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공동의 다짐"
(9월 9일 ~ 13일, 서울)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바로 이 평화를 누리도록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에큐메니칼 소명을 새롭게 하며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이어진 에큐메니칼 「폭력극복 10년」의 여정을 통해 세계교회는 폭력과 전쟁을 넘어 화해와 평화를 이루기 위한 공동의 뜻을 모아왔다. 그 여정 속에서 형성된 공동의 성찰과 합의는 2011년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에큐메니칼 소명」(An Ecumenical Call to Just Peace)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26년, 세계 여러 지역의 교회와 에큐메니칼 공동체를 대표하는 우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세계교회협의회(WCC)가 공동으로 마련한 평화의 자리에 함께하였다. 우리는 2026년 9월 9일부터 13일까지 서울에 모여, 정의로운 평화를 향해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이 걸어온 여정을 이어가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공동의 소명과 책임을 다시 확인하였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세계는 분열과 대립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군사주의가 다시 확산되고 군비경쟁이 거세지는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심화되는 경제적 불의와 급속히 악화되는 전 지구적 기후위기까지 더해지면서 우리의 삶과 평화는 더욱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에큐메니칼 소명」이 전해 준 소중한 지혜를 다시 기억한다. 전쟁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는 선언, 어떠한 전쟁도 결코 '거룩한 전쟁'이 될 수 없다는 단호한 고백, 무력 사용을 제한하는 전통적인 '정당한 전쟁'의 틀을 넘어 능동적이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일구어 가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그 핵심에 있다. 또한 이 소명은 '정의로운 평화'의 네 가지 핵심 차원, 곧 공동체 안의 평화, 시장에서의 평화, 지구와 더불어 누리는 평화, 사람과 공동체 사이의 평화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현실을 돌아보고, 이번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들려준 증언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이 지혜가 오늘날 우리의 나라와 공동체, 심지어 우리의 교회 안에서조차 너무도 충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음을 애통한 마음으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번 대회를 통해 전쟁의 폭력과 불의가 멈추지 않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목소리를 들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목소리를 들었다. 인권침해가 계속되고 있는 필리핀의 목소리와 스리랑카 소수민족이 겪고 있는 억압의 현실을 들었다. 수단과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 콜롬비아에서 다시 고조되는 분쟁의 위협, 그리고 마셜제도를 비롯한 태평양 전역에서 이루어진 핵실험이 남긴 고통과 상흔에 대해서도 들었다.
이것들은 오늘날 세계 곳곳에 지속되고 있는 수많은 무력분쟁과 구조적·국가적 폭력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대립하는 진영에 속한 국가들 사이에서 정치적 긴장은 높아지고 군사주의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 무기체계가 실제 전장에 배치되고 있으며, 핵전쟁의 위협마저 커지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깊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많은 나라에서 기독교 민족주의를 포함한 이념적 극단주의가 부추기는 혐오와 차별이 만연해지면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와 주변화된 공동체에 고통을 안기고 있다.
한편, 심화되는 기후위기와 극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삶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그 피해는 특히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더욱 무겁게 집중되고 있다. 2026년 8월 네팔에서 발생한 빙하 관련 대홍수는 기후변화를 초래한 책임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 피해에는 더욱 크게 노출된 공동체들이 얼마나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다시금 보여준다. 우리는 피해를 입은 이들과 연대한다. 또한 긴급한 인도적 지원과 회복을 위한 지원이 신속히 이루어질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기후위기로 인한 손실과 피해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접근 가능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기후적응과 회복력 강화, 조기경보 체계 구축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을 요청한다.
정의로운 평화를 위해 일하도록 부름받은 세계 에큐메니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지 못했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죄로 고백한다. 모든 사람이 온 창조세계와 더불어 하나님 앞에서 서로 자매와 형제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구하기보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한 집단의 생존과 이해를 무엇보다 앞세우는 자기중심적인 삶의 방식에 안주해 왔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이 공동의 죄책을 회개하며, 오늘 우리 세계가 마주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면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으로 부름받았음을 다시금 확언한다. 또한 우리의 교회가 너무나 자주 여성과 청년이 배제된 자리에서 평화를 논해 왔으며, 정작 그들에게는 치유의 과정에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지 않은 채 분열의 대가를 감당하도록 해 왔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창조세계의 온전함을 품는 정의로운 평화가 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증언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중심에 있음을 믿는다. 우리는 이 믿음에 굳게 서서 치유와 화해의 영성을 회복하고, 갈등과 폭력으로 상처 입은 세계에 치유를 가져오는 에큐메니칼 공동체의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
우리는 폭력과 불의로 고통받는 오늘의 세계에서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에큐메니칼 부르심」이 제시한 네 가지 차원 모두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참된 그리스도인의 부르심임을 다시금 확언한다. 그리고 세계 모든 교회와 에큐메니칼 동역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 책임을 다시 함께 짊어질 것을 호소한다.
