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출 18:13-26, 행 6:1-7, 마 28:11-20
설교문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서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두 부류의 인간들을 등장시킵니다. 하나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사역에 걸림돌이 되었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고, 또 한 부류는 예수님을 따라나선 제자들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은돈으로 병사들을 매수해서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 갔다는 거짓 소문을 내게 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했다는 소식이 온 세상에 전파되면 무고한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유대 권력자들의 부패와 불의가 만천하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음모를 꾸미고, 자신의 안위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헛소문을 퍼뜨려 여론을 조작합니다.
다른 한편에는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이 모세가 산에서 율법을 받듯이, 예수님의 주무대였던 갈릴리의 한 산에 모여 새로운 비전과 선교의 사명을 듣게 됩니다. 이들은 원래 별 볼 일 없는 사람들, 그래서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있으나 마나 한 사람처럼 업신여김을 받던 사람들이었으나,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새로운 세상의 주역으로 등장합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도 가만히 보면 이 두 부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에 기웃거리는 교회들, 하나님 일 하라는 직분을 마치 계급처럼 사용하려는 사람들, 교회 내에서도 이권을 가지고 싸우고 갈등하는 모습들이 여기저기에서 들리기 때문입니다. 교회인데도 거짓말로 속이고 비방하고 음모를 꾸미는 일들도 있다니 참으로 괴롭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열심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한 교회에 머무는 신자가 아님에도 주님의 사역이라면 언제든 나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삯군 목자가 있고 선한 목자도 있으며, 어느 시대나 참 제자가 있고, 배신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린 마지막 명령에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하는 첫 번째 말씀은 "가르쳐 지키게 하라"입니다. 제가 목사가 되도록 하고, 사역을 이어가도록 한 말씀도 바로 이 말씀입니다. 저는 2008년 향린에 있을 때 서울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올해로 17년째가 됩니다. 목사 안수를 받을 때부터 지금까지, 주님은 왜 나를 목사로 부르셨나, 또 목사가 되어서 어떤 목회를 해야 하는가를 늘 묻고 있는데, 그때마다 저는 이 구절을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교회로 불러주시고, 목사가 되게 하신 것은 결국 한국교회를 치유하고 참된 복음의 공동체로 회복하라는 것인데,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신앙과 신학이 동떨어져 있고, 믿음과 행함이 불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신앙과 신학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서는 첫째 올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과 행함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신앙인으로 하여금 "지키게 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명령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해 목회자가 가장 먼저 들어야 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지켜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서에는 5회에 걸쳐 예수님의 긴 설교가 나오고, 가르침의 핵심은 마태복음서 5장에서 7장에 나오는 산상설교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산상설교를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예수를 따르던 무리는 사회적 약자들, 낮고 천한 사람들, 권력자들 밑에서 고생하던 사람들, 배운 사람들에게 속고 주눅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불러서 본래 지니고 있던 정체성을 확인해 주셨고, 그래서 실제로 이들은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없던 능력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드러나게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축구대표팀 역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2002년 월드컵입니다. 4강 신화를 이뤄냈지요. 그때 사령탑을 맡았던 히딩크 감독이 한국 선수들을 보고 했던 말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 선수들의 기술은 충분하고 오히려 체력이 약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지난날 축구 경기를 할 때마다 우리나라 대표팀은 현란한 유럽과 남미의 기술 축구에 맞서 늘 체력과 투지와 조직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발재간과 기술이 없으니 문전 미숙과 골 결정력 부족은 언제나 붙어 다니는 평가였습니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부족한 것은 축구 경기에 알맞은 체력과 정신력이라며, 순간 스피드를 낼 수 있는 기초체력 훈련을 시키고, 백기완 선생님을 모셔 와 강의를 듣게 하였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익히 가지고 있던 능력을 발휘하게 하여 한국대표팀을 월드컵 4강에 진출시킨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창립부터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는 평신도 목회 정신은 바로 예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우리가 먼저 지키면서 더 많은 이들을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도록 하는 것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감독이 아무리 훌륭해도 경기에서 직접 뛰는 것은 선수이고, 아무리 훌륭한 선수가 있어도, 그 선수가 모든 자리를 감당할 수는 없듯이, 목회 또한 목사 혼자 다할 수 없고, 소수의 교인들만이 모든 자리를 차지해서도 안 되겠지요. 주님께서 허락하신 능력과 책임감을 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낼 때 좋은 열매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도력의 확보]
