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이화대학교회 장윤재 담임목사]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025년 8월 3일 주일예배 설교

jangyoonjae
(Photo : ⓒ베리타스)
▲장윤재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대학 기독교학과, 이화여대 대학교회 담임목사)

성경본문

신명기 7:6-8, 고린도후서 12:5-10, 마태복음 11:28-30

설교문

휴가철입니다. '휴가'만 생각하면 손가락이 저절로 날짜를 세고 있습니다. 어디 좋은 곳 다녀오셨는지요. 사실 쉴 틈 없는 현대인들은 휴가를 기다리며 힘든 노동의 시간을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막상 휴가가 주어지면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휴가'는 '휴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휴가와 휴식을 같은 것이라 착각하지만, 휴가는 반드시 휴식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휴식을 빼앗기도 합니다. 휴가가 끝난 뒤의 출근길을 떠올려보십시오. 긴 여행의 피로로 머리는 멍하고, 몸은 무겁고, 업무는 불어나 있고, 통장의 잔고는 줄어 있습니다. 막 휴가를 다녀왔는데 휴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휴식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완벽한 휴가를 보내기 위해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차례로 섭렵하며 신중에 신중을 기해 여행지를 고르고, 단돈 5천 원이라도 더 싼 항공권을 예약하고, 수백 건에 달하는 숙소 리뷰를 '최신순'으로 정렬해 꼼꼼하게 읽어보면서도, 그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시간을 '휴식'을 아는 데 투자하지는 않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요? '휴식 없는 휴가'입니다. '휴식을 배반한 휴가'입니다. 진짜 휴가는 짐을 꾸려 떠나는 게 아니라, 잃어버린 나를 찾아 영혼 깊은 곳으로 떠나는 여정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하신 선악과의 열매를 인간이 따 먹은 이후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세기 3:18) 하였습니다. 죄로 인해 저주받은 것은 땅만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도 무성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나, 우리는 수없이 그 가시에 찔리며 조금도 쉴 곳이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이런 가혹한 실존을 하덕규 목사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오늘의 공동기도문입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 당신의 쉴 곳 없네 /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 당신의 편할 곳 없네 //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 당신의 쉴 곳 없네."(하덕규 시집,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 1990)

내 속에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이 있습니다. 내 속에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이 있습니다. 그 어둠과 슬픔이 '무성한 가시나무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쉴 곳을 찾아 날아 온 어린 새들도 그 가시에 찔려 날아가 버립니다. 나도 찔리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도 다 찔립니다.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그 병처럼, 바람만 불면 우리 영혼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릅니다. 이것이 선악과 사건 이후 인간 실존의 모습입니다. 아무도 예외가 없습니다.

