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이리 떼 가운데로"

2026년 2월 22일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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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출 4:10-17, 살전 5:1-8, 마 10:16-20)

설교문

[사순절을 시작하며]

뉴욕에 사는 신부님이 병원 심방을 마치고 저녁 늦게 돌아오는 길에 으슥한 골목에서 강도를 만났습니다. "지갑 내놔" 강도의 협박에 신부님이 안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꺼내기 위해 코트 단추를 풀자, 목에 두른 하얀 성직자 칼라가 드러났습니다. "아, 신부님이셨군요. 죄송합니다." 계면쩍어하는 이 강도에게 말을 걸고자 신부님이 담배 하나를 꺼내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강도가 말하기를 '신부님, 저는 사순절 기간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사순절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고, 또 어떻게 보낼 계획이신지요?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聖灰水曜日, Ash Wednesday)부터 부활주일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부활주일은 춘분(3월 21일) 이후 첫 만월 다음에 오는 주일로 정하기 때문에 매년 그 날짜가 달라집니다. 올해의 경우 춘분을 지나고 4월 2일이 음력으로 보름이기 때문에, 돌아오는 4월 5일이 부활주일입니다.

교회 전통 속에서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려는 절절한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금요일에 차마 음식을 입에 댈 수 없어 금식했습니다. 하루로 시작된 금식은 이삼일로, 또 다시 일주일로 길어졌고, 나중에는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40일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와 동시에 서방기독교에서는 부활절에 세례를 받을 이들을 위한 집중적인 교육 기간이 합쳐지면서 오늘날의 사순절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 기간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 십자가 죽음을 묵상하며,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고, 절제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합니다. 중세 시대에는 육식을 엄격히 금지했고, 루이 14세는 이 규정을 어긴 자를 사형시키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강제성은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절을 향해 나아가는 사순절 기간에, 하나님마저도 외면한 듯 보이는 그 처절한 십자가의 자리에 스스로 서 본 사람만이 더 깊은 신앙의 신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과 함께 고난의 현장에서 십자가를 진 사람만이 부활의 참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편 영어로 사순절을 랜트(Lent)라고 부릅니다. 이 말의 어원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독일어 lenz, 고대 앵글로 색슨어 Lenten)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이 인류의 생명을 소생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주기적인 점검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업이든, 공공의 업무이든, 학업이든, 심지어 집안일조차도 우리는 때때로 멈춰 서야 합니다. 멈추어야 우리가 가진 자원과 도구를 점검할 수 있고, 흐트러진 것들을 제자리에 정리하며,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사순절은 우리 인생의 '영적 점검'을 위한 좋은 계기입니다. 사순절에 우리는 바쁘게 돌아가는 표면적인 일상에서 잠시 물러나 삶의 단단한 깊이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들에 대해 숙고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 중 반드시 지켜야 할 '본질'은 무엇이며, 그저 쌓아놓기만 한 '영적 잡동사니와 부스러기'는 무엇인지 구별해내야 합니다.

신앙인은 세상 달력이 아니라 교회력에 따라 자기 신앙과 삶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1년 52주는 대림절로부터 시작하여 주현절, 사순절과 부활절을 지나, 성령강림절, 그리고 창조절에 이르기까지 매년 주기적으로 반복됩니다. 우리는 매주 예배를 통해 우리가 지금 하나님 나라의 여정 중 어디쯤 와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제가 예배 인사 때에 교회력을 언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은 그 여정의 소중한 한 마디인 사순절 첫째 주일입니다.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진 양]

사순절 첫 주일을 보내며 우리에게 들려진 마태복음서의 말씀은 조금 가혹하게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는 장면인데, "보아라, 내가 너희를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리 떼 한 복판에 양을 던져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연히 잡아먹히고 말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의 현실로 겪어야 햇습니다. 심한 박해와 투옥, 고문과 폭력, 심지어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세상에 보내졌습니다. 그들의 전도와 선교는 실로 과감한 결단과 굳센 믿음과 의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그들의 믿음 덕분에 지금의 그리스도교가 탄생했고 자라났고, 우리에게도 전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겪을 고난과 어려움을 예상하시며 한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과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진해져라."

