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일 오후 5시 서울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여성교회 창립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10여년 전 여성교회에 몸담아 헌신했던 정숙자 목사가 ‘왜 여성교회인가’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베리타스 |
“교회는 비여성 비해방적” “여성을 억압시키는 모델” “교회 하면 권위적인 목사가 연상” “동료 남자 전도사는 단 위에서 설교..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단 밑에서 설교” “여성은 봉사, 심방 때에도 주로 부엌을 거드는 역할” “절대적인 헌신 강조” “교회가 경제적인 동물로 변해서 이권쟁탈전” 한국사회의 양성 평등화에 한참 뒤떨어진다는 평을 받는 한국교회의 보수적이면서도 가부장적인 체제를 꼬집는 여성신학자들의 말들이다.
2일 여성교회 창립 20주년을 맞아 ‘왜 여성교회인가’를 주제로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10여년 전 여성교회에 몸담아 헌신했던 정숙자 목사(이주여성교회 목사, 전 여성교회 목사). 지금은 이주여성들을 위한 목회에 전념하고 있는 정 목사는 이날 주제 발표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살려 여성교회의 창설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조명했다.
정 목사는 기성교회의 가부장적인 가르침부터 지적했다. 그는 “기성교회의 말씀선포는 은혜와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여성들을 사회 안에서 잠들게 하고, 개교회주의, 개인축복만 강조하여 눈물과 고통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미군기지지역의 여성들 등등),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 숨겨진 가장 작은 자들을 보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여성교회는 이런 기성교회의 가르침 때문에 현실 속에서 잠든 여성들을 깨워 일으키기 위해 여성신학자들의 손으로 창립됐다. 정 목사는 “한국교회의 현실과 여성 민중목회자들의 아픔이 사회에서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의 아픔과 동일시되면서, 한국교회현실에 눈을 뜬 여성 신학자들이 여성교회를 창설했다”고 했다.
정 목사는 이어 1989년 창립 당시 여성교회가 출판한 홍보용 안내서를 소개했다. 안내서에 따르면, 여성교회는 교파를 초월해서 모인 ‘여성들의 신앙공동체’이며 또 기독교진리를 전파하고, 이웃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관심’을 적극적으로 나누며 특히 한국여성들의 억눌림과 고난으로부터의 해방, 아픔으로부터의 치유를 위해 함께 일하는 공동체였다.
이런 창립배경을 지닌 여성교회가 처음으로 시도했던 것은 예배의 갱신이었다.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예배의 강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정 목사는 “여성교회는 고통 받는 자들의 치유를 위해 각종예배를 드렸다”며 “빛의 예배, 소금의 예배, 물의 예배, 향유예배와 같은 상징적인 예배와 함께 현장예배와 드라마예배를 드렸다”고 했다.
초창기 여성교회의 꿈은 원대했다. 정 목사에 따르면, 여성교회는 △여성평신도를 위한 성서연구반 △여성설교자를 위한 성서연구반 △학생성경반 △상담과 치유 △성장과 선교 △모녀모임 △고부모임 △부부모임 △결혼준비모임 △직장여성모임 △전문직여성모임 △나의 이야기 나눔 △중년여성 지도력 개발 △심방목회연구 △여성기도모임 △성경과 신문읽기 등의 활동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한 때 교인 수가 10명 조차 안되는 어려움 속에서 그 명맥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려울수록 여성교회는 안이 아닌 밖을 내다보며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그래서 신설한 것이 이주노동자여성센터였다. 정 목사는 “고통을 치유하는 여성교회가 자기 고통만 치유하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눈을 감는다면 이미 여성교회의 생명은 죽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렵고도 힘들게 여기까지 온 여성교회. 여성교회는 왜 지켜져야할까? 정 목사는 “여성교회는 교권주의 교회를 평등실현 교회로 바꾸기 위해 열려있는 목회의 장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또 “여성교회는 목사와 평신도라는 벽을 허물고 함께 계획하고 함께 실천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정 목사는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속한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모여서 평등과 자유와 자주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우리와 목적을 함께하는 모든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생명을 낳고 새 예배를 창조함으로써 이 사회와 하나님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여성교회”라고 했다.
이어 논찬에 참여한 이정배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는 “여성교회는 주지하듯 가부장적 체제에 물든 교회와 근본적으로 단절된 즉 여성적 가치로 재구성된 교회상을 제시하고자 했다”며 “하이라키 구조를 거부하고 헤테라키적 평등성을 선호했으며 그 과정에서 성직자의 권위를 상당부분 해체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교회의 한계도 지적했다. 이 교수는 “기존의 교회체제를 비판하는 과정은 옳았으나 여성교회가 그를 대신할만한 구체적 대안이 되지는 못한 듯싶다”며 “성차별을 ‘차이’라 여기는 항변은 정당했으되 차이가 ‘분리’가 되어 기성 교회와 소통 불가능한 상태로 변하지 않았는가”라고 했다. 이어 “여성교회라 하더라도 역사적(명시적) 매개물을 통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법”이라며 “기성교회를 비판하되 그를 닮아가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 교수는 “혹자는 역사적 매개물로서의 현실 교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을 ‘포스트 모던적 영지주의’라 부르고 있다”며 “이런 태도는 결국 비판하는 자신 역시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여성교회에 기성교회와의 소통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여성교회가 진정코 차이의 공동체가 되려 한다면 차이들 간의 연대성(Solidarity)을 모색해야 한다”며 “홀로 정결한 공동체로 남기보다는, 홀로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 하기 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연대성을 강조해야 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기성교회를 ‘부정의’(Injustice)와 직결시키지는 않았으면 한다”며 “예수 공동체는 더러운 물에 손을 담구는 공동체였다. 탁류와 함께 휘둘리면서 탁류를 정화시키는 방법밖에는 없을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교회 내에 연대성을 보여주는 많은 징표들이 생겨나길 바란다”고 했다.
논찬에 참여한 구미정 교수(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역시 기성교회와의 ‘소통’을 강조했다. 구 교수는 “여성교회가 ‘모이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그러려면 한국교회 여성들과 소통해야 한다. 소통의 미학을 익히는 것이 여성교회의 또다른 과제일 것 같다”고 했다. 구 교수가 제시한 실제적인 소통의 방법들은 △여성목회자들을 위한 설교세미나 △여성신학도를 위한 목회실습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