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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식 칼럼]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베리타스
故 김대중 대통령이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말하였다고 하는데 그는 진실을 말하였다. 그는 85세에 별세했지만 아름다운 인생을 살다갔다. 한 사람의 인생이 유구한 역사의 발전에 이바지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남한과 북한의 관계 개선에서 일종의 역사적 발전을 이룩하였고 또 그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투쟁이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 역사에서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의 이런 업적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 시각도 없지 않다.

필자는 그의 업적이 한국의 역사 발전에 이바지하였다는 일반론은 제껴두고 다른 면에서 그가 역사 발전을 위하여 결단하고 힘든 일을 도모한 일을 한가지 들고자 한다. 그것은 그가 고 박정희 대통령의 정적이 되어 받은 수모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산업화 운동과 가난의 극복을 위한 정책을 평가하여 그의 기념관 건립을 제안하고 추진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화해를 통한 역사 발전의 원리를 터득하고 과감히 실천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 현대화의 혁명적 업적과 김대중 대통령이 이룩한 민주화 업적은 오늘 조화롭게 한국의 역사를 이끌어 가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적이고 발전적인 결단으로 망명 상태에서 하와이에서 객사한 고 이승만 대통령의 유해를 동작동 국립묘지에 이장케 하고 묘비에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자유민주주의적인 반공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한평생 살아온 그의 공적을 부각시키고, 그의 실정으로 생긴 4.19 희생자들의 지하의 영혼들이 민족의 발전하는 역사의 발목을 잡지 않게 한 것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이 확립시켜 놓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이어가 견고케 하려고 노력하였다. 어느 나라나 사회와 역사의 발전을 위하여는 상충되는 이념과 정책, 행위로 인하여 벌어지는 사건들(event)들이 많은데 다 인간의 판단과 행위이니 만큼 어느 한 편이 절대선이나 절대악이 아니고 상충되는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의 집권세력은 반대편을 차선(次善)으로 간주하고 어떤 정책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 때 차선에 속하는 것은 목공(木工)의 대패질로 생기는 대팻밥과 같은 것이 된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대팻밥이 되는 어떠한 이념과 주장도 역사 발전의 수레바퀴의 철로를 따라 포물선을 그으며 역사 발전에 동반한다. 그러다가 역사 발전의 수레바퀴 앞에 나타나서 역사의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도 있다. 즉 인류 역사의 발전에는 우선과 차선이 때를 달리 하면서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해방 이후 약 60년 동안 희비(喜悲) 간에 많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의 해석을 가지고 소위 '역사 해석'을 가지고 진보파니 보수파니 하면서 논쟁을 벌이고, 국사교과서를 문제 삼고 있다. 물론 그 모든 사건(event)을 가시적(可視的)이고 외면적인 현상과 목전(目前)의 결과를 중요시하여 평가하는 실증적(實證的) 역사 해석의 방법이 있지만, 그보다는 현상 이면에 있는 심층적인 또는 숨은 원인과 동기, 목적 등을 파악하여 그것을 역사의 사실(fact)이라고 생각하는 길이 있다. 사건과 사실을 구별하려는 것이다.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사건에 속한다. 역사 발전에 참여하는 모든 종류의 운동에서 사람들은 우선과 차선의 판단의 차이를 가지는데, 우선과 차선의 것이 사생을 건 반목(反目) 거리가 아니고 상생(相生)의 길인 것을 터득하는 사람은 화합의 길을 펴서 역사의 발전을 도모하게 된다.

반대로 상생의 원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나 세력은 역사 발전의 발목을 잡는데, 자칫하면 역사 발전의 수레바퀴 밑 침목(枕木)의 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우리 국민들 가운데는 지난 60여년 간의 여러가지 사건들에서 고난을 받거나 희생을 당하여 한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한을 씻을 수 없거나 용서할 수 없는 영원한 것(과거)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한스러운 사건들은 발전하는 역사의 발목을 언제나 잡을 수 없었고, 우리의 현실이 그 일들을 언제나 문제 삼고 있을 수도 없다. 그 일들을 단순히 망각(忘却)하자는 것이 아니고, 그 일들이 어떤 역사적 새 인식을 주어서 역사 도약의 발판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국사 교사들이 6.25 전쟁을 북침이니 남침이니 하고 변론을 펴고 있는데 이것은 그 전쟁의 물리적이고 외면적인 요인, 즉 사건(event)을 가지고 변론하는 것이다. 6.25 전쟁의 사실(fact)은 남북, 즉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결이라는 것이다. 이 역사적 사실의 비참을 언제 어떻게 고치거나 치유(통일)할 것이냐가 우리 민족(남과 북)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앙편이 서로 한풀이하는 방법으로는 그 사실이 치유되거나 해결될 수 없다.

우리가 '역사의 발전'이라고 할 때, 그것은 인류사회나 우리 민족사회가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며 평화롭게 공존하게 되고, 삶이 보람 있고 행복하여지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우리는 역사의 희망으로 삼는다. 이런 희망이 없으면 역사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또한 이 희망은 행불행간의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여 화해된 사회, 화해의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희비 간의 과거의 사건과 사실들을 단순히 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아픔이 아픔이 아니게 만드는 어떤 길을 찾아 그 아픔을 넘어서자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과거의 속량'이라고 말하고 싶다. 속량은 아픔을 당한 사람이 스스로를 희생자로 생각하고 자기의 희생의 값으로 다시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 발전이 있도록 염원해야 할 것이다.

역사 발전 과정에서 우선시 된 것을 단행하더라도 그것의 공과(功過)는 불원간 역사적 평가와 심판을 받게 된다. 바로 지난 세기 동안 독일의 국수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가 우선시 되었었으나 불원간 역사적 심판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목공소에서 대팻밥 신세가 되었던 자유사상이 역사의 새로운 발전을 만들어가고 있다.

역사 발전 과정에서 획기적인 공을 세운 사람들의 업적을 후대 사람들이 길이 기억하고 존경하는 곳에는 역사의 새로운 희망이 있다. 인도의 시성 타골(Tagore)이 읊기를 '어둠은 빛을 향하여 나아가지만 보지 못하는 자는 죽음을 향해 간다.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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