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대하 10:12-19, 미 3:1-6, 눅 8:30-39
설교문
[내란수괴 윤석열 파면]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 헌법재판소는 전원 일치의 의견으로 다음과 같은 주문을 합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헌재의 선고 요지에는 재판관들이 조목조목 살피고 따진 탄핵 사건의 적법 요건 6가지, 윤석열의 집무 집행에서의 헌법 및 법률 위반 행위 5가지, 그리고 위반의 중대성 여부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우선 적법 요건부터 살펴보면 ⓵ 계엄 선포는 사법심사의 대상이고, ⓶ 법사위 조사 여부를 국회의 재량에 맡긴 국회법에 따라 법사위 조사 없이도 탄핵소추안을 의결할 수 있으며, ⓷ 투표 불성립이 된 1차 탄핵소추안은 제418회 정기회 회기이고, 이번 탄핵소추안은 제419회 임시회 회기 중에 발의되었기에 일사부재의 원칙도 위반하지 않았고, ⓸ 계엄 자체가 이미 탄핵 사유이며, ⓹ 내란죄 등 형법 위반 행위를, 이후에 헌법 위반 행위로 포섭하여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기본적 사실관계를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적용 법조문을 철회 변경하는 것이 소추 사유의 철회나 변경에 해당하지 않고, ⓺ 탄핵소추의 남용 주장에 대해서도 탄핵소추안의 의결 과정의 적법성과 피소추자의 헌법 및 법률 위반이 소명된다는 점을 들어, 남용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러한 이유로 각하 의견이 나올 수는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헌법 및 법률 위반에 대해서 살피는데, ⓵ 윤석열의 비상 계엄 선포는 그 실체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되었고, 절차적 요건도 지키지 않았다. ⓶ 윤석열이 국회에 군경을 투입하고 체포할 목적으로 정당 대표의 위치를 확인하여 군인과 시민이 대치하도록 한 것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권 위반, 국회의원의 심의 표결권/불체포특권 침해, 정당 활동의 자유 침해이자,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고 헌법에 따른 국군 통수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⓷ 포고령은 국회에 계엄 해제 요구권, 정당제도를 규정한 헌법 조항과 대의민주주의, 권력 분립 원칙 등을 위반하였고,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 단체행동권,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하였다. ⓸ 중앙선관위 압수 수색은 영장주의 위반이자 선관위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이며, ⓹ 법조인 위치 확인 시도는 사법권의 독립 침해이다. 따라서 탄핵소추안의 헌법 및 법률 위반의 다섯 가지 쟁점 전부를 위반한 것이라고 헌재 재판관 8명이 모두 동의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위반의 중대성에 대한 판단입니다. 국회와 중앙선관위의 군인 투입은 법치국가원리와 민주국가 원리의 기본원칙들을 위반한 것으로써 그 자체로 헌법 질서를 침해하고 민주 공화정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해를 끼친 것이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국회를 협치가 아닌 배제의 대상으로 삼은 것, 야당을 지지한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면서 국가긴급권을 발동한 것은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문 것이며, 이에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하여 윤석열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하여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하였다. 특히,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 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다고 명시합니다. 결국 피청구인 윤석열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에 해당하고, 피청구인의 법 위반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되기에 윤석열 파면이 최종 결론 즉 주문으로 나온 것입니다.
참으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입니다. 문형배 재판관이 선고 요지를 읽어 내려갈 때마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고, 마지막 주문을 읽을 때, 그야말로 박수와 환호성을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는 좌우 이념의 문제나, 진보와 보수의 노선 간 갈등이 아닙니다. 지난 100여 년간 우리가 쌓아온 근대적 상식, 민주공화국의 헌정 질서를 무너트리고, 민주 시민의 공통 감각을 훼손하여 야만의 시대로 되돌아가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반드시 제자리로 돌려놓았어야 했고, 결국은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국가 체제와 권력의 사사(私事)화]
인류가 공동체를 구성하고 국가라는 제도와 조직을 갖추어,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기대한 시점부터, 놀랍게도 언제나 이것을 해치는 소수 무리가 생겨 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의 역대하 말씀이 증언하는 바입니다.
