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겔 37:9-14, 고전 15:12-22, 막 16:1-8)
설교문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1969년 7월 20일, 인류는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딛습니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에서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Спутник, 여행의 동반자) 1호를 우주에 보내자 미국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창설하고, 경쟁적으로 우주 개발에 매달려서 이듬해인 1958년 1월에 익스플로러 1호라는 인공위성을 쏘아올렸고,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달 착륙에 성공하였습니다.
착륙선 조종사이자 교회 장로였던 에드윈 '버즈' 올드린(Edwin 'Buzz' Eugene Aldrin, Jr.)은 우주선 밖으로 나가기 전에 지구 밖에서 최초로 성찬식을 합니다. 성찬식을 거행하기 직전, 지구에 있는 이들에게 이런 부탁을 하였습니다. "여기는 달 착륙선 파일럿입니다. 이 기회를 빌려 나는 이 방송을 듣는 사람들에게 누구도, 또 어디에 있어도 얼마간 행동을 멈추고, 이 몇 시간 동안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을 깊이 생각하며 각각의 방법으로 감사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아폴로 11호에서 내린 선장 닐 암스트롱은 달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이 첫걸음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일 뿐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인류 역사를 새롭게 쓴 달 착륙으로 인해 인간의 상상력은 한층 더 넓어졌고, 통신, 기상, 자원 탐사 등 우주의 실생활 이용을 위한 과학기술도 매우 발전하였습니다.
그런데 1974년 윌리엄 찰스 케이싱이라는 사람이 <우리는 달에 간 적이 없다>(We Never Went to the Moon)는 책을 펴내어 달에 간 사실 자체를 의심하였고, 이후 아폴로 프로잭트 전체가 거짓이라는 음모론이 퍼져 나갔습니다. 미국항공우주국이 모든 의심 주장에 대해 즉각 반박했지만, 음모론자들은 이런 반박을 끝내 신뢰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본인들이 달에 가지 않는 이상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2천 년 전, 유대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벌이던 한 30대 초반의 청년이 유월절 명절 즈음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성전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으로 체포된 뒤에 공개적으로 십자가 처형을 당합니다. 이 청년을 따르던 제자들은 모두 흩어졌고, 예수가 벌이던 하나님 나라 운동도 곧 사그라들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몇몇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셨다." "예수가 다시 사셨다."라는 말을 하였고, 또 몇몇이 빈 무덤을 발견하면서 예수를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의 뒤를 이어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예수 운동을 이어나갑니다. 예수의 부활 사건은 새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탄생시켰고,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세계 인구의 30%가 속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형성과 발전에는 부활 신앙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그리스도인들은 부활과 같은 기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부활 이야기는 서로 너무 다릅니다. 무덤에 찾아간 이들은 막달라 마리아 혼자였는지(요한), 여럿이었는지(공관), 부활 소식을 전해 준 이가 천사였는지(마태, 요한), 아니면 젊은 남자였는지(마가, 누가), 또 그 남자가 한 명인지(마가, 마태), 두 명인지(누가, 요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곳은 갈릴리인지(마태), 예루살렘인지(누가, 요한)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복음서마다 다르게 기술하고 있기에 부활 사건이 과연 객관적 사실인지 의문이 듭니다. 또한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직접 목격한 이들의 증언이 아니며, 유일한 목격자의 자기 증언이라 할 수 있는 바울 사도의 고백은 환상이나 망상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그럴듯합니다. 역사적 사실인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도 못 믿는 마당에 과연 부활 신앙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요? 그러나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부활이 사실이냐 아니냐보다도 부활 신앙이 지니는 의미입니다.