오늘 출애굽기의 본문이나 사도행전의 본문 또한 모두 공동체의 성장에 따라 반드시 새로운 지도력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중재하고, 파라오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해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한 위대한 지도자임에 틀림 없습니다. 출애굽의 여정은 애굽의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지도자인 모세는 성경의 표현대로 하면 장정만 60만이 넘는 백성을 이끌고 나왔습니다.(출애 12:37) 이들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새로운 나라에 알맞은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하고, 새로운 나라를 꾸리기 위한 모든 조직과 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광야 생활 40년은 바로 한 나라가 서기 위해 다양한 것들을 준비하고 실험했던 시절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지만 실제적으로 하나님이 활동하시는지 안 하시는지는 눈앞에 당장 보이는 모세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에 모세라는 지도자가 없었다면 출애굽에서 가나안 땅에 이르는 모든 여정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담대하게 파라오를 만났고, 열 번의 엄청난 재앙과 대결을 통해 애굽에서 백성들을 이끌고 나옵니다. 또 추격하는 애굽 군대를 물리치고 홍해를 건넙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광야라고 하는 거대한 장벽을 넘습니다. 히브리 백성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모세에게 불평을 늘어놓았고, 애굽의 종살이를 그리워했으며, 심지어 모세에게 대항하는가 하면,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자기들의 신으로 섬기기까지 합니다. 이런 모든 어려움과 장애물을 극복하고 이스라엘을 이끈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 그러니 백성은 모세를 엄청 의존했고, 또 모세는 충실히 그것을 감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감당할 몫의 양이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모세는 장인이자 미디안의 제사장이었던 이드로의 충고를 받아들여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웁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모세는 자기가 맡아야 할 중요한 일에만 집중하게 되고, 백성들 또한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제자들은 새로 맛디아를 뽑아 열둘을 채운 뒤 사도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 초대교회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는 이들입니다. 베드로의 고백대로(마가 10:28)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분이 전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온몸을 바쳐서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한계도 명확합니다. 공동체가 성장하면 그에 알맞은 더 많은 지도자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6장 1절에 제자들이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데, 처음 교회는 엄청난 속도로 불어났습니다. 그러자 내부에서 최초로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 갈등도 꽤 민감한 것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첫 교회의 교인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교회 공동체에 내놓았고, 그것을 팔아서 필요에 따라 골고루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누는 일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해외에 오래도록 나가 살았기에 그리스어를 사용했던 유대인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유다는 기원전 587년 이후로 나라를 잃고 많은 백성이 노예나 종으로 외국으로 끌려가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래서 해외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많았는데, 이들을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 말합니다. 이들은 말년에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와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 근처로 이주해 왔는데 그때 남편이 죽고 나면 과부가 된 그들의 아내들은 생계에 도움을 받을 길이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과부들은 대개 정착해서 사는 유대 가족에 소속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처음 교회에서 구제와 선교를 할 때에도, 이런 사람들이 소홀히 여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교회가 성장하면 새로운 교인들이 늘어납니다. 새로운 교인들은 이전의 교회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교인들이 옛날 추억을 얘기하거나 하는 것에 함께 동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새로 사람을 사귀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기에 새 교인은 교회에 정착하기까지 낯설고 어색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또 새로운 교인은 정착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교인이 보지 못하던 교회의 장단점들을 쉽게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제안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이 기존의 교인들에게는 자신들을 비난하는 것처럼 들리기 쉽습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기존에 있던 교우들과 교회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교우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또 두 집단 사이에 서로 다른 기류가 흘러 때로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구원의 은총을 누리고,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동시에 언제나 분열과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동시에 교회가 성장하면 목회자 한 사람이 그것을 다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오늘 사도행전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지도자를 뽑을 줄 안다]
출애굽기나 사도행전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공동체가 성장할 때, 그것을 함께 책임질 지도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을 잘 나누어야 합니다. 통치의 모든 것이 들어 있어, 군주론과 제왕학의 영원한 고전으로 불리는 한비자(韓非子)라는 책에 보면 나라가 망하는 징조를 47가지나 나열하고 있는데 그중 열두 번째 조항은 이렇습니다.
"임금의 성품이 너무 강해 신하들과 화합할 줄 모르고, 간언(諫言)을 물리치고 신하에게 이기는 일을 즐기며, 나라의 이익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경솔하게 자신의 믿음에만 의지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很剛而不和, 愎諫而好勝, 不顧社稷而輕爲自信者, 可亡也)
오늘 모세는 이드로의 충고를 받아들였고, 사도들 또한 자신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모세는 일의 규모에 따라, 그리고 중요도에 따라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웁니다. 중간 지도자를 천부장에서 십부장까지 네 단계로 나눈 것은 새로운 조직을 갖출 때 규모가 있게 질서 있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큰 조직에서 작은 조직까지 만듦으로써 모세가 해야 할 일의 핵심이었던 하나님의 규례와 율법의 전수가 이 중간 지도자들을 통해 온 백성에게 전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들 또한 자신들의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것은 말씀 전하는 일입니다. 구제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사도들이 온전히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말씀 선포와 더불어 기도가 함께 나오는 것은 기도 없는 말씀 선포는 결실이 없고 공허하기 때문입니다. 말씀 선포는 기도로부터 자라나며, 기도로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이 우선 되지 않으면 교회 공동체의 뿌리가 흔들립니다. 『대학』이라는 동양고전에 보면 "모든 사물에는 뿌리와 가지가 있고, 일에는 끄트머리와 시작이 있으니, 무엇을 먼저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할 지를 알면 도에 가깝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도들은 부흥하는 공동체에서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습니다.
