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이화대학교회 장윤재 담임목사] "너는 복이 될지라"

2026년 2월 15일 주일예배 설교

jangyoonjae
(Photo : ⓒ베리타스)
▲장윤재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대학 기독교학과, 이화여대 대학교회 담임목사)

성경본문

창세기 12:1-3, 에베소서 1:3-6, 마태복음 5:3-10 -

설교문

한국 최초의 창작 동화 작곡가 윤극영 선생의 동요 <설날>입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 한 줄은 은근히 철학적입니다. 까치의 설날은 '어저께'이고, 인간의 설날은 '오늘'이라니요.

까치는 자연입니다. 자연은 그냥 흐릅니다. 어제가 가고, 오늘이 오고, 내일이 옵니다. 자연은 새해를 선언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다시 시작하자"라고 결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우리는 시간을 선언하고, 이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오늘을 새해로 정합니다. 오늘을 다시 시작의 날로 만듭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 집 저 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 /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까치의 설날은 어제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설날은 오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오늘"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모레가 설날입니다. "설"이라는 우리말은 어디서 왔을까요? '설다' 혹은 '낯설다'라는 말에서 왔다고 합니다. '설다'는 덜 익었다는 말입니다. 아직 영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미숙하다는 뜻도 있지만, 동시에 새롭다는 뜻을 가집니다. 설은 아직 익지 않은 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날, 새롭게 시작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은 언제나 "오늘"입니다. 그 오늘은 완성된 시간이 아니라, 여전히 열려 있는 시간입니다. 여전히 영글고 빚어지는 시간입니다. 설날은 그렇게, 하나님의 새 창조 안으로 우리가 다시 들어가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이런 설날에 우리는 이런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국인들은 복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복주머니를 만들고, 세뱃돈을 주고, 복(福) 자를 붙였습니다. 복주머니 안에는 쌀, 콩, 향, 돈을 넣었습니다. 복을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복을 붙잡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세뱃돈은 단순한 용돈이 아닙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생명과 번영을 나누는 것의 상징입니다. "너의 삶에 복이 있기를"이라는 축복입니다. 복(福) 자를 문에 붙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이 이 집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그랬습니다. 한국인들은 복을 담고, 복을 주고, 복을 붙이고, 복을 나누려 했습니다.

그런데 성서는 복을 조금 다르게 말합니다. 성서에서 복은 주머니에 담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아닙니다. 길일(吉日)이 아닙니다. 성서에서 복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오늘 개회 찬송에서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라고 우리가 부른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계심이 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이 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언약을 맺으심이 복입니다. 그것이 성서의 복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시고 언약을 맺으실 때의 일입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라고 하신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세기 12:1-2) "너는 복이 될지라"(You will be a blessing)라고 하셨습니다. "복 많이 받아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너는 복이 되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아브람을 복(בְּרָכָה, 베라카) 자체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μακάριος, 마카리오스)은 더욱 놀랍습니다. 산상수훈에서예수님은 이렇게 말하십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박해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태복음 5:3-10 중에서) 세상 기준으로 보면 저주 같은 상태입니다. 가난하고, 슬피 울부짖고, 박해받는 자가 어떻게 복이 있는 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은 이미 복된 사람이다.

사도 바울도 복(εὐλογητός, 율로게토스)을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에베소서 1:3)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까? 다시 바울이 말합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신 것]"(에베소서 1:4-5), 그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그것이 바울이 말하는 "하늘의 모든 영적인 복"입니다.

한국인은 복을 담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우리가 복을 주워 담는 존재가 아니라 복 안에 담기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시편 23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1, 6)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 나를 따라온다고 하였습니다. 복이 나를 따라옵니다. 복이 나를 감쌉니다. 복이 나를 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 속에 사는 존재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복주머니' 안에 담긴 존재입니다.

