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WCC 2월 네째 주일 공동기도문 발표

2월 네째 주일 세계인이 함께 드리는 공동기도문의 대상국은 프랑스, 독일이다. 프랑스에는 WCC 회원교회로  알사스 로랭의 아우구스부르크 고백 교회(Church of Augsburg Confession of Alsace and Lorraine), 프랑스 복음 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of France), 알사스 로랭 개혁교회(Reformed Church of Alsace and Lorraine), 프랑스 개혁교회(Reformed Church of France) 등이 있다.

프랑스는  대서양과 지중해에 접해있다. 북동쪽으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에 접해있으며, 동쪽으로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가 자리하고 있으며, 남서쪽으로 안도라(Andorra)와 스페인이 접해있다. 프랑스 역시 프랑스령에 속하는 열 개의 해외 영토를 가지고 있다.

주전 58년 율리우스 시저가 현재의 프랑스 지역을 점령한 후, 이 지역은 500년 이상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다. 1793년까지 여러 왕조들이 프랑스를 지배하였고, 마침내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 부패한 왕정이 종식되고“자유, 평등, 박애”를 모토로 하는 공화제가 시작됐다. 이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제 4공화국으로 인식됐다. 프랑스가 재정비되는 기간 동안에 여러 정당들이 짧은 통치하는 방식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그 사이 여성참정권이 보장되었고, 프랑스의 과거 식민지들이 독립했다. 1958년 개헌으로 제 5공화국이 출범하였고, 이때부터 사회보장제도가 확립되어 프랑스 국민들은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됐다.

오늘 날 프랑스는 세계의 강대국들 중 하나로 간주된다. 농업과 산업이 발달했고, 프랑스인들은 개인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지난 40년 사이에 5백만 명 이상의 이민자들이 프랑스로 유입됐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저임금 업종으로 사회 주변부로 밀려나 있고, 잠재적인 인종차별과 불의에 노출되어 있다. 세계화의 경쟁 때문에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고, 정부는 사회보장 제도 축소 압력을 받고 있다. 그 밖의 문제로는 자동차 증가 때문에 생긴 대기 오염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독일과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프랑스는 유럽 경제연합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프랑스 기독교는 주후 1세기에 로마를 통하여 들어왔다. 프랑크(Frankish)의 왕 클로비스(Clovis)가 496년에 자신의 병사들과 함께 세례를 받으면서, 기독교는 프랑스 전역에 빠르게 퍼져갔다. 십자군 전쟁, 클러니의 베네딕트(Benedict of Cluny)와 클레르보의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의 수도원 개혁은 중세기를 대표하는 사건들이었다.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생겨났는데, 특별히 알사스와 론밸리(Rhone Valley) 농촌 지역에서 크게 일어났다. 종교 전쟁으로 국가가 분열되었는데, 그 결과 낭트 칙령(Edict of Nanted: 개신교인들에게 가톨릭 교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주는 것을 골자로 한 1598년 앙리 4세의 명령)이 나왔다. 위그노(Huguenots/ 존 칼빈의 추종자들)들은 17세기 내내 다시 박해를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유럽 전역으로 도피했다.

기독교는 세기가 바뀌면서 교세가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명목상 교인이 80%에 달하지만 아직 분명하게 로마 가톨릭 국가이다. 떼제(Taize) 공동체, 포메롤(Pomeyrol) 수녀원, 뢰이이(Reuilly) 공동체가 점점 교회와 개인의 영적인 갱신의 중심이 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크게 성장하고 있는 기독교 교단은 하나님의 성회(Assembly of God)이다. 이슬람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종교이며,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종교 공동체인데, 그 이유는 대부분 과거 아프리카의 식민지로부터 이민 온 이슬람교인들 때문이다. 프랑스는 또한 유럽에서 가장 큰 유대인 공동체의 본거지이다.

인구 8천 2백만 명의 독일에는 고(古) 가톨릭교회 가톨릭 관구(Catholic Diocese of the Old Catholics in Germany), 독일기독교교회협의회(Evangelical Church in Germany), 해외 라트비아 복음주의 루터교회(Latvian Evangelical Lutheran Church Abroad), 독일 메노나이트 교회(Mennonite Church in Germany) 등이 WCC 회원권을 갖고 있다.

