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이화대학교회 장윤재 담임목사] "길르앗의 유향"

jangyoonjae
(Photo : ⓒ베리타스)
▲장윤재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대학 기독교학과, 이화여대 대학교회 담임목사)

성경본문

예레미야 8:18-22, 고린도전서 1;26-29, 마태복음 4:23-24 -

설교문

성서에는 '길르앗'(גִּלְעָד, Gilead)이라는 지명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과 화해를 한 곳이 길르앗입니다. 사사 입다와 예언자 이사야의 고향이 길르앗입니다. 지리적으로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 지역, 즉 오늘날 요르단의 북부 산악지대입니다. 여기는 숲이 울창하고 토지가 기름져 고대에는 풍요로운 목축지와 약재의 산지로 유명했습니다.

길르앗에서 나는 가장 유명한 약재는 '유향'(乳香, balm)이었습니다. 유향은 히브리어로 '쎄리'(צֳרִי)라고 하는데, 고목의 껍질에 상처를 내어 흘러나오는 진액을 모은 것입니다. 상처에 바르면 피부를 아물게 하고 통증을 완화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고대 이스라엘에서 '길르앗의 유향'은 가장 귀한 치료약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길르앗의 유향은 오늘까지도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상징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가 이렇게 탄식합니다.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예레미야 8:18) 그는 근심을 '너'가 아니라 '나의 근심'이라 부릅니다. 예언자는 근심과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의 영혼이 왜 이리 근심하고 슬퍼합니까? 그가 말합니다.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예레미야 8:19)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니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예레미야 8:20) 하며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예레비야 8:21)라고 그가 말합니다. 그러면서 예언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예레미야 8:22)