열두 지파 동맹은 상호 협력 속에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주변 강대국의 위협과 침략에 맞서 싸우는 데는 많은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왕을 세우고 중앙집권 체제를 만들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다윗 왕조 시절에는 제법 영토도 확장하고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다윗 왕가에 집중되고,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가 세습되면서 공공의 영역들이 점점 권력을 지닌 자들에게 쏠리기 시작합니다. 솔로몬이 죽고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자,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우려한 원로들은 백성들이 져야 하는 짐을 가볍게 하시고, 백성들에게 너그럽게 대하시라고 왕에게 조언합니다.
그러나 혈기가 넘치는 젊은 르호보암은 권력에 눈이 먼 동료들과 함께 철권통치를 시작합니다. "내 아버지가 당신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우셨으나, 나는 이제 당신들에게 그것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메우겠소. 내 아버지께서는 당신들을 가죽 채찍으로 매질하셨으나, 나는 당신들을 쇠 채찍으로 치겠소." 이로 인해 민중의 반란이 일어나고, 나라는 두 쪽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은 반드시 그 힘으로 사람들을 마구 내리누르는 가공할 폭력 사태를 만들고야 맙니다. MBC가 입수하여 보도한 노상원 수첩에 따르면, 내란 일당들은 계엄을 통해 자신들을 반대하는 세력들을 모두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노상원 전 정보 사령관의 수첩은 '시기'를 '총선 전'과 '총선 후'로 나누고, '실행 후 싹을 제거해 근원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글로 시작합니다. 곧이어 '차기 대선에 대비해 모든 좌파 세력을 붕괴시킨다'며, 그 아래 '수거팀 구성'과 '수집소 운용'이라고 적었는데, 수거의 대상은 '1차 수집'이라는 제목 아래 국회가 있는 여의도는 30에서 50명, 언론 쪽은 100에서 200이라고 썼습니다. 민노총, 전교조, 민변, 어용 판사와 함께 '500여 명 수집'이라는 글도 있고, '수거 대상 처리 방법 연구'와 '수거 후 호송 시 대책'을 구체적으로 적은 뒤엔, 별 표시를 하고 '특별 수사와 재판소로 사형, 무기형을 받게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A'급으로 분류된 체포 대상자, 권순일 전 대법관, 이재명 민주당 대표, 김명수 전 대법원장 등등은 '연평도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난 것으로 꾸미려 했는데, '가스', '폭파', '침몰', '격침' 등의 단어가 나열됩니다. 수첩 뒷부분에는 호송선 3척에서 5척을 준비해서 5천명에서 1만명까지 수거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계엄이 끝나면 헌법 개정을 통해 재선뿐만 아니라 3선까지도 하겠다는 야욕과 함께 중국과 러시아의 선거제도를 연구한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장기 집권을 꿈꾸었던 것이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모두 독재 시절의 그 끔찍한 폭력에 다시 노출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누가복음서의 말씀에는 '군대' 귀신이 들린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공관복음서에 모두 나오는데, 여기에서 군대 귀신은 바로 로마의 군단을 가리키는 '레기온'(Λεγιών)입니다. 4천명에서 약 6천명 정도로 편제가 되어 있는 로마군단은 정복하는 곳마다 가서 약탈과 방화, 살인과 폭력을 마구 자행했습니다.
70년대 말 스코틀랜드의 장군 칼가쿠스는 로마 장군 아그리콜라와의 승산 없는 전투를 앞두고 자신의 군인들에게 로마를 두고 이렇게 연설합니다.
"세상의 강도들, 지금 땅은 그들이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는 손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심지어 바다까지 넘보고 있다. 만일 그들의 적이 재물이 많으면 그들은 탐욕스럽고, 만일 그 적이 가난하면 그들은 잔인하다. 그들은 동방이나 서방에서도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지 못했다. 인간들 중에 오직 그들만이 부유한 땅만이 아니라 가난한 땅에 대해서도 똑같은 탐욕을 부린다. 약탈하고 살육하고 도둑질하는 것을 그들은 제국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황무지로 만들어 놓고는 그것을 평화라고 부른다."
데카폴리스의 수도였던 거라사 지역에 살고 있던 이 사람, 즉 군대 귀신 들린 사람으로 등장하는 이 사람은 바로 로마 폭력의 희생자였던 것입니다. 로마가 점령하면서 자기 가족과 친구들, 마을 사람들을 전부 학살하였고, 홀로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마을에 살지 못하고 무덤가에 살면서, 시시때때로 울부짖고,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며, 반미치광이로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이 무서워서 쇠고랑이나 사슬을 채워도 그것을 끊어버립니다.