따로 휴가를 가기 어려운 저는 영화 보는 재미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요즘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인기입니다. 지지난주에는 예수님의 삶을 다룬 <킹 오브 킹스 King of Kings>를 보았는데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남녀선교회가 곧 단체 관람을 할 예정인데, 가족들과 함께 꼭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주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았습니다. 앞 세 글자로 줄여서 '케데헌'이라고도 합니다. 공개 후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하더니, 주제곡(OST) '골든'(Golden)은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올라섰습니다. 어제는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 합니다. 한국의 전통 설화, 한복, 음식, 그리고 한국인의 정(情)의 문화까지 섬세하게 녹여내 세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요즘 어디가도 한국인인 게 자랑스러운 세상입니다. 모두 저희를 따라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너희를 팝 스타로 알겠지만, 너희는 훨씬 더 중요한 존재가 될 거다, 너희는 헌터가 될 거야!" 이 영화의 시작 내레이션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악령 헌터인 걸그룹 '헌트릭스'가 저승사자 보이그룹 '사자보이즈'로부터 팬들을 지켜낸다는 이야기입니다. 권선징악의 황당 판타지 서사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시대를 향한 묵직한 상징과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화려할 것만 같은 주인공 걸그룹의 루미(Rumi)와 보이그룹의 진우(Jinu)는 사실 내면에 깊은 어둠과 슬픔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노래로 악령을 물리쳐야 하는 루미는 단순한 아이돌이 아닙니다. 놀랍게도 인간과 악령 사이의 혼혈입니다. 그것을 밝힐 수 없는 루미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실수고 치부라고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숨기면 숨길수록 수치심은 더욱 깊어만 갑니다. 루미의 적인 진우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는 과거에 인간이었지만 악마와 거래해 악령이 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었습니다. 가난과 굶주림에 못 이겨 어머니와 동생을 버리고 혼자 살 길을 찾은 죄책감과 고통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악마는 바로 이 죄책감과 수치심을 가지고 진우를 이용하고 조정했습니다. 지금도 악마는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서로의 상처를 이해한 루미와 진우는 더 이상 자기 안의 어둠과 슬픔에서 도망치지 않기로 합니다. 그것과 맞서기로 합니다. 대면하기로 합니다. 모든 결점과 두려움을 숨겨야 한다는 악마의 속삭임을 거부하고 더는 숨기지 않기로, 더 이상 숨지 않기로 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자신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사랑하기로 합니다. 결국 진우는 자신을 희생해 루미를 도와 악마를 이기게 합니다. 그리고 진짜 자기의 목소리를 되찾은 루미는 '이게 바로 그 소리야'(What It Sounds Like)를 노래합니다.

"산산이 부서진 나 / 돌이킬 수 없어 / 하지만 깨진 유리 조각들 /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 / 상처는 나의 일부 / 어둠, 그리고 조화 / 거짓 없는 내 목소리 / 여기에 울려 퍼져 / ... 거짓은 이제 안녕!"

인간은 부서진 존재입니다. 수많은 유리 조각으로 산산이 깨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내 속엔 그 조각들만큼 '수많은 나'가 있습니다. 어떤 '나'들입니까? 내 속엔 말없이 웃는 내가 있습니다. 너무 오래 웃다 보니 웃음이 굳어버린, 울 줄 모르는 내가 있습니다. 내 속엔 사랑을 기다리는 내가 있습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그 손을 잡을 용기가 없어 혼자 사랑을 연습하는 내가 있습니다. 내 속엔 모두 괜찮다고 말하는 내가 있습니다. 괜찮지 않다는 걸 누군가 알아버릴까 봐 두려워 입술을 꾹 다문 내가 있습니다. 내 속엔 늘 무언가에 쫓기는 내가 있습니다. 잘해야 해, 인정받아야 해, 그래야 겨우 숨 쉴 수 있는 내가 있습니다. 내 속엔 여전히 일곱 살짜리 어린애가 있습니다. 엄마를 부르며 구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우는, 그날 밤을 떠나지 못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내 속엔 상처 준 사람들을 원망하는 내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상처에 길들여져 그들을 또다시 그리워하는 모순투성이 내가 있습니다. 내 속엔 이렇듯 '하나의 나'가 아니라 '수많은 나'가 살면서 서로를 밀치고 때로는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나를 구성합니다.

어느 시인도 말했습니다. "누구나 가슴속 깊은 울음 하나씩 갖고 산다. 조롱박처럼 저렇듯 안으로 안으로만 키우다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울음, 졸라매듯, 누구나 그렇게 참다가 다 타버린 울음들 하나씩 갖고 살아간다. 그때 가슴을 열면 재 한줌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 있다."(배준석)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예레미야 8:18) 수천 년 전 예레미야 선지자의 탄식입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전도서 4:1) 전도자의 한탄입니다.

