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사 50:4-11, 골 2:6-10, 요 18:33-38)
설교문
[신학 교육 주일을 맞아]
10여 년 전 제가 담임목사로서 첫발을 뗄 때, 청빙하는 교회에서 공동의회를 한 주 앞두고 저를 초청하여 주일예배 설교와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그때 저는 교인들 앞에서 목회 계획을 간단히 보고하고 교인들의 여러 질문에 답했습니다. 공청회가 끝날 무렵 한 교인이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바람을 말했으니, 목사님께서도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참으로 고마운 제안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교 신학과 진리를 학생들과 청년들에게 가르치는 기회가 있을 때 저를 보내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땅에서 어려움을 당하며 눈물로 지내는 분들을 위한 현장 예배에서 저를 부르면 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의 바람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고통의 현장에 나아가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향린의 목회자들은 자연스럽게 현장 예배에 참여하고 설교합니다. 동시에 우리 교회는 참된 신앙의 가르침을 배우고 전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실로 많은 이들이 세상의 헛된 속임수에 넘어가 자본의 노획물이 되고, 잘못된 가르침에 속아 고통을 당하거나, 또 고통을 양산하는 사회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단이 제정한 신학 교육 주일입니다. 신학 교육 주일이 되면 매년 한신대 신학대학원으로부터 공문을 받습니다. 교수님들을 설교자로 초청해 달라는 요청과 함께 학교를 위한 후원을 독려하는 내용입니다. 저도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으니, 오늘은 신학 교육과 관련하여 우리 시대 목회자 양성이 왜 우리 공동체 전체의 사명인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곧 목회자의 위기로부터]
한국교회의 위기는 곧 목회자의 위기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목회자 한 사람이 교회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목회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만, 목회 현장에서의 두 주체는 '평신도'와 '목회자'입니다. 목회자는 교회 전체를 조망하면서 신학적 전문성을 가지고 매우 다양한 가능성 중 가장 적절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또한 서로 다른 교인들의 신앙 색깔과 연륜을 고려하여 조율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목회자에게는 신학과 목회적 전문성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력도 요구됩니다. 그리스도교 복음과 진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목회 및 선교에 적용하는 안목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전체를 이끌어가는 통솔력, 구성원들 사이의 이해관계나 갈등을 조정하고 서로 소통하게 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종합 예술과 같은 목회를 균형 있게 그리고 전문성을 가지고 해낼 수 있는 목회자 한 명을 양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 개신교의 사회적 신뢰도가 바닥인 상태에서는 더더욱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최근 20년간 신학교 지원자 수가 급격히 줄었고, 매년 각 신학교마다 미달 사태가 발생합니다. 여러 이유로 개교회의 살림이 어려워지면서 목회자들에 대한 생활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학령인구의 감소, 청년 실업과 청년 빈곤이라고 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가 교회 현장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창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하는 목사 후보생들과 부교역자들이 복잡한 교회의 업무에만 시달리면서 영혼이 고갈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양질의 목회자는 배출되지 못하고, 교회는 시대에 뒤처지며, 교회가 점점 축소되고 줄어드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과 재작년 신학대학원 신입생과 졸업생은 40명 가량에 불과합니다.(2024년 36/37명, 2025년 43/31명) 제가 대학원에 들어갈 때만 해도 거의 100명에 가까웠는데, 지금은 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신입생의 평균 연령도 매우 높아져서 실제 목회할 수 있는 이들이 매우 적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수련생 과정을 거쳐서 목사 안수를 받으려면 학부 시절부터 거의 10년의 세월이 걸리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목회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심지어 목사로 사역하다가도 목회를 그만두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매년 백 명이 넘는 목회자들이 은퇴하시는데, 빈자리를 채울 목회자들은 매우 적은 형편입니다. 이러한 추세라면 우리 교회 또한 머지않아 적합한 목회자를 청빙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목회자 양성에 힘써야]