만약 윤석열과 내란 세력의 계엄이 성공했더라면, 우리 중에서도 수천 명이 너무나 끔찍한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을 것이고, 우리나라는 순식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 극도의 혼란 상태로 빠져들었을 것입니다. 헌법재판관들도 말했지만, 이번 계엄은 시민들의 발 빠른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에 초반부터 어그러졌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민주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시작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입니다. 내란 수괴는 파면시켰으나, 거기에 동조하고 계속해서 자기 배를 채우고, 권력의 지팡이를 끝까지 움켜쥐려는 이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 12월 7일 윤석열 탄핵 촉구 기도회에서 제가 "바알의 예언자들을 잡아라"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듯이, 아합왕과 이세벨 부부를 처단한다고 해서 바알과 아세라 세력이 모두 날아간 것이 아닙니다. 바알이 약속하는 풍요의 달콤함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뜨렸고, 우상 숭배의 길로 가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내란 수괴를 파면한 지금부터 우리는 더 단단하게 뭉치고, 더 굳은 결심을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미가서는 문서 예언자 중 한 명인 미가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문서 예언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왕실에 속했던 직업 예언자들과 달리 눈치 보지 않고 왕이나 제사장, 직업 예언자들의 잘못된 행동이나 선택에 대하여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문서 예언자들은 실제적으로는 매우 힘없는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말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백성들과 함께 고스란히 공동의 운명을 져야 했습니다. 미가는 이사야가 활약했던 시절 활동한 예언자였습니다. 이사야는 왕족이거나 최소한 예루살렘의 상류층 출신이었기에, 유다 왕실의 정치적인 사건들과 외교의 소식통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가는 이사야와는 다릅니다. 미가는 왕실 출신이 아니고, 보잘 것 없는 시골의 작은 마을 모레셋 출신입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 약하고 가진 것이 없어서 늘 당하는 사람들의 어려운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가는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3장이 그러합니다. 1-4절은 사법부를 고발합니다.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할 너희가, 선한 것을 미워하고 악한 것을 사랑한다. 너희는 내 백성을 산 채로 그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뜯어낸다. 너희는 내 백성을 잡아먹는다. 가죽을 벗기고, 뼈를 산산조각 바수고, 고기를 삶듯이 내 백성을 가마솥에 넣고 삶는다." 미가 예언자의 음성은 날카롭고 강렬합니다. 지도층들의 착취 행위가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세세히 묘사합니다.
5절에서 8절은 거짓 예언자들을 비판합니다. 당시 일부 직업 예언자들은 예언을 밥벌이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자기 입에 먹을 것을 주는 자에게는 평안을 빌어주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전쟁이 날 것이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가는 말합니다. "예언자들아, 너희의 날이 끝났다. 이미 날이 저물었다. 내 백성을 곁길로 이끌었으니 너희가 다시는 환상을 못 볼 것이고 다시는 예언을 하지 못할 것이다."
[누가 더 힘이 있을까?]
향린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미가서 본문을 읽으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성경은 미가의 입장에서 쓰여 있기에 미가 말이 옳고 비판을 받는 사람들이 잘못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미가는 꾸짖고 이스라엘 지도층은 혼이 납니다. 그러나 실제로 미가가 활약하던 시대로 가면 어땠을까요? 실제 누가 더 힘이 있었을까요?
미가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당대에 사회적 권력과 경제적 부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오늘날도 돈과 힘이 있는 자들은 법 위에서 군림합니다. 지금까지 윤석열 일당과 그와 함께 카르텔을 형성하는 이들이 어떤 짓을 해 왔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 거대한 권력들이 한 몸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작은 시골 마을 출신 예언자의 비판과 경고가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예언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이스라엘 지도층들의 타락상과 불의를 성토할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사는 지금 이 땅에서 평범한 시민이 돈 많고 힘 있는 권력자들과 맞서 싸울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노동의 질을 떨어뜨리는 외주화라든가, 영세한 업체에서의 고된 노동, 산업재해에 대한 미지근한 대책 등으로 하루에도 수없이 사고와 죽음의 위협에 놓이게 되는데, 과연 이 사람들이 재벌들의 갑질 횡포에 맞설 수 있을까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독립유공자들의 후손이 떵떵거리며 사는 친일파 후손들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인정을 받을 날은 언제 올까요?
