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에서 가난하고 천대받은 조선 사람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해방 후 보모들과 같이 귀국하여 포항에서 매우 가난하게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초등학교를 나온 이후 가난으로 인해 야간 중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부모를 도와서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고려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지는 않고 운동권에 가담하여 사회변혁운동에도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운동권 참여의 동기도 물론 당시의 독재정권의 정치적 억압에 대한 항거에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의 청소년기의 가난한 삶의 경험으로 볼 때 우리 나라의 경제적 격차들에 대한 의식도 작용 했음직 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현대건설에 들어감으로써 새로운 인생길을 시작한다. 그는 가난한 삶을 극복하기 위해서 남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회사를 위해서 장애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는데 앞장선 것 같다. 그 결과 그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월급쟁이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자리인 현대건설의 사장이 되었다. 그는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고, 그는 기업인으로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정치에 나서서 자기의 꿈을 보다 더 넓고 크게 펼쳐 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국회의원이 되고, 서울 시장이 되고 그리고 대통령이 되는 길을 비교적 짧은 기간에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대통령은 개천에서 용난 사람이다. 한국은 노무현대통령시절부터 이미 출생과 신분에 무관하게 누구나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대통령은 그의 이러한 성공의 도상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개신교회를 선택했다. 이 교회는 당시 “하면 된다.”라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성공주의 원리가 확고하게 관철되던 교회에서 성공의 도상의 단계들인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됨으로써 출세의 길을 잘 다져나갔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처럼 이명박대통령도 선거에서 보수적 기독교회를 잘 조직화하고 이용했던 정치가도 드물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보수적 장로교회는 이를 계기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시대 못하지 않게 “정치종교” 내지 “어용종교”가 되어 그들이 마치 승리자와 권력자인양 행세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명박이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고 성장해서 그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뼈저리게 경험한 대통령이 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거나 매우 적대적인가? 그는 왜 부유한 사람들의 편이 되어 이른바 기업가들의 친구(business friendly)가 되어 그들의 이익만을 위한 정책들에 전념하고 있는가?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거대기업의 무제약적 이윤추구를 통제하기 위한 법률들과 규제들을 풀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법인세를 줄여주고, 그동안 부동산투기로 벌어들인 부자들에게 부과하던 종합소득세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했었다. 당선되고 대운하 추진이 국민적 저항을 받자 4대강 살리기라는 유사대운하 토목공사에 22조라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 다시 대기업들만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무리한 예산집행으로 생겨난 부족한 세수를 그는 일반서민들이 물고 있는 부가가치세나, 담배와 주세, 심지어는 전세금에다 세금을 부과해서 해결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경제학자 폴라니가 말한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돕고, 가난한 나라들이 부유한 나라를 돕는 것과 같은 오늘날의 왜곡된 세계경제현실을 그대로 따라가자는 것이 아닌가?
이명박대통령이 가난한 사람으로 태어나고 성장하고 살아왔으면서도 성공한 지금 자기와 같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않고 부자들만을 편드는 것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한국 속담에서 말하는 “과부가 과부사정 안다”라는 평범한 진리는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일까? 근래에 그는 재래시장이나 복지시설 등을 방문하여 자기의 본래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것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이러한 그의 행태에는 전혀 신뢰가 가지 않고 하나의 정치적 제스처나 쇼와 같이 보이는 것은 왜일까?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저명한 정치학 교수인 이링 페쳐(Iring Fetcher)는 1979년 위대한 신학자인 골비쳐(Helmut Gollwitzer)의 70회 생일을 기념하는 논문, "테러리즘의 문제들"(Probleme des Terrorismus)이라는 글에서 앞서 언급한 필자의 물음에 대해서 대답을 시도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정치적 동기를 내포한 사회의 변혁적 행동들은 대부분 부유하고 교육받은 시민계층 혹은 그들의 자녀들에 의해서 감행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으로 볼 때 급진적이고 혁명적 생각들이나 행동들은 하위계층이 아니라 상위계층에 속한 인물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예로서 좀 과거로 올라가면 12세기 이탈리아 부유한 상인 출신의 아들 왈두스(Wadldus)의 종교개혁운동,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아시시의 성인 프랜시스(Francisco)등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예수의 정신을 따라서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청빈을 삶의 원리로 삼았다. 그들은 중세봉건체제에 영합해서 온갖 권세와 부를 누리던 교황체제의 가톨릭교회를 비판하고 예수와 사도들의 청빈을 본받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했다.
근래에 와서는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라살레(Lassalle), 로사 룩셈부르크, 레닌 등 사회주의 혁명가들과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등 남미의 혁명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모두 부유한 집안 출신이고 교육받은 사람들이었다. 1960년대 학생혁명의 시기에 독일에서는 비교적 부유한 기독교 목사집안 출신의 딸들인 마인호프(Ulrike Meinhof)와 에슬린(Gudrun Esslin)과 같은 여성들이 사회를 변혁한다고 테러리스트 집단에 가담했었다. 최근에는 세계적 테러리스트로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사람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교육받은 부유한 부르주아 집안 출신이다.
왜 가난한 집 출신들이 사회혁명가가 되기보다는 부유한 부르주아 가정출신이 사회혁명가가 되는가?
일차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부유한 부모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항은 대체로 물질적 동기에서보다는 윤리적 동기에 기초하고 있다. 부모세대들은 한국은 좀 예외지만 자녀들을 도덕적으로 훈계하고 기독교 집안의 경우 사랑의 계명으로 가르친다. 그러나 부모들 특히 성직자들의 경우 그들의 “일상적 삶”에서는 말과 행동 사이에 엄청난 괴리를 보인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유한 집안의 부모들의 삶과 행태는 자녀들에게 가식적이거나 기만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부유한 가정이나 성직자들의 가정의 자녀들이 - 만일 그들이 똑똑하다면 - 부모들에게 반항하거나 아니면 사회적으로는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의 부에 의지하여 편안하게 일생을 살려는 바보 같은 자식들도 많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가난한 집안 출신의 젊은이들은 가난한 부모들의 처지에 환멸을 느껴 돈을 벌어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을 삶의 최상의 목표로 삼기 때문에 대체로 삶에서 성공주의를 추구한다. 그래서 그들은 가난에 대한 환멸에서 벗어나 부유해지면 질수록 가난한 사람들을 멀리하거나 때로는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멸시하거나 적대시한다. 이런 사람들은 부유함을 목표로 치열한 경쟁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이러한 경쟁에서 낙오하거나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무능한 사람이나 게으른 사람으로 무시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부유한 집 출신의 반항아들은 대체로 자신의 부모들로 인해서 생겨난 사회적 모순들을 개혁하려는 사람이 되는 반면, 가난한 집안 출신의 자녀들은 자신의 부모들로 인해서 경험한 빈곤을 극복하려는 부와 권력의 무서운 정복자가 된다. 여기서 우리는 왜 이명박대통령이 가난한 집안 출신의 성공한 사람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적대적이 되는가 하는 물음의 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손규태(성공회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