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신 30:15-20, 엡 4:17-24, 마 6:24-30)
설교문
[새해 인사와 우리 사회의 과제]
여러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6년의 첫 주일을 맞이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새해 첫날과 첫 주간을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저는 매년 초에 반드시 두 가지 일을 합니다. 하나는 유언장을 고쳐 쓰는 일이고, 또 하나는 컴퓨터 데이터를 백업하는 일입니다. 오래전 지곡서당(芝谷書堂)에서 공부할 때, 이사를 하며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 3년 동안 공들여 모은 자료를 전부 잃어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그 뒤로는 백업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유언장 쓰기를 주기적으로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죽음을 깊이 사유하는 만큼 삶이 더욱 농밀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언장을 쓰면서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오늘날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복합 위기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불과 재작년, 현직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내란을 일으키는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했습니다. 만약 그것이 성공했다면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국민의 용기와 국회의 빠른 대처로 비극은 막았으나, 지난 한 해는 그 혼란을 수습하느라 온 사회가 어수선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추락하던 나라를 다시 되돌리고는 있지만, 우리가 지난 3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 것이 사실입니다.
한편, 오늘날 세계는 두 가지 거대한 전환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는 기후 위기와 재앙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생태 전환'이며, 또 하나는 인공지능이 우리 삶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디지털 전환'입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위기는 모두 이 두 가지 전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스위스 제이콥스 재단(Jacobs Foundation)은 2050년의 미래를 네 가지 유형으로 전망합니다. 첫째는 물질적 풍요와 자유가 제약받고 기존의 활동이 불가능해지는 '붕괴(Collapse)'입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극한 폭염, 가뭄 등이 식량과 물 부족을 초래하고 지역과 국가 간 갈등이 증폭되고, 이로 인해 기후난민을 발생시키거나 또는 기후 관련 질병이 확산되면 세계 경제는 곤두박질치는데, 이런 붕괴는 예기치 않게 다가오지만 피폐해진 세계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여 기술적 실업이 만연하고 소수 엘리트만이 풍요를 누리는 '긱경제 프레카리아트(Gig Economy Precariat)'라고 이름 붙인 미래입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전문직 일자리마저 위협받는 지금의 모습에서 이미 그 단초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작년 3월 13일 산업연구원은 "인공지능(AI)이 국내 일자리 327만개(13.1%, 2022년 기준)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고, 그 중 전문직 일자리 196만개가 AI에 대체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59.9%). 실제로 변호사, 회계사, 통번역사, 프로그램 개발, 심지어 상담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 온 산업혁명이 인공지능 시대에는 인간의 사고 능력마저 대체하면서, 수많은 전문직 일자리가 줄고, 동시에 지금 전 세계는 경력직을 채용하고, 신규 채용은 급격하게 줄어드는 일들이 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잘 사용하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삶의 질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날 것입니다.
셋째는, 성장의 욕망을 내려놓고 스스로 소비를 제한하며 지구의 부담을 덜어주는 '넷제로(Net-Zero)'의 미래입니다. 지금 생산되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기에 잘 나누어 대부분 사회 구성원들이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도록 하면서, '소비의 자유'에는 제한을 두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스스로 미니멀 라이프를 살아가는 미래입니다.
마지막은 기술의 성과를 모두가 누리며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되어 창조적 활동에 전념하는 '완전 자동화 된 인공지능의 편리함(Fully Automated AI Luxury)'이 보장할 화려한 미래입니다.(김병권 지음, <AI와 기후의 미래>, 30-34.).