신학대학원에 가면 "학문과 경건"이라는 돌비석이 큼지막하게 서 있지만, 현재 한신대 신대원의 전임 교원 수는 7명에 불과합니다. 제가 대학원 다닐 때는 22명이었습니다. 전임 교원의 부족은 신학 교육의 역량을 축소시키고, 목회자의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하여 위기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합니다. 학교는 다양한 방식으로 신학 교육이 위축되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한편으로 그동안 신학 교육을 할 인재를 기르지 못한 우리 전체의 잘못도 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는 목사 후보생과 신학생이 먼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를 후원하고 격려하는 개 교회, 그를 책임져야 하는 노회와 총회, 신학적 전문성을 갖추게 하는 신학교가 모두 협력해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대 사회적 목회와 선교를 일관되게 해 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리 교회도 실력 있는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해 교단과 신학교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신학생, 신학교, 목회자 양성 및 재교육을 위한 선교비 책정에서부터 향린에 오는 목회 실습생들, 향린에서 목회하는 모든 목사 후보생과 교역자들이 목회의 역량을 제대로 키울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사회적 상식에 따라 주 5일 근무하고, 4대 보험 중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및 목회자 연금에도 가입하게 하고, 부목사 임기제 및 안식년제를 실시하는 등 최소한의 안정적인 근무 환경을 마련하고자 하지만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향린교우 여러분, 우리는 그동안 좋은 목회자를 '찾는' 데만 익숙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제는 좋은 목회자를 '함께 낳고 길러야' 할 때입니다. 숲이 사라지면 나무가 살 수 없듯, 신학교가 무너지고 신학생의 영혼이 고갈되면 결국 우리들이 들을 설교가 사라지고, 우리가 위로받을 공동체가 사라집니다. 이것은 한신대학교 신학과의 위기가 아니라 우리 신앙의 미래가 걸린 생존의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신학생 시절에는 시대를 깨우는 신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목사 후보생으로서 교회에서 실습을 하는 기간에는 생명을 살리는 목회가 무엇인지 보고 듣고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제가 우리 교회를 포함하여 여기저기에서 신학 강의와 신앙 특강들을 하고 있는데, 사실 이 모두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향린교회의 부 교역자로 여러분들과 함께한 성서 배움 마당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 교회의 모든 목사 후보생과 교역자들 또한 행정 업무나 그밖에 소모적인 업무들은 줄이고,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더 시간을 쏟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그런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들이 말씀의 예언자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이 이들을 지켜 주는 울타리가 되어 주십시오.
[첫째, 학자의 귀로 듣고 목자의 입으로 말하라]
오늘 이사야는 우리 교회가 참된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해 모두 "학자의 귀와 입"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학자의 귀, 즉 늘 배움에 열린 귀를 가진 자는 첫째 주님을 거역하거나 배신하지 않고 언제나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말에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듯이, 속에 든 것 없이 겉으로만 떠들어대다가도 정작 위기의 순간에는 어쩔 줄 모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신중하게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속으로 되새긴 사람은 정작 위기의 순간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모함을 해서 억지로 법정에 세운다 해도 오히려 당하는 사람은 악한 마음을 가진 그 사람일 뿐! 학자의 귀를 가진 자는 결코 넘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이사야는 학자의 귀를 지닌 이가 어떻게 박해를 견디어내는지 보여줍니다. 즉 목회자의 배움이란 때리는 자에게 등을 맡기고, 수염을 뽑는 이들에게도 얼굴을 맡기고, 침을 뱉고 모욕하는 이들에게도 돌아서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상함이 없는 경지라고 말해 줍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러한 좋은 목회자를 양성하려면 목회자 당사자뿐만 아니라 모든 교인이 배우려는 귀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지친 사람을 격려하고 일으켜 세우는 입을 가져야 합니다. 교인들이 주님의 말씀에 갈급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할 때 목회자 또한 힘이 나고, 제 역할을 찾게 됩니다.
