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년 새해를 며칠 앞두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실에서 총무로 공식 취임한 지 꼭 한달을 맞이한 박승렬 신임총무를 만났다. 박 총무는 신년 인터뷰에서 특정 종교의 정치 개입을 문제 삼으며 정교분리 원칙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여론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종교의 정치 개입'을 부각시키는 프레임 짜기가 자칫 시대를 분별하고 사회 정의를 위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온 공교회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을지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또 한편 총무 재임 기간 중점 사업으로 이주 노동자 인권 문제, 기후 위기 문제, 남북 평화 문제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해 소신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인터뷰 중인 박승렬 NCCK 신임총무
- 공교회 연합기구 NCCK 신임총무로 공식 취임 하신지 한달이 지났습니다. 교단의 이해 관계를 잘 조율하고 결의된 내용을 실행하는 능숙한 중재자 역할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연합과 일치의 정신에 기반한 교단주의 극복 문제도 과제일 것입니다. 어떠한 리더십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돌파해 나갈 계획이신가요?
아무래도 이제 연합기관이다 보니까 자기의 어떤 독창성들보다 공감대가 형성된 일들을 우선적으로 하게 됩니다. 그리고 공감대가 되는 게 아무래도 이제 교회 공통의 과제 즉 사회적인 아젠다들에 대해서 쉽게 공감대를 만들어지죠. 그래서 NCC라고 하면 어떤 교회들이 사회적인 문제의 어떤 창구와 같은 역할을 좀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각 교단 간의 어떤 문화적인 또 교단 간 정서에 이런 차이가 있어서 그런 걸 조정하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한 축이고 또 하나는 서로 개신교들은 굉장히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잖아요. 다양하지만 "우리는 같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하는 이 공통점을 계속 발굴해서 강조하는 게 이제 NCC가 할 일인 것 같습니다. 근데 하다 보니까 사회적인 아젠다들을 중심으로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드러나 보였고요. 안타까운 것은 교회 내의 일들은 사회적인 관심이 부재해서 그런지 언론 등에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다 보니까 일은 하고 있는데 별로 드러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앞으로 NCC는 이 교회 내부의 다양함하고 사회를 향한 교회의 목소리 또 사회가 교회에 요구하는 목소리 이런 걸 적절하게 조율하는 게 NCC의 몫인 것 같습니다.
비교적 우리 전임 총무님들께서 그 일은 좀 잘해 오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언론에 NCC가 이미 하고 있는 일들을 좀 더 더 자주 노출시켜서 NCC가 일하고 있다라고 하는 걸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 보이려고 노력하려 합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 보면 잘난 척 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데 가능하면 저희 임무는 교회가 열심히 하고 있다라는 것을 노출시키는 게 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좀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 특정 종교의 조직적인 정치 개입 의혹으로 종교재단 해산 문제가 때아닌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부패한 여야 정치인들의 뇌물 수수 등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 정치 현실이라고 봅니다. 신명기에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신16:19-20))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정의를 왜곡하는 뇌물 스캔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으신가요?
저는 지금 우리 편집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1차적으로 정교 분리 원칙에 대해서 교회는 분명하게 그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자기의 힘으로 정치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건 일단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반대하고요. 또 하나는 역으로 정치 권력이 종교의 어떤 비판적 기능이나 이런 문제까지 이제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도 역시 반대합니다.
근데 지금 지적하신 것처럼 현재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는 정치 권력이 자기들의 어떤 취약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종교에 손을 내밀고 그걸 끌어들이고 하는 문제잖아요. 그래서 돈을 요구하고 사람을 요구하고 그런 점에서 지금 돈을 주고 사람을 제공하는 등 종교 집단의 개입도 비판 받아야 되지만 그런 것을 요구한 그리고 은연 중에 이를 조장한 정당과 정치 권력에 대한 문제가 오히려 사안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꾸 종교가 정치에 개입했다 라고 하는 것으로 이렇게 프레임이 짜지는 것에 대해서는 좀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정확하게 정치가 종교를 끌어들인 문제에 대해서 단호한 대처가 좀 필요하다. 처음에는 저도 종교가 개입했다고 생각했는데요. 나중에 점점 밝혀질수록 정치가 종교를 끌여 들였다 라고 하는 지점이 더 본질적인 측면으로 드러나고 있어서 그 점에 대해서는 좀 그렇지 않아도 정부 여야 정치인들이 특검을 하겠다고 하니까 그렇게 해서 사법적인 수사와 처벌 이건 좀 분명하게 진행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또 교회의 또 원칙이니까요.
