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정 목사 ⓒ베리타스 |
‘향기나는 이웃’ 향린교회의 담임 조헌정 목사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평소 하는 멘트가 있다. “저는 힘이 없습니다. 교인들이 하라고 하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안하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향린교회는 “성전의 벽을 허물라”는 안병무 박사-홍창의 장로의 맥을 이어 민중신학을 기초로 교회를 운영, 교인들 뿐 아니라 교회 근처에 사는 주민들에게도 구수한 향기를 퍼뜨리고 있다.
얼마전엔 안병무 박사 12주기 추모강연회를 열기도 한 향린교회. 22일 교회 담임 조헌정 목사를 만나 요즘 교회 돌아가는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기자를 만나 차 한잔을 내오느라 바쁜 움직임을 보인 그는 숨을 고른 뒤 기자를 마주대했다. 비서는 없었다. 개량 한복을 걸쳐 입은 그의 모습에서 검소함이 배어 나오고, 또 한편으로 친근함이 묻어났다.
1953년 5월 17일. 폐허로 변해 버린 서울 한복판에서 안병무, 홍창의 등 12명의 젊은 신앙인들이 창립한 교회인 향린교회. 이 교회가 무려 반세기 동안 자기 색깔을 잃지 않고,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교회로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조 목사는 돌려 말하지 않고, 한 마디로 압축해 표현했다. “‘평신도’ 덕택이었다”
평신도 사제직에 근거해 운영하고 있는 향린교회는 담임목사 세습은 생각조차 할 수 없으며, 재정역시 하다 못해 몇십원, 몇백원의 지출까지 낱낱히 공개돼 투명성 또한 높이고 있다. 향린교회는 앞서 2005년엔 담임목사의 임기를 7년으로 제한하고, 전체 시무장로 중 여성장로가 ⅓ 이상이 되도록 그리고 목회자 중 1명 이상을 여성 목회자로 선임키로하는 등 민주적 교회 정관을 마련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밖에 평신도들이 교회 행정에 참여하는 것은 향린교회의 기존 정관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조 목사에 따르면 향린교회 정회원은 누구나 공동의회 회원이 되며, 제직회 산하의 각 부 위원회의 활동에 참여할 자격을 갖춘다. 또 향린교회 제직회 산하에는 8개의 부서와 8개 위원회가 있는데, 현재 여기에는 제직(장로, 권사, 집사)뿐만 아니라 일반 평신도들도 참여해 활동할 수 있게 돼있다. 평신도들이 참여하고, 평신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교회. 즉, 향린교회에선 평신도들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목사는 작아지고, 또 작아진다.
지난 2003년 부임해 5년간 ‘교인에 의해 교인을 위해’ 목회 활동을 펼쳤왔던 조헌정 목사는 “이제는 교회가 그 성전의 벽을 허물고, 민중들에게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목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중에게 찾아가는 것. 이것은 향린교회가 일찍부터 꾸준히 펼쳐온 선교 정책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조 목사에 따르면 향린교회는 크게 △ 민중교회 지원개척 사역 △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의료선교 사역 △ 농촌교회와의 자매결연과 유기농산물 직거래 △ 통일선교와 인권선교 △ 환경을 보호하는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운동 등을 하고 있다.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신앙. 향린교회, 아니 향린공동체의 이런 행동하는 신앙이 안병무 박사의 ‘민중신학’의 맥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을 터 교회로 온 민중신학이 어떤 실제성, 현장성을 띠고 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조 목사에게 물었다. 조 목사는 “민중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는 교회를 이끄는 일이 본인의 역할”이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얼마전엔 교인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향린공동체가 무건리 주민들을 위로차 방문해 지역주민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또 얼마전부터 시작한 국악예배는 교인들보다 오히려 지역 주민들에게 인기가 더 좋기도 하다. 이같이 향린교회는 요즘들어 선교 정책 활동으로서 ‘민중과의 연대’를 넘어 민중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마련하고 있다. 이 역시 교인들의 생각이었고, 의견이었다.
먼저는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의 벽을 허문 향린교회는 이제는 성전의 벽을 허물고, 민중들을 담아낼 채비를 하고 있었다. 향린교회 교우들 그리고 조 목사에게는 남모를 자부심 그리고 기쁨이 배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