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 이상준(한국희망재단 이사)
자료 출처 : 우리신학연구소
‘발전전략’은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여러 측면의 발전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위 주제에 관한 명료한 논의를 위해 그리고 연구 발표의 제한을 고려해서, 이 글에서는 경제개발전략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어, 한국의 발전전략이 아시아 빈곤에 미친 영향을 고찰했다.
한국의 경제개발전략
한국의 경제개발전략은 1962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 이전 단계인 1945년 해방에서 1961년까지의 시기에도 경제개발계획이 작성되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1962년 시작되어 1981년까지 4차에 걸쳐 실시되었으며, 1982년부터는 그 명칭이 경제사회발전계획으로 바뀌어 1992~1996년 제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까지 이어졌다. 경제개발계획은 정부주도, 외자의존, 수출지향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은 ‘수출주도 개발전략’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개발전략>
제1차 1962~66년: 공업화 착수, 소비재 수입대체, 사회간접자본 확충
제2차 1967~71년: 기술도입 소화, 소비재 수출, 중간재 수입대체
제3차 1972~76년: 중화학공업화, 중간재 수출, 중화학공업제품 수입대체
제4차 1977~81년: 중화학 개발촉진, 사회보장제도, 국민생활의 양적 질적 향상
제5차 1982~86년: 중화학 수출산업화, 사회보장제도 확충
제6차 1987~91년: 기술집약산업 수입대체화, 사회보장제도 정비
제7차 1992~96년: 두뇌산업 확충, 기술집약산업의 수출화
* 1997년~현재: 국제화와 세계화 대응전략
한국의 경제개발전략은 제1차 경제개발계획부터 정부가 국내외 자본의 동원과 배분에 직접 관여하고 주요 산업부문을 관리 육성했기 때문에 대표적인 정부주도 발전전략의 특징을 지녔다. 또한 산업의 전후방연관효과(前後方聯關效果)가 높은 특정부문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선도(先導) 산업을 중심으로 공업화를 추진하는 불균형 발전전략, 그리고 외국 자본과 해외시장을 중심으로 공업화를 추진하는 외향적 공업화를 지향했다. 즉 해외시장을 대상으로 공업을 육성했기 때문에 수출주도형 공업화였다. 이처럼 한국은 국내시장의 협소, 자원과 기술의 부족 등으로 외국 자본에 의존하여 1960년대에는 수출형 경공업을, 1970년대에는 수출형 중화학공업을 집중 육성하는 외향적 불균형 개발전략을 채택했다. 그러나 수출지향형 공업화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재, 원재료 등을 주로 일본으로부터 수입하지 않고서는 수출을 증가시킬 수가 없는 형태가 고착되면서 대일 무역 적자는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했고, 1968년 이후 매년 거의 10억 달러를 계속 넘고 있었다. 오늘날까지 이 현상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현재의 전체 무역 적자 가운데 대부분이 대일 무역 적자에서 비롯되고 있다.
다른 한편의 외자 도입정책에 있어 한국의 1950년대는 원조에 의존한 경제였고, 1960~70년대는 차관 경제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무상원조에서 1962년의 경제개발계획 이후 외자 도입에 적극적으로 박차를 가했고, 그래서 1960~70년대에는 무상원조는 적고 상업 차관 및 공공 차관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본집약적 산업인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본이 필요했고 따라서 외자 도입이 급속히 증가했다. 중화학공업을 가동시킬 운전 자금을 위한 차관뿐만 아니라 이미 빌린 차관의 변제를 위해서 차관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악순환도 지속되었다.
1962년에서 1980년대 중반(제1~5차 경제개발계획)까지의 경제개발전략을 요약하면, 정부가 경제 발전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중소기업의 발전보다 대기업의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수출지원제도가 자본집약적인 생산에 편향되었고, 특히 수입원자재, 중간재 및 자본재에 의존하는 수출에 더 많은 유인을 부여함과 동시에 변제 능력과는 관계없이 거액의 대외 채무에 의존한 투자 확대를 이끌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경제개방과 각종 경제자유화 조치에 의해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성은 심화되었고, 농업 등 취약산업은 몰락했으며, 재벌 등 대자본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은 증대했다. 또한 이 시기에, 한국 경제는 고숙련을 갖춘 노동자에 기초한 지식기반경제로의 이행을 추구함으로써, 고숙련 → 고생산성 → 고이윤 → 고투자 → 고성장 → 고소득 → 고숙련의 선순환구조를 구축해 나갔고, 노동집약산업은 값싼 노동력이 있는 해외로 대거 이전을 시작했다.
아시아 빈곤과의 연관성
‘수출주도 성장우선’의 특징을 지닌 한국의 경제발전전략이 아시아 빈곤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종합적이고 검증된 평가는 없다. 다만 한국의 경제발전전략의 문제점들이 한국의 정부 또는 기업들에 의해 아시아 국가에서 비슷한 문제를 일으킨 사례를 통해 한국의 발전전략이 아시아 빈곤에 미친 영향을 간접적으로 추론해 보았다. 그리고 빈곤과 관련된 문제를 경제적 빈곤 그 자체에만 국한하여 이해하려는 것은 상당히 편협한 접근 방식이기에, 개발-안보와 개발-민주화의 통합적 접근 방식을 적극 수용했다. 이는 빈곤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폭력을, 폭력은 다시 빈곤과 생태 파괴 그리고 민중의 무기력화 등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건전한 발전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기 때문이다.
