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그리스도의 비밀"

2026년 1월 11일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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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사 60:1-6, 엡 3:1-7, 마 3:13-17)

설교문

[성경의 행간을 읽을 줄 알아야]

오래 사귄 사이는 말 한마디 없어도 상대의 눈빛만으로도, 목소리의 떨림만으로 금방 서로의 상태를 알아차리곤 합니다. 알버트 메라비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감정과 태도를 전달할 때, 비언어적 요소(시각이 55%, 청각이 38%)가 언어(7%)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말콤 글래드웰 또한 인간은 단 몇 초 만에 상대방의 표정, 태도, 목소리를 분석해 첫인상을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문자 메시지나 SNS의 텍스트로만 대화할 때 종종 오해를 빚는 이유도 바로 "비언어적 온기"가 거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글로 기록된 성경을 읽을 때도 비슷한 한계에 부딪힙니다. 성경은 '그때-거기'에서 쓰였는데, 우리는 '지금-여기'를 살아갑니다. 성경 저자들의 표정, 그들의 목소리도 확인할 길 없는 우리는 자칫 성경을 자기식대로만 읽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제대로 읽는 훈련과 깊은 묵상을 통해 성경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글자 너머의 '행간'이 읽히기 시작합니다. 죽어 있던 문자들이 살아 있는 음성으로 들리고, 신앙 선조들의 숨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믿음과 일상, 그들의 꿈과 희망, 좌절과 절망 등이 느껴지면서, 우리 또한 그 믿음의 선배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내가 성경을 읽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성경이 나를 읽어 내려가는 신비로운 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설교가 이루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성경 문자 속에 숨겨진 참 생명을 되살려, 시공간을 뛰어넘어 믿음의 선배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입니다. 오늘은 과연 누구와 대화를 나누어 볼까요?

[세례 요한, 시대를 흔든 광야의 외침]

오늘 마태복음서는 "그때에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강으로 요한을 찾아가셨다."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마가복음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예수가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요한을 찾아갑니다.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이 부분은 몇 구절 되지 않는 장면이지만 가볍게 넘길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주현절 첫째 주일입니다. 주현절(主顯節, Epiphany, έπίφανεία)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셨다는 뜻을 지니는데, 서방 기독교에서는 동방 박사가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며 방문한 때로 지키지만, 동방 기독교 전통에서는 바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날을 주현절로 여깁니다. 그래서 주현절이 지난 첫째 주일인 오늘을 또 다른 말로 주님의 세례 주일(Baptism of the Lord)이라고도 부릅니다. 주현절은 보통은 성탄절이 지난 후 열두째 날이고, 날짜는 대개 1월 6일입니다. 주현절은 성탄절보다도 더 오래된 그리스도교 전통의 기념일로 지금 12월 25일로 지키는 성탄절은 4세기나 되어서 확립된 것이고, 그전에는 하나님의 성육신과 예수의 세례에 초점을 둔 주현절을 함께 축하했습니다.

주현절의 두 주인공은 바로 세례의 창시자 요한과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입니다. 이때 예수의 나이는 아마도 20대 후반 아니면 갓 서른에 도달한 때였습니다. 이 젊은 유대 청년은 어떤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길래 갈릴리의 나사렛으로부터 저 남쪽 유다 지방에 있는 요단강까지 세례 요한을 찾아간 것일까요? 갈릴리의 나사렛은 구약성경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그래서 별 볼일 없는 작은 시골 동네인데, 이러한 촌 동네 청년의 가슴에는 어떤 열정이, 또 어떤 하나님의 꿈이 들어 있던 것일까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를 나사렛에 두고 이 먼 곳까지 요한을 찾아간 것일까요? 꼬박 이틀을 걸어야 하는 그 길 위에서 예수님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당시 나사렛 근처 세포리스에서는 로마식 도시 재건이 한창이었고, 민중들은 강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목수였던 아버지를 두었던 예수 또한 이 도시 건설에 참여했을지도 모릅니다. 식민지 시절 자기 땅에 원수의 나라를 위해 도시를 건설해야 하는 이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청년 예수의 가슴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요?

그 길 끝에서 예수가 만난 이는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복음서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세례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며, 메뚜기와 들 꿀을 먹던 사람입니다. 그가 입은 옷과 먹은 음식은 바알과 아세라를 물리쳤던 불멸의 예언자 엘리야를 떠오르게 합니다. 복음서에서 그는 이사야 40장의 메시지를 소리 높여 외치며 야훼 하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그렇다면 세례 요한이 준비하며 만든 길은 무엇일까요? 그는 예언자 전통에 우뚝 서서 한편으로 심판의 소식을 전하며, 또 한편으로 그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합니다. 그의 메시지는 당시 유대인들의 마음을 울렸을 뿐만 아니라 종교와 정치 권력의 심장부를 겨눕니다. 요한은 재야에 머물렀던 제사장 가문의 사람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다가 결국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사람입니다.

