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설교] "함께 이루는 멋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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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신 33:26-29, 계 21:22-27, 요 2:1-11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큰일 났습니다. 모두가 한껏 흥이 오른 혼인 잔치에 술이 떨어졌습니다. 위기의 순간입니다. 이런 상황을 빠르게 눈치챈 분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아들 예수에게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알리고, 일군들에게는 예수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전합니다. 예수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돌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우라 하고 하객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합니다. 물이 포도주가 됩니다. 잔치는 아무 일도 없었듯이 풍성하게 이어집니다. 하객들이 신랑에게 칭찬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포도주를 맨 먼저 내놓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취했을 때 더 못한 것을 내놓지요. 그런데 그대는, 좋은 포도주를 아직까지 간직해 두었군요!"(새한글성경 요 2:10)

지금 우리도 위기입니다. 언제 탄핵 선고가 인용될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불안한데, 불길한 소문마저 돕니다. 정치권에서는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하는 4월 18일까지 질질 끌거라는 말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결국은 8:0으로 윤석열이 파면되고, 사회대개혁, 빛의 혁명의 잔치는 계속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요한복음서는 오늘 가나의 혼인잔치를 두고 첫 번째 표징이라고 명명합니다. 무엇을 가리키는 표징일까요? 요한복음서는 공관복음서의 기적 대신 표징(σημειον)이라는 말을 통해 기적이 지시하는 의미에 주목하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물이 언제 어떻게 포도주가 되었는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물을 돌항아리에 갖다가 부었을 때 포도주로 변했는지, 돌항아리에 있는 물을 떠서 결혼 잔치의 주인에게 주었을 때 변했는지, 물을 받은 사람들이 입을 대고 마실 때 포도주로 변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서 저자가 이 사건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 새 시대가 열린다]

혼인잔치와 포도주라는 것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구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 되면 하나님께서 직접 잔치를 베푸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사야서 25장 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여기 시온산으로 부르셔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기름진 것들과 오래된 포도주, 제일 좋은 살코기와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먹을 것, 마실 것이 충분치 못했던 고대 이스라엘인의 최대의 꿈은 기름진 것과 맑은 포도주를 마음껏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손수 베푸시는 잔치, 누구나 와서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이런 잔칫날은 언제 올까요?

로마의 식민지하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며 이런 날이 속히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제사장들과 사두개파가 있었지만, 이들은 로마와 타협하여 제 배를 불리는 자들이고, 율법에 철저한 바리새파도 주변에 많이 있지만 이들은 엄격한 율법 적용으로 도리어 사람들을 옭아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80% 이상을 차지하는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쁨과 자유를 주는 하나님 나라는 머나먼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를 만나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요한의 강조점은 시대의 마지막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에서 정결 예법에 사용하던 돌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말합니다. 돌은 부정을 차단하기 때문에 정화하는데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그래서 돌항아리입니다. 정결예법에 사용하던 항아리가 여섯 개인 것은 완전수에 해당하는 일곱에 못미치기에 유대교의 부족함을 상징합니다. 게다가 그 돌항아리가 비어 있었다는 사실은 유대교가 이제 생명을 다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악과 고통을 없애시고, 모든 것을 원래 모습으로 회복하실 때는 언제 오는가? 요한복음서를 쓴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리셨을 때, 세상을 위하여 새롭고 영원한 생명이 열렸다고 생각했습니다(7:37-39; 12:31-32; 17:1-3). 그런데 아직 그때는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하나님의 선물을 가져오는 자라고 확신하면서 예수님에게 요청하고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어머니로 인해서, 그 요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실행하는 아들의 애정어린 배려 속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충실한 노동으로 종말적 구원이 지금 여기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건은 창조가 완성되는 일곱째날 벌어집니다. 요한복음서는 세례요한의 이야기부터 날짜를 하나씩 세고 있는데, 가나의 혼인잔치가 벌어진 날은 바로 일곱째 날이 됩니다(1,29, 35, 43; 2,1). 다른 구절에서는 "다음 날"이라는 말이 반복되다가 갑자기 2장 1절에서 "사흘째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사흘째 되는 날"은 구약의 유대 전통에서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려고 등장하신 하나님의 현존(출애 19:16)과 항상 연결되었으며, 신약에 와서는 예수의 부활을 암시합니다. 율법과 계명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예수에게서 온전히 드러난 것이며, 종말적 구원의 때는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부활과 관련 있음을 나타낸 것이고 게다가 붉은 포도주는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와 일맥상통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창조의 완성으로서 안식하신 마지막 일곱째 날!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축제를 벌입니다.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받은 출애굽 공동체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다짐하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라고 외칩니다(출애 19:8). 예수의 제자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적대적인 세상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당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매 주일 모여 서로 떡을 떼고 포도주를 나누며 잔치를 벌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요한복음의 이 표징은 예수님을 만나서 매 주일 함께 모여 예배하고 음식을 나누던 이들의 체험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마지막 날의 잔치를 기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매 주일 예수님과 함께 잔치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요한복음서를 쓴 이들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시대를 여는 교회인가?]

