사는 폭격과 화재로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본관의 지붕은 폭격으로 날아가 하늘이 횅하게 뚫려 있었습니다. 이화는 기도의 집부터 다시 지었습니다. 그것이 1956년 완공된 대강당입니다. 먹고 살 것도 없던 시절 아시아 최대 규모로 지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채플이 드려지는 이화의 대강당은 세종문화회관이 지어지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유명한 공연이 열리는 공간이었습니다. 대학교회는 중강당과 대강당을 오가며 예배드렸습니다.

전후 대학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성경공부반의 설립과 선교의 활성화입니다. 1957년 12월 1일에 장년부 성경공부반이 시작되었습니다. 매 주일 아침에 총장 공관에 모여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거기서 응축된 힘이 전도와 선교의 형태로 폭발했습니다. 대학교회는 1958년에 망우리에 금란교회를 개척했는데, 오늘날에 이 교회는 감리교회 중에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성경 공부를 마친 교인들은 주일예배 후 학교 주변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했습니다. 그 결과 정문 앞 신현교회와 후문 쪽 대신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장년부 성경공부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60년 4월 19일에 '금란전도협회'를 만들어 단지 신촌 일대가 아니라 민족 복음화에 나섰습니다. "3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구호 아래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펼쳤습니다. 이를 위해 지금은 교목실 산하기관으로 되어 있는 '다락방전도협회'를 세웠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그리스도교가 이렇게 크게 확산할 수 있었던 것은 1973년 한 미국인 부흥사의 여의도 집회 때문이 아니라 다락방전도협회를 위시한 토착 한국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의 헌신 때문이었다고 교회 역사가들은 평가합니다. 국내선교만이 아니었습니다. 대학교회는 1961년 10월 31일에 파키스탄으로 선교사(전재옥)를 파송했는데, 이는 한국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최초로 해외 선교사를 파송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화의 대학교회를 통해 놀라운 역사를 쓰셨습니다.

1975년 1월에 대학교회는 감리교단으로부터 탈퇴했습니다. 대학교회가 감리교단에 가입했던 것은 1953년 5월 부산 피난 시절입니다. 하지만 탈퇴 후 대학교회는 교권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어느 교단에도 속하지 않는 에큐메니컬 정신을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교단에서 탈퇴하면서 감리교 교리장정에 근거하던 모든 직제도 폐지했습니다. 이후 모든 교인이 매월 한 번 전체위원회(현재는 운영위원회)를 열어 교회의 살림을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운영했습니다.

전도와 선교에만 힘쓴 게 아닙니다. 엄혹한 유신 시절에 대학교회는 예언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김흥호 목사님이 부임하신 후 설교자로 김동길, 안병무 선생님 등 당시 정부가 미워하던 분들이 설교를 하면서 주일마다 예배당 맨 앞자리는 정보부 요원들이 차지했으나 오히려 교인들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200명을 밑돌던 교인들이 김흥호 목사님이 그만두실 때 1,500명까지 늘어났습니다. 교인이 너무 많아 주일예배를 1부와 2부로 나누어 드려야 했습니다. 대학의 문이 닫히고 지성의 소리가 끊어졌을 때, 이화를 지키고 있는 것은 대학교회였다고 김흥호 목사님은 회고합니다. 교회가 시대정신을 가지고 역사적 소명을 다하니 양적으로도 부흥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신군부 시절인 1984년 4월 10일에 대학교회 주보에 실린 공동 기도문입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 봄이 온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은 자연이요 꽃이 피어 봄이 오는 것이 인생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천국은 가는 곳이 아니다. 오는 것이다. 천국에 가서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주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다...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말라. 천국은 너희 가운데 있다... 봄 속에 꽃이 있는 것이 아니라 꽃 속에 봄이 있다. 진리의 꽃을 활짝 피워라. 자유의 봄은 어디나 있다."