우리 교회도 하나님 나라 선교를 위해 부서와 신도회, 위원회, 소모임 등 다양한 기구와 회의들이 있고, 각각의 단위에서 강연회와 기도회, 집회, 여러 활동들이 있습니다. 이 모두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고, 우리 공동체를 잘 이끌어가기 위해 세운 것들입니다. 부서를 나누고 조직 체계를 만드는 것은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일이 부과되어 지치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해 소홀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조직은 우선 순위를 잘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부서나 신도회, 또 각 회의기구 간에 이견과 반목과 갈등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조직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첫째는 전체를 보는 안목이고, 둘째는 바로 전체를 보면서 각각의 모임을 담당하는 적절한 지도자를 선택하고 추대하는 일입니다. 바로 오늘 하늘뜻펴기의 주제입니다.
[지도자 선택의 원리]
오늘 출애굽기와 사도행전은 지도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몇 가지 원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유심히 살펴야 할 것은 모세는 자신이 중간 지도자를 뽑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는 교인들에게 이 일을 맡깁니다. 우리는 이 사례를 통해 지도자 선택에 있어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는 지도자는 지도자를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지도자는 공동체에서 신임을 얻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교회는 장로를 선출하거나, 목회자를 청빙할 때 민주주의를 도입하여 공동의회에서 투표를 하여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다수결의 원칙은 교회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안목과 판단을 존중한다는 면에서 바람직한 것이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장로나 목회자를 세우는 것이 인기투표가 되는 경우가 있고, 대중의 무지에 의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곤 합니다. 따라서 지도자를 세울 때는 언제나 지도자로서의 전문성과 동시에 대중들을 이끌 수 있는 대중들과의 친화성을 모두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무엇보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야 한다, 능력과 덕을 갖춰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서 자기 욕망이나 명예욕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진정성과 그에 따른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성경은 말합니다. 거짓이 없고, 부정직한 소득이 없어 신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 사이에서 믿음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을 지도자로 세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장로 임기제로 인해 거의 매년 장로를 선출하게 되는데, 장로 선출을 위한 공동의회, 각 부서장과 신도회 임원을 뽑을 때, 이런 모든 것을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또 확실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모세가 임명을 하든, 교인들이 뽑아서 사도가 안수를 하든 간에 오늘 세워진 지도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였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스스로 평가할 때, 과대평가도 문제이지만 과소평가도 문제입니다. 전통적으로 교만이 죄로 여겨졌지만, 하나님의 일을 앞에 두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교만에 못지않은 죄입니다. 주님께서 명하시면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당신께서 이 부족한 저를 들어 당신의 일에 쓰실 줄 믿습니다."라는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지도력은 어디에서?]
오늘날 많은 이들이 지도력을 연구합니다. 진정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찾아보는 것이지요. 지도자에게는 이런 것들이 요구됩니다. ⓵ 미래의 변화하는 환경에 공동체가 꿈꾸는 비전을 어떻게 적절하게 조화시켜 나갈지를 판단하는 선견력(foresight), ⓶ 비전이 공동체가 지닌 전통과 문화를 거스르지 않게끔 뒤를 다독이는 능력(hindsight), ⓷ 앞으로 나오게 될 새로운 발명품이나 사회의 경향으로 말미암은 충격을 새롭게 해석해 줄 수 있는 세계관(world view), ⓸ 전체에 걸친 그림을 적절한 수준으로 자세히, 전체에 걸쳐 볼 수 있는 깊은 인식 능력(depth perception), ⓹ 새로운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또 다른 경쟁자들과 다른 당사자들의 여러 반응을 이해하는 주변 파악 능력(peripheral vision), ⓺ 환경이 변함에 따라 이전에 종합되어 수립된 방향을 지속으로 재검토하고 재수립하는 능력(revision) 등입니다. 이 밖에도 지도자는 공동체의 전망을 제시할 적절한 시기를 알아야 하고, 비전이 지니는 단순성과 더불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공동체가 과거로부터 어떤 삶을 살아와서 어떤 습관과 관습이 있는지, 그것을 변화시키려 할 때 긍정하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을 파악하여 얼마나 현실 가능성이 있는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숨어서 작동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등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능력들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 향린교회가 이런 모든 능력을 갖춘 지도자를 찾는다면 아마 수백 년이 걸려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스스로가 이런 지도력을 갖추려고 노력한다면, 우리 공동체는 분명히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고, 바로 그 노력 자체가 우리 교회를 지도력을 세우는 교회로 만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위대한 지도력을 보이고 있는 한 사람을 소개하고 제 설교를 마칠까 합니다. 이 사람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우상이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이분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대통령이라고, 그를 깊이 존경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대통령이 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일곱 살엔 거리에서 땅콩과 오렌지를 팔아야 했고, 열네 살에는 선반공이 되어 최저 임금을 받아 온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그것도 잠시뿐 열여덟 살에 사고를 당해 손가락이 잘리고, 실업자가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난했고, 배울 수 없었으며, 어느 구석을 살펴도 더 나아질 게 없었던, 도대체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운명을 지닌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57살에 대통령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2002년 대통령이 되어 당선증을 받습니다. 그가 대통령 당선증을 받고 눈물을 흘리면 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장도 받지 못한 나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증서'를 받아본다." 이분은 바로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브라질의 35-36대, 39대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입니다.
