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에서 국제 기후정의 컨퍼런스가 열렸다.
"다른 종교의 이야기를 듣는데 마치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강한 소속감을 느꼈습니다.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 극복해낼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10월 1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에서 열린 국제 기후정의 컨퍼런스 패널토론1에서 불교계 패널 서재영 성철사상연구원 원장이 던진 말이다. 서 원장은 종교마다 전통과 문화가 다르고 같은 종교 안에서도 환경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지만, 이날만큼은 오히려 다른 종교인들과의 대화에서 더 깊은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느꼈다고 말했다. 기후위기라는 공동의 현실이 종교적 차이를 넘어 새로운 연대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러한 발언에 기독교계 패널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역시 적극적인 공감을 표하며, 이날의 만남을 일회적인 토론으로 끝내지 말고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화석연료 없는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그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공동체적 연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패널토론1은 그레이스 지선 김 미국 얼햄신학대학원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패널로는 플레처 하퍼 그린페이스 상임대표,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서재영 성철사상연구원 원장, 조경자 마리 가르멜 수녀가 참여했다.
'또 다른 세계의 비전-화석연료 이후의 정의로운 전환과 신앙의 상상력'을 주제로 열린 토론은 기후위기를 단순한 환경 문제로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 경제와 산업, 에너지 체제, 종교의 역할과 신앙의 실천을 함께 묻는 자리로 이어졌다.
"화석연료 체제는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토론에서는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제를 단순한 기술적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장윤재 교수는 화석연료 체제를 개인 몇 사람의 소비습관이나 생활 방식의 문제로만 볼 수 없으며, 끝없는 성장과 소비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사회구조 자체를 돌아봐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자연을 착취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피해를 사회적 약자나 취약한 공동체가 떠안는 일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개인의 선한 행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구조가 문제라면 전환 역시 구조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정의로운 전환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됐다. 재생에너지를 소수가 독점하거나 자원 채굴 과정에서 가난한 공동체가 희생되고,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다면 에너지원만 바뀌었을 뿐 불평등한 경제체제는 그대로 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필요한 것은 단순한 에너지 전환을 넘어 무엇을 발전이라고 부를 것인지, 무엇을 성공이라고 판단할 것인지 자체를 다시 묻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종교는 고통을 위로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돼"
장 교수는 기후위기 시대 종교의 역할과 관련해 '예언자적 증언'을 강조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호하고 위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 고통을 만들어내는 구조 자체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가 특정 정당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인간의 존엄과 미래세대의 권리에 관한 공적 논의에 참여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후정의 역시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누가 에너지를 통제하고, 누가 혜택을 얻으며,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지를 묻는 '돌봄의 정의'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변화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아울러 장 교수는 종교의 예언자적 역할을 단순히 미래에 대한 선언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짚었다.
▲사회자 그레이스 지선 김 교수의 모습.
미래에 이루어질 세계를 바라보며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그 미래를 오늘 앞당겨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농부는 농부의 자리에서, 교수는 교수의 자리에서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삶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살아낸 말이어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깊이 있는 예언자의 목소리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교회와 종교 공동체가 기후위기를 외부의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기업이나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비판하는 데 앞서 교회와 성당 등 종교기관 자체가 에너지 전환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기관의 건물과 예산, 재정 운용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돼야 하며, 설교나 강론을 넘어 실제 공동체의 생활 방식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후위기는 궁극적으로 윤리의 문제"
플레처 하퍼 그린페이스 상임대표는 종교가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정책과 윤리의 문제로 설명했다. 정부의 정책과 예산은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윤리적 선택이며, 따라서 신앙인들은 자신들의 가치와 원칙을 공적 정책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퍼 대표는 화석연료 산업과 환경오염, 기후변화를 초래한 주체들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종교는 이웃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해악을 일으킨 주체에게 윤리적 책임을 묻는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탈탄소와 에너지 전환을 경제적·환경적 문제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윤리적인 질문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회적 변화가 기업이나 권력을 가진 이들의 자발적인 결정만으로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며, 시민사회와 종교인들이 공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요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 바뀌어야 또 다른 세계가 가능"
▲10월 1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에서 국제 기후정의 컨퍼런스가 열렸다.