성서적 토대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베소서 2:14). 성서는 이 진리를 분명하게 증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평화를 선포하셨을 뿐만 아니라, 친히 평화가 되시고 그 평화를 이루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 미움과 적대의 장벽을 허무시고 평화를 이루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루신 평화의 일을 계속 이어가야 할 부르심 앞에 서게 된다.
성서가 증언하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살아 있는 현실로 이루신 평화는 정의로운 평화이다. 인간과 온 창조세계, 그리고 하나님 사이의 온전한 관계가 회복되는 샬롬의 평화에 대한 비전은 성서 전체를 관통한다. 이러한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를 훨씬 넘어선다(이사야 2:4). 그것은 적대와 갈등이 극복되는 평화이며(이사야 11:6-8), 모든 사람이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삶의 열매를 누릴 수 있는 평화이다(미가 4:4). 또한 단순히 전쟁을 멈추는 데 그치지 않고, 정의에 뿌리내려 우리의 일상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현실로 구현되는 평화이다.
정의와 평화가 서로 입 맞추는 이 정의로운 평화의 비전(시편 85:10)에 비추어, 우리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과제가 무엇인지 분별한다.
오늘의 세계와 정의로운 평화
우리는 인권과 주권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국제관계를 규율해 온 규범과 원칙들이 약화되는 한편, 힘의 위계에 따라 형성되는 세력권은 확대되고 패권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격화되고 있는 현실을 깊이 우려한다. 평화적 공존의 원칙을 저버린 국제질서는 평시에도 군비경쟁을 부추길 뿐만 아니라, 전쟁이 상시적인 상태로 고착될 가능성마저 높이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집단학살, 강제이주, 권력자들에 의한 인권침해, 불의한 구조에서 비롯된 재난, 혐오와 차별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가자지구에서 자행된 범죄와 서안지구에서 제약 없이 벌어지는 극단주의적 폭력, 그리고 지속되는 점령과 팔레스타인 민중의 자결권 부정에 대해 이스라엘 당국이 계속해서 제도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현실은 국제사회가 스스로 천명해 온 원칙과 근본적인 도덕성에 대한 준엄한 고발이다. 이는 이른바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에 남아 있는 것마저 무너뜨리려는 세계 곳곳의 세력들을 부추기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현실은 이제 우리가 말하는 '정의로운 평화'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되묻게 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끊임없이 고통을 가하는 폭력과 전쟁의 질서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모든 인간이 지닌 보편적 존엄에 기초하여 인권을 최우선의 가치로 다시 세워야 한다. 우리는 자국의 영토와 국경을 지키는 데 초점을 둔 기존의 국가안보 개념을 넘어, 인간안보와 생명안보라는 새로운 규범을 세울 때에만 평화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 갈 수 있음을 확신한다. 이것이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길이며, 오늘 이 시대가 우리에게 맡긴 부르심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여실히 보여주듯, 지구가 직면한 생태위기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온 창조세계가 신음하며 고통받고 있다. 이 위기는 무한한 생산과 무한한 소비를 향한 끝없는 욕망에 내몰려 온 산업성장 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절제를 모르는 끝없는 성장의 추구는 생태계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인간사회 안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가난과 불평등을 낳는 구조 속에서 삶의 기반을 빼앗기고 취약한 상황으로 내몰린 이들에게 그 고통은 더욱 무겁게 가중되고 있다. 이처럼 서로 맞물린 생태적·사회적 위기는 모든 생명의 안녕을 위협한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의 근본적인 진실을 깨닫게 한다. 생태적 정의와 사회적 공의, 그리고 평화는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온 세상을 아름답고 선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에 신실하게 응답하며, 우리는 창조세계의 온전함을 온전히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한(조선)반도의 현실과 평화의 과제
우리가 지금 함께 모인 한(조선)반도는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냉전과 이념 대립이 첨예하게 맞서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1953년 이후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식되지 않은 채, 군사적 충돌을 멈추기 위한 정전체제가 73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끝나지 않은 전쟁 상태가 만들어 온 정치적·군사적 긴장은 한(조선)반도의 주민들에게 계속해서 어려움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으며, 한(조선)반도의 적대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갈등은 동북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평화까지 위협하고 있다.
