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병학 칼럼]대량학살의 기억과 반제국주의 운동(2)

이병학 교수(한신대학교, 신약학)



본지는 한신대 신약학 이병학 교수의 ‘대량학살의 기억과 반제국주의 운동’이란 연구논문을 3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전쟁과 학살로 얼룩진 인간의 그릇된 폭력의 역사를 해부하는 이 논문은 특히 한국전쟁 전후에 한반도에서 발생한 민간인집단학살 문제를 성서신학적으로 풀어본 글입니다. - 편집자주 



2. 출애굽의 기억의 재현과 반제국주의 운동


1) 제단에 바친 성도들의 기도(8:2-5)

요한은 하늘에서 진행되는 천상적 예전을 보았다. 그것은 땅 위에서 무엇이 곧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이다. 하늘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에서 경험할 수 있는 역사의 초월적 및 심층적 차원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적 공동체의 신앙과 의식은 이러한 천상적 예전에서 표출된다.

제단 위에 모든 성도들의 기도와 향이 있다. 일곱 천사들이 나팔을 하나씩 받아 가지고 서 있고, 또 다른 천사가 금향로를 들고 제단 앞으로 나와서 “모든 성도의 기도”(8:3)가 향의 연기와 섞여서 하느님 앞으로 올라가게 하였다. 성도의 기도는 억눌린 자들의 통곡과 절규로서의 기도를 의미할 수 있으며, 또한 억압자들의 악행에 대한 기억과 항의로서의 기도를 의미할 수 있다. 천사가 제단에 있는 불을 그 향로에 가득 담아서 땅에 던지니 하느님의 역사 개입을 상징하는 천둥과 요란한 소리와 번개와 지진이 일어났다. 일곱 천사들이 각기 부는 나팔은 음악을 위한 현대의 금관악기가 아니라,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경고와 심판을 알리는 양각 나팔이다. 신음하는 억눌린 자들의 해방과 자유를 위하여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과 바로와 그 온 집에”(신6:22) 일으켰던 하느님이 지금 로마제국 안에서 일곱 나팔들의 소리를 신호로 출애굽을 다시 일으킨다. 하느님의 이러한 역사 개입을 촉진시킨 것은 성도들의 기도이다.





2) 처음 여섯 나팔들: 로마제국에서 재현되는 새로운 출애굽(8:6-9:21)

일곱 천사들이 차례대로 부는 나팔 소리와 함께 이집트 제국과 바로를 심판하고 출애굽을 일으켰던 하느님의 해방적 행동들을 회상시키는 일련의 표징들이 지금 로마제국 한복판에서 새롭게 일어난다. 유대인들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는 땅, 바다, 강, 그리고 천체(태양, 달, 별들)라는 네 가지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네 나팔들의 환상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네 가지 요소들은 로마제국의 제국주의에 의해서 조직되고 유지되는 억압적이고 우상 숭배적인 체제로서의 세계를 의미한다.

첫째 나팔 소리는 땅을 타격하는 표징을 보여준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버렸더라”(8:7). “피 섞인 우박과 불”은 하느님이 억눌린 이스라엘인들의 해방을 위해서 이집트에서 일으켰던 일곱 번째 표징(참조, 9,13-35)을 회상시킨다.

둘째 나팔 소리는 바다를 타격하는 표징을 보여준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8:8-9)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된” 것은 하느님이 이집트에서 일으켰던 첫 번째 표징을 회상시킨다(출7:17-18, 20-21). 바닷물이 피가 됨으로 인해서 결국 물고기와 해초가 삼분의 일씩 죽었다. 그리고 특히 바다 위에 떠 있던 배들의 삼분의 일이 파괴 된 것은 심판을 위한 하느님의 타격이 역사 안에서 발생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셋째 나팔 소리는 강을 타격하는 표징을 보여준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8:10-11). 이것은 이집트에 임하였던 첫 번째 재앙(출7:14-25)과 유사하다. 하늘에서 강으로 추락한 그 별이 쑥과 같은 역할을 해서 사람들이 마실 수 없는 독한 물이 되었다는 것이다(참조, 렘9:15).

넷째 나팔 소리는 천체를 타격하는 표징을 보여준다.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8:12). 어두움은 이집트에 임하였던 아홉 번째 표징과 같다(출10:21-23). 억압자들인 이집트인들에게는 흑암이 임했지만, 이와 반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다(출10:23).