옛날 우리 엄마들은 속상하면 빨래하셨습니다. 양잿물 비누 넣고 팍팍 삶아서 방망이로 내리쳐서 하얗게 하얗게 빨아 탈탈 털어 빨랫줄에 널었습니다. 빨래는 여성에게 전가된 모진 노동이었으나, 팍팍 삶은 빨래를 방망이로 팡팡 내리칠 때는 속 썩이는 남편 내리치는 기분이어서 속이 다 시원했습니다. 널었던 빨래를 물먹여 빳빳하게 만들어 다듬잇돌 위에 펴두고 다시 방망이로 팡팡 두드렸습니다. 밤새 내리치며 상했던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세탁기가 빨래를 다 해 주니, 속상한 우리 엄마들 마음을 누가 달래주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이사야 66:13)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저도 모르게 노래했습니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이사야 49:13) 어느 시편 기자는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편 86:17)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하나님은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고린도후서 7:6)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심부름꾼"(고린도후서 12:7, 새한글성경)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가시가 어떤 가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공동번역)일 수도 있고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가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가시가 자기에게서 떠나가게 해 달라고 바울은 여러 차례 간구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받은 응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린도후서 12:9) 이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린도후서 12:10)라고 선언합니다.

"산산이 부서진 나 / 돌이킬 수 없어 / 하지만 깨진 유리 조각들 /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부서지고 깨진 것들이 왜 아름답습니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부서지고 깨진다는 것은 더 이상 감추거나 꾸밀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면과 외피가 떨어지고, 드러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입니다. 그 속에서 인간은 진실해지고, 진실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부서지고 깨진 것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또 금 가고 깨진 곳으로 빛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레너드 코헨은 'Anthem'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There'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모든 것에는 틈이 있다.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깨진 틈은 상처이자, 동시에 은혜의 입구입니다. 아픔을 겪은 사람은 남의 고통을 더 깊이 이해하고 품을 수 있습니다. 깨짐은 연약함이 아니라, 공감의 문을 여는 통로가 되기에 아름답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서지고 깨진 것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회복과 재창조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전통 수리 기법에 킨츠기(金継ぎ)가 있습니다. 금으로 깨진 그릇을 이어 붙이는 기술인데, 이 기술은 상처를 감추는 대신 드러내고, 오히려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킵니다. 상처는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 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깨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때, 더 깊고 더 단단한 아름다움이 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산산이 부서졌을 때 하나님을 만납니다. 무시당하고, 버림받고, 경멸당하고, 또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납니다. 내가 가장 약할 때 하나님을 만나는 건 그때가 우리가 쓰고 있던 모든 거짓의 가면들이 벗겨지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주님은 찢겨지고 짓밟힌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시편 51:17 개역개정 + 새번역)라고 했습니다. 또 "여러분이 다른 민족보다 수가 많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택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모든 민족 가운데 가장 작은 민족입니다"(신명기 7:7, 현대인의성경)라고 했습니다. 내가 가장 약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는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납니다.

어느 시인이 말했습니다. "단단한 바위에 봄이 어떻게 정원을 만드는가? 흙이 돼라, 부서져라, 그러면 그대의 부서진 가슴에서 수많은 야생화가 피어날 것이니, 너무 오랜 세월 그대는 돌투성이였다. 다르게 해 보라. 항복하라."(잘랄루딘 루미) 그랬습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우리는 단단한 바윗덩어리였습니다. 돌투성이였습니다. 연약한 자신을 감추고 단단한 바위인 양 행세했습니다. 내면의 슬픔과 어둠을 방치하고 돌투성이 거친 밭으로 살았습니다. 거기서 꽃이 피어날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부서져야 합니다. 흙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다르게 해 보아야 합니다. 항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항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온전히 열어야 합니다. 그때 그 부서진 우리의 가슴에서 수많은 야생화가 피어날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아픔과 시련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픔과 시련은 인생을 윤기 있게 하고, 생동감 있게 하며, 무엇보다도 아름답게 합니다. 어느 날 영국 왕 조지가 도자기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두 개의 꽃병이 특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두 꽃병은 같은 원료, 같은 타일, 같은 무늬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윤기가 흐르고 다른 하나는 투박하고 볼품이 없었습니다. 왕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도공이 대답했습니다. '전하,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는 불에 구워졌고, 다른 하나는 구워지지 않았습니다.'