우선 그가 베풀었던 세례는 죄를 용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교 전통의 정결 예식은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것이고, 유대인들은 일 년에 최소한 한 번 이상은 예루살렘에 가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자기 죄를 고백해야 했습니다. 당시 성전 제사장들은 매년 반복적으로 집행되는 죄 용서 예식을 집전한다는 이유로 권력을 누리고, 백성들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달랐습니다. 단 한 번의 세례로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요한의 세례 운동은 죄 용서의 권한을 독점하던 예루살렘 성전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파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성전에 갈 필요가 없었고, 그것은 제사장들의 생계와 권력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습니다.

또 세례 요한은 당시 정치권력에도 돌직구를 날립니다. 이복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은 헤롯 안티파스에 대해 정면으로 공격합니다. 당시 권력자들의 결혼이란 정치적 이익을 누리기 위한 것이었고, 그런 정략결혼을 통해 지배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계속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오늘날도 모든 부패와 부정의에 온갖 기득권 세력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그런 부패하고 부도덕한 권력자들을 거침없이 비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옷 두 벌 가진 이는 서로 나누고, 먹을 것도 나누라"는 그의 윤리적 권고는 유대 백성들의 양심을 흔들었고, 세리에게는 "정해진 것 외에는 더 거두지 말라"고 말하고, 군인에게는 "협박하여 억지로 뺏지 말라"고 하면서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고 하면서 배타적이고 국수적인 민족적 우월감도 경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보편적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만이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유대 고대사』를 저술한 역사가 요세푸스는 세례 요한에 대해 이렇게 서술합니다. "세례 요한에게는 항상 사람들이 떼 지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군중에게 행하는 세례 요한의 연설이 항상 그들을 깊게 감동시켰기 때문이었다. 헤롯 안티파스는 두려움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세례 요한이 민중에게 가지고 있는 강력한 영향력은 그의 권좌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군중은 세례 요한이 명하는 대로 기꺼이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에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경향성을 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정치적 위험성 때문에 헤롯 안티파스는 요한을 잡아서 처형한 것이고, 훗날 헤롯의 군대가 나바테아 왕국의 군대에 의해 궤멸 되었을 때, 사람들은 헤롯이 요한을 처형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요세푸스는 전합니다.

이렇게 유대의 많은 사람들도 요한을 비범한 인물로 생각했고, 그래서 예루살렘에서는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그가 메시아인지, 엘리야의 환생인지,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보내실 참 예언자인지를 묻게 했습니다(요한 1:19-22). 예수님께서도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이 없다(누가 7:28)고 하셨고, 예수께서 기적을 베푸시고 능력 있는 사역을 펼치실 때,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세례 요한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마태 14:2)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사도행전에는 알렉산드리아 사람 아볼로와 에베소 사람들이 요한의 세례를 알고 있었다고 전합니다(행 18-19장). 알렉산드리아와 에베소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중요하고 번성한 도시들입니다. 우리는 성서의 증언을 통해서 북부 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부터 동유럽의 튀르키예 지역까지 세례 요한의 학파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

우리는 세례요한이 이런 사람이라는 사실에 기초해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마태복음서의 본문을 읽어야 합니다. 이토록 거물이었던 요한이 예수를 만났을 때, 그를 한눈에 알아보고 자세를 낮춥니다.