이처럼 처음 네 나팔들의 소리는 로마제국에 의해서 조직되고 유지되는 억압적이고 우상 숭배적인 체제로서의 세계를 구성하는 각 부분들의 삼분의 일을 파괴하는 표징들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타격들의 위력은 물론 엄청났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의 최종적인 심판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 삼분의 이가 남아 있어서 회개의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요한은 이러한 네 가지 표징들을 통해서 비록 로마제국이 자신을 영원히 존속할 견고한 제국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타격들 앞에서 속수무책인 아주 취약한 체제라는 사실을 그의 수신자들에게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그러므로 이러한 타격들에 의한 재난은 결코 가난한 자들이 일차적으로 먼저 피해를 당하는 자연적 재난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가뭄, 홍수, 해일, 화산, 그리고 지진의 피해자들은 일차적으로 안전한 지대에서 튼튼한 집을 짓고 사는 부유한 자들이나 기득권자들이 아니라, 주로 가난하기 때문에 위험한 산이나 강변이나 바닷가에 초라한 집을 짓고 농사를 짓거나 고기나 조개를 잡아서 겨우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요한은 처음 네 나팔들과 나머지 세 나팔들을 명확하게 구분하였다. 전자는 로마제국에 의해서 조직된 체제로서의 세계에 대한 심판이고, 후자는 그 체제의 질서를 떠받치고 있는 짐승의 추종자들과 우상 숭배자들에 대한 심판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8:13에서 공중을 날아가는 독수리로 하여금 큰 소리로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라고 외치게 하였다. “땅에 사는 자들”은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짐승을 경배하고 추종하는 우상 숭배자들을 가리키는 기술적 용어(technical term)이다.

다섯째 나팔 소리는 새로운 출애굽을 위해서 하느님에 의해서 동원된 황충(=메뚜기)들을 통해서 로마제국을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공격하는 상징적 표징을 보여준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avbu,ssoj)의 열쇠를 받았더라.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 어지며,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 다.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 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또 전 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 세가 있더라.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로는 그 이름은 아바 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은 아불루온이더라”(9:1-11).


유대 묵시문학에서 별은 천사의 동의어이다.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그 별은 타락한 천사가 아니라, 선한 천사들 중의 하나로서 하느님의 전령의 역할을 의미하는 수사학적 표현이다. 그에게 무저갱(avbu,ssoj)의 열쇠가 주어졌다는 표상은 무저갱이 하느님의 통제 아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저갱은 땅 속의 깊은 동굴로서 모든 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마지막 심판의 날까지 머물러 있어야만 하는 임시적인 장소이며, 또는 타락한 천사들, 악령들, 그리고 사탄이 감금되어 있는 장소이다.

그 무저갱이 열리자 두 가지 현상들이 나타났다. 첫째로 출애굽의 아홉째 표징(출10:21-29)을 연상시키는 연기가 올라와서 해를 가리고 공기(참조, 16:17)를 어둡게 하였다. 공기가 역사의 가시적이고 경험적인 차원에 속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현상은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둘째로 출애굽의 여덟째 표징인 황충들이 무저갱에서 나왔다(출10:12-20). 자연의 황충들은 본래 풀이나 수목의 껍질을 남김없이 뜯어먹고 산다(참조, 욜1:6-7). 그런데 무저갱에서 나온 황충들은 풀이나 수목을 먹지 않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을 공격하였다. 황충들의 공격을 당한 사람들은 하느님과 어린양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아니라,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우상 숭배자들로서 로마제국의 억압적인 체제를 지지하는 짐승의 추종자들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인침을 받은 어린양을 추종하는 자들과 하느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짐승의 추종자들이 분명히 대조되고 있다.