한반도의 두 공동체는 상호 존중에 기초하여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소통 채널의 복원과 군사적 충돌의 방지, 그리고 전쟁 상태를 끝내고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관련 당사자 간의 대화를 촉구한다. 핵위험 감축은 군축이 이루어질 때까지 미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추가적인 핵·미사일 능력의 확대를 중단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조치는 위협을 줄이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조치들과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핵무기 없는 세계의 실현과 그 과정의 일부로서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이루기 위한 노력에 계속 함께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기도와 동행, 그리고 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을 이어갈 것을 다짐한다.
한국교회가 이어 온 평화의 증언을 기억하며
우리는 지정학적 분단과 대립의 한가운데에서도 화해와 평화를 향한 길을 꾸준히 걸어온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와 증언을 되새긴다. 올해는 1986년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주선으로 남과 북의 그리스도인들이 스위스 글리온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가진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남과 북의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성찬을 나누며, 평화를 이루는 일에 함께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이 만남은 당시 자리에 함께했던 이들에게만 깊은 의미를 지닌 사건이 아니었다. 이후 더 넓은 세계 에큐메니칼 공동체가 동행하는 가운데, 남과 북의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만나고 디아코니아적 협력을 이어가는 오랜 여정을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이기도 한 냉전질서를 극복하고, 더욱 평화로운 세계를 향한 길을 열어가는 데 있어 결정적인 발걸음이 되었다.
분단과 적대의 현실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한(조선)반도에서, 우리는 한(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향한 우리의 결의를 다시금 굳게 다짐한다. 우리는 1986년의 만남을 통해 세워진 화해와 평화의 헌신을 새롭게 하며, NCCK가 1988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통해 천명한 고백과 화해의 정신, 그리고 2026년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에큐메니칼 소명」의 정신을 이어갈 것을 다짐한다.
공동행동계획과 파송
우리는 치유와 화해, 평화를 일구어 가는 교회로 새롭게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온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그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헌신을 새롭게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공동행동계획을 밝힌다.
1. 정의로운 평화를 위한 세계 에큐메니칼 공동행동
우리는 2011년 자메이카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의 국제 에큐메니칼 평화대회에서 제시된 '정의로운 평화'의 비전과 서로 긴밀히 연결된 네 가지 차원, 곧 공동체 안의 평화, 지구와 더불어 누리는 평화, 시장에서의 평화, 사람과 공동체 사이의 평화를 다시금 확언한다. 우리는 오늘 세계 곳곳에서 이 비전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고백한다. 국가와 교회 모두 우리가 부름받은 샬롬을 향하기보다 군사주의와 배제,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핵억지 교리와 무제한적 성장이라는 그릇된 논리에 이끌리고 있다. 이에 우리는 세계의 모든 교회가 예배와 교육, 공동행동을 통해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헌신을 새롭게 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수많은 갈등과 파괴를 부추기고 죽음을 초래하는 가부장적 군산복합체제에 맞서며, 이 체제를 해체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평화를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평화를 실제로 이루어 가는 길에 온 힘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또한 평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탈식민화하고, 언제나 억압받고 짓밟히며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관점에서 이러한 도전에 응답할 것을 다짐한다. 권력자의 폭력에 희생되어 온 이들이 평화를 만들어 가는 주체로 온전히 설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진정으로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말할 수 있다.
a) 군축과 핵무기 철폐, 평화를 위한 기술의 책임 있는 활용
우리는 전쟁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남을 확언하며, 무력분쟁을 종식하고 모든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헌신한다.- 핵무기금지조약(TPNW)을 지지하고 확산하며, 전 세계적인 핵무기 철폐를 위한 에큐메니칼 공동행동을 함께 전개한다. 아울러 핵무기 철폐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핵위험 감축, 위기 상황에서의 소통, 신뢰 구축, 그리고 우발적이거나 의도하지 않은 핵위기의 고조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들을 적극적으로 촉구한다.- 비인도적인 핵억지의 논리에 맞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현재 존재하는 핵무기와 핵무기 사용 교리가 초래하는 위험을 시급히 줄여야 한다는 점 또한 분명히 인식한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회가 2014년 발표한 「핵 없는 세계를 향하여(Towards a Nuclear-Free World)」 성명의 정신에 따라, 핵에너지의 군사적 이용뿐만 아니라 민간 이용에 대해서도 윤리적·신학적 논의를 더욱 심화한다. 치명적 자율무기체계의 개발과 사용, 그리고 핵지휘통제체계에 인공지능(AI)을 통합하는 것에 반대한다. 무력 사용에 대한 실질적인 인간의 통제를 보장하고, 인공지능(AI)의 무기화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 규범이 마련되도록 촉구한다. 예배와 교육, 기도와 공적 옹호 활동을 통해 우리 교회와 공동체가 군축과 평화를 배우고 실천하도록 힘쓴다.