[그리스도교는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
그런데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과연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어느 편에 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언자 미가 편에 서야 할까요? 아니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에게는 재앙이 닥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큰 소리 치는 예루살렘 지도자 편에 서야 할까요?
한국 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 온 지도 벌써 140년이 되었습니다.(1876년으로 잡으면, 149년) 그동안 한국 개신교는 이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한국 개신교가 본격적으로 이 사회와 시대의 아픔에 함께 하고 불의에 맞서 저항하는 주체로 등장한 것은 3.1 독립만세운동을 통해서 입니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선교-의료-교육의 틀을 가지고 각 지역마다 '미션스테이션'(선교 기지)을 세웁니다. 전국적으로 3.1 만세 시위가 가장 먼저 촉발된 곳을 보면 바로 이 선교 기지가 세워진 곳과 일치합니다. 즉 당시 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의 전국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3.1운동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내면의 신앙을 역사를 변혁하는 힘으로 바꾸어 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개신교인들이 바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히브리 백성의 고난과 해방의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고난과 해방을 함께 읽어냈기 때문입니다. 일제 식민지 시절에는 성탄절 연극의 대부분이 모세의 출애굽을 주제로 펼쳐졌습니다.
또한 교육과 선교가 병행되면서 깨우침을 얻은 다수 교인은 민족의식을 갖게 됩니다. 조선시대 면면히 흐르는 선비 정신이 대중들로 확산되면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유교 정신과 예수의 자유해방 정신이 만나 상승효과를 일으켰습니다. 3.1 운동을 주도하고 민족독립에 투신했던 많은 기독교 지도자는 대체적으로 유학(儒學)에 밝은 양반 출신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편 일제시대 내내 계속되었던 신사참배 반대 운동은 정치적 횡포에 맞서 종교적 자유를 지키기 위한 일련의 훈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의 폭력에 맞서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하나의 선구적인 모델을 형성하도록 도왔습니다. 물론 이때 자발적으로 신사참배에 나선 사람도 있고, 친일파가 되어 일본이 벌인 전쟁을 지지하고 군수 자원을 보낸 그리스도인들도 있었습니다만 끝까지 신사참배에 반대한 이들의 모습은 많은 사람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남한만의 단독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 정권이 들어섰을 때, 한국 개신교는 크게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마치 순수함을 보존했던 처음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그 순수함을 잃고 변질된 것처럼 한국 개신교도 친개신교적 정권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찾으려고 합니다. 오랜 핍박 속에 있었던 한국 개신교인들은 이승만 장로가 대통령이 되자 그를 적극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려는 기회주의자였고, 자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해체시키고 친일파도 얼마든지 등용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은 좌익이라는 딱지를 붙여 살상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지난 주 목요일이 제주 4.3 항쟁 77주기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순민중항쟁이 벌어진 지도 77년이 됩니다. 1945년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우리 역사를 차분히 공부해 보면, 지금 우리나라의 많은 잘못된 제도와 습성은 거의 모두 해방 전후부터 한국 전쟁 때까지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친 개신교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자신의 친일 행적을 숨기고, 민간인을 학살한 전력을 감추며 개신교로 대거 유입되었습니다. 기독교의 값싼 은혜와 회개와 용서의 장치들이 천인공노할 모든 죄인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면죄부를 받게 합니다. 이런 식으로 개신교인이 된 사람들은 이승만 정권의 유지를 위해 부정선거에도 협력합니다.
친일에서 친미로 갈아타고 이승만 정권에 아부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는 이들이 반공을 내세우며 한국 전쟁 이후 계속 권력을 유지해 갔습니다. 이 사이에 독립군 후손들은 가난을 면치 못했고, 정부에 대한 비판은 전부 빨갱이로 몰리는데, 한국 개신교는 이런 정부에 기대어 성장하였습니다.
