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출애굽기와 원어설교 I
발표 : 김창주 박사(2009년 9월 10일, 기장신학연구소 목회와신학연구 세미나에서 발표)
출처 : 한국기독교장로회 신학연구소
6. ‘히브리’(3:18), 유대, 이스라엘
고대 근동과 구약성서의 용례를 중심으로 ‘히브리’가 누구인지 살펴보자. 성서에서 최초의 히브리로 묘사된 아브라함이 떠돌던 지역이 다름 아닌 ‘갈대아 우르’(창 11:31 cf. 느 9:7), ‘하란’(창 12:4,5)이었다는 점은 ‘히브리’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배경그림이다. 최근에 발굴된 하란 지역의 에블라 왕국은 셈의 아들 아르박삿 → 셀라 → ‘에벨’이 건설한 것으로 히브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창 10:24).
‘br → to cross (river)
pr → to provide (food)
eperu → dust
① 어원적으로 Apiru는 ‘dusty people' 사막을 떠돌아다니는 베두인, 강을 건너다니는 이주 노동자, 약대의 흙먼지를 따라 다니는 대상의 말잡이 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 ‘먼지’(עפר)와 관련성, 흙의 먼지와 같은 미미한 존재 (‘땅의 흙’)
② 지형적으로 하비루는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양식을 찾아(to provide) 이리 넘고 저리 넘으며(to cross), 흙먼지를 일으키는(dust) 떠돌이로서 경우에 따라서는 용병으로 고용되거나, 고관대작의 식객이 되기도 하였고, 스스로 노예로 팔리기도 하였다.
③ 특정한 지역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혈족에 의한 혈연 공동체나 동일한 언어를 공유한 문화 공동체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즉 용병(삼상 14:21), 부랑자나 떠돌이(창 14:13, 창 39:14), 범죄자나 노예 (창 37:14) 등이며, 이들이 무리를 지어 지도층을 급습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유목민이었다(수 24:2). 보통 혈족으로 형성된 종족이나 동일한 문화를 공유한 집단으로 보지 않고 하층 계급이나 주류에 들지 못하는 변방의 소외된 무리를 가리킨다.
④ 신앙적으로 볼 때 ‘대안(對岸)에 서서 저편 기슭을 바라보다.’ - 랍비들의 견해에 따르면 여러 가지 정보를 알고 경험과 지식을 쌓는 일이 곧 ‘대안에 서서 본다’는 뜻이다. 실제로 자신들의 과거 ‘강 저편의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 10:19).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과거 ‘강 저편에서’ 경험하던 나그네, 고아, 과부 등의 삶을 보살피려 여러 가지 규정을 제정한 것이다(신 14:29, 24:17, 19-21, 27:19).1)
히브리들은 유프라테스를 넘나들고, 가나안을 지나 이집트에 정착하였고, 후에 홍해를 다시 건너 광야를 유랑하다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진입하였다(수 24:3). ‘히브리’의 여정은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에 정착함으로써 완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시대와 사상의) 강을 건너며 새로운 공간을 열고 있다.
7. 모세 vs 라암셋(1:13, 12:37)
모세는 바로의 공주 ‘비티아’가 나일강 하류에 갈대상자에 담겨 흘러내려오던 어린 아이를 ‘물에서 건져내었다’는 의미로 이름 지어졌다. 그러나 ‘모세’는 성서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어휘일 뿐 아니라 동사형으로 볼 때도 ‘건져내었다’는 능동형보다 ‘건짐을 받았다’는 수동형이 가능성이 많다. 이렇듯 원인론적 해석은 사건의 실체보다 모세의 운명을 풍자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원래 모세는 이집트 이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투트모세는 지혜의 아들, 라암셋, 혹은 람세스는 태양의 아들이 되고 ‘모세’라는 이름이 독립적으로 쓰인 경우도 발견된다. 몇 해 전 크리스티앙 자크는 장편 소설 ‘람세스’를 발표하여 독자들을 흥분시킨 적이 있다. 자크는 소설에서 모세가 이집트에서 ‘신의 아들’이었다고 쓰고 있다.
사실 모세는 (물에서) 구원을 받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고, 후에는 그의 백성을 (홍해에서) 구원하였다. 그렇다면 모세는 역시 도탄에 빠진 많은 백성을 건져낼 ‘메시아’의 원형 아닐까?
8. 요게벳(6:20, 민 26:59)
요게벳은 모세와 아론, 미리암의 어머니이며 ‘여호와는 나의 영광’이라는 뜻이다. 성서에서 최초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단축되어 사람 이름에 결합한 경우이다.
요압은 ‘여호와는 아버지,’ 요아는 ‘여호와는 나의 형제,’ 요엘은 ‘여호와는 하나님,’ 요하난은 ‘여호와는 은혜,’ 요나단은 ‘여호와는 선물,’ 여호사밧은 ‘여호와는 심판자,’ 여호사닥은 ‘여호와는 의로운 분’ 등을 각각 의미한다.
그러나 ‘여호야긴’은 동일한 패턴의 합성 이름이지만 앞뒤로 교차가 자유롭다. 즉 ‘여호 +야긴’이기도 하나 ‘야긴 + 여호’로 결합되기도 한다. ‘여호야긴’은 여호야김이 죽자 왕위에 올라 석 달 동안 통치하였으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비운의 인물이다(왕하 24장). 바빌론 포로 생활 37 년 만에 바빌론 왕 에윌므로닥이 즉위하여 여호야긴을 석방하였다(왕하 25:27).
