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퍼’ 최일도 목사 |
이제는 은퇴 목사가 된 ‘밥퍼’ 최일도 목사. 지난 20여년 간 그는 말 그대로 밥을 퍼주는 일을 해왔다. 자기 배가 아니라 소외된 이웃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앞치마를 두른 성직자가 밥을 퍼는 모습은 다일교회에서 만큼은 평범했다. 다양성 속에 일치를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지은 다일교회. 이웃 사랑 실천의 순간 성직자가 아닌 한 봉사자가 된 최 목사는 이 같은 다일교회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고자 했다. 자신을 내려 놓으면서...
그런 최일도 목사가 얼마 전엔 불현듯 조기 은퇴를 선언하는가 하면 퇴직금 전액을 반납해 또 다시 주목을 모으고 있다. 그가 조기 은퇴를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고, 다일교회의 설립목사(다일교회는 은퇴한 목사에게 설립목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가 된 후 향후 활동계획은 무엇일까? ‘밥퍼’ 최일도 목사와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일문 일답 전문.
- 조기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를 들을 수 있겠는가?
“다일공동체의 사회봉사 활동과 영성 수련 인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저희 교회 장로님과 성도들이 기도해주신 덕분이다.”
- 향후 다일공동체의 사회봉사 활동과 영성 수련 인도에 집중하실 계획을 밝혔는데,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을 들을 수 있겠는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인권을 지켜주는 인권 지킴이로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의 갈등이 지속되지 않도록 어떻게 해서든지 이 계층 간의 갈등을 풀기 위한 화해와 일치의 도구로 쓰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러려면 교회 목회를 위한 목양지가 교회 안이라는 울타리에 한정되어 있을 필요는 없기 때문에 그렇게 결심하게 된 것이다.
다일 공동체는 다양성 안의 일치를 추구하는 공동체라는 말의 준말이다. 그 동안 다일공동체가 나눔과 섬김의 봉사활동만 한 것은 아니었다. 추구하는 목표는 바로 화해와 일치다. 다양성 속의 일치를 추구하고 일치 안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이제 남은 세월을 다일 공동체 정신대로 살 수 있게 되어서 차라리 벅찬 설레임이 있다.”
- 지난 20여 년 간의 사역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 있다면?
“다일 교회 자리가 청량리 사창가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가장 어둡고 소외된 지역 중 하나다. 아무래도 청량리 사창가에서의 초창기 시절에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코펠 냄비 하나 들고 둘러 앉아 시작했던 나눔 사역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후에 다일 교회의 담임목사로 목회하던 중 인상 깊었던 일은, 교회 삶의 자리가 청량리에서 신설동 대광 고등학교 강당으로 이사 가서 스쿨처치(school church)를 열었던 시절, 그 때 온 성도들과 함께 내복 입고 예배드리기 운동을 벌이던 때였다. 그 강당은 50년 전에 한경직 목사님이 세우셨던 강당인데, 냉난방이 안 되어서 겨울에는 너무 추었고, 여름에는 찜통더위를 겪었다. 그런데 추운 겨울에 성도들이 냉난방 시설을 마련하자고 돈을 모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안에 있자면 손이 다 얼 정도였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예배를 드려야 할 정도였으니까. 그 때 온 교인이 모았던 2억 가까이 되는 돈을 우리 자신을 위해 쓰지 말고 전액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쓰자며 북한에 그리고 중국 훈춘에 다일 고아원을 세우는데 썼던 일이 가장 인상 깊었던 일 중 하나다. 그런 결정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온 교인이 동의해 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나는 그런 다일 교회 성도들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 퇴직금 전액 뿐 아니라 현재 거주하고 있는 사택 보증금도 점진적으로 교회에 반환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후에는 어떻게 생활할 예정인가(이 문제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사역자들에게는 현실적이고도 절실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공동체 생활을 결정한 사람이다. 청량리와 설곡산 두 곳에 우리 (다일) 공동체의 삶의 자리가 결정되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 일부 공동체 가족들은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에 살고 있고, 도시 빈민 선교 활동을 위해 청량리에 모여 사는 이들도 있고, 영성 수련을 위하여 설곡산에 모여 사는 공동체 가족도 있다. 