1988년에 서광선 목사님이 부임하면서 교회 건축 계획이 수립되고 실행에 옮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대학교회만의 고유한 공간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1963년 김활란 장로 시절부터 있어 왔습니다. 많이 기도하고 정성을 모았으나 결실을 맺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996년에 윤후정 총장님이 전체교수회의에서 대학교회 신축안을 발표하면서 건축은 급물살을 탔습니다. 대학교회 교인들이 22억을 건축헌금으로 내놓았습니다. 학교는 소중한 부지를 제공했습니다.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30억을 기부했습니다. 삼위일체처럼 협력이 이루어져 2000년 5월 31일, 즉 이화의 탄생 114주년 기념일에 이 아름다운 교회당을 하나님께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회 건축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미술대학 김길홍 교수님의 헌신적인 기도와 노력의 산물입니다. 대학교회 건축에 있어서 핵심적인 개념은 '세상에 있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in the world, but not of the world)입니다. 이를 위해 예배당을 지층으로부터 상부로 떠 있는 형상으로 구현했습니다. 세상에 속해 있는 저층부의 기단과 세상에 속하지 않으려고 부유하는 상부의 구조는 이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대학교회 건물에서 또 다른 중요 이미지는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아주 불규칙하게 얽혀 있는 상부의 철골 구조물은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을 상징합니다. 밤이 되면 이 철골 십자가를 비추어 부활을 상징합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내년 부활절에는 교회 가장 높은 곳의 전등을 밝혀 부활의 소식을 기쁨을 널리 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한국 대학교회의 효시(嚆矢)가 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는 그 태생부터 학원 선교의 구심체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대학교회는 학생들의 신앙의 요람이었고, 교목실과 함께 학원 복음화를 위해 힘썼습니다. 둘째로 대학교회는 초교파 독립교회로 창조적인 실험교회입니다. 특정 교단의 신학에 편중되지 않고, 설교강단은 경청할 만한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초대합니다. 이를 통해 대학교회 교인들은 폭넓은 신학적 소양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셋째로 대학교회는 복음 전파와 예언자적 소명을 병행하는 균형 있는 목회를 했습니다. 교회 재정의 60% 이상을 교육과 선교와 봉사와 구제에 쓰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넷째로 대학교회는 여성주의적 목회가 일찍부터 실시되어 온 교회입니다. 1935년 그 시작부터 대학교회에서는 여성이 강단에서 말씀을 전했고, 교육과 행정과 선교에서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다섯째로 대학교회는 탈교권적 평신도 공동체입니다. 1975년에 감리교단으로부터 탈퇴한 이후에는 아무 직제 없이 모든 교우가 평등하고 민주적으로 교회의 살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설교강단도 초창기부터 목사만이 아니라 평신도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여섯째로 대학교회는 국내선교는 물론 해외선교에도 큰 노력을 기울이는 교회입니다. 대학교회는 민족 복음화의 주역인 다락방전도협회의 모체입니다. 국내에서 금란교회, 대신교회, 고사리교회 등 수많은 교회를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과 캄보디아에 선교를 파견하고 지원하는 일에도 항상 적극적이었습니다.

오늘날 이화의 대학교회는 이성과 감성이 소통하고, 복음과 예언이 병행하고, 신앙과 신학이 함께 어우러져 삶으로 이어지는, 건강한 신앙공동체로 성장했습니다. 초교파적이고 탈권위주의적이며 남녀평등의 공동체로 성장했습니다. 동시에 자신들의 신앙의 기쁨을 국내외에 전하는 선교공동체로 성장했습니다. 이화대학교회의 이러한 특징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빛과 생명을 소망하고 그 빛과 생명의 힘으로 한국 근대사의 시련과 역경을 헤쳐 온 선배 교우들의 기도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돌아보면 대학교회의 역사에서 한시도 어렵지 않은 시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비 고비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히브리서 4:16)가 있었습니다. 오늘 부른 찬송가의 가사처럼 정녕 우리는 "주의 크신 도움 받아 이때까지 왔[습니다]."(28장, 2절)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습니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합니다]."(301장 2절) 우리는 오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사무엘상 7:12)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교독문 시편 46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편 46:1) 오늘의 구약성서 본문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시편 91:1-2) 성서는 하나님이 "폭풍 중의 피난처시며 [뜨거운 태양]을 피하는 그늘"(이사야 25:4b)이 되어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피난처'란 어떤 곳일까요?