[더 중요한 것]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에스겔의 말씀은 부활 신앙이 말하는 희망을 압도적인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예언자 에스겔은 "바짝 말라 버린(11절)" 뼈들을 보았습니다.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뼈다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자, "그 뼈들 위에 힘줄이 뻗치고, 살이 오르고, 살 위로 살갗이 덮이고"(겔 37:8) 결국 살아나 제 발로 일어나서 서게 됩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복구가 불가능한 완전한 절망과 단절 속에서도 새 희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생기는 무너진 우리의 삶을 다시 일으키는 '절대 희망'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에서 하나님은 다시 창조의 사건을 일으키십니다. 부활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 절대 끊어질 수 없는 생명, 그리고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선포하게 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머리로 이해하고 정보를 취득하는 문제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몸으로 체험하여 삶 전체가 새롭게 바뀌는 일종의 신념 체계의 변화, 거듭남의 체험입니다. 신약성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모든 이들이 극적으로 삶이 변했다고 증언하고 있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본래의 직업으로 돌아갑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지키지 못했고, 예수님과 함께했던 사실마저 부인하고, 뿔뿔이 흩어집니다. 이제 모든 희망은 물거품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과 함께 꿈꾸었던 비전도 사라졌습니다. 예수를 잃었다는 슬픔과 꿈을 상실했다는 허무가 동시에 찾아올 뿐만 아니라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예수님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죄의식이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그러나 먹고는 살아야 하니, 이제 다시 고기잡이 어부로, 그저 생존의 삶을 위한 현장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딱히 비전도 없고, 삶을 지탱해 낼 다른 용기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배를 띄워 봅니다. 그렇지만 고기는 잡히지 않습니다. 낮에는 고기가 호수 밑바닥에서 쉰다고 생각해서 밤에 나가 그물을 내리는 것이 갈릴리 바다 사람들의 풍습인데, 그래서 밤새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실패와 좌절! 모든 인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은 겪게 되는 삶의 밑바닥 한복판에 예수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잘 나가는 사람, 승승장구하는 사람, 누가 봐도 번듯하고, 남 부러울 것 없는 사람에게 부활의 소식이 들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저 목숨 정도만 부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찾아옵니다. 죽음을 극복하고, 악한 세력들을 물리치고, 모든 허무를 떨쳐내고 주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다시 갈릴리에서]
예수의 시신에 향료라도 발라 드려야겠다고 생각한 여인들은 무덤 안에 있던 한 청년을 통해 놀라운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소!" "그는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그들은 거기에서 그를 볼 것이오." 여인들은 너무 놀라고 무섭고 떨려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살아 계신 분이 무덤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살아 계신 분은 다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거기에서 다시 활약하고 계십니다. 병자를 고쳐 주고, 말씀을 선포하고 온갖 더러운 것들을 씻어내고 악한 귀신들을 물리치며, 귀한 잔칫상을 베풀고 모든 사람을 초청하십니다. 바로 그 자리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계십니다. 그리스도교가 믿는 교리나 성경의 문자 속에, 교회의 제도나 조직 속에, 부활절을 맞아 멋들어지게 준비한 종교 의례 속에 계신 것이 아니라, 가난하여 힘들고 어렵게 사는, 늘 소외당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삶의 현장으로 예수님은 가셨고, 바로 거기에서 다시 시작하고 계십니다. 고단한 삶에 지쳐 쓰러진 자리에, 피곤이 몰려오고 한숨이 절로 나오는 그 자리에, 속상하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그 순간에 예수님은 다시 시작해 보자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래서 부활 신앙은 첫 마음을 회복하는 신앙이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겠다는 첫 다짐으로 되돌아가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기대, 희망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품는 것입니다.
향린교우 여러분! 길고 긴 겨울이 아무리 춥고 혹독할지라도 반드시 봄은 오고야 맙니다. 어둡고 스산한 밤이 아무리 깊을지라도 새벽녘 하늘을 밝히는 태양은 떠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결코 어둠과 악의 세력이, 죽음의 세력이 정의와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확증하는 신앙입니다. 처음 제자들도 힘들었고 주저앉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외쳤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Marana tha)!"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길 빌겠습니다.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전국의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두려워하지 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갈릴리로 가서 다시 하나님 나라를 일으켜 세웁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