한국에서 복주머니는 조선 후기에 여성들이 허리띠에 달고 다니던 주머니 문화에서 발전했습니다. 한국의 전통 의복에는 주머니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별도의 주머니를 만들어 허리에 매달았습니다. 그 복주머니를 딸에게 시집갈 때 주기도 하고, 어린이에게 새해 선물로 주기도 하고, 남편과 자식의 건강과 출세를 빌며 만들기도 했습니다. 복주머니는 한국 여성의 돌봄과 기도의 문화가 담긴 물건입니다.

그런데 성서는 우리가 복을 담는 그릇이라고 말합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라고 말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리"(고린도후서 4:6-7)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질그릇과 같은 존재입니다. 질그릇은 연약합니다. 쉽게 깨지고, 흠이 많고, 값비싼 그릇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이 연약한 질그릇 안에 '하나님의 보배', 곧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위대한 복을 담고 있는 연약한 그릇입니다.

질그릇 같은 인간은 스스로 복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 그 질그릇은 하늘의 복을 담는 거룩한 그릇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두려워 도망치기도 했고, 실수하고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연약한 사람을 통해 복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질그릇과 같은 아브라함을 복주머니로 삼아 온 세상에 복을 주셨습니다. 설날에 복주머니를 바라보며 우리는 깨닫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담는 질그릇이고, 그 복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복주머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함동진 시인의 <복주머니>를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설날 아침 / 엄마 아빠께서 주신 덕담 / 네 마음 속에 / 평생 사랑주머니 달고 다녀라 / 언제나 따스한 사랑 가득 채우고 / 사랑에 주린 사람 만나거든 / 나누어주거라 / 어디서든." 저는 교우 여러분이 바로 이런 복주머니이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따스한 사랑을 가득 채우고, 사랑에 주린 사람을 만나면 언제 어디서든 그 사랑을 나누어주는 "평생 사랑주머니"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시인이 그리는 한국 설날의 풍경입니다. "집집마다 / 마을마다 // 온 나라 방방곡곡에 / 가족 사랑 훈훈하게 넘치고 있네 // 자식은 부모에게 / 감사하며 효도하고 / 부모는 자식들이 / 대견해서 품어주고... / 사랑합니다!! / 사랑한단다!! // 당신들이 계셔서 / 행복합니다 / 너희들이 있어서 / 든든하단다 // 데워진 사랑 열기 / 추위를 녹여 / 먼데 있는 봄기운 / 서둘도록 재촉하네."(오보영, <설날>) 참 아름답고 훈훈한 모습입니다. 집집마다, 마을마다 이 사랑의 열기로 추위를 녹여 멀리 있는 봄기운이 한걸음에 달려오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명절이 되면 오히려 서러운 사람들도 있답니다. 어떤 분들일까요. "명절을 앞두고 동구 밖 자동차 소리 / 귀를 세우고 / 이제나 저 제나 기다리는 마음 / 올해는 그 기다림마저 빼앗아 가버렸으니 / 명절이 서러운 사람 / 바람 불면 날아갈세라 / 놓으면 꺼질세라 / 애지중지 키운 자식 / 민들레 씨앗처럼 다른 토양에 자리 잡아 / 양 명절에 얼굴 한번 보는 것이 유일한 기쁨 / 하루가 여 삼 초인 삶 / 그마저 잃었으니 / 어찌 서럽다 아니하리 / 명절 고아 명절 고독 / 지붕 위에 까치가 운다 / 까치야 너는 왜 우니 / 너마저 울며 내 마음도 따라 서럽다."(하영순, <명절이 서러운 사람>)

까치는 한국 문화에서 길조(吉鳥), 곧 기쁜 소식을 전하는 새입니다. 새해 아침에 울면 복이 온다고 믿던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까치가 울 때 "너마저 울면 내 마음도 따라 서[러운]" 부모님들 안 계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에게 조금 위로가 되는 말도 있습니다. 부모님을 찾지 못하는 자식의 마음은 또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서러울까요. 다른 시인이 설날의 다른 풍경입니다. 어느 자식의 노래입니다. "어떤 이는 / 대학에 붙어 / 부모님 효도하고 / 어떤 이는 / 취직 하여 / 부모님 효도하고 / 어떤 이는 / 시집 장가 들어 / 부모님 효도하고 / 어떤 이는 / 용돈 두둑 / 부모님 효도하고 / 이도 저도 아닌 나는 / 가슴으로 / 효도할 수밖에는." (이상례, <설날>)