독일은 오래되고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중부 유럽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데, 여러 세기 동안 몇 개의 무역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날 독일의 국경은 북쪽으로는 발틱해와 북해, 덴마크와 접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폴란드와 체코공화국과 접해있고, 남쪽으로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서쪽으로는 프랑스와 접하고 있다.

19세기말까지 독일은 주(州)들과 공국(公國)들이 엉성한 형태로 모인 지역 통치자들이 독일의 영지들을 다스렸다. 1871년 이 영지들이 통일되었고, 독일은 급속하게 그 지역에서 강대국이 되었다. 20세기 초 독일의 민족주의가 지배욕과 팽창욕이 결합되면서 일차세계대전을 일으켰고, 결국 1918년에 비참한 패전으로 끝났다.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일차대전의 교전국들에 대한 증오가 심화되었고,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집권하였다. 인종적 순수성에 대한 나치의 신념 때문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집단수용소에 격리되었됐고, 거기서 그들은 조직적으로 학살당했다. 유대인들이 가장 우선적인 대상이었지만, 로마 가톨릭 교인들과 동성애자들, 집시들과 다른 인종 그룹들, 또 정치적 반대자들 역시 학살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경제규모와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국가로서 독일은 경제적, 정치적, 방위 조직에서 유럽 대륙의 핵심 멤버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의 패전과 1945년 승전 연합군에 의한 점령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재건에 성공했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1949년 두 개의 독립된 연방으로 독일이 나뉘어졌고, 나라는 철의 장막으로 분단됐다. 서쪽의 독일연방공화국(서독, Federal Republic of Germany: FRG)은 서유럽의 경제와 방위조약의 중심이 되었고, 반면에 동쪽의 독일민주주의공화국(동독, German Democratic Republic: GDR)은 구소련이 이끄는 바르샤바 조약의 전위대가 됐다. 두 개의 독일은 약 40년간 분단의 길을 갔으나,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이 끝나면서,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고, 1990년 통일로 이어졌다. 그 후 독일은 동독의 생산력과 임금 수준을 서독 수준으로 접근시키기 위하여 막대한 재정을 투여하고 있다. 1999년 1월 독일과 또 그 외 유럽연합의 열 개 회원국은 유럽의 공용화폐로 유로(Euro)를 도입했다.

독일의 기독교는 주후 3세기부터 12세기까지 독일 전역에 널리 전파되었는데, 특별히 496년 프랑크 왕 클로비스의 개종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Wittenberg)에서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했는데, 이것은 개신교 종교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오늘 날 독일의 기독교인들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회로 거의 비슷하게 나뉘어 있고, 여기에 소수의 정교회와 독립교회들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히틀러를 지지하였으나, 고백교회 설립을 이끌었던 소수의 기독교인들은 히틀러의 주장이 기독교의 복음과 반대된다는 신념으로 저항했다. 이 운동의 많은 지도자들은 집단수용소에 갇히고, 거기서 살해되었으며, 교회는 저항단체가 되어 지하로 숨어들어야 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전후해, 독일 교회는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면서 나라의 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통일 이후, 이전의 동독 지역에서는 교인 수가 증가하고 있고, 반면에 이전의 서독 지역에서는 무종교라고 밝히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 이십 년 간 많은 난민들과 이민자들이 크게 유입되면서 국가의 사회 복지를 위한 세금 부담이 커졌고, 소수의 신 나치당 등장과 이민자들을 향한 폭력 대두 현상과 같은 증오가 생겨나고 있다. 다른 중요한 국내 문제에는 실업, 세제개혁, 환경오염이 있다. 산성비 때문에 독일의 방대한 숲 대부분이 파괴되거나, 황폐해지고 있다.

 함께 드리는 기도
 
 
  감사기도 제목

●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독일의 통일, 독일 국민들의 재회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떼제 공동체와 같은 에큐메니칼 센터의 증언을 감사드립니다. 이 공동체들은 예배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는데,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더 그렇습니다.

● 이민자들과 난민들을 위한 관용과 지원 사역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인종에 기초한 증오와 폭력이 근절되고 있습니다.

● 초콜릿 과자, 크라상 빵, 기름에 튀긴 감자, 소금에 절인 양배추, 소시지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장대한 교회 예술과 건축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이것들은 복음서의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중보기도 제목

● 독일 동서 지역이 온전히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이 노력으로 빈부격차가 줄어들고 모든 시민들이 제대로 대접 받을 수 있게 됩니다.