"보아라, 내가 너를 단련시켰으나, 은처럼 정련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의 풀무질로 달구어 너를 시험하였다"(이사야 48:10) 했습니다. 담금질(quenching)이란 금속재료를 높은 온도로 가열한 다음에 급랭시켜 경도를 높여주는 작업입니다. 무두질(tanning)이란 동물의 가죽에서 털과 기름을 제거하고 화학 처리를 한 후, 나무망치 같은 것으로 다듬질을 해 주어 가죽을 부드럽게 하는 작업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가죽이 부드러워질 뿐만 아니라, 부패하지 않고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풀무질과 담금질과 무두질은 모두 아픔과 시련의 과정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불순물이 제거되고, 단단해지며, 또한 부드러워지는 것입니다. 주변에 삶이 아름답게 빛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그들의 삶은 그냥 빛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풀무질과 담금질과 무두질의 과정을 묵묵히 이겨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요즘 <쓸쓸한 그대에게> 드리는 어느 시인의 노래입니다. "지금 생의 뒤안길을 / 쓸쓸히 걷고 있는 그대 // 밀물져 오는 슬픔에 / 가슴 찢어지게 아파도 // 부디 슬픔에 / 맥없이 무너지지는 말라 // 지금은 환한 모습으로 / 웃고 있는 저 낙은 꽃 한 송이도 // 남모를 아픔과 / 괴로움의 터널을 지나왔을 터 // 세월 가면 / 지금 이 순간 그대의 슬픔 // 희망의 씨앗 되어 / 이윽고 기쁨의 꽃으로 피어나리."(정연복)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쉼'은 자신이 편안하고 존엄하다고 느끼는 안정된 상태입니다. '편안함' 뿐만 아니라 '존엄함'이 있어야 합니다. 쉼의 한자어는 '휴식'(休息)입니다. 먼저 쉴 '휴'(休) 자는 사람[人]이 나무[木] 곁에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쉴 '식'(息) 자는 마음[心] 위에 코[自]가 있는 모양입니다. (自자는 '코' 또는 '스스로'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숨'을 의미합니다. 사실 쉼과 숨은 하나로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휴식이란 '사람이 나무 곁에서 숨을 쉬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쉼입니다. 만일 휴가를 다녀왔는데 피곤하거나, 쉬었는데 더 지친다면 그런 휴가는 더 이상 진짜 쉼이 아닙니다. 인기 장소, 맛집, 핫플, 사진 명소 따라다니며 '남들처럼' 즐기려 하며 나에게 맞는 쉼이 아니라 남들이 추천한 쉼을 좇게 됩니다. '내가 이만큼 일했으니 이 정도는 누려야 해'라고 떠난 휴가는 쉼보다 보상이나 소비에 집중하기에 진짜 쉼이 아닙니다. 보상은 순간일 뿐, 마음의 공허함이나 피로는 여전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셨습니다. 무엇이 그분의 멍에이고 그분의 짐입니까? 십자가입니다.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무에 달린 자"(갈라디아서 3:13)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나무에 달리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십자가 나무 곁에 있을 때, 그 나무 곁에서 생명의 숨을 쉴 때 진정한 휴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느 찬송가(415장) 가사처럼, 우리가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늘 방황할 때에 저 햇볕 심히 뜨겁고 또 짐은 무겁지만 우리는 "주 십자가의 그늘에 내 쉴 곳 찾았네"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휴가철입니다. 어디 다녀오셨는지요. 진짜 휴가는 짐을 꾸려 떠나는 게 아니라, 잃어버린 나를 찾아 영혼 깊은 곳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내 속의 너무도 많은 나로 인해 쉴 곳이 없는 당신, 내 안의 헛된 바램들로 인해 편할 곳 없는 당신,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으로 인해 쉴 자리를 빼앗긴 당신,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으로 인해 무성한 가시나무숲이 된 당신, 이번 여름엔 이 모든 슬픔과 어둠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의 아래서 참 쉴 곳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 향기로운 나무 곁에서 하나님의 숨결로 생명의 숨을 쉬며 참 평화와 깊은 안식 얻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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