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쉬고 있어도 쉬지 못하는 피로사회...진정한 안식이란?

하나님의 안식을 고찰한 신학 논문 발표돼

일이 끝났어도 마음이 쉬지 못한다. 주말에도, 휴가를 떠나서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머리를 식힐 수 있는 한가로운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우리는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을 지치게 만드는 수많은 정보와 자극 속으로 다시 자신을 밀어넣는다.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인지 모른다.

현대인은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가지만 정작 '안식'은 잃어버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단순히 노동시간이 길다는 데 있지 않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과 성취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려는 문화가 현대인을 쉼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박신영 서울여대 강사는 「신학과 사회」 최신호에 발표한 '안식의 신학: 아케디아와 하나님의 안식에 대한 신학적 고찰'에서 현대인의 이러한 모습을 기독교 전통의 '아케디아(acedia)' 개념을 통해 조명했다.

이 논문은 아케디아의 역사적 의미를 살펴본 뒤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과잉활동과 성취 중심의 삶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신학적 대안으로 '하나님의 안식'을 제시한다.

'아케디아'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다

아케디아는 초기 기독교 수도원 전통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영적 권태'나 '무기력'으로 번역되지만, 그 의미는 단순한 게으름보다 훨씬 깊다.

3~4세기 이집트 사막의 수도자들은 하나님을 향한 관심을 잃고 자신의 삶과 소명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상태를 아케디아라고 불렀다.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이를 '정오의 악마'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시간이 좀처럼 지나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자신이 머무는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 상태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 아케디아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논문은 미국의 명문대 학생들과 목회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극심한 성취 압박과 소진 현상을 사례로 들며 현대사회의 과잉활동을 아케디아의 새로운 형태로 해석한다.

외형적으로는 부지런하고 성공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현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안과 자기 존재에 대한 불만족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도 낯선 모습이 아니다.

학생은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직장인은 더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은퇴 이후에도 새로운 경제활동을 찾기 위해 쉼 없이 움직인다. 교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더 많이'가 강조되기 쉽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좋은 신앙의 기준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많이 하는 것과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반드시 같은 의미가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안식은 '일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

박신영 강사는 이 같은 현대인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안식'을 제시한다. 창세기 2장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창조 사역을 마치신 후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논문은 이를 단순히 하나님께서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셨다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 세계 안에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이루어지는 상태이며, 창조가 완성되고 질서가 세워진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안식은 노동의 반대말이 아니다. 오히려 안식은 노동의 방향과 의미를 새롭게 하는 토대가 된다. 현대사회에서 휴식은 흔히 다시 일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이해된다. 일을 잘하기 위해 쉬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휴식한다.

그러나 성경적 안식은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축소될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누리며, 그 안에서 이웃과 창조세계를 섬기는 것이 안식의 중요한 의미라는 것이다.

마르다의 문제는 '봉사'가 아니었다

논문은 누가복음 10장에 등장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도 안식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모신 뒤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반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다.

흔히 이 본문은 봉사하는 마르다와 말씀을 듣는 마리아의 대조로 이해된다. 그러나 논문이 주목하는 것은 마르다의 '봉사'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예수께서 바로 곁에 계신 상황에서도 마르다가 염려와 분주함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데 있다.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 오히려 예수님의 임재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오늘날 교회에도 적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교회 일을 많이 하는 것이 곧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일까. 예배와 봉사, 전도와 선교에 열심을 내면서도 정작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돌아볼 여유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어떤 신앙일까. 논문은 이 질문을 통해 '열심' 그 자체보다 그 열심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묻고 있다.

예수에게 안식은 사역을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삶 역시 안식과 사역을 분리하지 않는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르치며 치유하는 사역을 이어가면서도 때때로 홀로 물러나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셨다.

논문은 이러한 시간을 단순한 휴식이나 재충전으로 보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존재와 사명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흘러나왔으며, 안식은 사역을 중단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사역의 근원이 됐다.

따라서 기독교적 안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하나님 안에 머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랑의 노동'으로 이어지는 안식

논문이 제시하는 안식의 개념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특징은 안식과 사랑의 관계다. 논문은 요제프 피퍼의 논의를 통해 아케디아의 반대를 단순한 노동의 중단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세계 안에서 자신을 긍정하는 태도로 설명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사랑이 자리한다.

결국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게 하는 힘이다. 내가 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출발해 일하고 섬기는 것이다. 이때 노동의 의미도 달라진다.

성과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된다. 논문이 말하는 '안식'이 단순한 휴식법이나 현대인의 번아웃을 해결하기 위한 자기계발식 처방과 다른 이유다.

한국교회에도 필요한 '안식의 신학'

이 논문은 특히 오늘날 한국교회가 무엇을 신앙의 열매로 삼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열심과 헌신을 중요한 신앙의 덕목으로 강조해왔다. 기도와 예배, 봉사와 전도, 선교와 헌금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해왔다.

그러나 신앙의 열심이 언제나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압박이 신앙인의 마음을 짓누를 수도 있다.

교회의 사역 역시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의 수와 참여 인원, 교회 규모와 각종 성과가 신앙의 기준처럼 받아들여질 때 교회는 세상의 성과주의와 얼마나 다른지 되묻게 된다.

"쉬어라"보다 중요한 말, "하나님 안에 거하라"

논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 창조가 시작됐으며 성령의 내주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안식은 죽음 이후에만 경험하는 미래의 사건이 아니다. 오늘의 삶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신앙의 현실이다.

일을 멈추었을 때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 바쁜 일상을 잠시 떠났을 때만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안식의 삶이다.

결국 안식은 시간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문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쉬었느냐보다 '누구 안에서 쉬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셈이다.

논문 저자에 따르면 '하나님의 안식'은 게으름도, 현실로부터의 도피도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 사랑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이웃을 섬기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적 안식은 '일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일상을 새롭게 살아가는 것'임을 재확인시켜 주는 글이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신앙의 열심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교회의 사역을 하나님의 사랑보다 앞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는 것. 「안식의 신학」이 오늘의 한국교회에 던지는 중요한 신학적 질문이다.

이지수 기자 libertas@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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