b) 분쟁으로 고통받는 민중과 공동체와의 연대
우리는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미얀마, 수단, 이란, 스리랑카, 필리핀, 콜롬비아를 비롯하여 전쟁과 점령, 정치적 폭력과 인권침해로 고통받는 민중과 공동체에 연대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헌신한다. 국제법에 따라 모든 민중의 자결권과 주권,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고 보장되도록 힘쓴다. 경제적 행동을 비롯한 다양한 비폭력적 실천을 통해 정의와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운동을 지지한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에큐메니칼 동행 프로그램(EAPPI)을 비롯한 에큐메니칼 동행과 국제적 연대를 더욱 강화한다. 한반도를 비롯하여 키프로스와 아일랜드 등 역사적 분단과 갈등을 겪어 온 사회의 교회 및 평화운동과의 연대를 더욱 깊이한다.- 이주민 공동체를 지지하고 보호하며, 난민의 권리와 복지가 보장되도록 힘쓴다.
c) 정의와 창조세계, 구조적 폭력의 해체
우리는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 차별과 인종주의, 성 불평등, 생태계 파괴가 평화를 훼손하는 구조적 폭력의 형태임을 인식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헌신한다. 기후정의와 창조세계의 회복을 위한 교회의 실천을 더욱 강화한다. 경제적 불평등과 계급 차별, 인종주의와 모든 형태의 배제에 맞선다. 성정의를 증진하고, 여성과 청년이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기후정의 행동을 위한 에큐메니칼 10년」(2022-2034)의 틀 안에서, 사회적·경제적·생태적 정의를 위한 지역의 실천이 국제 에큐메니칼 옹호 활동과 연결되도록 한다. 교회와 에큐메니칼 기구의 협의회와 위원회, 청년들과 의사결정의 권한을 나누고, 새로운 세대가 교회 지도력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넓혀 간다.
d) 정의·화해·일치를 향한 에큐메니칼 순례
우리는 평화를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치유와 화해, 변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헌신한다.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특히 여성과 청년이 함께하는 풀뿌리 평화교육과 평화실천을 위한 활동을 마련하고 확산한다. 전쟁과 식민주의, 폭력으로 고통받아 온 개인과 공동체를 위해 목회적 돌봄을 제공하고 치유를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 교회와 공동체의 경계를 넘어 공동기도와 예배, 신학적 성찰과 만남을 더욱 강화한다. 교회들이 분쟁으로 고통받는 현장을 직접 찾아 그곳의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의 현실과 증언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정기적인 에큐메니칼 순례와 교류의 기회를 마련한다.
2. 한반도의 정의로운 평화를 위한 에큐메니칼 공동행동
1986년 글리온 만남 40주년을 맞아, 우리는 냉전 종식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분단과 아직 평화체제로 전환되지 못한 정전체제의 현실을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이 현실 속에서 한반도 평화가 마주한 고유하고도 시급한 과제들에 주목한다. 다음의 행동들은 앞서 밝힌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헌신을 교회가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다섯 가지 과제이다. 우리는 이를 예배와 기도, 교육과 동행, 그리고 공적 옹호 활동을 통해 함께 실천해 나가고자 한다.
a) 전쟁을 끝내고 한반도의 평화적 공존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한반도가 세계에서 군사적 대립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임을 인식하며, 정전체제가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되어야 함을 확언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헌신한다. 전쟁의 위험을 높이는 적대행위와 군사적 활동의 중단을 촉구한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에큐메니칼 평화외교를 더욱 강화한다.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사이의 대화와 신뢰 구축, 평화적 공존을 촉진한다.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국제 에큐메니칼 옹호 활동을 전개한다.
