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설교] "어둠 속 찬란한 사람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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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사 25:6-9, 행 10:34-43, 요 1:1-5

[부활주일 아침에]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2천 년 전, 유대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벌이던 한 30대 초반의 나사렛 출신 청년이 유월절 명절 즈음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성전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으로 체포된 뒤에 공개적으로 십자가 처형을 당합니다. 그의 이름은 예수, 하나님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던 여호수아의 이름을 이어받았지만, 그의 비전과 행위는 유대 성전 기득권자들을 자극했고, 로마 제국에 반역하는 위험인물이라는 모함 속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합니다. 이 청년을 따르던 제자들은 모두 흩어졌고, 예수가 벌이던 하나님 나라 운동도 곧 사그라들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놀랍게도 몇몇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셨다." "예수가 다시 사셨다." 또 몇몇은 빈 무덤을 발견하였고, 또 다른 이들은 예수를 직접 목격했다는 증언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의 뒤를 이어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예수 운동을 이어나갑니다. 예수의 부활 사건은 새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탄생시켰고,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세계 인구의 33%가 속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형성과 발전에는 부활 신앙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그리스도인들은 부활과 같은 기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부활 이야기는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이라 볼 수 없고,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직접 목격한 이들의 증언이 아니며, 유일한 목격자의 직접적인 자기 증언이라 할 수 있는 바울 사도의 고백조차도 일종의 종교체험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그럴듯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는 문서만 가지고 부활이 무엇인지 그 실체에 도달하기란 실제로 너무 어렵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부활은 단순히 육체적 소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만져 보라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도 예수인지 모르는 장면도 있고,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고 말하면서 식사하시는 예수가 있는가 하면, 문이 닫혔는데도 갑자기 나타나셨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신비한 예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의 환각이나 착각이라고 보기에는 그들의 증언이 너무나 생생한데,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들은 또 저마다 너무 다릅니다.

그러나 이런 난제들 속에서도 가장 분명한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으니, 바로 그것은 예수 추종자들의 변화입니다. 그들은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졌으나 다시 용기를 얻었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움츠러들었으나 다시 기지개를 펴고 놀라운 활약을 하게 됩니다. 부활 사건을 통해 새롭게 각인된 예수의 현존은 새로운 깨달음을 불러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복음서의 말씀이 증언합니다. 예수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면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는 우주 만물이 운행되는 원리, 즉 로고스이자, 어둔 세상에 빛을 비춰 질서를 부여하는 힘이고, 없던 것을 생기게 하고 죽은 것을 일으키는 생명력입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

예수를 통해 인생이 바뀐 베드로 또한 담대하게 증언합니다. 그는 더 이상 갈릴리 어부가 아닙니다. 생계유지를 위해 그물을 던지던 그가 사유의 바다에서 생명의 의미를 낚는, 고난으로 가득한 삶의 현장에서 구원의 그물을 펼치는 사람이 됩니다. 그의 주무대는 이제 예루살렘입니다.

갈릴리 촌사람에게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은 낯설었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 거룩한 영과 늘 함께 하셨던 사람! 두루두루 다니는 곳에서 선한 일들을 하시고, 모든 사악한 것들에 붙들려 억눌린 사람들을 고쳐 주신 분을 기억합니다. 베드로는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나 직업,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 성별이나 나이로 사람을 가리지 않으시고, 의를 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받아 주신다는 사실을 나사렛 예수님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의 어둠 또한 건드렸습니다. 어리석음과 멈출 줄 모르는 과도한 욕망, 무분별한 폭력, 교만과 자기기만, 진리와 마주하기를 꺼리면서, 일시적인 육체적 만족으로 도망하려는 습성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종교-정치 기득권자들은 그를 죽여 없애려고 했고, 군중들은 예수는 죽이고 바라바는 살리라고 외쳤습니다. 로마 제국은 성가신 나사렛 청년을 수많은 십자가 가운데 매달고는 시끄러운 식민지가 잠잠해지길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 나사렛 청년을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던 이들의 시도는 실패하고 맙니다. 오히려 예수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온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 사건의 의미]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인해 이제 인류는 피할 수 없는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죽음을 영원히 멸하시는 분과 함께 생명과 평화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유한성의 감옥 안에서 보잘것없는 내 능력과 지혜를 믿고 몸부림칠 것인가?

우리는 예수의 부활 앞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먼저 이 세상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돈을 숭배하고, 힘을 추구하는 세상은 우리 또한 죽음의 십자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운명의 굴레 속으로 밀어 넣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인류를 갈등과 비극에 빠뜨리는 불의, 적개심, 두려움, 편견이라는 실타래를 풀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그 안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들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예수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는 실패할 수 없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는 몸소 고난을 겪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연민의 힘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일으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험한 세상에서 결코 죽지 않는 생명과 평화의 힘을 보여줍니다. 인류가 아무리 하나님을 거부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패배하시는 분이 아니심을 드러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그 옛날 우리에게 이런 귀한 예언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하나님 사랑의 넓이와 깊이를 압니다. 그래서 이사야 예언자와 함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바로 이분이 주님이시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한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으니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 베드로는 초기 모든 사도들을 대표하여 우리가 바로 예수의 증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증인들에게 예수의 부활을 보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 아닙니다. 먼저 미리 택하신 증인들에게 나타나셨고, 증인이었던 첫 사도들은 세상을 두루 다니며 증언을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증언이 진실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 또한 매일의 삶에서 부활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직도 그렇지 못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첫 사도들의 뒤를 이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해야 할 것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새로운 깨달음이 오면서 눈에 있던 비늘 하나가 벗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더 환하게 보이고, 어리석음으로 인해 반복되던 자신의 실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눈이 열리면 실수가 줄고, 그래서 고통도 줄어듭니다. 책도 그러한데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세상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있는 것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이란 없다."(<이 사람을 보라> 중에서)는 니체의 말처럼 여러분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우리 주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불평이 사라지고 감사가 넘치며, 고난은 성숙의 거름이 되며, 먹구름 속에 가려진 태양이 보이며, 온 우주가 당신을 편들고 있음을 느끼며, 사망 권세는 물러가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곁에서 신나게 살 것입니다.

사랑하는 향린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은 우리를 부활의 증인으로 부르셨습니다. 증인은 재판정에 나가서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재판정인 저 세상에 나가서 증언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말이, 여러분의 행동이, 여러분의 삶의 모습이 모두 증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살아계신 예수의 증언입니다.

시인 박목월은 '부활절 아침의 기도'라는 시에서 "주여! 저에게 이름을 주옵소서. 당신의 부르심을 입어 저도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만, 우리 주님은 이미 저와 여러분에게 이름을 주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향기 나는 이웃"입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이름이며,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나아가서 참된 그리스도인, 향기 나는 이웃, 하나님이 보내신 찬란한 빛으로 살아갈 때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세상으로 담대히 나가십시오. 나가셔서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목청껏 외치십시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마음껏 기뻐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세상에 비치고 있으니

여러분 마음과 생각 속에 있는 모든 어둠을 몰아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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