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3,1장에 보면 공생활을 개시하던 때에 예수는 대략 서른 살쯤 되었다고 한다.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예수에게 일어났던 첫 번째 사건을 두고 네 복음서는 한 결 같이 예수가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은 일이라고 전한다(마태 3,13-17; 마가 1,9-11; 누가 3,21-22; 요한 1,29-34). 왜 네 복음서 모두 공생활의 시작을 요한의 세례로 잡았을까?
메시아의 등장과 관련하여 구약성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이 야훼가 나타날 날, 그 무서운 날을 앞두고 내가 틀림없이 예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중략)..그래야 내가 와서 세상을 모조리 쳐부수지 아니하리라”(말라 3,23-24; 집회 48,10-11 참조). 이 구절에 따라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 사이에는 종말의 날이 들이닥쳐 세상이 심판 당하기 전에 반드시 엘리야가 먼저 도래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마가 9,11). 뒤집어 말하자면, 선구자 엘리야도 오지 않았는데 메시아부터 등장하면 당시의 유대인들로부터 필요조건을 채우지 못한 가짜 메시아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으리라는 뜻이다.
공관복음서의 보도에 따르면 사람들이 몰라봤을 뿐이지 엘리야는 이미 왔었고, 세례자 요한이 바로 엘리야였다고 한다(마태 17,12-13; 마가 9,13). 그는 예수 메시아의 등장에 앞서 미리 길을 닦아놓은 사람이며(마가 1,2-4),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오실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을 내다본 이였다(마가 1,8). 그 외에도 복음서 곳곳에 세례자 요한을 예수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인물이라든가(마가 1,7), 오히려 예수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인물이라고 하는(마태 3,14) 등, 예수와 비교하여 몇 수 아래인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세례자 요한은 예수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강력한 세례 운동을 펼침으로써 유다 땅 전역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인물이었다(요세푸스,『유다고사』 18,116-119). 그의 행동거지나 생활양식은 구약성서의 예언자들, 특히 엘리야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으며(마가 1,6;2,8; 마태 11,8 등. 2열왕 1,7-8), 또한 장차 다가올 심판(혹은, 장차 다가올 분)을 선포했다는 점에서 그를 종말-묵시적인 예언자 군群에 넣을 수 있다(마가 1,2-8). 세례자 요한의 이런 저런 모습을 미루어보아 1 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예수 메시아를 예고하며 등장한 자라는 점, 곧 구약성서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았을 것이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와 세례자 요한의 실제적인 관계를 우선 예수가 받은 세례에 집중시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심심찮게 세례 받은 후에도 양자 사이에(혹은, 양쪽 제자들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구절들이 발견되곤 하는데(요한 3,22-30;4,1-2; 마가 11,2-6.7-19; 사도 18,25;19,3-4), 피차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는 예수가 요한의 세례 운동에 참여했다는 뜻일까, 아니면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했다는 뜻일까? 역사적으로 판명내기 힘든 질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네 복음서에 나와 있는 대로 예수가 공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점이다. 이 사건의 외형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따르면, 예수가 세례자 요한이 펼치던 ‘세례 운동’에 참여했음을 의미한다. 공관복음서의 보도처럼 사람들이 예수를 ‘세례자 요한’으로 불렀던 시기가 이미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 안티파스의 수중에 넘어가 공개 활동을 못하던 때라는 점을 감안하면, 세례자 요한이 벌였던 세례 운동(대회개 운동)을 예수가 이어간다는 인상을 주변 사람들에게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예수가 세례자 요한의 후계자로 여겨졌으리라는 뜻이다.
박태식 박사(서강대, 가톨릭대, 성공회대 신학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