- 사회적 약자를 위해 현장에서 헌신하신 삶의 이력들이 오늘의 총무님을 있게 한 것 같습니다. 이사야서에는 바벨론 포로 생활 끝에 이스라엘 공동체에 이방 외국인도 백성으로 받아들이는 관대한 포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사56:3,6) 이기주의, 배타주의가 팽배해 지고 있는 오늘 한국사회에서 이방인은 누구이며 교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저는 이제 이사야서의 말씀도 있습니다만 서로 비슷한 시기에 같이 나온 신명기 말씀이나 출애굽기에 있는 말씀처럼 늘 이스라엘을 향해서 너희가 누구였는지 과거를 잊지 말라고 늘 깨우쳐 주시는 대목이 있습니다. 너희도 이집트에서 이방인이었다 나그네였다. 다시 말하면 너희들 이집트에서 노예살이 했다 계속 떠돌이로 살았던 주제에 그런 걸 늘 기억하고 있으라고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역사에서도 보면 멀리 가지 않고도 1910년대 간도로 이민 가셨던 우리 선조도 있고 하와이로 떠난 분들도 있고 1960년대에 서독에 광부로 간호사로 70년대 80년대는 중동의 건설 노동자로 그리고 얼마 전에 있었던 버지니아 주에서는 우리 사회의 최고급 엘리트 기술자들도 범법자 내지는 미등록 불법 노동자 취급받았던 게 우리 역사잖아요.
저는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가 우리의 과거가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잘 살게 되었는가 보면 정말 중동에 나갔던 우리 형님들 아버지들이 벌어왔던 돈도 있고 또 서독에 갔다 온 분들도 있고 지금 버지니아에서 돈 벌어온 것도 있고 저는 우리의 삶의 뿌리를 좀 잘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먼저 이방인 이주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 약 280만 명에 이른다고 그러는데 이주 노동자들에 대해서 정말 환대까지는 못 해주더라도 최소한 박해하거나 폄훼하거나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용산 대통령실 앞에 뚜안이라고 하는 베트남 여성 노동자가 지난 10월 말에 이제 사망해서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서 지금 농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제도 그 분을 추모하는 기도회를 갔다 왔습니다만 왜 우리가 이주 노동자들에 대해서 그렇게 폄하하고 또 그리고 그들에 대해서 무시하고 있는가 그건 우리의 과거를 좀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라고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관대해지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환대하는 문화 그리고 이방인 나그네들을 이주 노동자들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 가장 헌신적인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사랑의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는데요. 교회에서 낯선 자들에 대한 거부감이 더욱 심하고 자꾸 뭐랄까 배척하는 언어들이 많이 나와서 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정심으로 들여다볼 문제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과거를 들여다보듯이 우리의 자매와 형제를 들여다보듯이 그렇게 나의 자매와 형제처럼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는 주의 말씀대로 좀 실행에 옮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이 문제가 단순히 어떤 사적인 측면이 아니라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미국이나 유럽에서 구 파시즘이 움직이고 만들어지는 어떤 기본 토대 토양 같은 게 이방인들에 대한 적대감이거든요. 난민,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적대감 말이죠. 그들이 나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라고 하는 거짓이 이주민 혐오 선전 선동의 토양이 되고 있었어요. 우리 사회에서도 머지않아..아니 지금도 일어나고 있잖아요. 혐중. 이런 정서들이 말이죠. 그래서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옹호와 환대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가는 계기 혹은 발판이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신앙적으로 우리의 성서가 말씀하신 바대로 실천하자 라고 하는 점에서 또 하나는 민주주의를 지켜가자 라는 측면에서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환대와 선교 좀 이런 게 좀 우리 안에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교회의 전통적 용어가 현장에서 사회 부조리로 고통 받는 이주민 등 민중의 언어를 담아내기 어렵다는 민중신학적 성찰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죄라는 용어는 인간들 사이 또는 구조적 악에 대한 응답으로서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지적인데요. 