● 세속화와 무신론이 팽배한 현실에서 교회가 다시 부흥을 이루기를 기도합시다.

● 환경 문제를 위하여, 노후된 공장들과 오염방지 시설이 부족한 옛 동독 지역의 환경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차별과 인종주의에 직면한 난민들과 이민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실업자들과 세계화의 한 가운데에서 경제적 불안정에 직면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1)

오, 하나님, 만물의 아버지,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명하시기를

가난한 이들이 부끄러움을 당하는 곳에 사랑을,

교회가 쇠퇴하는 곳에 기쁨을,

사람들이 분열된 곳에 화해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 입은 몸, 주님의 교회가,

지구상에 있는 가난한 이들과 모든 인류 가족들을 위해서

성찬의 누룩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2)

이 세계의 문제들을 바라볼 때, 오, 주님,

빠른 해결책을 찾으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만입이 저마다 다른 진리를 주장할 때,

만인이 저마다 자신의 의를 자랑할 때,

저로 하여금 말하거나 자랑하거나 희망하기 전에 잠시 기다리게 하옵소서.

저로 하여금 주님께서 제 안에 심어놓으신

영원한 진리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제 안을 보게 하옵소서.

이 진리들은 외부의 수많은 주장들과 말들에서 들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위대합니다.

그리고 큰소리 나는 것이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소한 것이 금지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로운 것들이 가치가 없는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검은 것이 흉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로 하여금 그러한 진리들이 주님께 진실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래서 제가 진실 가운데 살고, 주님과 살고, 제 자신은 평화롭게 살게 하옵소서.


(3)

고백의 기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한 곳에서 불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길로 떠나도록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포, 의심과 게으름 때문에 하나님의 부름에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저희로 하여금 우리 등 뒤의 무거운 짐들을 던져버리게 하옵소서.

찬송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혹은“주여 자비를 베푸소서”(Lord have mercy)를 부른다.

하나님, 우리 삶에서 떠나는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안주하여 왔고, 거기에서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잘 되는 것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침묵

제 땅을 가지지 못한 라틴 아메리카의 형제, 자매들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그들이 삶이 가난과 폭력으로 위협받고 있지만,

주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서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전 희구 때문에 우리의 삶을 떠나서 주님의 부르심에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도와주셔서 우리 등 뒤의 무거운 짐들을 던져버리게 하옵소서.

찬송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혹은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Lord have mercy)를 부른다.

하나님,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들에서 얼굴을 돌리는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많은 경험들을 의지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 대해 너무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너무나 많은 기대를 하고, 핑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뒤돌아보고 있습니다.

침묵

우리로 하여금 아프리카에 있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에게 배우게 하옵소서.

그들은 얼마나 많은 위험과 문제들이 그들 앞에 놓여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용기로 가득 차 있으며,

미래를 향하여 용감하게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용기를 내서 하나님의 미래를 기대하는 것을 많은 것들이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도와주셔서 우리 등 뒤의 무거운 짐들을 던져버리게 하옵소서.

찬송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혹은“주여 자비를 베푸소서”(Lord have mercy)를 부른다.

하나님, 주께서 우리를 험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길에서 뒷걸음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쉽고 편안한 평화를 구하고 있습니다.

침묵

우리로 하여금 인도에 있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에게 배우게 하옵소서.

그들은 신분의 차이, 정치적, 종교적 갈등의 한 가운데서 주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삶을 내가 주관하려는 마음 때문에

주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도와주셔서 우리 등 뒤의 무거운 짐들을 던져버리게 하옵소서.

찬송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혹은“주여 자비를 베푸소서”(Lord have mercy)를 부른다.

오늘 우리는 인생의 한 부분을 함께 걸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만남들이 얼마나 인생을 풍성하게 만드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실상의 한 면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또한 얼마나 자주 다른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침묵 속에서 주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침묵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심으로,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분명하게 나타났고, 그래서 그 분을 통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하나님, 주님의 길을 따르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 삶을 안전하고 의미 있게 하여 주십니다.

그로 인하여 우리가 살아갑니다.

이 일로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4)

하나님, 우리 독일의 기독교인들과 유럽의 다른 지역에 사는 이들은

우리들 자신에 대한 확신을 점점 더 잃어가고 있습니다.