본회퍼 목사는 그의 저서 『성도의 공동생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그분의 말씀을 듣는 데서부터 시작되듯이, 형제에 대한 사랑도 형제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을 배우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주실 뿐 아니라, 당신의 귀도 빌려주신다는 사실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형제에게 귀를 기울여 듣는 법을 배우면, 우리가 형제에게 행하는 그 일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귀를 기울여 들어줄 사람을 찾지만,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도 들을 귀를 가진 사람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들어야 할 때도 입을 열어 말하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형제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머지않아 하나님께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도 항상 말만 하려고 들 것입니다. 여기서 영적인 죽음이 시작되며, 결국 남는 것은 영적인 수다뿐입니다. ~~ 오늘날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도 어떤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기만 해도 그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인식 위에 세속적인 정신 치료를 수행하는데, 이러한 치료에 많은 사람이 매료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그곳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에게 듣는 직무가 부여되었으며, 그 직무는 위대한 경청자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우리에게 위탁하신 일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할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귀로 들어야만 합니다."
오늘날 목회자에게 필요한 '학자의 귀'는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는 귀인 동시에, 고통받는 이웃의 신음 소리를 놓치지 않는 귀입니다. 삶의 성찰 없는 지식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칼이 될 뿐입니다. 우리 교우들이 함께 '배우는 귀'를 가질 때, 비로소 목회자의 입에서는 지친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언어'가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둘째, 따를 길을 따르라]
신학 교육 주일, 우리 모두가 두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교회는 교회답게, 신학교는 신학교답게, 목사는 목사답게, 신학생은 신학생답게 마땅히 따를 길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략 10여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이 시간도 결코 긴 시간은 아닙니다. 성서신학과 이론 신학, 역사 신학과 실천신학을 골고루 공부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여 교회 현장에서 직접 가르쳐 보고, 실행해 보는 훈련을 하는 데는 10년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외국의 경우는 신학을 하고 싶은 중고등학생을 따로 모아서 가르치기도 합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신학에 도움을 주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발달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세상과 소통하며 세상을 분석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 세상을 이해하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목사 혼자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집단 지성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래서 서로 함께 의논하고 협업하는 능력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집을 지을 때 아래층 기초를 다지지 않고 위층을 올릴 수 없듯이 신학 교육과 교회를 세워가는 모든 과정은 합당한 절차를 거쳐 꼼꼼하고도 성실하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가 마땅히 갖춰야 할 이런 복음의 능력, 신학적 지식과 그리스도교 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세상의 경영 방식, 돈과 힘의 논리를 가지고 목회하고 선교하려고 할 때 교회는 타락하고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의가 불의를 물리치려면 불의를 이겨낼 실력과 힘이 있어야 합니다. 마땅히 따를 길, 가야 할 길을 꿋꿋하게 가면서 복음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끔 후배 교역자들과 신학생들을 만나면 학교나 교회에 대한 탄식과 불평을 듣게 됩니다.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이런 탄식과 불평의 말들은 나름 일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평과 불만, 탄식으로는 상황을 타개할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면 따로 배움의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하고, 교회가 올바르지 못하면 교회를 개혁하거나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교회로 옮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본인의 노력과 수고가 결국은 한국 개신교를 갱신하는 하나의 역할이 됩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고, 비대면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질 좋은 정보들이 가득한 지금, 우리는 얼마든지 스스로 배울 수 있고, 실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남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스스로 실력을 연마하는 일에 더 매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골로새서 말씀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누가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노획물로 삼을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라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골 2:8) 신학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의 초등학문, 즉 돈의 논리나 권력의 효율성이라는 '헛된 속임수'로부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지켜낼 영적 안목을 기르는 과정입니다. 목회자가 세상의 경영 방식이나 유행하는 심리학적 기술에만 매몰될 때, 교회는 복음의 생명력을 잃고 세속적 집단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참된 신학 교육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뿌리 박게 하며, 세상의 거센 파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하늘의 지혜를 가르칩니다. 우리가 신학생들을 후원하고 목회자 양성에 힘쓰는 이유는, 그들이 세상의 헛된 철학에 포로가 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된 진리의 파수꾼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셋째, 진리가 무엇이오?]