이에 고통 받는 민중의 현장에서는 죄 보다 한(恨, Han)이라는 용어를 채택하면 좋겠다는 의견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제 죄라고 하는 걸 우리가 이제 어떤 도덕적인 결함이나 또 사회법적인 이제 이런 죄와 어떤 연상되는 거잖아요. 근데 성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제 죄의 맥락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한이라고 하는 말은 어떻게 보면 이 죄라는 말을 우리의 정서에 맞게 표현한 것 같고요. .오히려 한을 성서적 표현으로 하면 죄라는 용어로 이것은 그냥 서로 환치되는 관계라서 선택적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한이라고 표현하신 분의 그 마음도 충분히 공감하고요. 그런데 이제 교회라고 하는 전통적 언어 속에 죄라고 이야기를 하면 내가 온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셨는데 그 온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겸손한 표현으로서 죄라고 표현을 쓰고 있는 부분이 많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가 주의 말씀을 들은 대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지만 우리 사랑하지 못하잖아요. 쉽지 않죠.
그리고 또 때로는 용서하라고 하지만 용서하지 못하죠. 분노하고 또 그 개인적인 분노도 있고요. 또 어떤 구조에 대한 분노도 있고요. 그 구조에 대한 분노를 죄라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민망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까 한이라고 하는 죄라고 하는 부정적 언어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서 좀 그런 용어를 쓰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구조적인 잘못된 것에 대한 우리의 분노와 또 한. 즉 구조적 악에 대해서 순치되어버린 나의 어떤 부족한 삶에 대한 그런 진지한 고백으로서 이제 한 또는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의 대중적인 한국적인 정서와 언어로 한이라 표현하는 것도 우리가 목회자로서 충분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죄와 한은 취사선택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나 할가요? 죄라고 하는 표현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죄에 대해 고백하며 그 다음에 반성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아갈 수 있어서 저는 그런 점에서 교회가 쓰고 있는 전통적 언어도 대치될 게 아니라 그냥 계속 유지되는 것이 필요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중인 박승렬 NCCK 신임총무
-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교회가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개혁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는 오래된 비판도 같은 맥락에서 제기된다고 하겠습니다. 대사회적 활동 못지 않게 교회 내부 갱신 및 자정 활동도 필요해 보이는데 NCCK에 이런 활동을 기대해도 좋을까요?
사람이 살면서 말하기 제일 좋은 게 남의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남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십거리고 또 전 국민의 스포츠처럼 돼 있어요. 그런데 이제 자기 반성과 자기 갱신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잘못을 지적해야 되는 경우도 있고요. 또 내 잘못을 스스로 드러내야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러니까 자기 갱신 자기 개혁은 참 쉽지 않은 대목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연합기관 활동을 하다 보면 우리의 허물을 지적하는 일은 서로 불편하니까 좀 잘 안 하려고 하는 점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점에 대해서 솔직히 인정을 하고 있는 부분이고요. 그런데 다시 말씀드리면 그만큼 쉽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게 맨 앞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NCC의 두 개의 축 중 하나는 교회가 사회에 대해서 또 사회가 교회에 대해서 하는 이 사회적 접촉면, 즉 링크 역할을 하는 것 또 하나는 다양한 교파들 사이에 서로 공감대를 만들어서 정말 개신교가 추구했던 바들은 과연 뭐냐 그 가치관 그러면 각각 교파는 다르지만 추구하는 바들은 어떻게 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거냐에 대한 거잖아요.