여기에 뱀과 비둘기가 동시에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역설적입니다. 뱀은 성경 전체에서 단 한 번도 긍정적 이미지로 사용된 적이 없는 동물입니다. 성경에서 뱀은 유혹자의 상징이고, 사탄의 가시적 이미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뱀처럼 슬기롭게 처신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만큼 세상의 악이 그만큼 뿌리 깊고, 만연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악의 상징인 뱀이 될 필요는 없지만, 교활하고 악랄하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사탄의 무리와 대적하려면 그들의 궤계를 꿰뚫어 보는 지혜를 갖추지 않고서는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해진 박해와 고난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우리 역시 '이리 떼'의 숲속에 살고 있습니다. 초국적 자본주의의 무한 확장과 급격한 불평등의 심화, 무한경쟁 속에서 낙오되고 뒤처지는 이들에 대한 멸시와 배제, 인공지능과 딥페이크가 뒤섞어놓은 진실과 거짓의 혼돈, 그리고 급격한 사회변동, 오늘 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기후 재앙, 먹고 입는 것에 모자람이 없는 사람마저도 왠지 모르게 자꾸 마음이 무너지고, 세대 간 갈등과 지방의 소멸, 허무와 불안, 외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의 삶은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가 뱀처럼 지혜로울 것을 요청합니다.

오늘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쓴 편지에서처럼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슴막이 갑옷으로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쓰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이 거대한 악의 물결 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입니다. 속고 속이는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도 허우적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뱀의 지혜만을 쫓다 보면 어느새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뱀을 닮아갈 수도 있습니다. 불의에 맞서 싸우다 분노에 사로잡히고, 차가운 증오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내가 대적하던 그 불의한 자와 똑같은 모습이 되어 버리는 비극이 종종 일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둘기처럼 순진하라고 동시에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마태복음서를 쓴 이들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넘어 원수까지 사랑하는 높은 윤리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에게 똑같이 햇빛을 비추시고 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자신에게 죄를 지은 이들을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완전하심을 닮아 온전함에 이르려 합니다.

자신 눈에 있는 티를 들보로 생각하면서 자기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율법 학자나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義)보다 훨씬 더 나아가고자 합니다. 들에 핀 꽃 한송이에서, 저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의 날개짓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며, 하늘에 쌓인 보화를 통해 현실의 불안을 극복해 내려고 합니다. 그들은 비둘기처럼 순진한 삶을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순절 기간은 바로 이렇게 선으로 악을 이기고, 하늘의 지혜로 세상의 온갖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훈련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은 외부에도 있지만, 더 무서운 사실은 나의 내면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를 한낱 소모품으로 여기는 대기업의 횡포, 분단 체제 속에서 겪어야 하는 온갖 억지들과 자유의 훼손, 무한 욕망의 추구와 국가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서 일어나는 전쟁들, 인간의 양심을 갉아먹는 거대한 죄악의 세력이 오늘날도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생명과 평화, 정의와 자유, 평등과 상호 존중의 세상으로 표현되는 하나님 나라를 일구려는 우리들은 이런 거대한 악의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하고, 실제로 우리 교회는 지난 70년의 세월 동안 그렇게 싸워왔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도 겨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아주 작은 일에 분노하고, 별거 아닌 것에 삐집니다. 세상을 구원하려고 하지만 어떤 때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자기 마음 하나 돌보기도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자기 욕정에 무너졌고, 지혜를 구한 솔로몬도 노욕에 빠져 타락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방주를 지어 세상을 구한 노아는 술에 취해 민망한 꼴을 드러냈으며, 출애굽의 영웅 모세조차도 자기 분노를 이기지 못해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 멈춰야 했습니다. 참된 경건은 뱀처럼 지혜롭게 세상을 통찰하는 눈과,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자신을 갈고닦는 마음이 만나는 지점에서 완성됩니다. 우리의 사순절은 내 안의 이리 떼를 잠재우고, 주님의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영적인 야성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힘을 모아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대제국 애굽의 통치자 파라오 앞에 서야 했던 모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떨었습니다. 주저주저하면서 하나님께 핑계를 댑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본래 말재주가 없는 사람입니다. 전에도 그랬고, 주님께서 이 종에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이 입을 창조했음을 주지시키면서 직접 입을 열게 하시고 가르쳐주겠다고 하셨음에도, 모세는 끝내 거절하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때 하나님께서 크게 화를 내셨다고 기록합니다.