우리 모두는 네 번째 미래를 기대하지만, 정작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 아니 어떻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지는 오리무중입니다.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급변하는 기술 속에서 도태 될까 불안해 하며, 해마다 늘어나는 기후 재앙의 위협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합 위기 속 인간의 삶과 불안 조장 사회]
문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정작 인간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 이 역설적인 현상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첫째 우리의 몸과 뇌가 여전히 구석기 시대, 즉 수렵과 채집으로 생존하던 시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구석기 시대 인류는 맹수를 만났을 때 심박수를 올리고 근육을 긴장시켜 싸우거나 도망쳐야 살 수 있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소화나 면역, 인지 기능에 쓸 에너지까지 근육으로 몰아넣는 이 반응은 당시에는 매우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이 반응은 오히려 문제가 됩니다. 수능 시험을 치르거나 취업 면접을 보는 현대인에게 소화 기능이 떨어지고 근육이 수축하는 스트레스 반응은 문제 해결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냉철한 사유가 필요한 상황에서 우리 몸이 본능적인 공포와 분노에 사로잡히기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몸만 아파지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가 이러한 인간의 불안을 교묘하게 조장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가장 불안을 많이 느끼는 것들 중에 하나가 건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아프기도 하고, 때로 아프면서 더 성숙하는 것이기도 한데, 요즘 사람들은 조금만 몸에 이상이 있어도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불안한 마음을 부추기는 곳이 병원이기도 합니다. 2010년 이후로 전국의 검진 기관들이 해마다 2배씩 늘고 있는데, 이곳에서 건강검진 상품을 내놓으면서 이것을 하지 않으면 마치 몸에 큰 이상이 생길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임신한 여성이 산부인과에 가면 병원에서 뱃 속에 있는 아이의 건강 상태를 살피는 온갖 검진을 추천합니다. 검진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큰돈을 주고 모든 검진을 받습니다. 결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나옵니다. 그러면 안심을 합니다. 이런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많은 검진이 다 필요한 것도 아니고, 검진을 해서 설사 어떤 판정을 받았다 해도 실질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습니다. 만약 아이가 작은 장애가 있다고 하면 아이를 낳지 않을 건가요?
사교육 1번지라고 불리는 대치동 학원가가 있습니다. 한때 이곳에서는 학생들의 기억력에 좋다면서 '물범탕'이라는 보양식이 불티나게 팔린 적이 있습니다. 60포에 50만원 정도 합니다. 찬 바다에 사는 물범을 수입해서 끓여서 만든 탕인데 여기에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오메가 쓰리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방송국 기자들이 면밀하게 취재해 보니, 이런 물범즙을 110봉지 먹어야 알약 1개에 든 만큼의 오메가 쓰리를 섭취할 수 있었습니다. 수험생 부모의 불안 심리를 이용한 일부 건강원들의 판매 전략에 많은 사람들이 속았던 것입니다. 한국의 잘못된 교육제도와 좋은 대학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단순한 사고,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뭔가 뒤쳐질 것 같은 불안감 등이 함께 작동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생명을 택하라]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요단강 동편 모압 땅에서 모세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긴 설교를 하고, 이제 여호수아에게 모든 지도력을 이양합니다.
모세는 먼저 애굽으로부터 탈출하여 광야에서의 40년 여정을 보내는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돌보셨는지 상기시킵니다. 또한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무와 돌과 은과 금으로 우상을 만들어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고 하나님을 거역한 일도 지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보십시오. 내가 오늘 생명과 번영, 죽음과 파멸을 당신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 중략 ~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당신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손이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십시오."
백 스무 살의 나이에도 정정한 기력을 가지고 있었고, 눈에 빛이 가득하였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조언을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을 택하라고 간절히 말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리석게도 생명과 복을 택하지 않고, 사망과 저주를 택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을 따라야 했지만, 늘 빗나간 마음으로 하나님께 등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이들이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 사망과 죽음의 길을 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방금 말씀드렸지만, 우리 몸은 생명을 택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병을 불러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오늘날 실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채찍질하며 삶을 소진하고 고단함에 지쳐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서 자기를 몰아붙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사회가 피로사회, 우울사회가 된 것입니다.