신학 교육 주일을 맞아 함께 생각해 볼 셋째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지구 위의 삶에서 인생을 걸고 따져야 할 진리, 따라야 할 진리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것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그 깊고도 넓은 진리를 향해 모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몸은 한계가 있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한계가 없습니다. 마음이란 우리의 몸 안에서 열린 하늘과 같아서 무한히 펼쳐집니다. 우리의 발은 땅을 딛고 살 수밖에 없고, 우리의 몸은 먹고 자고 입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땅에만 속한 사람은 아닙니다.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으시는 예수님께서 당당하게 말씀하시듯, 우리 모두는 언제나 이 세상을 넘어서는 더 고귀한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만 일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빌라도처럼 늘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진리가 무엇인가?" 동시에 우리는 예수님처럼 진리를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진리의 삶이 하나의 정답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진리도 시대와 상황에 합당한 진리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진리를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무엇인지를 지속해서 묻고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점점 예수 그리스도가 이룩하신 그 장성한 신앙의 분량에 이르게 되고, 하늘의 시민으로 거듭나며, 인생의 참된 의미를 느끼며, 주님께서 허락하신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끊임없이 이런 진리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진리를 추구하며, 진리를 이뤄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목회자와 신학생들이 훨씬 더 성숙하고 성장하며, 교회와 더불어 선순환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나의 촛불"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습니다. 2016년 겨울부터 2017년 4월까지 계속된 우리 국민의 위대한 촛불혁명을 다룬 다큐멘터리입니다. 벌써 10년 전 이야기이지만, 현직 대통령의 첫 탄핵을 이끌었던 촛불집회야말로 기나긴 왕정의 역사를 끝낸 사건입니다. 시민들이,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자를 적합한 절차에 의해 국회와 사법부를 시켜서 끌어 내린 정말 위대한 일입니다. 어떤 피도 흘리지 않았고, 우리 국민은 평화롭게 새로운 정권을 만들어 냈습니다.
촛불이 저항의 상징으로 이 땅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인 효순이와 미선이가 미군 장갑차에 의해 무참하게 죽은 사건을 통해서였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광화문 광장에서는 뜨거운 응원의 함성이 넘쳤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미군의 어처구니없는 대응과 불평등한 주한미군 주둔 협정(SOFA, Status of Forces Agreement)에 대해 우리 시민이 가장 크게 목소리를 내었던 것입니다. 이후로 기존 기득권자들의 힘에 의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되었을 때, 이명박 정권이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무시하고 좋지 않은 소고기를 대량으로 수입하려고 했을 때 촛불이 타올랐고, 이제 우리 현대사에 길이 남을 촛불혁명이 국정을 농단한 세력에 맞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6개월 동안 이어진 것입니다.
역사의 한복판을 살아갈 때는 우리가 역사의 주인인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다시 회고해 보면, 그 순간이 얼마나 대단하고 놀라운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우리 향린교회는 위에 말씀드렸던 거의 모든 촛불 현장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 내란 정국에서도 응원봉과 깃발을 들고 바로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2024년과 2025년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동학으로부터 3.1운동, 4.19혁명과 5.18 광주민중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중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도도한 물결이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 향린교회가 하고 있는 수많은 목회 사역 또한 하나님의 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신학 교육과 목회자 양성에 있어서, 우리 교회가 하는 일들이 얼마나 치열했던 것인가는 나중에 다시 오늘을 되돌아볼 때 모두가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면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묻는다면, 바로 거기로부터 시대를 깨우는 신학이 탄생하고, 생명을 살리는 목회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역사를 일구어 나가실 것입니다.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전국의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우리 모두는 주님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섭리에 따라 부름 받은 자의 소명을
감당하고 사명을 이루어 가십시오.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공의를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