그래서 서로 다양성을 인정하되 우리 내부에 일어나고 있는 허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갱신할까 그건 좀 큰 숙제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목회자들의 잘잘못이 나와도 연합기관은 그 문제에 대해서 도의적인 책임은 있지만 구체적인 어떤 잘못을 지적하거나 징계하거나 이런 권한과 논의의 테이블이 열리질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구조적 한계를 좀 안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그런 거에 대해서 좀 이제 대안을 제시하는 형태로 활동을 해 왔습니다. 교회의 어떤 건전한 내부 민주주의는 어떠해야 되는가? 그 핵심은 지금 현재 교회 내에서 권한을 많이 갖고 계신 분들이 자기 권한을 교우들하고 어떻게 나눌 거냐에 대한 문제 그래서 그건 교회 내부의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일 것 같고요. 또 많이 또 비판받는 분들이 이제 부분이 이제 투명한 재정에 대한 문제인데요.
근데 여러 다른 종단이랑 비교해서 우월하다 라고 말하기는 좀 계만적지만 그래도 비교적 한국교회는 아주 대형교회나 특수교회를 제가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국교회는 거의 보편적으로 재정의 투명성과 또 그러니까 헌금의 어떤 투명성 그리고 재정 집행의 투명성, 결산과 결과에 대한 투명성은 비교적 잘 지키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 비판받고 있는 부분들이 목회자들에 대한 과도한 이제 사례 또 그리고 국가에 대한 납세에 대한 문제 이제 몇 사람들이 지금 좌지우지하는 거 아니냐에 대한 이런 이제 큰 몇 개 교회들의 사례가 마치 교회의 전체 사례인 것처럼 왜곡되어 있는 부분들도 좀 있습니다.
저는 한국 교회에 거의 90% 이상 거의 99% 가까이는 거의 다 공개하고 투명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교단에 이제 헌법위원회에서 활동을 해왔는데요. 공동의회나 제직회나 당회나 이제 장로교 직제 하에서는 모든 게 투명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제 교회의 직제에 따라서 또 그리고 교회의 규모에 따라서 만약 교회가 엄청 크면 이게 가령 1200명에 있는 교회 시스템하고 만 명에 있는 교회의 시스템하고는 다를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그 시스템에서 차이에서 생겨나는 갭들이 좀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교단의 헌법들은 이제 평균 사이즈에 맞춰가지고 이제 제정되어 있는데 그 제도대로 한다면 별로 문제될 건 없는 것 같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목회자와 교회 권력자 기득권층들의 어떤 윤리적인 파탄 이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징계권을 잘 행사하지 못한 점 이게 이제 어떻게 보면 교회가 잘못하고 있다라고 지탄받고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이제 대형교회 내지는 권력화되어 있는 몇 분들에 대해서 잘못해도 지적하지 못한 채 넘어가고 있는데 저는 그래도 교계 언론이 또 그런 지점을 또 좀 보완해 주고 있어서 저는 그래도 교회가 말은 많아도 비교적 좀 바른 길을 가려고 애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종단들은 그런 문제를 일단 뭐 없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별로 노출시키지 않고 있어서 드러나지 않는 케이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저는 개신교만큼 공개되고 또 언론의 감시도 받고 교인들의 감시도 받는 이 시스템이 그래도 우리를 좀 건강하게 지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신교의 주변 감시 시스템이 그런 점에서 다른 종단들에 비해 더 건강한 상태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총무 재임 기간 중점을 두고 진행할 사업이 무엇인지 소개해 주십시오
제가 제일 염원하는 건 기독교 연합운동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 기반을 좀 확보하는 것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교우들과 사회 시민들이 가지고 관심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교회가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는데요. 첫 번째가 우리 사회에 이제 평화를 위해서 기여하는 교회가 되고 싶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선배들께서 남북의 어떤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일을 해오셨는데요. 그걸 좀 잘 계승하고 싶고요. 그래서 그게 하나이고 이제 두 번째는 기후 재난이라고 기후 위기라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이제 기후 위기에 대한 우리 신앙인들의 좀 적극적인 행보 이런 걸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른 뭐 다양한 활동이 있습니다만 태양광 문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소중한 은혜라고 하는 그 태양광을 에너지로 그리고 우리 사회의 기후 정의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이제 계기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세계 교회나 여기서부터 많은 이제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제가 있는 기간 동안에는 한국교회가 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을 위해서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뭘까 이런 걸 좀 찾아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이제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한국교회가 깊은 관심을 갖고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우리의 선교적 과제이자 또 우리 민주주의를 지키는 과제라고 생각하고 그 일을 좀 돌이켜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 기후 위기 문제에 대해 초교파적 대응을 하겠다는 방침도 밝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수 교회는 진보 교회를 바라볼 때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대체로 용공이다 종교다원주의다 포괄적차별금지법에 찬성한다 등의 오래된 질문들에 대해 어떻게 해결해 나가실 계획입니까?
