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미 5:1-5a, 빌 2:1-9, 마 2:1-12)
성탄절
[성탄절 이야기]
오늘은 예수님의 생일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기리며 '거룩한 탄생'이라고 하여 '성탄절'(聖誕節)이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크리스마스'(christmas)인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christ)를 위한 미사(mass)', 즉 '그리스도를 위한 예배'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다룬 이야기는 사 복음서 중 마태복음서와 누가복음서에만 나오는데, 마태복음서는 예수님 탄생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보다는 예수님의 탄생을 둘러싼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주변부 이야기가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전해 줍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이야기하기 위해 족보를 제일 먼저 기록하고, 이어서 마리아의 임신 소식에 조용히 파혼하려고 하는 요셉을 막아서는 천사의 이야기, 그리고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박사 이야기와 헤롯의 박해를 피해 나사렛으로 가서 살게 된 이야기가 차례로 나옵니다. 이 모두가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볼 만한 이야기이지만 오늘은 본문에 맞게 동방박사가 찾아온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
동방박사 이야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2000년 동안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과연 동방박사가 누군가였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의 정체를 파고들기 전에 우리는 마태복음서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마태복음서는 동방박사의 방문 이야기를 꺼내면서 예수님은 헤롯왕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고 말합니다. 시기와 장소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헤롯 왕은 헤롯 대왕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는 그저 아무런 느낌 없이 지나가겠지만, 이 글을 읽는 유대 사람들은 다른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누군가 '일제 식민지 시대에', 또는 '전두환 정권 시절에'라는 말을 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조선시대를 아는 사람이 '세종임금 때에'라고 말하는 것과 '연산군 시절에' 하고 말하는 것이 느낌이 다른 것처럼 말이지요.
헤롯 대왕은 예수님이 태어나던 때에 유다 전체를 다스리는 현직 왕이었습니다. 기원전 37년부터 기원전 4년까지, 34년 동안 로마의 승인 아래 유대를 다스렸는데, 그의 아버지는 이두매 즉 과거의 에돔 출신이고, 어머니는 나바테아 왕국의 공주였기 때문에 유대 사람들로부터 진정한 유대의 왕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권력에 대한 광신적 집착과 로마에 대한 철저한 충성으로 장기간 권력을 누렸습니다.
유대인 민중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려는 노력도 했지만, 그보다는 로마 황제를 위해 가이사랴 항구를 만들었고, 아우구스투스에게 봉헌하기 위해 사마리아에 세바스테 도시를 세웠으며, 마사다 요새와 자신을 위한 왕궁, 로마식 극장과 원형 경기장 등을 지었습니다. 이런 건축물들은 유대 문화와도 맞지 않았고, 지을 때마다 백성들을 징발해 괴롭혔기에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샀습니다. 권력에 대한 집착은 끊임없는 의심으로 이어져, 여섯 번이나 정략 결혼을 하면서도 가장 사랑했던 부인 마리암을 죽였고, 그녀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과 장모까지도 죽여 버렸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권력을 노리고 있다는 의심과 정서적 불안으로 늘 후계자 문제를 두고 수 차례 유언을 번복했고, 결국은 왕위를 물려주려던 맏아들 안티파트로스 2세마저 처형하였습니다. 헤롯의 이런 잔인함 때문에 아우구스투스는 "헤롯의 아들이 되느니 헤롯의 돼지가 되는 게 낫겠다. 헤롯은 적어도 돼지는 안 잡아먹을 테니까."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이런 왕이 다스리던 때에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났다고 마태복음서는 말합니다. 베들레헴은 다윗 왕의 고향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나사렛 출신이고, 아마도 나사렛에서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태나 누가복음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 반드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베들레헴이 미래의 왕,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 등과 언약을 맺으셨지만, 성경은 다윗하고의 언약만이 영원한 언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조는 대대로 계속될 것이기에 미래의 왕은 반드시 다윗의 후손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모든 유대 사람이 믿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베들레헴에서 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 나셨다."는 이 한 문장은 현재의 왕과 미래의 왕 사이의 긴장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동방으로부터 박사가 와서 현직 왕에게 묻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헤롯이 당황하고 온 예루살렘이 술렁거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동방박사가 와서 한 이야기는 사실 반란이요, 역모요, 큰일 날 소리였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면 모든 이방인이 몰려와서 하나님께 경배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동방에서 온 박사들, 즉 이방 민족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 경배하고, 그에게 고대로부터 귀중하게 여겨진 선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립니다.
[주께 경배하라]
예수님의 탄생은 현직 권력과 권력에 아부하던 예루살렘 도시를 심판하여 당황하게 만든 사건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을 버리고 땅으로 오신 하나님 이야기는 자꾸 하늘로만 치솟아 올라가려는 우리에게 당황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숭배합니다. 돈과 힘이 있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연줄을 타고 돈과 권력 가까운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강력한 힘에 대한 동경과 그 힘을 쟁취하려는 싸움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권력을 잡은 자들은 그것을 가지고 다수의 서민과 민중을 억압하고, 이용해 먹고 속이고 무시하고 괴롭혔습니다. 지금 내란을 일으킨 세력들이 다 그런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이제 너희의 세상은 끝났다."라는 맑은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였던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과 비슷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향린교회 교우 여러분! 성탄절이 거룩한 탄생인 것은 자신을 비워 사랑으로 다스리는 왕,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던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이 누군가를 섬길 수밖에 없는 삶이라면, 사랑하는 여러분! 돈이나 권력, 자기 주먹이 아니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십시오.
동방박사는 새로운 지도자를 찾아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귀한 분께 드리는 매우 귀한 선물입니다.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는 황금으로 아기 예수의 양육비를 감당하고, 유향으로는, 한 방에서 가축과 사람이 함께 지내야 했기에 늘 퀴퀴하게 풍기는 집안 냄새를 없앴을 것입니다. 몰약을 가지고는 아기 예수님의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었겠지요. 오늘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오늘날은 왕이 다스리는 시대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실제적이고 꼭 필요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오늘은 성탄절, 우리는 매년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은 12월 25일에 태어나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매번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매일 매일이 거룩한 탄생이어야 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며 일궈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새 지도자를 찾는 오늘날에 과연 우리 모두가 갖춰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묵상하시는 성탄절 되길 바랍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전국의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께 경배하며, 주님을 높여 찬양합시다.
주님께서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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