익숙한 것들을 잃게 될 것 같은 두려움과

불확실한 새로운 발전들이 우리를 약하게 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교회 안에 존재하는 냉담함에 맞서 싸울 수 있게 하시고,

그리하여 책임 있는 기독교인으로서 진정한 삶의 방식을 찾을 수 있게 하시고,

그리하여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외국인을 향한 적개심과 민족주의에 맞서 싸울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의 통치의 능력 안에서 보다 큰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말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실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옵소서.

[유럽 바깥에 사는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 주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실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옵소서.


(5)

파송의 말씀

그대들이 가진 것을 떠나보내십시오.

그것들에 작별을 고하고 앞에 놓인 것을 직시하십시오.

그대들 앞에는 가야 할 먼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함께 가는 길에 상대방을 서로 격려합시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우리 함께 나갑시다.

우리 하나님, 주님께서 보여주실 땅으로 우리는 어려움 없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의 징조들을 찾아, 우리는 함께 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앞에 가셨습니다.

우리가 있는 그곳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6)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는 언제나 죄를 짓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죄인들임을 우리가 압니다.

그러므로, 매일 우리는 항상 다음과 같은 악한 존재의 역사를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하는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기 보다는

소유에 대한 유혹,

우리 소망의 방향으로 잡아야 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섬김 보다는

권력에 대한 유혹,

오직 우리가 찬양할 가치가 있는 구원의 말씀보다는

우리 자신을 우상화 하려는 유혹이 그것입니다.

악한 존재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악한 존재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는 죄악의 본성을 이기도록 도와주실 것을 기도드립니다.

그 분은 살아계셔서 우리의 유혹을 정복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새 창조의 첫 열매가 되시는 그 분을 따라서

그 분의 은혜를 경험한 여자와 남자처럼 우리가 똑바로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7)

하나님, 제 안에 있는 길들과 제 밖에 있는 길들 속에서,

저를 거룩한 길로 인도하소서.

거룩함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신성의 길들로 저를 인도하옵소서.

그래서 제가 헌신적이고, 신실한 인간으로 변화되게 하옵소서.

제가 가는 길에 십자가 표식으로

제 안에 있는 바른 길을 저에게 새롭게 보여 주옵소서.

제가 지나온 인생의 길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제 앞에 놓인 길들과

아직 밟지 않은 길들을, 제가 평화 가운데 기다립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지루하고, 최후의 여정일 찌라도,

오, 하나님, 주님의 도우심으로 끝까지 견디고 나아가겠습니다.

거룩한 여행의 마지막 여정입니다.

그것이 저를 마지막 목적지, 끝이 없는 길로 인도합니다.

주께서 예비하신 쉴 곳, 주님의 영원한 본향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생의 길들은 제 믿음의 길들입니다.

저희 인생은 길이며, 여행인데,

그것은 변함없는 하나의 목적지를 향한, 오늘의 거리들을 걷는 여행이고,

여러 거리들을 걷는 여행입니다.

오 하나님, 제가 가는 모든 길들의 처음과 끝이 되어주옵소서.


(8)

자비로우신 하나님,

주님의 임재하심의 증거가 되기 원하는 우리의 소망과

주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들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시기를 원하는 우리의 소망을 잘 아는 분이십니다.


(9)

우리의 기쁨이신 예수님,

우리가 고요한 중에

말없이 기도드릴 때에

주님의 임재하심을 향한 우리의 단순한 소망이 이미 믿음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선함, 이기심 없음이 힘차게 솟아오릅니다.


(10)

만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시작할 때에,

주님께서는 복음의 생명력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십니다.


(11)

예수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충만하기를 소망할 때

우리 마음의 기쁨이 우리 안에서 샘솟아 오르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라고 주님께서 초대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12)

사랑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라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비록 우리 각자 안에 크든지 작든지 어둠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또한 주님의 현존하심, 곧 성령님이 계십니다.


(13)

부활의 예수님, 우리 인생이라는 땅이 파헤쳐진 곳에

주님은 신앙의 씨를 뿌리려고 오셨습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작은 씨앗인데,

그것이 우리 안에서 가장 온전한 복음의 실재들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 마음속에 있는 선한 것들이 소진되지 않도록 유지시켜 줍니다.


(14)

인간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자비함이 어떤 경우에도 멈추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여인들, 아이들과 약자들에게도 멈추지 않습니다.

고문자들을 향한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울어야 하는 사람들조차도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보며, 하나님, 우리는 빨리 눈을 감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고 무언가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 간구합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을 열어주옵소서.