하나님의 백성이 병들고, 상하고, 무너졌습니다. 고통과 절망 속에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에 닿습니다. 그런데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은 과연 없는 것입니까? 회복의 길은 정말 막힌 것입니까? 길르앗에 유향이 있지 않습니까. 길르앗에 의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의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하여 울부짖습니까. 예레미야의 탄식에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탄식은 훗날 아메리카 대륙에 끌려간 흑인 노예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짓밟히고, 자유를 빼앗긴 채, 매일 고통과 질병과 굶주림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절망이었고, 삶은 상처투성이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절망의 한가운데서, 그들은 예레미야의 탄식을 기억하며 드덕느오 찬송을 만들었습니다. 그 노래가 바로 <은혜로운 곳은 길르앗>입니다. 영어로 "There is a balm in Gilead"입니다. 그 가사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There is a balm in Gilead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 To make the wounded whole 상처 입은 자를 낫게 하네 / There is a balm in Gilead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 To heal the sin-sick soul 죄로 병든 영혼 고치시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때때로 낙심하며 큰 실망하여도 주님은 성령으로 큰 용기 주시네"(Sometimes I feel discouraged, And think my work's in vain, But then the Holy Spirit, Revived my soul again) 우리 기쁨찬양대에서 이 노래를 들려주시겠습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예레미야 8:22) 이 예레미야의 탄식은 3천 년 이스라엘의 탄식만이 아니었습니다. 138년 전 이 땅의 탄식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을 국시(國是)로 삼은 나라였습니다. 성리학에서는 남녀의 구별, 곧 음양의 질서 유지를 가정과 사회를 지키는 근본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신분의 벽보다 더 높은 벽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외법(內外法)', 곧 남녀가 한자리에 함께하는 것을 금하는 법입니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었습니다. 집안 구조 자체도 남성의 공간인 '사랑채(舍廊齋)'와 여성의 공간인 '안채(內堂)'로 구분했습니다. 남녀가 길에서 마주쳐도 인사하거나 대화하지 않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내외법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졌으나 실제로는 여성을 억압하고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장치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예(禮)'를 지키는 질서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예의 이름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한 법이었습니다. 이런 법 아래서 여성은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심각한 질병에 걸려도, 또 눈앞에 병원을 두고도 치료의 시기를 놓치기 일쑤였습니다. 때로는 생명까지 위태로웠습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을 어찌 됨인고." 이 예레미야의 탄식의 이화학당의 설립자 메리 스크랜튼(Mary F. Scranton)의 탄식이 되었습니다. 스크랜튼은 "지구상에서 가장 절실하게 의사, 교사, 자금이 필요한 조선"에 여의사 파견을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2년 이상의 끈질긴 요청 끝에 마침내 1887년 10월에 의료 선교사 메타 하워드(Meta Howard)가 조선에 왔습니다. 그는 이 땅에 발을 들인 첫 번째 서양 여의사였습니다. 정동에 도착해 짐을 푼 지 사흘만인 1887년 10월 31일에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이 나라에서 첫 번째 여성 전용 병원이 탄생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선의 왕실은 크게 감사를 표하며 이 병원에 '보구녀관'(普求女館)이라는 이름을 지어 사액 현판을 보내주었습니다. 보구녀관의 '보(普)' 자는 '널리' 혹은 '두루'라는 뜻입니다. '지키다' 혹은 '돕다'라는 뜻의 '보(保)'가 아닙니다. '보편적'이라고 할 때의 그 '보'입니다. 거기에 구할 '구(求)' 자가 붙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널리 구하다'라는 뜻입니다. '차별 없이 구원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차별 없는 사랑입니다. 보편적인 사랑입니다. 하워드 선교사는 보구녀관을 "Salvation for All Women Institution", 즉 '모든 여인을 구하는 집'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메타 하워드 선교사에 이어 닥터 로제타 셔우드(Rosetta Sherwood)가 보구녀관에 왔습니다. 로제타 선교사는 이후 43년이나 조선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의 평생을 조선에 쏟아부었습니다. 사실 로제타가 의료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그가 처음 마음에 품었던 나라는 조선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이었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은 중국이나 일본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감리교 해외여성선교회(WFMS)에서 발행한 한 책자를 보았습니다. 거기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인류를 위해 봉사하려거든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에 가서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일을 하라." 미국 여성 교육의 선구자 메리 라이언(Mary Lyon)의 글이었습니다. 로제타 선교사는 이 구절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가려 하지 않던 곳, 곧 조선에 와서 아무도 하려 하지 않던 일, 곧 환자들의 피와 고름을 닦고 치료하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 그리고 '고통이 있는 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여성들이 처음부터 보구녀관을 신뢰한 건 아니었습니다. 환자들은 서양 의사가 혹 자신들을 독살하려는 게 아닌가를 의심하여 의사에게 직접 약을 먹어 보라고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보구녀관에 대한 신뢰가 싹트기 시작한 계기는 한 화상 환자를 치료한 일이었습니다. 혼기가 꽉 찬 16세 소녀가 먼 지방에서 찾아왔습니다. 그의 손은 4년 전 입은 화상으로 손가락 세 개가 손바닥에 엉겨 붙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결혼하지 못했고, 가족들은 그것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로제타 선교사는 손가락을 손바닥으로부터 분리하고 환자의 팔에서 피부조직을 떼어 피부가 없는 부분을 덮는 자가 이식수술을 시도했습니다. 환자와 가족은 펄쩍 뛰었습니다. 조선에서 피부이식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로제타 선교사는 자신의 피부조직을 직접 떼어 소녀에게 이식했습니다. 다른 선교사들이 동참했습니다. 그것을 본 환자와 그의 오빠도 자신의 피부를 내놓았습니다. 그 아이의 손은 말끔하게 고쳐졌습니다. 이를 보고 감동한 어머니는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로 감사의 편지를 썼습니다. 이 일은 '미담(美談)'이 되어 조선 사회에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보구녀관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보구녀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병원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간호학교이기도 했습니다. 1903년에 안식년 휴가에서 돌아오던 로제타 선교사는 간호 선교사 마가렛 에드먼즈(Margaret J. Edmunds)와 동행했습니다. 에드먼즈 선교사는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간호사 양성을 맡아줄 사람을 간절히 기다린다는 말에 마음을 움직여 무려 6개월의 긴 여정을 거쳐 이 나라에 왔습니다. 그는 '간호원'이라는 용어를 처음 탄생시킨 주인공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nurse"를 부르는 명확한 호칭이 없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를 '간호부(看護婦)'라 번역했습니다. 중국에서는 '간부(看婦)'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애드먼즈 선교사는 '간호원(看護員)'이라 번역했습니다. 여자 '부(婦)'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뜻의 '원(員)'을 붙인 것입니다. 간호원은 남성과 여성 모두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즉 여성을 남성과 동일한 사회의 일원으로 존중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런 번역은 하나님 앞에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는 기독교 신앙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은 번역이었습니다.