이런 어두운 시절을 보내고 개신교가 다시 이 사회에 의미 있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바로 박정희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울 때입니다. 박정희는 여러 번의 부정선거와 개헌을 통해 종신 독재를 꿈꾸었습니다. 1972년 유신 체제가 수립되었을 때, 모든 권력은 박정희 1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대통령 임기는 6년으로 연장되었고, 중임제한 조항은 삭제되었고,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할 권한도 가지고, 국회의원의 3분 1을 임명할 수도 있었습니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권은 사라졌고, 국정감사권도 없어졌습니다. 대법원장과 일반 법관의 임명도 대통령의 권한이었기에 대통령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를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삼권분립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총과 칼로 사납게 윽박지르고', '군화발로 지근지근 짓밟아'(양성우, '겨울공화국'에서)대는 유신 체제에 균열을 내었던 것이 바로 또 개신교였습니다. 여기에 우리 교단과 우리 교회의 역할은 이루다 말할 수 없는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단의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불의가 있을 경우에는 어느 편, 어느 누구의 소행이든 간에 우리는 이를 묵과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땅에 의를 세우는 것이 우리 신앙의 본질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신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말씀을 기억했고, 실제 한국 교회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시점은 장공 김재준 목사님이 삼선개헌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되고부터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성장 위한 존재]
저는 교회가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의 희망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교회 성장은 작은 교회가 대형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전 세계교회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성장의 목표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땅 전체를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 것입니다.
지난 120여일의 시간 동안 우리는 훼손된 이 땅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사회부원들이 부장님을 중심으로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교회를 개방하고 숙직의 일을 맡아 주신 교우분들, 향린 부스를 지키며 파면 꽈배기와 탄핵 커피를 나눠 주신 분들, 거리 예배를 드리고, 피케팅 시위에 참여하신 분들, 모두 모두 정말 애쓰셨습니다. 덕분에 한국 개신교에 전광훈 손현보 같은 인간들만 있지 않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기회도 되었고, 우리에게는 작은 보람이기도 했습니다. 교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감사의 글 하나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주안에서 존경하는 향린교회 목사님과 성도님들께 문안드립니다. 홈에 들어왔으나 마땅히 감사를 드릴 곳이 없어서 이곳에 글을 올리게 됨을 용서 바랍니다. 저는 용인수지에 있는 지구촌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성도입니다.
촛불비상행동 집회에 나갈 때마다 향린교회는 저의 자부심이었습니다.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게 향린교회가 있다고 자랑할 수 있어서 참 고마웠습니다. 향린교회의 따뜻한 나눔은 오늘 파면의 날까지 이어져 정성 어린 떡까지 나누어주었습니다. 길 위의 예수님을 닮은 교회, 불의한 곳에 정의를 행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닮은 향린교회가 있어서 참 기쁘고 행복합니다.
세상의 불의에 눈감고 입 닫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향린교회를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전광훈류의 가짜들이 판을 치는 것을 보며, 교회에 염증을 느끼는 세상 사람들의 눈과 마음에도 향린교회는 예수님의 향기가 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 믿습니다.
사랑의 봉사, 수고를 아끼지 않은 향린교회 목사님들과 성도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며 복 주실 우리 구주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향린교회에 복을 내려주세요. 향린교회 성도님께 큰 복을 내려주세요. 그 사랑의 섬김이 하늘에서 해 같이 빛나게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2025. 4. 4. 미미한 성도 드림)
탄핵 선고가 발표된 11시 22분 안국역 사거리에 있던 최필수 장로님과 이상재 집사님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새 교우가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탄핵 선고 순간, 향린교회 장로님과 집사님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울컥했다. 그 눈물엔 오랜 시간 쌓인 기도와 인내,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꺾이지 않았던 믿음이 담겨 있다. 그 눈물은 말보다 깊었고, 침묵보다 강했다. 정의는 결국, 그렇게 흘린 눈물 위에 세워지는 것 같다."(정해관 교우)
함석헌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 나라가 보인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서만 까닭의 실꾸리를 감게 되고, 그 실꾸리를 감아가면 영원의 문간에 이르고 만다."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눈물의 렌즈로 하늘나라를 보시고, 고난의 실꾸리를 통해 영원의 문간에 이르시길 빕니다. 그간 참으로 수고하셨습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이제 편안히 쉬십시오.
실컷 웃고 떠들고 마음껏 즐기십시오.
우리가 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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