2003년 대통령이 된 룰라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세계 최악의 불평등을 지닌 조국, 하루 1달러로 살아가던 4,000만 명의 빈곤과, 심각한 국가 부채였습니다. "나도 인간인데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무척 부럽다. 경제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자질이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 엘리트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선반 노동자가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겁니다."라고 외치며 대통령에 출마했고, 그렇게 당선되자 해외 자본들은 브라질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룰라는 포기하지 않고 취임하자마자 브라질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다."라고 말하면서 룰라 대통령은 취임 첫해에 빈민 350만 명에게 국가 예산을 분배합니다. 월 소득 120헤알 우리 돈으로 약 7만 1,500원 미만을 버는 가구에게 소득의 절반 이상인 70헤알 우리 돈으로 약 4만 1,700원을 지급합니다. 그러자 언론은 "거지에게 베푸는 동냥이다."라면서 비판하고, 조지 소로스는 "룰라로 인해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와 같이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이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나라 안팎의 비난에도 룰라는 2003년 350만 가구, 2006년 1110가구, 2010년 1280만 가구로 계속해서 국가 예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원하고, 결국 브라질 인구 4분의 1이 국가로부터 생활보조금을 받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엄격한 전제 조건이 있었습니다. 반드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것, 결석률 15%이상이면 지원을 보류하였습니다. 빈곤층에게 식량을 무상 공급하고, 저소득층 생계지원을 통해 브라질의 빈민들은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게 됩니다.
빈민 2000만 명이 중산층으로 도약하고,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빈부의 격차가 좁혀지자, 소비가 늘어나고, 기업이 활기를 띠면서 브라질 경제는 되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라고 룰라는 말하면서 끝까지 브라질의 가난 퇴치를 위해 노력합니다. "만약 내가 실패했다면, 그건 빈민들의 실패였을 것이다." 결국, 룰라 임기 8년 동안 브라질은 국가 부채를 모두 해결하고 세계 8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섭니다. 그리고 그는 퇴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의 모든 업적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엘리트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경제학자가 그의 분배정책을 비판하고, 그가 브라질의 경제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떠들어댔지만, 결국 룰라의 균형발전 정책은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브라질을 건강한 나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룰라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남긴 말에 모든 해답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업적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브라질 국민은 이런 룰라를 2023년에 또 선택합니다. 35대에 뽑혀서 이미 재선을 했는데, 최초로 3선 대통령까지 된 것입니다. 물론 룰라가 완벽한 사람도 아니고,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배울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 향린교회는 이 세상을 이끌 지도력을 확보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그런 지도자를 뽑아야 하고, 그런 지도력을 갖춰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여러 방면에서 지도자를 자처하며 자기 능력을 선전하지만 진정한 지도력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지도력은 바로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울어주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장으로 함께 울어주기 위해 더 기도하고, 말씀에 깊이 잠기는 사람, 그래서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공동체 구성원을 위해 자기를 내어주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일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적지만, 능력도 적고, 엘리트도 아니고, 지식도 부족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기대어 서로를 향해 진정한 사랑으로 함께 해 줄 수 있다면, 함께 아파해 주고 함께 살아줄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과 전혀 다른 지도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생명을 살리는 지도력은 바로 넘치는 사랑에서만이 가능합니다. 우리 교회는 향린교회입니다. 우리가 향기로운 이웃이 되려면, 먼저 서로에게 향기를 뿜어내야 합니다. 서로에게 향기를 뿜으려면, 내 존재가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 안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넘치는 그 사랑은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묵묵히 실천하는 기도의 삶에서만 가능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그런 지도력을 지니기를 바랍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믿음의 동료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분별하십시오.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주님 앞에 서는 일에 게으르지 마십시오.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면 멈추십시오.
그래서 교회의 모든 활동이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에서 흘러나오게 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