하느님은 새로운 출애굽을 위해서 황충들을 동원하였다. 로마의 군대가 침략 전쟁을 일으켜서 수많은 무죄한 사람들을 살육한 반면에, 새로운 출애굽을 위해서 동원된 황충들은 오직 이마에 하느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을 다섯 달 동안 괴롭히지만, 그러나 결코 그들을 죽이지는 않는다. 사람의 모습으로 그려진 이러한 황충들은 로마제국의 군대에 대한 대항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황충들의 생김새는 전투에 임하는 군마처럼 생겼으며,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승리를 상징하는 금관 같은 것을 머리에 쓰고 있고(참조, 6:2), 흉갑으로 무장하고 있고, 그리고 그들의 날개의 소리는 말들이 병거를 이끌고 전쟁터로 달려가는 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들판에서 떼를 지어 사는 자연의 황충들은 본래 왕이 없지만(잠30:27), 무저갱에서 나온 황충들은 “무저갱의 사자(=천사)”라는 왕이 있다. 그의 히브리어 이름인 “아바돈(!ADb;a]=VAbaddw,n)”은 파괴 또는 멸망(욥28:22; 잠15:11; 27:29; 시88;11)을 의미하며, 그리고 그의 그리스어 이름인 “아볼루온(VApollu,wn)”은 파괴자를 의미한다. 이처럼 막강한 파괴력을 가진 무저갱의 사자는 신적 위상을 주장하면서 전쟁을 일으켜서 식민지를 초토화하고 수많은 무죄한 자들을 살육하는 오만한 로마 황제에 대한 대항 이미지로서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무저갱의 사자”는 악령들이나 마귀들을 지휘하는 사탄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황충들을 짐승의 추종자들에게 악마적인 공포를 불어넣어서 괴롭게 하는 마귀들이나 악령들로 해석하지만, 그러한 해석은 배척되어야 한다. 새로운 출애굽을 위해서 동원된 황충들은 우상 숭배자들에게 고통스러운 벌을 주는 형벌의 천사들을 상징한다. 대표적인 묵시문학의 하나인 에녹1서에 의하면, 모든 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모여 있는 한 장소에서 의인들의 영혼들은 빛과 생수가 제공되는 공간에서 부활과 영생에 참여할 마지막 심판의 날을 기다리는 특권을 누리고 있지만, 생전에 죄 값을 치르지 않고 죽은 죄인들의 영혼들은 어두운 무저갱에서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형벌의 천사들로부터 이미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으면서 영원한 벌이 내릴 마지막 심판의 날을 기다려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생전에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이기적으로 살았던 우상 숭배자들이기 때문이다.


“생전에 죄 값을 치르지 않고 죽어 땅에 묻힌 죄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분리되 어 있다. 그들은 대심판의 날까지 큰 고통을 당할 것이며, 그리고 저주하는 자들에게 재앙과 고통이 영원할 것이며, 그리고 그들의 영혼들의 징벌은 영원 할 것이다. 그들(=천사들)은 심지어 태초부터 그들을 영원히 결박할 것이다” (에녹1서 22:10-11).


이러한 형벌의 천사들을 상징하는 황충들은 꼬리에 있는 전갈의 침 같은 것으로 짐승의 추종자들을 쏘았다. 그들은 황충들의 공격을 받고서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죽고 싶어 하지만 죽을 수도 없다. 이것은 짐승의 추종자들이 사후에 형벌의 천사들로부터 당하게 될 비참한 운명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지금 짐승의 추종자들이 로마의 제국주의 체제에 협력한 대가로 혜택과 이익을 얻어서 그런대로 걱정 없이 잘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 그들은 영적으로 벌써 지금 고통스러운 형벌을 혹독하게 받고 있는 죄인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장차 사후에 무저갱에서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동안에 형벌의 천사들로부터 가혹한 형벌을 받도록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황충들이 권력과 자본을 우상 숭배하는 짐승의 추종자들을 상징하는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을 괴롭히도록 허락되었다는 것은 하느님이 무력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서 로마제국 한복판에서 출애굽을 다시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의한 방법으로 권력과 자본을 획득한 짐승의 추종자들의 지위를 결코 부러워하거나 작은 이익을 위해서 그들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짐승의 추종자들은 비록 겉으로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회개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장차 사후에 무저갱에서 최후의 심판의 날을 기다리는 동안에 이미 형벌의 천사들로부터 무서운 벌을 받아야만 하도록 정해진 가장 가련한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이마에 하느님의 인침을 받지 못한 자들이 당하는 이러한 무서운 형벌이 독수리가 외친 첫째 화이다(9:12, 참조 8:13). 짐승의 추종자들은 지금 황충들의 공격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어린양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아무런 심판을 받지 않는다.(참조, 요3:18).

요한은 다섯째 나팔을 통해서 로마제국의 권력을 우상 숭배하는 짐승의 추종자들을 죄인들로 규정하고 나중에 당하게 될 그들의 비참한 운명을 미리 보여줌으로써 그의 수신자들에게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작은 이익 때문에 우상 숭배자들과 타협하거나 연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주었으며, 또한 약자들의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대안적인 세계의 실현을 위해서 로마의 제국주의의 유혹과 압제에 저항하는 영적인 삶을 살도록 고무하였다.