이로부터 3년 뒤 1906년 설날에 보구녀관에서 첫 번째 '예모식(禮帽式, capping ceremony)'이 열렸습니다. 간호 교육과정을 완수한 수련생에게 간호모를 수여하는 '가관식'이었습니다.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에서 '관(갓)'은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오직 남성들만 쓸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조선의 여성들도 머리에 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예모식의 주인공은 이그레이스와 김마리아였습니다. 그레이스의 본명은 '복업'입니다. 그는 다리에 장애가 있는 노비 소녀였습니다. 다리 뼈가 괴사해 더 이상 움직 수 없게 되자 주인은 그를 버렸습니다. 마르다는 코와 오른손 손가락이 잘려 나간 사람이었습니다. 의처증에 사로잡힌 남편이 그의 코와 손가락을 잘랐고 아이들마저 빼앗아 갔습니다. 그레이스와 마르다는 가족도, 돌아갈 곳도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버려진 이 두 사람을 품으셨습니다. 그리고 머리에 관을 씌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세계를 위해 일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예레미야 8:22) 예레미야의 탄식을 김점동도 들었습니다. 이화학당의 네 번째 학생이었던 김점동은 보구녀관에서 로제타 선교사를 도와 환자들을 돌보다가 자신도 의사가 되는 꿈을 꿉니다. 지금은 의대에 가는 게 소원이지만 당시 조선에서는 환자들의 피고름을 만지고, 여자이면서 남성의 몸을 만져야 하는 의녀(醫女)를 기녀(妓女)와 동일시하면서 천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김점동은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시는]"(고린도전서 1:26-29)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게 어떠한 어려운 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이 이 세상에 어떻게 오셨는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어떻게 치료하셨는지를 생각하면 제가 해야만 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의사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로제타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볼티모어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어 귀국했습니다. 김점동은 남녀를 통틀어 근대 의학을 공부한 조선의 첫 의사입니다. 서재필이 1893년에 미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나 미국인으로 귀화한 후 조선에서는 의료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정식 면허를 지니고 조선에서 활동한 최초의 의사는 김점동입니다.

김점동이 보구녀관에서 처음으로 개복수술을 했을 때 그 솜씨가 놀라워 사람들은 그가 '귀신의 재주를 가졌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보구녀관에 앉아 환자를 기다리고 있지만 않았습니다. 가마가 들어가지 못하는 척박한 지역에까지 소나 말을 타고 가서 무료로 진료했습니다.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나 찾아가 사람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러다가 과로를 이기지 못하고 1910년 33살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병이 죄가 되던 시절, 여자는 사람이 아니어서 치료도 받지 못하던 시절, 고단했지만, 김점동의 삶은 하나님 앞에 바쳐진 길르앗의 향유와 같았습니다. 김정동이 평소에 가장 좋아했던 찬송가는 오늘의 417장 <주 예수 넓은 품에>라고 합니다. "주 예수 넓은 품에 나 편히 안겨서 그 크신 사랑 안에 나 편히 쉬겠네."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으면 이 찬송가를 그렇게 좋아했을까요. 한 시도 쉴 틈 없는 고단한 삶이었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고치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했습니다.

김정동의 죽음은 로제타 선교사의 아들 셔우드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모'라 부르며 가깝게 따랐던 김점동이 폐결핵으로 죽자 셔우드 홀(Sherwood Hall)은 "수많은 한국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결핵을 맞아내는 데 온 힘을 바치리라" 결심하고 결핵 전문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에 결핵 요양원을 세웠습니다. 1932년에는 '크리스마스실(Christmas Seal)'을 최초로 발행해 그 수익금을 결핵 퇴치에 기부했습니다. 지금도 크리스마스실을 발행됩니다. 조선 최초의 의사 김정동은 지금도 그렇게 우리 곁에 있습니다.

나라가 무너지고 백성이 도탄에 빠진 절망의 시대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없느냐? 그곳에는 의사가 없느냐? 어찌하여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질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이 아픈 세상에 정말 치료가 없습니까?"라는 눈물의 탄식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이 절규는 희망의 문을 엽니다. 왜냐하면 그는 압니다. 길르앗에는 여전히 유향이 있고, 하나님은 우리를 고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압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라파'(יְהוָה רֹפְאֶךָ, The Lord who heals you), 곧 고치시는 하나님(출애굽기 15:26, 잠언 3:8)이라고 성서가 말합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 고치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마태복음 4:23-24) 했습니다. 예수님은 고치시는 분입니다. 그가 곧 '길르앗의 유향'입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없느냐? 그곳에는 의사가 없느냐? 어찌하여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하는가?'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렇게 들립니다. '하나님, 제 몸이 아픕니다. 제 마음이 무너집니다. 정말 회복의 길은 있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 아직도 길르앗에는 향유가 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여전히 고침이 있고, 성령 안에는 여전히 회복의 능력이 있습니다. 아직도 길르앗에는 향유가 있습니다. 당장은 고통이 사라지지 않아도, 주님은 그 고통 속에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눈물이 마르지 않아도, 주님은 그 눈물로 우리의 영혼을 적시십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당신의 자녀를 버린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몸이 약해질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손길은 더 가까워집니다. 길르앗의 향유는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흘러내립니다. 그가 우리의 상처를 만지시고, 우리의 고통을 함께 지시며,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가 '길르앗의 유향', 곧 상처 입은 자를 고치시는 분입니다. 보구녀관 138년의 역사를 기억하는 이 예배가 여러분의 몸과 마음의 상처에 이 길르앗의 향유가 스며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꼭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병들었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 아직도 길르앗에는 향유가 있다. 여전히 길르앗에는 상처를 낫게 하는 항유가 있다. 지금도 고치시고 싸매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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