"내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내게 오셨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의 이 짧은 대화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물론 이 본문은 예수를 메시아로 생각하는 예수의 제자 그룹에 의해 쓰인 것이기 때문에 세례 요한의 영향력을 낮추고, 오히려 예수를 높이려는 문학적 창작의 한 사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우리가 더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은 예수나 요한이나 둘 다 "모든 의를 이루는 것"에 깊은 관심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마태교회 교인들이 했던 깊은 고민의 결과였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서 13장 52절에는 예수님의 입을 빌어서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를 위하여 훈련을 받은 율법학자는 누구나, 자기 곳간에서 새 것과 낡은 것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마태복음서 저자는 하늘 나라를 위하여 훈련 받은 율법학자로 새 것과 낡은 것을 모두 아울러 쓰임새 있게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즉 세례 요한의 전통과 예수의 전통을 둘 다 포용하면서 하나님의 모든 의를 이루고자 했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시작점에서의 예수는 요한의 문하생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요한의 유대 갱신 운동을 이어받으면서도, 이를 넘어선 독창적인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쳤습니다. 마태복음 저자는 이 두 전통의 만남을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이는 신앙의 전통을 이어가는 과정에 반드시 '겸손함'과 '더 높은 이상'이 공존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예수는 자신의 역량이 충분했음에도 요한을 찾아가 예우를 갖췄고, 요한은 예수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기꺼이 자신을 낮췄습니다. 보통의 리더들은 영향력이 커지면 교만에 빠져 자리를 독점하려 하고, 마치 자기가 신이나 된 듯 행동합니다. 무모한 일에도 욕심을 냅니다. 운이 좋아 성공하면 더 큰 확증편향을 지니게 되고, 간신배들의 아부와 칭찬에 취해서 제 자리를 잃고 또 그래서 한없이 추락하기도 합니다.

요한은 달랐습니다. 요한은 자기의 소명과 사명, 그리고 능력과 한계를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보다 뒤에 온 이가 앞서 있음을 인정하고 심지어 자기 제자들까지 기꺼이 예수에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요한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사회든지 좀 더 나아진다는 것은 다음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더 발전을 해야 가능합니다. 후퇴하지 않으려면 최소한 아랫세대가 윗세대가 이루어낸 것을 잘 이어나가야 합니다. 공동체가 지속하려면 지난 세월보다 한 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다가오는 세대의 노력이 필요하고, 동시에 기존 세대의 양보가 필요합니다. 미래세대가 게으르고 기존 세대가 자기 기득권과 고집을 내려놓지 않으면 희망찬 내일은 보장받기 어렵습니다.

오늘 세례 요한은 자기 자리를 지켜주면서 후배의 탁월함을 인정해 줄 줄 아는 멋진 선배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흐름을 살피며 변화에 자신을 맡길 줄 아는 지혜를 보여줍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고 거기에서 더 한 걸음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성실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노력과 그에 따른 훌륭한 결과를 인정하고 박수를 쳐 줍니다. 요한은 '예수가 흥하여야 하고 자기는 쇠하여야 한다'는 태도로 공동의 선을 위해 기꺼이 무대 뒤로 퇴장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선배의 위엄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세례요한에게서 이러한 자기성찰 능력과 함께 이뤄갈 공동의 목표를 분별하는 감각을 배워야 합니다. 이런 성숙함과 조화 속에서 공동체는 비로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향린교회 또한 이러한 조화가 절실합니다. 새 교우들은 선배들이 일궈온 신앙의 역사를 존중하며 배우고, 기존 교우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새 교우들에게 기회와 자리를 열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늘 나라를 위해 훈련받은 이들로서, '옛것'의 전통과 '새것'의 변화를 지혜롭게 아우를 때, 비로소 이 시대에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주보에 각 부서 가입 신청서 안내가 되어 있는데, 가능한 모든 교인들이 반드시 한 부서 이상 가입하셔서 서로 하나님 나라 사역을 하시기 바랍니다. 신도회는 연령별로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부서는 연령을 초월해서 위아래 세대가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부서와 신도회는 전통적인 교회 조직의 뿌리입니다. 그리고 우리 향린교회는 평신도 중심 사역에 특화된 교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교회에 출석하시는 모든 교우는 반드시 부서와 신도회에 함께 해 주셔서 향린교회의 전통과 현재를 함께 배우고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놀랍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교회가 소금과 빛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모두가 함께 협력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이때 우리가 다같이 지녀야 하는 감각은 바로 열린 마음과 모두를 아우르려는 포용력입니다.

[그리스도의 비밀과 교회의 역할]

오늘 하늘뜻펴기의 제목은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그리스도의 비밀"은 놀랍도록 파격적입니다.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 사람들과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약속을 함께 가지는 자가 된다"는 선언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만이 하나님이 택하신 유일한 백성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이런 선민의식은 자신의 고결함을 지켜 내고 민족적 순수성을 담보하며 제국주의적 계급 질서에 저항하는 강력한 힘을 만들어 냈지만, 동시에 타자를 억압하고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며 배제하고 혐오하는 문화도 동시에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와 친한 사람들과 어울리게 마련이고, 그런 습관으로부터 "우리"라는 의식이 생겨납니다.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리"와 "남들"을 가르는 순간 분열과 갈등, 반목과 싸움, 오해와 질시, 편견과 혐오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유대인들이 약자였을 때, 남을 지배하는 자들에 맞서 싸우며 '우리'라는 의식을 키운 것은 정의의 힘이 되겠지만, 자신들이 강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여전히 '우리' 의식만 강조하면 바로 거기로부터 강압과 폭력이 난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이 바로 이런 논리들로부터 발생하는 것입니다.