여섯째 나팔 소리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자행된 대량학살 사건들을 정당화하거나 은폐한 위선적인 로마제국의 가면을 벗길 뿐만 아니라, 그러한 대량학살의 희생자들을 망각하고 약자들의 고난에 무관심한 채 자신만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서 짐승을 추종하는 우상 숭배자들의 이기심과 사악한 행태들을 폭로하는 표징을 보여준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한 음성 이 나서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 사를 놓아 주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 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더라.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 같은 환상 가운데 그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을 보 니 불빛과 자줏빛과 유황빛 호심경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이 세 재앙 곧 자기들의 입에서 나 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이 말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 있으니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 으로 해하더라.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 지(meteno,hsan)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ta. daimo,nia)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 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하지(meteno,hsan) 아니하더라“(9:13-21).


여섯째 나팔을 분 천사가 금 제단의 네 뿔에서 나온 한 음성의 지시를 듣고 유브라데에 결박된 네 천사들을 직접 풀어주었다는 표상은 대량학살 사건들을 은폐하고 그러한 반인륜범죄를 기억하지 못하도록 예속된 인민들에게 망각을 강요한 로마제국의 살인적인 제국주의 체제의 가면을 벗기는 것을 의미하는 수사학적 표현이다. “큰 강 유브라데”(9:14; 16:2)는 구약시대에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의 동쪽 경계선을 이루었었지만(참조, 창15:18; 수1:4; 사8:7), 이제는 제국주의 전쟁을 감행하여 수많은 무죄한 사람들을 살육하고 식민지 영토를 확장한 로마제국의 동쪽 경계선을 형성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 여러 제국들이 유브라데 강을 넘어서 가나안 땅을 침략하여 지배하였듯이 지금은 로마제국이 그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

여섯째 나팔의 정치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유브라데에 결박된 네 천사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그리고 잔혹하게 집단적으로 학살을 당한 “사람 삼분의 일(to. tri,ton tw/n avnqrw,pwn)”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네 천사들에 대한 주석가들의 해석은 상반된다.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네 천사들을 하느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선한 천사들로 보고 있지만, 일부 주석가들은 그들을 하느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타락한 천사들로 해석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 네 천사들의 지휘에 의해서 살육된 “사람 삼분의 일”을 로마제국의 우상 숭배적인 체제와의 관계에서 해석하지 못하고 단지 하느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과 우상 숭배자들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이 나머지 삼분의 이가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네 천사들을 통해서 불신자들의 삼분의 일을 먼저 죽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어떤 학자들은 다섯째 나팔의 단계가 불신자들을 “죽이지는 못하게”(9:5)하고 고통만 주었지만 여섯째 나팔의 단계가 사람들을 대량으로 죽인 것은 하느님이 심판의 강도를 한층 더 높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처음 여섯 나팔들의 사건들은 요한이 서 있는 현재의 시간에서 본다면 이미 발생해서 지나간 사건들로 인식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 나팔들 사이의 시간적 간격에 무게를 두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또 다른 학자들은 하느님이 일곱 나팔들의 재앙들을 통해서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로 일곱 대접들의 재앙들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치 일곱 나팔들의 환상이 끝난 다음에 일곱 대접들의 환상이 이어진 것처럼 두 환상들을 연대기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이 두 환상들의 표징들은 로마제국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느님의 반제국주의 운동인 새로운 출애굽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각기 서로 일치하는 유사성과 상응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자들의 여러 해석들과는 달리 나는 여섯째 나팔의 환상의 주안점은 식민지 인민들에게 대량학살을 자행한 로마제국의 잔혹성과 위선의 가면을 벗겨내고 망각된 피학살자들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는 데 있다고 본다. 집단적으로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 삼분의 일”은 로마 제국의 지배자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식민지 인민들에게 자행한 대량학살의 희생자들이다. 유브라데에 결박된 “네 천사들”(9:14)을 타락한 천사들로서 네 제국들의 왕들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유대 묵시문학에서 타락한 천사들은 마귀들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압제적인 제국들의 왕들이나 장군들을 역시 상징하기 때문이다. 내용적으로 9:14과 매우 유사하지만 단지 “네 천사들” 대신에 “네 왕들”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한 구절이 시리아어 에스라의 묵시(Syriac Apocalypse of Ezra)의 제6장에서 발견된다. 두 본문을 비교하면, 9:14의 네 천사들이 네 왕들을 상징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증명된다.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 로 준비된 자들이더라”(9:14).