일단은 이제 한교총에 참여하시는 교회 지도자들은 실제로 NCC와 그렇게 상당히 결이 중복돼 있는 지점들이 많이 있어요. 우리 통합에 교단 감리교 교단 다 거기에 참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용공이다 라고 하는 그런 비판에 대해서 이미 스스로 이제 검증하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낡은 언어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종교 다원주의에 대해서는 그렇게 이제 표방을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종교 다원주의를 실행한 게 없고요. 다종교 사회에서 상호 존중하는 그 관계를 맺자라고 하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문제보다 다종교 사회에서 서로가 협력하고 존중해서 이제 갈등하지 않는 관계 서로 종교적인 이유로 해서 다투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내는데 지금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마 우리 감리교 지도자들이나 예장 통합 한교총과 우리 NCC에 동시에 가입 되어 있는 두 교단이 그런 중재자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오해에 대해서 불식시킬 수 있는 계기는 많이 만들어질 것이다 생각하고 있고요. 그리고 이제 저는 이제 기후 정의 문제 같은 경우는 진보냐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공감대는 충분히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이제 어떤 정책적인 아젠다로 공동의 어떤 입장문을 만들어낼까 뭐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몇 년 전에 한교총하고 탄소 협약을 맺었어요. 그래서 탄소를 줄이자 라고 하는 이 협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제는 좀 더 진일보해서 전국 교회에 전국 교회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씌우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인 태양광을 에너지로 만들어내는 일에 우리 서로 협력하자라고 하는 거 좀 더 이제 한교총 지도부와 이제 좀 더 더 긴밀한 토론을 거치면 만들어질 수 있지 않겠나 이렇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 새해 독자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 해주십시오.
2026년 새해에 우리 베리타스 독자들과 많은 우리 온 땅의 시민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 있기를 빕니다. 26년도는 우리 NCC에서 글리온 40주년, 글리온 40주년을 기념해서 세계 평화대회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그런 기도 동역자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남북 평화 문제와 관련된 글리온 40주년에 대해 부연 설명 부탁드립니다.
1986년 전두환 정권 시절. 서슬퍼런 그때 그 시절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교회가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기여하자고 하는 그 결단으로 스위스 글리온이라고 하는 마을에서 남북 교회 지도자들이 만났습니다. 그래서 해방 후에 분단된 후에 처음으로 남북 교회 지도자들이 상봉했던 회의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남북 평화를 위해서 서로 협력하자라고 이제 다짐을 하고 몇 차례 후속 모임을 통해서 글리온 선언을 이제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역사적인 선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역사적 의미 그리고 또 그것이 가지고 있는 현재적 의미를 좀 살려서 지금 이제 남북 관계가 꽁꽁 얼어붙어 있는데요. 우리 교회의 신앙인들이 그런 돌파구를 한번 만들어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침 또 1986년도에도 WCC가 많은 이제 남북 교회의 이제 메신저 역할을 해서 만나게 되었고요.
이번에도 WCC가 좀 그런 중개자 역할을 해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다시 한번 만들어보자 라고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9월경에 지금 글리온 40주년 기념해서 9월에 서울에서 세계 에큐메니칼 평화대회를 개최할 계획인데요. 그래서 WCC에 관계된 이제 평화운동가들 지도자들 그리고 시민들, 사회단체의 평화 운동가들을 초청해서 한반도의 평화가 좀 남북 관계가 좀 완화되면 동북아시아의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이 냉전 구도의 좀 작게나마 이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겠나 그런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남북의 긴장이 완화되면 세계적으로도 지금 전쟁이 계속되고 있잖아요. 그런 것들도 뭔가 평화를 위해서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라고 하는 이런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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