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일치되고, 어린이들과 병자들, 가난한 이들, 그 외에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온 존재를 하느님께 봉헌하기를 원합니까?”
“예, 원합니다.”
“저는 찬미의 희생 제사를 바치신 주님과 하나되어 종신토록, 정결과 가난과 순명의 삶을 서원하나이다.”(위의 대화는 가톨릭 수도자들의 종신서원 예식에서 주례자의 질문과 서원자의 대답이다)
▲2009년도 종신서원 감사미사에 참석한 수녀들이 서원 기도를 하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
천주교 수도자들이 종신서원 감사미사 봉헌을 갖는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는 ‘봉헌생활의 날’ 내달 2일 오후 2시 서울 명동 성당 대성전에서 12명 수녀들의 종신서원 감사 미사를 봉헌하다고 27일 전했다.
‘종신서원’이란 일정 기간의 수도회 영성 수련과 사도직 활동 체험으로 양성된 수도자가 정결, 가난(청빈), 순명을 평생[終身] 지킬 것을 공적으로 선서하는 예식이다.
수도자에게 서원이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수도생활이 하느님과 교회의 결합을 상징(교회법 제607조)하기 때문이다. 혼인한 부부가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줄 것을 다짐하듯, 수도자는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동반자로 살게 된다.
수도서원은 유기(有期=기한부)서원과 종신서원으로 나뉘며, 일정 기간의 유기서원기를 거쳐 하느님의 부르심(성소, 聖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수도회의 허가를 받은 사람만이 종신서원을 할 수 있다.
종신서원자가 서원하는 정결, 가난, 순명은 수도생활의 본질을 밝혀준다. 첫째 ‘정결’은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독신의 신분을 스스로 원하여 택하는 삶이다. 이로써 수도자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으로서 세상의 모든 사람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는(1코린 9,19 참조) 사랑의 삶을 살게된다.
둘째 ‘가난’(청빈)은 물질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수도자는 욕망의 근원인 소유욕을 포기함으로써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며(필리 4,11 참조), 가난한 자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섬긴다. 셋째 ‘순명’은 하느님께 대한 응답이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다. 수녀들은 순명서원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되돌려 받음 없이 하느님에게 내어드리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지에 일치한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1696년, 그리스도께 시선을 모으고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비워 가난한 이들을 섬기려는 17세기 프랑스 교회의 영성적 흐름 안에서 프랑스 시골 마을 러베빌 본당 신부 ‘루이 쇼베’에 의해 탄생했다.
시골 처녀 4명으로 구성된 지극히 평범하고 특별한 이름도 없는 겸허하고 작은 공동체로 시작한 수녀회는 당시 교회 내의 다른 공동체들이 미처 손대지 못하는 어린이들의 교육과 병자를 돌보는 일 등 다른 공동체들의 뒤에서 이삭을 줍는 정신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해왔다.
수녀회의 한국 진출은 한불조약 체결 직후. 당시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의 요청으로 아직 박해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1888년 7월 22일 4명의 수녀가 제물포항을 통해 입국함으로 이뤄졌고, 1주일 뒤 순교자 가문의 조선 처녀 5명이 입회함으로써 한국 최초 수도회가 탄생했다.
한국에 정착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들은 고아원 운영과 직업교육, 환자방문과 진료사업을 통해 우리나라 근대 복지사업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현재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는 서울 명동성당 등 국내외 100여 개 분원에 파견돼 본당사목과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있으며, 교육(계성초등학교, 계성여자고등학교, 계성유치원을 비롯한 전국 여러 성당 부설 유치원), 의료(성모병원, 서울 성바오로병원 등), 사회복지(애덕의 집, 근로복지센터 위캔), 해외선교 (러시아, 네팔, 중국, 프랑스 등)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형수들의 어머니’ 조성애 수녀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