“나는 동쪽에서 온 살모사 한 마리를 보았다. 그 뱀은 약속의 땅 안으로 들어 갔 으며, 땅 위에 지진이 일어났고, 그리고 한 음성이 들려왔다: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왕들을 놓아주라. 그들은 사람들의 삼분의 일을 멸망시킬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놓아졌다.”(시리아어 에스라의 묵시)


9:14의 네 천사들은 이스라엘을 차례로 지배하였던 바빌로니아 제국, 페르시아 제국, 그리스 제국, 그리고 로마제국의 왕들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네 왕들이 휘두른 폭력 행위는 지금 로마제국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사람 삼분의 일”을 의도적으로 멸절시키려고 하는 자신들의 계획을 실행할 수 있도록 유브라데에 결박되었던 네 천사들을 풀어 주었다는 표상은 정치적 목적으로 무죄한 자들을 집단적으로 멸절시킨 대량학살을 정당화하거나 또는 은폐하기 위해서 그러한 대량학살의 기억을 억압하고 배제시킨 로마제국의 지배자들이 공론장에서 선전하는 로마의 평화와 국가 안보(참조, 살전5:3)라는 이데올로기의 가면을 벗기고 대량학살의 불법성과 잔혹성을 백일하에 폭로하는 것을 의미한다. 네 천사들에 의해서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 삼분의 일”은 죄 많은 인류의 삼분의 일이 아니라, 로마제국에 예속된 무죄한 인민들의 삼분의 일이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그 년 월 일 시”를 하느님이 죄인들을 심판을 하기로 예정한 때로 본다. 그러나 침략전쟁을 일으켜서 식민지를 확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즉각적으로 군대를 동원하여 유혈 진압을 하였던 로마제국의 행태를 고려한다면, “그 년 월 일 시”는 하느님이 불신자들과 우상 숭배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미리 예정해 둔 때가 아니라, 로마제국의 지배자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제국의 발전에 저해가 되는 사람들로 분류된 자들을 의도적으로 살육하거나 또는 저항하는 사람들을 학살로 진압하는 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네 천사들은 대량학살을 위해서 자신들의 수하에 있는 “이만만(=이억)”의 기마대를 지휘하였다. 이억이라는 숫자는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수를 의미한다. 이 거대한 기마대의 세력이 악마적이라는 것은 말들의 꼬리가 사탄을 상징하는 뱀과 같고 또한 뱀 머리가 거기에 붙어 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참조, 12:9; 20:2). 기마병들이 탄 육중한 군마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로마제국에 예속된 무죄한 인민들의 삼분의 일을 잔혹하게 살육하는 재앙이 일어났다. 이것은 로마제국이 무죄한 인민들에게 자행한 대량학살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러한 기마대의 공격과 학살을 파르티아 제국의 용맹스러운 기마대가 유브라데 강을 건너서 로마제국을 무섭게 침공해 오듯이 하느님이 종말의 때에 불신자들을 이처럼 무섭게 심판할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상징적 표현들의 정치적 의미를 간과한 잘못된 해석이므로 배척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러한 대량학살에서 제외된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지배자들의 정치적 선전에 미혹되거나 또는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불의를 묵인하면서 로마제국의 절대적 권력을 칭송하는 짐승의 추종자들이다. 그들은 그러한 대량학살이 로마의 평화와 국가의 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로마제국의 선전을 믿었던 친로마적인 우상 숭배자들이다. 그들은 그러한 끔찍한 살육이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에게 일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그러한 대량학살의 희생자들의 고난과 서러움을 당사자들의 개인적인 불행으로 간주하고 잊어버리거나 또는 모르는 척 하면서 무관심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인민을 현혹시키는 제국주의의 영들인 귀신들(ta. daimo,nia)과 우상에게 희망을 걸고 살았다. 그들은 불의에 대한 의식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살인적인 체제에 협력하고 연대한 자신들의 과오를 회개하지(meteno,hsan)않았다. 그러므로 요한은 우상숭배를 하면서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무죄한 자들을 살해하고, 가난한 여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그리고 약자들을 경제적으로 억압하는 불의한 행위를 계속한 그들을 통렬하게 비판하였다(9:20-21, 참조, 시115:3-8). 만일 그러한 우상 숭배자들과 살인자들이 지금 회개하지 않고 로마제국의 살인적인 제국주의 체제를 여전히 지지하고 연대한다면, 그들은 장차 무서운 화와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독수리가 외친 두 번째 화인 것이다(참조, 11:14).