서재영 성철사상연구원 원장은 불교적 관점에서 변화의 출발점을 '마음'에서 찾았다.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만큼,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마음이 모일 때 새로운 정책과 사회적 실천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서 원장은 종교가 오랫동안 해온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실천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것도 종교가 감당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특히 AI와 데이터센터, 반도체 산업의 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증가하는 현실도 기후위기와 연결해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의 발전이 더 많은 전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더 많은 탄소 배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기술 발전의 방향과 에너지 문제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 원장이 이날 특히 강조한 것은 종교 간 연대의 가능성이었다. 그는 서로 다른 종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치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강한 소속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종교적 전통이 다르지만 기후위기라는 공동의 문제를 중심으로 대화하자 오히려 훨씬 편안하고 공동체적인 감정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종교가 공동의 주제를 갖고 연대한다면 새로운 대안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연대가 시민사회로 확장되고, 정책과 국가적 사업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이 정작 기후변화에 가장 적은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도 종교가 끊임없이 제기해야 할 윤리적 질문으로 꼽았다. 인간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 생태계 역시 기후위기의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종교 간 연대, 한국 사회에도 역사적 경험 있어"
서 원장은 종교 간 연대가 한국 사회에서 전례 없는 시도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1919년 3·1운동 당시 기독교와 불교, 천도교 등이 힘을 모은 사례와 1987년 민주화운동을 언급했다. 이어 2003년 새만금 생명평화를 위한 삼보일배를 네 종교가 공동으로 진행한 사례도 소개했다.
특히 새만금 삼보일배는 서로 다른 종교가 종교적 차이를 넘어 생명이라는 공통의 공적 가치를 중심으로 연대했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과거 종교 간 연대의 역사적 경험을 오늘날 기후위기라는 공동의 문제에 적용한다면, 서로 다른 전통과 생각을 가진 종교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힘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10월 1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에서 국제 기후정의 컨퍼런스가 열렸다. 패널토론1에서 발언하고 있는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조경자 마리 가르멜 수녀 역시 종교의 역할을 단순한 선언에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이날 토론은 종교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말하고 사람들에게 실천을 촉구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종교 공동체 스스로 변화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방향으로 모아졌다.
이는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이번 컨퍼런스의 주제를 실제 삶의 문제로 끌어내리는 일이기도 했다. 화석연료 없는 세계를 말하면서 종교기관 자체는 기존의 에너지 소비 방식과 성장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선언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날 패널토론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어쩌면 서로 다른 종교가 각자의 신앙 언어로 같은 질문을 던졌다는 데 있었다. 기독교에서는 화석연료 체제를 '죄의 구조'로 바라보며 구조적 회개와 전환을 이야기했고, 불교에서는 사람의 마음과 실천의 변화를 강조했다. 그린페이스는 기후위기를 윤리와 책임의 문제로 제기했고, 가톨릭 역시 종교 공동체의 실제적인 변화와 연대의 필요성을 함께 고민했다.
그리고 그 서로 다른 종교 전통에서 나온 목소리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발견됐다. 그것은 화석연료 없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에너지원만 바꿔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과 삶의 방식, 경제와 사회의 구조, 그리고 종교 공동체 자체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종교사회학적 성찰이었다.
서재영 원장이 이날 느꼈다고 말한 '소속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종교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생명과 미래라는 공동의 문제 앞에서 함께 행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국 이날 패널토론이 던진 질문은 '얼마나 많은 전력을 확보할 것인가'에 머물지 않았다. 어떤 에너지로 어떤 세계를 만들 것인가. 그리고 그 세계를 누가 먼저 살아낼 것인가. 화석연료 없는 또 다른 세계를 꿈꾸는 종교인들의 연대는 바로 이 질문에 함께 답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머리를 맞댄 종교인들은 가능한 또 다른 세계를 찾아가는 '실험 1일차'에 함께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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