현재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자국 중심주의, 즉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들은 전 세계를 혼돈과 불안 속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10년을 넘게 지속해 오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서 최근 미국의 트럼프가 베네수엘라를 침공하여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체포한 사건을 보면서 오늘날 인류의 도덕성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여기저기에서 인간의 정신을 닮은 인공지능이 바꿀 세상에 대한 논의가 물 밀 듯 이루어지고 있는데, 정작 인간의 정신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하고 긴급한 문제는 바로 기후 재앙입니다. 우리는 인공지능(AI)이 가져올 장밋빛 미래를 꿈꾸지만, 정작 그 AI를 구동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전력과 물이 소비되며 기후 위기를 가속화한다는 사실은 외면하곤 합니다. 인간의 편리를 위한 지능은 높아졌으나,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그리스도의 비밀', 즉 공생의 지혜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 위기를 넘어서려면 인간 중심적 사유에서 벗어나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배려와 협력이 절실합니다. 인간 중심적 사유를 넘어서야 하는 이 시기에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 우리만 괜찮으면 남들이 어떻게 살든 아무 상관 없다는 풍조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으니 실로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한국 사회도 비슷합니다. 한국의 난민 정책이나 이주민 노동자에 대한 대책과 실생활을 보면 한국이 얼마나 배타적이고 우리끼리의 문화가 고착되어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국내 이주노동자 수 150만 명에 이르고, 이들은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등 내국인이 기피하는 산업 현장에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데도, 현대판 노예제라 불리는 고용허가제 속에서 일하다 다치고 버려지고 죽음에 이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이주민 노동자들의 사망사고의 60%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기계에 끼이거나 부딪히면서 일어나는데, 이것은 기본 안전 규칙을 지키고 현장 관리만 제대로 되어도 예방 가능합니다. 그런데도 계속 이런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한국 사회가 이주민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뒤쫓아가기에 너무 빠른 변화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 불안과 혼돈 속에서 또 다른 야만적인 일들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 때 과연 그리스도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교회는 과연 어떤 곳이 되어야 할까요?

우리는 세례 요한이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그저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원래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제사장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사가랴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었고,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흠잡을 데 없이 지켰던 사람으로 제사장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했던 이였습니다.

오늘 세례 요한은 당대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살 수 있고,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부도 누릴 수 있는 제사장 가문의 직분을 버리고 거친 광야의 삶으로 자신을 내몹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이었고, 그것이 바로 그의 궁극적 관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믿는다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라고 말하지만, 실은 들짐승에 붙었다가 날짐승에 붙었다가 하는 박쥐처럼 세상과 하나님을 오가며 기회를 엿보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교회는 세상 풍조를 거슬러 온전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하지만, 오히려 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 우리는 어떤 모양의 향린교회를 만들어가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내야 주님 앞에서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요? 이사야의 말씀처럼 우리가 일어나서 빛을 비추려면, 구원의 빛이 우리에게 비치고, 주님의 영광이 아침 해처럼 우리 위에 떠오르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한 해를 보내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비밀은 바로 모든 존재를 우리와 더불어 하나님의 공동 상속자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즉 교회는 세상 풍조를 거슬러 "공생의 지혜"를 선포하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아주 쉬운 말로 "넉넉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넉넉함을 지닌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많이 가져서 넉넉한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다른 이들에게로 흘려보내기에 넉넉한 사람, 하나님의 약속을 함께 품고 있기에 조급하지 않고 넉넉한 사람, 모든 존재에서 하나님의 가능성을 발견하기에 또 넉넉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026년 올 한 해, 서로가 서로에게 넉넉한 사람이 되어 줍시다. 그 넉넉함 속에서 우리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치고, 우리의 가슴은 설렘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넉넉한 사람이 되어 빛을 비출 때, 주님의 영광이 우리 위에 아침해처럼 떠오를 것입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전국의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그리스도의 비밀을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공생의 지혜와 넉넉한 마음을 얻으십시오.

그리하여 해처럼 밝게 빛나는 한 해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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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신학, 세계 신학의 미래 여는 잠재력 지녀"

안병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하엘 벨커 박사(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명예교수, 조직신학)의 특집논문 '안병무 신학의 미래와 예수 그리스도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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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자라난다"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가 발행하는 「신학포럼」(2025년) 최신호에 생전 고 몰트만 박사가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전한 강연문을 정리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