2017년 대비 2021년 우울증과 불안장애의 증가율을 보면 각각 35.1%, 32.3% 증가하고, 남성보다는 여성이 2.1배, 1.6배로 많고, 20대는 무려 127.1%, 86.8% 증가했습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겪는 어려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통계와 사회적 현상들을 보면 과연 오늘 우리는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중 어느 길을 만들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산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망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미 모세가 말했듯, 그것은 바로 바른 신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신앙인에게 묻는 것은 하나입니다. 요청하는 것도 하나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를 고르는 일입니다. 이길 저길 헤매지 않고 내 인생에 오직 한 길만 남겨두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에 들어가려면 한 번 큰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 결심 없이는 믿음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절대적 자유도 맛보지 못하고 참 생명의 물줄기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평안도 누리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 인생의 결판을 내는 일입니다.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왜 나에게 생명이 주어진 것인가? 내게 주어진 하늘의 사명은 무엇인가? 도대체 어떻게 살 것인가? 그저 평생을 돈 버는 기계로 살다가 죽을 것인가? 목숨 부지하려고 아귀다툼하면서 땅 한 평 더 가지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삶인가? 한 평도 안 되는 땅에 빈손으로 묻힐 거면서, 뭐 그리 많이 차지하겠다고 움켜쥐는가? 한 줌의 재로, 바람 불면 흩날릴 티끌로 돌아갈 거면서 뭐 그리 으리으리한 것을 얻어 보겠다고 애를 쓰는가? 배부르고 등 따스우면 그만인 만족한 돼지로 살 것인가? 아니면 배고픈 소크라테스라 하더라도 제대로 된 삶을 살다가 죽을 것인가? 죽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 앞에 가서 내 인생에 대해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서는 오직 하나님만을 참되게 신뢰하였던 분 예수의 신앙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중의 새를 보고, 들에 핀 백합 한 송이를 보면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을 노래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와 생명의 이치, 참된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영적인 감각, 영성 지능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격언 중에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나 너무 많이 먹어도 죽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넘치는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過猶不及)"는 지혜가 있지요. 이제 우리는 우리의 마땅한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들에 피는 백합화와 솔로몬의 영화를 비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백합이 아니라 "들의 백합"이고, 그냥 솔로몬이 아니라 "온갖 영화로 차려입은 솔로몬"입니다. 각자 자기 자리를 그렇게 잡은 것입니다. 백합은 꽃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더 그윽한 아름다움은 들이라고 하는 장엄한 배경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강한 햇빛, 상쾌한 공기, 드넓은 하늘, 넓게 펼쳐진 저 들판이 합하여 백합 한 송이를 피우고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마찬가지로 인격의 아름다움 또한 그가 처한 자연과 사회, 역사와 문화적 상황에서만 가능합니다. 제 한 몸 소유하여 목숨 부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커다란 사회의 자리에, 긴 역사의 밑자락에 자기를 놓아야 합니다. 온갖 영화로 차려입었다 하더라도 제 한 몸 좋게 하려는 솔로몬보다 저 들의 백합이 훨씬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믿음의 자리는 우주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시야에 동참하는 것이며,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가 품으셨던 하나님 나라의 뜻에 따르는 것입니다. 제 자리를 자기의 욕망에서만 찾고, 신앙마저도 욕망에 물들었기에 오늘날 교인들이 소금과 빛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루를 살지만 그 하루가 언제나 영원의 그 한 점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적정한 우리의 자리가 어디인지 살피시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에베소서의 권면처럼 지난날의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던 '옛 사람'을 벗어버립시다.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읍시다.
우리가 함께 새날을 만들어 봅시다. 올 한 해도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봅시다. 하나님 안에서 중심을 잡고 평온한 내면을 키워나갑시다. 하나님 나라와 의에 대한 뚜렷한 사명감과 소명 의식을 굳건히 하며, 만나는 모든 이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풉시다. 향기로운 이웃이 되어 지혜와 자비로 가득한 새로운 나날들을 함께 일구어 나갑시다."우리가 새날을 낳으리라!"는 이 다짐이 여러분의 삶에서 열매 맺기를 빕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전국의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