로마제국에 예속된 식민지 인민들의 삼분의 일을 멸절시킨 대량학살 사건은 오늘날 용어로 말한다면 반인륜 범죄인 제노사이드이다. 이러한 대량학살은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서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의 창조와 억눌린 자들을 해방시킨 출애굽에 역행하는 행위이다. 그러한 끔찍한 대량학살의 기억은 로마제국의 은폐 시도에 의해서 억압되고 지워졌다. 그러나 요한은 그러한 대량학살의 기억을 신화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재현하고 현재화하였다. 이것은 수많은 무죄한 자들을 잔혹하게 멸절시키고 대량학살의 희생자들을 쉽게 잊어버리는 제국주의의 사악한 권력에 저항하는 요한의 대항기억이다.

로마제국 한복판에서 새로운 출애굽을 일으킨 하느님의 반제국주의 운동을 위한 여섯째 나팔의 표징의 정치적 의미는 식민지 인민들의 삼분의 일을 잔혹하게 멸절시킨 반인륜 범죄인 대량학살을 로마의 평화와 국가 안보라는 정치적 선전과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합법화하거나 은폐한 로마제국의 위선적인 가면을 벗기고 야수와 같은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것과 그러한 살인적인 제국주의 체제를 묵인하고 연대하는 짐승의 추종자들의 우상 숭배적인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다.

여섯 나팔들에 의해서 지금까지 일어난 각각의 표징들은 장차 모든 인류에게 차례대로 임할 미래적인 재앙들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현재의 시대에 이미 일어난 사건들이다. 그리고 일곱째 나팔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적인 사건이다. 그러므로 여섯째 나팔이 울린 후 연속적으로 일곱째 나팔이 바로 울리는 것이 아니다. 로마제국의 살인적인 제국주의 체제의 끝장과 정의와 평화와 생명이 지배하는 대안적인 세계의 개벽을 선포하는 일곱째 나팔이 울리기까지는 시간적인 간격이 있다. 그것이 바로 요한과 그의 수신자들이 서 있는 위치인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의 현재의 시대이다(10:1-11:14).

이 현재의 시대에 “용의 입, 짐승의 입, 그리고 거짓 예언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악령을 통한 제국주의 예언운동(16:13-16)과 로마제국의 우상 숭배적인 제국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그리스도교적 예언자들과 증인들의 반제국주의 예언 운동(10:1-11:13)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10:1-11:14의 단락을 일곱 나팔들의 환상에 첨가된 하나의 삽입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것을 일곱 나팔들의 환상의 본래적인 중심이라고 본다.

이러한 현재의 시대에 요한과 참여적인 남녀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는 두 예언자적 증인들의 감동적인 반제국주의 예언운동과 해방투쟁이 일어난다(10:1-11:13). 그들의 신앙실천과 반제국주의 예언 운동이 무정한 짐승의 추종자들을 회개로 이끌어서 더 이상 로마황제를 우상 숭배하지 않고 하느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만든 놀라운 전환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마침내 폭력의 역사의 끝장과 새 시대의 시작을 선포하는 일곱째 나팔 소리가 울리도록 촉진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3) 일곱째 나팔(11:15-19): 평화의 나라의 시작

이제 마침내 일곱째 나팔 소리가 울린다. 하늘에서 큰 소리로 부르는 천상적 예전의 노래가 들려왔다. 그것은 로마제국의 멸망과 하느님과 그의 메시아의 제국의 시작을 축하하는 노래이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시되 세상나라 (h` basileia tou/ ko,smou)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basileusei)”(11:15).


