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무와 서남동의 민중신학을 종교현상학적 관점에서 다룬 연구논문이 뒤늦게 주목을 받고 있다. 김종만 연구원(경희대)은 「신종교연구」 제46집에서 "민중신학은 철 지난 과거의 자연신학이나 퇴물신학이 아니라 오늘날 민중과 민중사건 가운데서 살아 숨 쉬어야 할 '사건신학'이자 '현장신학'이다"라며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에 주요한 민중 사상의 기반이 되었던 민중신학을 다시 고찰했다.
그는 이 연구논문에서 민중신학의 선도자격인 대표적 학자 안병무와 서남동의 민중신학의 특성과 의의를 살펴봤다. 태동 당시와 다르게 현재 영향력이 미비한 민중신학을 재고찰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작금의 한국 사회의 문제들인 부동산, 저출산, 청년 실업, 교육 불평등,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 등으로 야기된 각종 재난적 수준의 현실로 보건대, 민중신학의 주요 논제들이 이 시대에 다시 부각 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김 연구원은 전했다.
그러면서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민중은 존재한다. 50여 년 전 민중과 오늘날 민중의 신음소리는 다르지 않다.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민중의 범주만 바뀌었을 뿐이다"라며 해당 연구논문의 의의에 대해 "한국 민중신학의 두 거장인 안병무와 서남동의 신학 사상을 다시 소환하여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도태되고 소외된 무수한 민중들의 고통에 다시 응답하는 종교적 니즈를 제시하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이 연구논문은 민중신학의 성격을 종교현상학적인 관점으로 기술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1부에서는 민중신학의 태동과 발전을 통해 한국 민중신학이 어떤 역사적 배경 가운데 탄생했는지, 그리고 민중신학의 성격 혹은 특징은 무엇인지를 고찰했다. 2부에서는 민중신학의 1세대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두 신학자인 서남동과 안병무의 신학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이와 관련 서남동 편에서는 민중과 한(恨, Han)의 개념, 이를 중심으로 한 서남동 신학을, 안병무 편에서는 이원론과 실체론의 사유체계에서 '예수민중사건'을 중심으로 한 사건으로서의 신학적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한 안병무의 신학사상을 다뤘다. 마지막으로 한국 여성신학의 관점에서 조명된 민중신학의 의의를 살펴봤다.
그 중에서도 연구논문의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민중신학의 두 거목을 비교하는 내용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죽재 서남동에게서 본격화된 한에 관한 민중신학적 사유의 전개를 분석한 김 연구원은 "서남동은 전통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죄와 민중의 현실 경험과 문법을 통해 잉태된 한을 구분한다"고 설명했다.
서남동에 의하면, 전통 신학은 죄의 문제를 하나님과 인간의 문제로 일원화하고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죄의 문제를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했다. 이에 김 연구원은 "전통 신학의 이러한 잘못된 전제는 지배자의 신학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그러므로 신학의 고려 대상은 "신과 인간 사이의 종교적 관계만이 아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회정치적 관계와 그것의 역사적 결과물로서의 구조적인 악"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원은 "죄와 한을 각각 지배자의 언어와 민중의 언어로 읽고 있는 서남동은 한을 억압받는 자들의 정치적인 의식이나 약자들의 단념의 감정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민중의 자의식이 자라나는 것으로 파악한다"고 했으며 "민중의 경험으로서의 한(恨)인 한, 한국인들은 '한'의 사람들이며 따라서 민중신학은 '한의 신학'이다"라고 전했다.
한풀이에 대한 종교현상학적 기술도 이어갔다. 그는 "서남동이 한과 단의 변증법을 말한 이유는 부당하고 말 못할 억눌림과 억울한 사정을 푸는 '한풀이'는 종교의 중요한 기능이지만 여기에 머문다면 '한풀이'는 아편 역할에 그치거나 이를 이용해서 지배자들의 권력을 연장하는 결과만 초래한다는 생각 때문이다"라며 "이를 넘어 '한풀이'는 '저항'(protest)으로 나아가 "모든 사회적 부조리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밝혀내고 고발하는 데로 나가야" 함을 강조한다"고 전했다..
계시의 하부구조라는 신학 방법론을 창안한 서남동의 신학도 조명했다. 그는 "계시의 하부구조는 신의 계시 자체가 물질적 하부구조를 가지는 것으로, "계시가 존재의 토대가 아니라 존재가 계시의 토대"라는 반전 어법이다"라며 "이것은 사회학적 해석 혹은 물질주의적 해석이 라는 이 론을 통해 기존 신학을 비판하고 새로운 신학을 구성하려는 기능적 도구나 인식적 틀로써 작동한다"고 전했다.
이울러 '민중 메시아론'을 주장해 논란이 된 안병무의 민중 구원론에 대해서는 "민중 메시아론은 한마디로 민중은 구원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이며 민중 사건 속에서 스스로를 구원한다는 것이다"라며 "그러나 안병무의 민중 구원론은 민중이 민중 사건을 통해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차원과 비민중 계층은 민중을 향한 회개를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차원으로 양분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병무 민중신학의 최종 도착지는 생명이라고 강조한 그는 "안병무의 지적대로, 민중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체념하지 않고 누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생명의 근원이요, 생명 자체"이다"라며 "따라서 안병무는 민중을 성서의 루아흐(ruach), 프뉴마(pneuma), 동양의 기(氣)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난과 수난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생명 자체로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민중 사건으로 파악한다"고 전했다.
▶글/기사가 도움이 되셨다면 베리타스 정기구독 회원이 되어 주세요. 회원가입 방법은 하단 배너를 참조하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