오늘 요한 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을 통해 새 시대를 알리는 나팔이 이미 울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들이 새 시대를 체험한 이들이며 그 새로운 시대는 이전의 율법을 대체하고 마지막 날에 있을 잔치의 기쁨을 여기서 누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 포도주도 좋지만 새 포도주가 훨씬 더 좋다고 자랑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새로운 변화를 요청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립니다.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을 위시해서 내란 수괴를 옹호하고, 그를 따르고, 그에게 지지를 보내는 반민주적인 이들이 있습니다. 곳곳에서 이단이 활개 친다는 소식도 들려 옵니다. 보통 비상식적인 종교나 이단 사설에 중독되는 현상은 사회가 암울하고, 현실의 삶이 너무나 비참한데, 기존의 종교가 충분히 답을 해주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상식이 무너지고, 나라를 이끄는 관료들이 법을 대놓고 무시할 때, 과연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또 오늘날 우리 교회는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예수를 찾습니다.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했고, 비범한 예수가 하던 일들을 마음속으로 간직해 왔습니다. 마리아는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아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예수는 아직 자기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꾼들에게 예수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해 놓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의 어머니는 상황 파악을 잘하고 그 문제를 누구에게 부탁해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잘 아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새 시대를 열려면 바로 지금 이 시대가 가지는 문제를 잘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누구인지,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의 사람을 양육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대개 성숙하지 못한 공동체는 문제가 발생하면 당황하고 서로 불평하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공동체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할 의지를 모아갑니다. 이럴 때 합리적 이성이 필요하고, 동요하는 마음의 조절이 필요하며, 함께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요청됩니다. 폭력이나 비상식적인 방법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을 존중하고 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물이 포도주를 바뀐 사실을 안 사람들은 일꾼이었습니다. 연회장 즉 잔치를 맡은 이는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직접 몸으로 참여하는 사람, 사람들과 부대끼며 자신을 헌신했던 사람, 공동체를 위해 충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공동체에 대해 알고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때가 아니었지만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의 요청에 따라 물을 포도주로 만듭니다. 왜일까요? 바로 이것이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라면 때를 앞당겨야 한다고 요한복음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실 수 있었고, 어머니 마리아는 지금 해야 한다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우리 향린 신앙공동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꼭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오늘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셔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지속시키게 하심으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됩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영웅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새 시대를 열어가는 사람이 되려면 예수님의 어머니처럼 과감하게 나설 필요도 있습니다. 예수 일행도 손님으로 혼인잔치에 왔지만 주인과 같은 마음으로 나설 때 모두가 즐거운 잔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향린교우 여러분! 교회의 머리요, 주인은 예수님이시지만, 예수께서 우리를 친구로 삼아 주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으니 우리 모두가 주인과 같은 마음을 지닙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이어 나갑시다.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하나의 표징이 될 것입니다. 표징은 믿음을 불러일으키고, 믿음은 또 다른 기적들을 만들어 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머지않아 윤석열은 파면됩니다. 그다음은 이제 우리가 만들어 갈 새로운 세상입니다. 그때 우리 모두 힘을 합쳐 함께 멋진 세상을 이루어갑시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회 교우 여러분,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하나님 나라 잔치를 이어 나갑시다.

멈추지 맙시다.

모두 한 마음 한 몸으로

함께 멋진 세상을 이루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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