나는 4월 5일 설곡산에 들어가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문제는 자녀들인데, 아직 자녀들이 공동체에 100퍼센트 헌신된 삶을 사는 게 아니니까 이 아이들은 스스로가 선택할 날까지 기다려줘야 하기에 그 아이들을 위해서 교회 사택을 남겨두게 되었다. 사실 우리 다일 교회는 담임 목사 사택이 아직 전세다. 왜냐면 전세 사는 사람이 많은데, 담임 목사라고 해서 교회 돈이 마련되었다고 내 집에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자녀들이 결혼할 때까지는 쓰다가, 결혼하면 방이 여러 개 필요 없으니까 깨끗이 교회로 돌려드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집사람이 11년 동안 수녀였는데 수도생활을 그만두고 나오던 날을 잊지 못한다. 11년간 수도생활을 하면서 개성여자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다. 교육공무원이니까 당연히 월급이 나올 것 아닌가? 그런데 그 월급과 퇴직금 전부를 공동체에 다 내어놓고 오더라. 그런데 제 아내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수도자가 다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중간에 하던 일을 멈추고 나올 때는 그게 내가 개인의 일은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4억이라는 퇴직금도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1억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교회가 4억이라는 금액을 결정한 이유는, 내가 이미 3년 전부터 조기 은퇴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니까 안 된다고 교회가 맞섰고, 부득불 계속 사임을 하는 것이 다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좋고 개신교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도 이런 일을 우리 교회가 실천해야 한다고 전했다. 반납 의사를 이미 표현을 했기 때문에 교회로서는 이렇게 아쉽게 은퇴하는 뜻을 살리기 위해 장학재단, 최일도 장학기금을 조성한 모양이다. 장학 재단을 만들기 위해 액수가 많아진 것이다.
그리고 바른 목회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 땅의 선한 목사님들이 많은데, 그 모든 분들에게 저와 같은 결단을 하라고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고, 노후 대책이 없는 목사님들께 퇴직금 반납하라고 하는 압력으로 작용되어서도 결코 안 된다. 이번 일은 우리 다일교회 장로님들과 성도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개신교의 1대 담임 목사와 2대 담임 목사 사이에 아름다운 취임과 깨끗이 물러나는 은퇴가 이루어지는 토양을 조성하기 위한, 나름대로 우리들의 신앙의 몸부림이 담겨 있는 일다. 정말 한국 교회의 미래와 밝은 희망의 지표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 그 동안 그들만의 잔치 가운데 빠져 사회로부터도 많은 비방을 받아왔으나 최근 사회 참여의 행보를 가속화해 쇄신을 꾀하고 있는 한국 교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 교회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그동안 교회와 교단들이 온통 Big is successful, 큰 것이 성공이라는 구호 아래 너무 큰 것에 집착해왔다. 큰 교회, 큰 건물, 큰 차, 큰 것을 성취한 사람에게 자꾸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그것을 위해서 윤리적 도덕적 양심도 묻어두는 그런 힘의 논리가 교회 안에서마저 적용되었다는 사실은 교회가 심각하게 반성할 부분이다. 우리가 세상 속의 소금으로 사는 주님의 제자답게 살기 위해서는 Big is successful이 아니라 small is beautiful이라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정신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님께서 삶의 현장에서 목마른 사람들, 헐벗은 사람들, 병든 사람들, 옥에 갇힌 사람들을 돌보지 않았는가? 그들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고, 그들에게 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을 형제라고 여기셨다. 그들을 예수님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았나?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우리 한국교회가 다시 관심을 가지고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긴다면 한국교회가 정말 희망이 있다고 본다.
주님은 작은 자의 아픔을 온 몸으로 체험하셨기에 너무나 우리를 잘 아신다. 작은 자의 고뇌와 갈망을 끌어안아 주어야 한다. 이제 진정한 목회가 또다시 한국교회에 시작된다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이제 우리 한국교회가 Big is successful에서 small is beautiful의 정신을 회복하는 쪽으로 간다면 아마 안티 기독교의 목소리도 잠재워질 것이고 한국교회는 통일 조국을 다시 선도해 갈 수 있는, 21세기 한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자신의 선택으로 은퇴 목사의 길을 걷게된 최일도 목사. 이름처럼, 일도(一道),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그는 한 길로만 걷고 있었다. 내려놓고, 또 내려놓는 길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