축제적인 노래는 불의가 지배하는 현재의 시대가 끝나고, 이제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선포하였다. 이것은 세계의 종말이 아니라, 억압과 학살이 지배하는 현재의 시대가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 나라(h` basileia tou/ ko,smou)"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수많은 무죄한 남자들과 여자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학살하는 로마제국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는 제국주의 체제를 의미한다. 그것은 반창조와 반출애굽의 체제이다.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는 땅 위에 도래하는 가시적이고, 역사적이고, 그리고 정치적인 차원을 가진 대안적인 제국이다. 물론 이러한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권세를 통해서 도래하지만, 그러나 세상 나라를 하느님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데는 순교자들과 예언자적 증인들의 헌신적인 신앙실천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로마제국이 영원히 지배한다는 신화는 이제 거짓으로 드러났다. 보좌에 앉아 있는 스물네 장로들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축하하는 노래에 큰 권세를 가지고 통치하기 시작한 하느님에게 감사하는 찬양으로 화답하였다. 그들은 하느님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며”(11:16; 참조4:4,10; 5:8,14; 7:11;19:4) 전능한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렸다.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o` kairoj)로소이다”(11:17-18).


하느님의 호칭에서 “장차 오실 이”가 빠진 이유는 하느님이 더 이상 미래에 올 분이 아니라, 이미 지금 현재 도래했기 때문이다(비교, 1:4.8; 4:8). 그러므로 장로들은 큰 권능을 가지고 지금 통치하기 시작한 하느님을 찬양하며 기뻐한다. “큰 권능를 잡으시고”(ei;lhfaj)의 동사 시제는 미래에도 계속되는 행동을 지칭하는 완료형이며, “왕 노릇하시도다”(evbasi,leusaj)의 시제는 그의 지배의 시작이 결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과거형이다.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는 성도들에게는 기쁜 소식이지만, 그러나 권력과 자본을 우상 숭배하는 악인들에게는 비극이다. 그러므로 예측하지 못했던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를 반대하고 분노하는 우상 숭배자들에게 하느님은 진노로 심판한다. 이것이 독수리가 외친 세 번째 화인 것이다(11:14; 참조, 8:13).

종말은 하느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날이다. 졸말은 하느님이 악인들에게 벌을 내리고 세계의 불의를 소멸시킴으로써 폭력의 역사를 끝장내는 날이며, 동시에 억눌린 자들을 해방하고 충성스럽게 일한 자들에게 상을 베푸는 날이다. 요한은 스물네 장로들의 입을 통해서 지금이 바로 그러한 종말의 시간임을 세 가지 부정사 형태의 동사를 사용해서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즉, 일곱째 나팔이 울린 지금 이 시간은 하느님이 죽은 자들을 “심판하고(kriqh/nai),” 하느님의 종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을 주고(dou/nai)," 그리고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diafqei/rai)” 때(o` kairoj)이다.

여기서 “죽은 자들”은 모든 죽은 자들이 아니라, 신앙을 실천하고 생을 마친 의인들, 순교자들, 그리고 억울하게 학살당한 무죄한 희생자들이다. 그리스어 “krinw/”(심판하다)는 정의를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서 하느님이 죽은 자들을 심판한다는 것은 모든 죽은 의인들이 하느님의 정의를 통해서 신원되고 부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20:4-6)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은 죽은 의인들과 순교자들과 대량학살의 무죄한 희생자들이 모두 신원되고 부활할 때이다. 또한 지금 이 시간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때이다. “종”은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하는 포괄적 명칭이며, “선지자들과 성도들”은 직분을 가진 그리스도인들과 직분을 가지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을 각기 의미한다.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은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 반면에 지금 이 시간은 하느님이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 즉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경배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절대화하는 지배자들과 로마의 제국주의 체제의 절대적 권력과 자본을 우상 숭배한 짐승의 추종자들에게 벌을 내리고 멸망시킬 때이다.

천상적 예전의 절정은 하늘에서 성전이 열리고 언약궤가 보이는 장면이다. 언약궤는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인들과 시내산에서 맺은 계약의 약속을 지키는 하느님의 신실함과 그의 현존을 재확인해 주는 상징이며, 또한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통한 광야 유랑을 경험한 하느님의 자녀들의 정체성을 재확인해 주는 상징이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 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11:19).


성전이 열리고 지성소에 감추어져 있는 언약궤가 보인다는 것은 로마제국 한복판에서 새로운 출애굽을 일으킨 하느님이 모든 유혹과 압제에 노출되어 있는 소아시아 지역의 식민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지금 해방자로서 그리고 구원자로서 현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은 억눌린 자들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서 출애굽을 다시 일으킨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로마제국과 동맹국들이 몰락하여 사라지는 급격한 격변의 상황을 의미한다(참조, 16:18-21). 가난한 자들과 억눌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로마제국 안에서 새로운 출애굽을 일으킨 하느님의 반제국주의 운동은 이제 로마제국의 몰락과 함께 성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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