다른 이들을 위한 우리의 책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혜를 주옵소서.


(15)

또 다시, 또 다시 그들이 나를 못 박고 있다:

내 여자 친구가, 내 남자 친구가…

그들은 나에 대한 모습을 만들어 놓고

나는 그 모습에 맞춰지고 있다. 그 틀에 못 박히고 있다.

그러나 슬프도다, 나는 그 틀에 맞춰질 수 없으니!

그 때문에 우리의 우정은 끝나는구나.

또 다시, 또 다시 그들이 나를 못 박고 있다,

말해다오. 내가 무엇을 마셔야만 하는지,

내가 무엇을 맛봐야 하는지,

어떤 옷이 나에게 가장 좋은 옷인지,

어떤 향기가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지,

어떻게 해야 가장 잘 치장하여 내가 멋있게 보이는 것인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망치질을 하는구나:

“때리는 것이 맞는 것보다 낫다!”

그리고 “먼저 때리고- 질문은 그 다음에!”하면서.

각 시대 정신이 나의 자유를 못 박고 망치질해서 지독한 구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것들을 나는 십자가에 못 박고 싶다.

그러나 나 또한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못 박고 있는지.

얼마나 나의 것이 아닌 의견들을 그냥 흘려듣는지,

얼마나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는지,

얼마나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하는지,

얼마나 내가 나 자신의 짐 때문에 파괴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어떤 것도 내게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자유로울 수 있도록 십자가에 못 박고 싶다.

(어떤 강압적인 일이 자신을 못 박았는지, 또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못 박았는지 종이에 적는다. 침묵 가운데 그 종이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예수님, 저의 말들과 생각들이 주님의 십자가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 구하오니, 어둠이 올 때에 저를 붙잡아 주소서.

어둠 속에서 저와 함께 하여 주소서.


(16)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기도 속에 이 세계를 담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계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시옵고,

우리로 하여금 새 하늘과 새 땅의 이야기들을 전하게 하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기도 속에 이 세계를 담게 하옵소서.

사랑이 숨어버린 세계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사랑을 높이 들게 하시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눈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따스한 사랑을 다시 발견하게 하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기도 속에 이 세계를 담게 하옵소서.

정의가 개들에게 던져진 곳에서

우리로 하여금 저항하는 위험을 무릅쓰게 하시고,

판관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새기게 하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기도 속에 이 세계를 담게 하옵소서.

평화가 상처입어 누워 있는 곳에,

우리로 하여금 함께 연합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들에게 희망을 전하게 하옵소서.


(17)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 안에 충만하고, 여러분을 지켜주시기를.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지켜주시기를.

하나님의 빛이 여러분에게 비취고, 여러분을 온전하게 만드시기를.

울 때나 웃을 때나,

기쁠 때나 아플 때나,

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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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은 중앙집권적인 전체주의 체제를 뜻해"

북한의 김정은이 남한을 "괴리"로 명명하고 통일이 아닌 "평정"의 대상으로 삼자 한반도 내 통일 개념이 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평화통일 운동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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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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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파편적으로 이해한 한국 개신교...은총의 빈곤 초래"

칼빈주의 장로교 전통이 강한 한국 개신교가 '믿음'을 파편적으로 이해한 탓에 '은총'에 대한 신학적 빈곤을 초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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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는 흑백 논리 경계하며 다양한 포지션 횡단해야"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가 보수 복음주의자로 알려진 빌리 그래함도 "유신 진화론자로 분류된 바 있다"고 주장하며 흑백 논리식 경직된 사고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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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줄이는 것도 에너지 필요"

기후위기 시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배현주 박사(전 WCC 중앙위원, 전 부산장신대 교수)가 얼마 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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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의 인간론, 자연과학적 인간 이해와 대립하지 않아"

바르트의 인간론을 기초로 인간 본성에 대한 자연의 신학적 이해를 시도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이용주 박사(숭실대, 부교수)는 최근에 발행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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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의 뿌리는 철학과 기독교 사상의 이원론"

여성 혐오와 여성 신학에 관한 논의를 통해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며 성서적인 교회론 확립을 모색한 연구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조안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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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와 신성화라는 이중의 덫에 걸린 한국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최영 목사가 기장 회보 최신호에 실은 글에서 기장이 발표한 제7문서의 내용 중 교회론, 이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