사실 우리도 모세처럼 망설이고 주저할 때가 많습니다. 용기가 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나 명령보다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리 떼가 더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일 하려다 상처만 받으면 어쩌나" 하는 때가 많습니다. 뱀처럼 지혜롭지도, 비둘기처럼 순결하지도 못한 것 아닌가 하면서 겁이 납니다.

그런데 그렇게 머뭇거리다가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세상의 종이 되어버리고 마는 경우 또한 허다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를 세상에 파송했습니다. 그것이 비록 이리 떼 가운데 어린 양을 보내는 것 같은 형국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집집마다 돌며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전해야 하고, 우리는 세상 한복판으로 나아가 생명의 말씀을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행이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론을 붙여주셨듯, 우리에게는 향린이라는 신앙의 동지들을 붙여주셨습니다.

새해가 밝고 우리는 1월 셋째주 공동의회를 통해 지난 해를 정리하고 새해의 목회 계획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 해를 또 힘찬 발걸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공동의회를 마치고 그 주간에는 향린 공동체 목회자들이 수련회를 가지고 향린 공동체 교회들의 한해 목회와 선교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이후에 저는 기장 목회자 아카데미, 서울노회 신년 목회자 세미나, 총회 사회선교 통합 정책협의회에 계속 참여해서 노회와 교단이 올 한 해 감당해야 할 선교들과 시대적 사명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부터 화요일 오전까지는 우리 교단의 미래를 함께 준비하는 젊은 목회자들과 더불어 "제3차 기장미래포럼"을 진행합니다.

사실 이런 모든 모임들이 제게 다 달가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모세에게 아론을 붙여 주시면서 신앙 백성들의 자유와 신앙 훈련을 도모하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 향린교회의 담임목사로서도, 교단의 한 일원으로서, 한국 개신교에 속한 목회자로서도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활동이 때로 고단할지라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으로부터 세상으로 보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 9일에서 10일에 진행된 1박 2일의 우리 교단 사회선교 통합 정책협의회에서 총회 산하 4개 위원회는 민주주의 위기 극복 이후 새롭게 출범한 국민주권 정부, 격변하는 한반도 정세, 심화 되는 기후위기, 그리고 교단 내 양성평등 정책의 성과와 과제를 함께 점검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위원회 별로 실천 지침을 내놓았고, 그 실천 지침을 발표했는데, 그 지침서의 마지막은 이러합니다.

"우리는 차별 없는 평등 세상, 전쟁 없는 평화 세상, 모든 생명이 공존하는 세상, 시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기장 교회는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이며, 생명을 살리는 희망이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우리의 걸음 위에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거창한 구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향린 또한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생명을 살리는 희망으로, 모든 생명체들에게 향기로운 이웃으로 차별 없는 평등 세상, 전쟁 없는 평화 세상, 모든 생명이 공존하는 세상, 시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몸소 나서야 할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진하시길 빕니다. 그래야 이리 떼 한복판에서도 잡아먹히지 않고, 도리어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살아가는 예언자 이사야의 비전이 우리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전국의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그리스도인답게 순전한 믿음을 지니고,

세상보다 더 나은 하늘의 지혜를 간직하십시오.

그리하여 이리 떼 한가운데서도

생명의 빛을 발하며 생명을 살리는 주님의 제자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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