피난처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재난을 피하여 거처하는 곳'입니다. 피난소와 동의어입니다. 다른 하나는 '근심, 고통, 위험 따위로부터 피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장소를 넘은, 좀 더 넓은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저 잠시 환난을 피하는 곳이라는 뜻일까요?

투우 경기를 좋아했던 미국의 작가 헤밍웨이는 투우 경기를 관찰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소가 투우사와 싸우는 중에 잠시 숨을 고르는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살입니다. 넓은 투우장 어느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습니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릅니다. 기운을 되찾아 다시 싸우기 위해서입니다. 거기에 있으면 소는 두렵지 않습니다. 물론 투우 경기와 같은 동물 학대는 중지되어야 하겠습니다만, 소만 아는 그 자리를 헤밍웨이는 스페인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했습니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입니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퀘렌시아를 압니다. 뱀과 개구리는 체온으로 동면의 시기를 정확히 알고, 제주 왕나비와 두루미는 매년 이동할 때가 되면 어디로 날아가 휴식할지를 압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생명으로 존재하는 것들이 생명을 지속하기 위한 본능적인 부름입니다. 그 휴식이 없으면 생명의 원천은 바닥납니다.

동물만이 아닙니다. 사람에게도 퀘렌시아가 필요합니다. 인생은 위협적이고 도전적입니다.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투우사의 창끝 앞에 선 소처럼 두렵고 무력해집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도 자신만의 영역으로 물러나 숨을 고르고,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살아갈 힘을 회복하는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피난처는 장소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조용한 명상과 기도 그리고 묵상의 시간, 혹은 하루일과를 마치고 평화로운 음악이나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퀘렌시아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도, 만나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사람도 피난처, 안식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피난처, 안식처가 없으면 우리는 무너집니다. 헤밍웨이는 말했습니다. 투우사가 소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소가 정한 그 장소가 어딘지 재빨리 알아내서 절대로 소가 그곳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투우장을 수백 번 넘게 드나든 헤밍웨이는 "퀘렌시아에 있을 때 소는 말할 수 없이 강해져서 쓰러뜨리는 것이 블가능하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피난처는 어디입니까?

요즘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다 온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눈을 피해 조용하게 머무를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거기뿐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나는 어떻게 보이는지 너무도 혼란스러워 요즘 아이들이 잠시 숨어드는 곳이 화장실이라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피난처는 라틴어로 '레푸기움'(refugium)입니다. 영어의 '레퓨지'(refuge)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원래 레푸기움은 빙하기 등 생물이 멸종하는 환경에서 동식물이 살아남은 장소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극한의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생명과 존재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레푸기움입니다. 여러분의 레푸기움은 어디입니까? 삶의 의미를 잃은 것 같을 때마다 여러분이 찾는 곳, 그리고 여러분을 부르는 곳은 어디입니까? 나의 삶에서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매일 매일이 단조로워 주위 세계가 무채색으로 보일 때,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아 심장이 무너질 때, 혹은 정신이 고갈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일어버렸을 때, 그때가 바로 나의 피난처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타인을 위해 억지로 표정을 꾸밀 필요가 없는 곳, 외부의 소란으로부터 나의 정신을 지킬 수 있는 곳, 나를 움켜쥐고 있는 세상의 요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곳, 그리고 내가 나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곳, 거기가 바로 나의 피난처입니다. 여러분의 피난처는 어디입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하셨습니다. 그가 나의 피난처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9-30) 하셨습니다. 그가 우리의 안식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입니다]."(시편 46:1-3)

89년의 긴 세월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빛과 생명과 은혜로 살아온 우리 대학교회가 이 시대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쉼을 얻고, 주의 돌보심을 받고, 온전히 회복되어 다시 세상과 마주할 힘을 얻을 수 있는 영혼의 고향집으로 존재하기를 기도합니다. 이화를 드나드는 모든 사람이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을 수 있는 포근한 "주 날개 밑 나의 피난처"(찬송가 419장, 2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89년 동안 우리는 진실로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습니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합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살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찬송가 301장, 2절)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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