b) 평화적 공존과 상호 존중을 위한 신뢰 구축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적 공존이 전 세계적인 핵군축과 핵위험 감축,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협력적 안보체제 구축과 분리될 수 없음을 확언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헌신한다. 세계적 차원의 비핵화와 핵무기 철폐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핵무기 없는 한반도의 실현을 함께 추구한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해에서 살아남은 한국인 피폭자들의 2세와 3세 후손들이 법적으로 인정받고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며, 원폭 피해로 인한 건강 상의 고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린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핵위험을 줄이는 일을 우선한다. 핵·미사일 능력의 추가적인 확대를 중단하고, 이를 단계적이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축소하여 궁극적으로 폐기와 비핵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지지한다. 또한 군사적 억지와 군비경쟁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한 역내 대화와 협력적 안보체제의 구축을 지지하며, 위기 예방과 소통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한다.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 서로의 정치체제와 공식 국호를 존중하는 것을 포함하여 상호 존중의 관계를 만들어 가도록 힘쓴다. 국가보안법 제7조의 폐지를 포함하여, 표현의 자유와 평화적 교류, 화해를 위한 공간이 더욱 확대되도록 촉구한다.
c) 인도적 협력과 민간 교류, 생태적 평화를 위한 공동의 실천
우리는 평화가 한반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체감되고 누려져야 함을 확언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헌신한다. 이산가족의 상봉과 인도적 협력의 재개를 지지하고 이를 위해 노력한다. 특히 청년과 여성, 신앙 공동체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한(조선)반도의 주민들 간 교류를 촉진한다. 기후변화와 재난 대응, 조기경보, 기후적응, 생태계 복원을 위해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간의 협력을 장려한다. 공동으로 마주한 생태적·인도적 위험에 대응하는 협력이 상호 신뢰를 쌓고 평화적 공존에 기여할 수 있음을 인식한다.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이주민과 다문화가족, 북한을 떠나온 사람들, 난민을 비롯한 소외되고 주변화된 공동체의 인권과 사회적 포용이 보장되도록 힘쓴다.
d) 치유와 화해, 평화의 공간으로서의 비무장지대(DMZ)
우리는 분단된 사회 속에서 교회가 치유와 화해의 공동체가 되도록 부름받았음을 확언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헌신한다.- DMZ 국제 에큐메니칼 평화순례를 정례화하고, 한반도가 평화와 화해를 위한 국제적인 순례의 장이 되도록 발전시켜 나간다. 글리온 만남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조선)반도의 그리스도인들과 세계 에큐메니칼 공동체가 함께하는 공동기도와 예배, 만남을 다시 이어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전쟁과 분단이 남긴 집단적 트라우마를 증언하고 치유하며 신학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교회와 지역공동체가 세대를 이어 화해를 이루어 가는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한다. 우리는 2027년 서울에서 개최되는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2027)가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에큐메니칼·종교간·세대간 만남과 참여를 넓혀 가는 뜻 깊고도 섭리적인 기회가 될 것임을 인식한다.
3. 에큐메니칼 연대의 지속과 세계 에큐메니칼 평화선언의 실천
우리는 이 선언이 지속적인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다음과 같이 함께 행동할 것을 다짐한다. 이 선언의 이행을 지속적으로 살피고 점검하며, 후속 활동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실천을 진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국제 에큐메니칼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비롯하여 회원교회와 에큐메니칼 기구, 청년단체, 시민사회, 학계, 그리고 이웃 종교 공동체 간의 협력을 더욱 강화한다. 평화교육, 옹호 활동, 연구와 공적 증언을 위한 구체적인 협력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실천한다. 한반도의 긴장을 지속적으로 살피고 긴장 완화에 기여하며, DMZ와 접경지역의 현실을 직접 목도하고 증언하기 위한 국제 에큐메니칼 동행·참관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참여하는 교회와 공동체가 정기적으로 모범적인 실천 사례를 서로 나눈다. 교회들이 정의로운 평화의 순례자로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파송하고 필요한 역량을 갖추도록 하며, 각자의 공동체와 세계 속에서 정의로운 평화, 치유와 화해를 삶으로 살아내도록 한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부르심
그러므로 우리 교회와 에큐메니칼 공동체는 '정의로운 평화의 순례자'로서 함께 걸어갈 것을 다시금 다짐한다. 우리는 전쟁과 군사주의에 맞서고, 생명과 창조세계를 지키며, 분쟁과 불의로 고통받는 민중과 함께 서고, 치유와 화해, 평화적 공존의 공동체를 세워갈 것이다.
이 선언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다.
이 선언은 우리 모두를 기도와 회심, 동행과 공적 증언,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부르는 초대이자 부르심이다.
2026년 9월 11일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세계 에큐메니칼 평화대회에 함께한 교회와 에큐메니칼 공동체 일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