하지만 동일한 인물이 ‘고니야’(Coniah), 또는 ‘여고냐’(Jechoniah)로 소개된다.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렘 22:24, 27:20, 29:2 등).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에 2:6, 마 1:11-12). 한 사람의 이름이 ‘여호야긴, 고니야, 여고냐’ 등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동일한 인물이다. 문제는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는 의미로 여호야긴과 고니야로 바꿔 쓰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이스라엘의 수상을 지낸 ‘나탄야후’는 성서의 ‘요나단’을 앞뒤로 바꾼 경우이다.
9. 미리암 vs 마리아(15:20)
한 때는 우리나라 강아지 이름의 80%가 메리였다. 영어 이름 Mary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서 비롯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리아는 가장 신비로우면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이름이 된 것이다. 학문 영역에 Mariology라는 분야가 있다. 글자 그대로 마리아를 연구하는데 마리아학회와 마리아 연구센터가 있다. 가톨릭교회에서 마리아는 신앙의 본보기로서 성인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와 거의 동급으로 간주되는 숭모의 대상이다. <성모 마리아, Madonna, Our Lady, Notre Dame> 그러므로 마리아의 일생과 죽음에 관한 신비로운 일화들이 넘쳐난다. 동정녀로서 예수를 잉태하였다, 그러므로 그녀는 아무런 흠이 없는 완벽한 여인이다, 죽은 후에 육체와 영혼이 하늘로 올라갔다 등.
신약성서 마태복음에 처음 등장하는 ‘마리아’가 구약 출애굽기에 나오는 ‘미리암’과 같은 이름이라는 사실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구약성서가 라틴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현상이다. 즉 Vulgate에서 미리암을 Maria로 음역한 후 로마자 문화권에서 Mary로 정착되었다. 미리암의 어원은 불분명하지만 동사로는 ‘아이를 간절히 원하다,’ 또는 ‘높이다’가 되고 분사형으로는 ‘사랑받는 이’라는 뜻이다.
미리암은 출애굽기 서두에서 익명으로 등장하나(2:4) 이제는 ‘아론의 누이,’ 그리고 ‘선지자’로 소개된다. 드보라(삿 4:4), 훌다(왕하 22:14), 노아댜(느 6:14) 등과 나란히 여선지 대열에 포함된 인물이다. (유대교에서는 한나, 아비가일, 에스더도 여선지에 속한다) 모세가 어렸을 때 바로의 딸에게 히브리 여인을 소개하기도 하였고, 출애굽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15:20). 나중에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일로 모세를 비방하고 문둥병이 걸려 눈처럼 희게 되어 7일 동안 진 밖에 격리되기도 하였다(민 12장). 광야 40년이 끝나던 정월에 가네스 광야에 묻혔다(민 20:1).
*하와(חוה) vs 이브(Eve)?
70인역(LXX)은 에우아 (Eua), 라틴어 Vulgate는 하바 (Hava), 영어는 Eve 로 음역한 것이다.
10. 시내 - 스네 - 호렙 - 예벨 무사
모세는 양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해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한다(출 3:1). 그곳에서 떨기나무와 ‘신묘 조우’가 이뤄진다(출 3:2). 여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산 호렙 즉, 호렙산은 흔히 시내산과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호렙산은 시나이 반도 남서쪽 끝에 위치한 해발 2290m의 지금의 ‘예벨 무사’(Jebel Musa)로 추정된다. ‘모세의 산’이란 뜻이다. 모래투성이의 황무지 건너편에 위치한 비옥한 초원이 펼쳐진 시내산 근방의 고원지대를 일컫는다. 이곳은 가뭄 때 유목생활을 하는 베두인족이 즐겨 찾는 지역이다.
호렙산과 시내산에 대해서는 대략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이 두 산은 명칭만 다르고 지역은 같은 이명동지(異名同地)라는 설이 있다. 둘째, 동일한 산맥 줄기에 솟은 2개의 큰 산이라는 견해도 있다. 셋째, 호렙은 넓은 의미에서 지칭할 때 사용되고 시내는 호렙 중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를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따라서 호렙과 시내산은 서로 다른 2개의 산이 아니라 적어도 한 산을 지칭하되 서로 다른 명칭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호렙산이 특별히 ‘하나님의 산’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그 산이 원래 신성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그곳에 나타나셔서(출 3:4∼5) 모세에게 출애굽의 소명을 부여했고 율법을 수여했기 때문에 히브리 민족이 성별해서 부른 데서 비롯됐다. 여기에 등장하는 떨기나무는 시내 광야 전역에서 흔하게 자라는 아카시아 종류의 키 작은 가시덤불을 가리킨다. 키 작은 가시덤불은 애굽에서 노예로 비참한 굴종의 삶을 살았던 히브리 민족을 상징하는 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떨기나무에 여호와의 사자가 임한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탄식을 들으시고 구원해주실 것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2)
시내산은 ‘모세의 산’이라는 예벨 무사, 예로부터 이곳에 수많은 수도자들이 몰려와 명상과 수련을 하였던 곳이다. 왜? 하나님이 모세를 만난 산, 곧 하나님이 현현한 산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에는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광경에 신기한 ‘스네’(סנה)를 등장시킨다. 불이 붙었던 떨기나무가 타지 않고는 그대로 있는 신비로운 광경이 연출된 것이다. 히브리어 스네는 오직 출애굽기 3장에만 쓰인다. 또한 시내산과 호렙산은 성서에 함께 사용되지만 스네와 관련하여 출애굽기에 시내산이 자주 언급되기 때문에 그 연관성을 살피면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호렙은 세미한 음성, 눈여겨 보지 않는 스네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