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 위선: 위선임을 '알고 느끼는 위선'과 못 느끼고 '확신하는 위선'
'위선(僞善)'이란 진선미가 아닌 것을 진리요 정의요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성의 교활성과 교만성의 기묘한 자기정당화 언행이다. 사례 3가지를 대표적 위선 행위 사례로서 성찰할 수 있다.
첫째, 바울 사도로 변화하기 이전 율법 학자 사울에게서 본다. 그는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일에 앞장섰고, 갈릴리 시골 출신 무명의 랍비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는 무리들을 박멸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런 행위가 율법을 지키는 거룩한 일이요, 로마 식민 치하에서 이스라엘의 존재 의미를 지키는 일이라고 확신했다. 다른 지역의 예수도 당들도 박멸하려고 다메섹 길을 달려가다가 하늘의 빛과 음성을 듣고 말 안장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할 점은 사울(바울)은 결코 재물, 권력, 기득권 수호와 강화를 위해서 행한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의 확신이요, 애국 애족심이며 신앙고백적 행위였다는 점이다. 그는 확신범 제1호 인물이었다.
둘째, 최근의 일간신문들은 '계엄령과 한국의 정국 시리즈'에서 이렇게 묻는다: "천주교와 불교가 '계엄령' 비판에 나설 때, 개신교 '한교총'은 왜 침묵하는가?". 한교총(韓敎總)은 '한국교회총연합회'의 줄임말인데 진보적 개신교회 연합회인 한국기독교협의회(NCCK)에 대립되며 보수적, 친여적, 일부 극우적 교단의 두리뭉실한 입장을 견지한다. 소위 <성조기-태극기 부대>라고 속칭하는 전광훈 씨를 핵으로 한 사이비 종교정치집단은 한교총의 핵심 세력이며 윤석열과 국민의 힘 정당 정치모리배들과 언제나 야합을 한다.
전광훈의 관심은 선교에 있지 않고 오로지 한가지, 자기의 예속된 노예적 신도들을 기반으로 비례대표 국회 회원 한 명이라도 국회에 진출하게 하려는 데 있다. 한교총과 성조기 태극기 부대는 대표적 '종교적 위선'에 불과하다. 예수가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점은 종교기득권자들의 '위선'이었다. "예와 아니오"를 똑똑히 하라 하셨다. 한교총 지도부는 역사의 위기 때마다 양비론 혹은 양시론을 강조하고, 정교분리론 뒤에 자신을 숨기고 위장하여 위선을 자행해왔다. 지금도 그러하다.
셋째, 위선의 정치적 현실태는 윤 대통령 경우에 가장 극명하게 노출된다. 국회에서 대통령직 탄핵을 이미 받았으므로 윤석열 씨라 호칭하겠다. 그가 비상 계엄령실시를 국민들에게 선포하는 긴급 방송에서 언급한 계엄령 실시이유는 간단명료하다. 반국가세력, 친북세력의 준동으로 국가가 누란 위기에 처해있음으로, 저들을 일격에 척결하고 나라와 국민의 안위를 도모하려는 것이란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계엄령 발표 이후 그 행위는 국회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반란이나 내란 행위가 아니고 '고도의 정치적 통치행위'라고 강변한다. 그를 지지하는 인의 장막, 경호처 대응 장막, 철조망 장막 등 3중 장막을 치고 관저에 은둔하면서 재기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계엄령 발표 때에 약속한 모든 법적 책임을 진다는 공언은 빈말이 되었다.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공정, 상식, 법 앞에 만인의 평등론'을 사법권 출두 명령까지 비판하면서 정면으로 부정해 버린다. 정치적 위선의 막장극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치권력 맛에 중독된 아마추어 정치가의 '지랄발광'이라고 평한 천주교 김 신부의 촌철살인적 표현에 동감을 표한다.
위에서 살핀 3가지 위선 행위에 공통적인 몇 가지 특징적 요소가 드러난다.
첫째, 회심 전의 바울, 한교총 소속 목회자와 맹종하는 추종자 신도들, 전광훈 집단, 윤석열 정치집단은 모두 도그마 지향적, 확신 편향적, 율법주의적 진리관에 뿌리박고 있다. 그들은 세상의 돌아가는 진실, 사실, 현실을 보거나 들으려 않고 유튜브 등 검증이 안 된 거짓 뉴스, 사이비 뉴스를 진실이라고 맹신하기를 좋아한다.
둘째, 세상을 흑백논리, 불의와 정의, 선과 악 이분법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은 선함, 정의, 진실을 끝까지 지키고 헌신하는 사명 받은 집단이라는 위선적 사명감에 스스로 도취한다. 무당이 악령들에게 빙의되어 냉엄한 이성적 판단 능력을 잃어버리고 감정에 휘둘리듯이 위선적 광기가 그들의 이성적 사고능력을 마비시킨다.
한민족의 현금의 집단광기, 내란과 내전 상태를 극복하고 구원받는 길은 없는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의 구원은 죄악에 대한 엄한 심판을 통해 이뤄진다.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아,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는 희망과 긍휼의 하나님을 선포하는 이사야와 호세아와 함께 있다. 그러나 어찌하든지 이 난국을 이겨내고 한국민과 나라는 소생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을 하는 것이 필수적인 일인가?
이 컬럼 서두에서, 칼럼자는 위선엔 두 종류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 하나는 '알고 하는 위선'이요, 다른 하나는 '모르고 하는 신념형 위선'이다. 앞의 위선은 엄밀히 말하면 위선이 아니라 거짓말이다. 문제는 후자 곧 '모르고 하는 신념편향적 위선'이다. 그것은 그 사람과 단체의 가치관, 세계관, 현실판단의 모든 영역에 작용한다. 그 위선은 무지, 독단, 독선, 독재라는 결과를 맺는다. 비판을 경청하고 수락하는 정신력이 거의 제로(0)에 가까워 대화가 불가능하고, 대화나 협의를 악과의 야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윤석열과 한국사회의 정상 회복을 위해서는 그에 대한 단호한 체포구금이 필요불가결 요소이다.
마지막 노력은 '문제 사안에 대한 사회 공론화 광장을 확충해가는 일'이다. 정권의 비리, 불합리, 독단에 대한 시민사회, 정치계, 노동계, 문화와 종교계의 건설적 비판 세력들을 '국가전복의 위험집단, 종북세력'이라고 매도하는 독단적 판단은 위선임을 넘어 독재 그 자체인 것이다. 한국사회는 다시 독재 시대로 퇴행하기엔 불가능한 '민주공화국'이라는 강을 이미 건너와 있는 생명공동체임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라고 전해오는 다음 3마디를 오늘 한국 기독교인들은 깊이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 인간이 바꿀 수 없는 일들은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주옵소서. 바꿀 수 있는 일들을 바꾸려는 결단적 용기를 주옵소서. 그 두 가지 일을 분별하는 밝은 지혜를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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