이 좋은 명절에 서로 그리워도 함께할 수 없는 가족들이 있다면, 이 좋은 명절에 무슨 사연이든 서로 마주할 수 없는 가족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시고 평화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의 어린 시절에 어른들은 총명하고도 통통한 아이들을 보면 "넌 참 복스럽게도 생겼구나"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뺨이 붉고 동그스름하게 생긴 아이들을 복스럽게 생겼다고 했습니다. 또 "복" 자가 들어간 이름을 많이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복순(福順), 복자(福子), 복희(福姬/福熙), 복경(福敬), 복남(福男), 복영(福英), 복애(福愛), 복란(福蘭), 복실(구어식 애칭화)과 같은 이름을, 남자아이들에게는 복수(福秀), 복철(福哲), 복진(福鎭), 복현(福賢), 복동(福東) 등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밥그릇이나 젓가락에도 은이나 자개로 "복" 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이렇게 복을 좋아합니다.

그렇습니다. "장수, 재물, 자손, 풍년, 나라의 안녕과 질서, 부부간의 해로, 우애, 화목, 기쁨, 평화, 사랑, 좋은 만남 등등 그 무엇을 복으로 여기든지 간에 복은 그 자체가 이미 생명 지향적인 것이며 좋은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 선한 것, 갖추어진 것을 지니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솔직한 꿈이며 희망이라 여겨집니다... 인간이 자기보다 더 높고, 위대하고, 능력 있다고 생각되는 누군가에게 가장 겸허하고 진실되게 복을 비는 것 자체는 곧 자기의 유한성을 인식한다는 뜻도 되며 매우 아름답고 따뜻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이해인, <복스러운 사람>)

하지만 "새해엔 우리 모두 이기적으로 자신의 복을 구하고 챙기는 일에만 연연하지 말고 우리 이웃과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도 복을 구할 수 있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지니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꾸 새로운 복을 달라고 조르기 전에 이미 받은 복을 잘 키우고 닦아서 보물로 만드는 노력과 지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요행을 바라거나 안일하게 복을 구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우리 일상의 삶 안에서 꾸준히 복을 짓는 덕스러운 나날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의무라고 여겨집니다."(이해인, <복스러운 사람>에서 계속.)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새해가 되면 우리는 스스로 묻습니다. "올해 나는 어떤 복을 받을까?" 그러나 성서는 묻습니다. "너는 누구에게 복이 될 것인가?" 복은 받는 것이기도 하지만, 복이 되어 사는 것이 더 성서적입니다. 우리의 진짜 복은 하나님입니다. 성서는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복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시고, 우리는 그 복을 담고 나누는 그릇입니다. 여러분의 질그릇 안에 하늘의 보배를 담으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과 은총을 담는 사랑의 복주머니입니다. 평생 사랑의 복주머니가 되어 그 복을 나누십시오. 아브라함처럼 여러분은 복이 되십시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 집 저 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 /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까치의 설날은 어제입니다. 자연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설날은 오늘입니다. 설은 아직 설은 날입니다. 아직 영글지 않은 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시 시작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복 안에 사는 사람으로, 복을 나누는 사람으로, 그리고 복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으로 새해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설날을 앞두고, 새로운 시간의 문턱에서 우리의 삶을 다시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우리가 복을 담으려 애쓰며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복을 붙잡으려 했고, 복을 계산하려 했고, 복을 소유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복은 우리가 붙잡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붙잡으시는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올해 우리의 삶이 복을 구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복이 되어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가정에서 복이 되게 하시고, 이웃에게 복이 되게 하시고, 이 땅과 세상에 복이 되게 하옵소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복,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복, 평화를 만드는 복을 살게 하시고, 십자가의 길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복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새해의 첫걸음을 주님께 맡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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