1. 정경유착
한국의 경제개발과정에서 권력은 재벌에 각종 특혜를 주고 그 대가로 재벌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
(사례) 버마(미얀마) 대우인터내셔널
천연자원이 풍부한 버마(미얀마)는 1962년부터 지금까지 40년 넘게 군사독재가 지속되고 있어 민중들의 삶은 어려운 상황이다. 버마 정부는 천연자원을 개발하여 남은 이익을 국민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무기구입 등 군사정권 유지에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NGO(비정부기구)는 버마에 투자하는 해외기업이 버마 군사정권과 긴밀한 연계를 가져야만 버마에 투자가 가능하다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미국의 유노칼(UNOCAL) 회사와 프랑스의 토탈(TOTAL) 회사가 1990년대 초반부터 버마에서 가스개발에 투자를 했다. 그런데 생산한 가스를 운송하기 위한 파이프라인 건설과정에서 버마 군사정권에 의한 지역주민의 강제이주, 강제노동, 성폭행 등의 심각한 노동, 인권, 환경침해가 발생되어 국제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기업인 대우인터내셔널과 한국가스공사가 현재 ‘슈에’(Shwe)라는 버마 가스개발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모든 것을 군부가 장악한 버마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대우가 버마에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버마 정권과 긴밀한 모종의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인권단체들은 주장하고 있다. 특히 가스개발로 발생하는 환경파괴는 제쳐두고라도, 투자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고용확대와 같은 긍정적인 기능마저 버마 군사독재정권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전의 유노칼과 토탈의 사례를 볼 때 한국의 버마가스개발로 인하여 노동권, 인권, 환경침해가 다시 일어날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된다.
또한 대우는 가스개발사업뿐만 아니라 불법적인 무기 수출을 통해 버마 군사정권을 지원했음이 2006년 12월 7일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버마에 불법으로 포탄제조공장과 설비, 기술까지 수출한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등 컨소시엄 업체 16명을 적발하여 대외무역법 및 기술개발 촉진법 위반, 대외무역법 위반 등의 혐의로 14명을 기소하고 2명을 지명수배 했다. 대우인터내셔널 등은 버마 군사정부로부터 1억 3,380만 달러(계약 당시 환율기준 한화 약1,600억 원)를 받기로 하고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무기제조장비와 기술 수출 활동을 지속했다. 버마 군사정부 지도자들은 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과는 상관없이 자원 등을 팔아넘긴 돈으로 자신들의 부정축재와 무기구입에만 열중해 왔다. 그리고 이윤을 위해서라면 부도덕하고 반인권적인 정권에게도 무기를 팔수 있다는 한국 기업의 모습은 그 무기의 직접적인 희생자가 될 버마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사례) 말레이시아 삼성전자
삼성은 태국과 말레이시아에서 노동조합 설립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방법은 1960년대 제일모직 노동자들에게 적용했던 것과 비슷하다. 직접 손에 피를 묻히기보다, 공권력을 해결사로 활용한 것이었다.
1960년 4·19 혁명 직후, 제일모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회사 측은 152명의 노동자에게 정직 처분을 내리고, 영업을 중지하는 것으로 맞섰다. 이는 불법 조치였다. 노조는 부당노동 행위 중지, 152명 노동자에 대한 불법 정직 처분 취소, 불법적인 공장 폐쇄 철회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회사는 침묵했다. 그러자 제일모직 노조는 같은 해 7월 4일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역시 회사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대신, 경찰이 공장에 들이닥쳤다. 결국, 농성은 하루 만에 끝났다. 삼성이 평소 경찰 및 권력기관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기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결국 제일모직 노동조합은 해산됐고, 대신 ‘무노조 원칙’이 삼성의 경영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비슷한 상황이 39년 뒤 말레이시아에서 재연됐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삼성전자 공장을 유치하면서 “10년 동안 노동조합을 허용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은 막을 수 없었다. 1999년 6월 14일, 국제금속노동자협회 소속 전기산업노동조합은 삼성전자 말레이시아 법인에 노조가 설립됐다고 발표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곧 ‘해결사’로 나섰다. 말레이시아 인력자원부는 불과 3개월 만에 "전기산업노동조합이 삼성전자 말레이시아 법인 노동자들을 대표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노조 설립을 둘러싼 분쟁이 생기면, 2~3년가량의 결정 기간을 갖는 게 정부 관례였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정부는 스스로 관례를 깼다. 당시 삼성전자 말레이시아 법인의 주요 생산 품목은 전자레인지, 마이크로파 전자관, 인쇄회로기판 등이었는데, 이런 품목은 ‘전자제품’이며 ‘전기제품’이 아니라는 게 결정의 근거였다. 노동계에서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삼성과 맺은 ‘무노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억지스런 결정을 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하지만 현지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삼성이 평소 말레이시아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맺어뒀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국내에서 권력기관과 유착해서 노조 설립을 막았던 삼성은 해외 법인을 운영하면서도 비슷한 방법을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2. 가마우지 경제
이는 취약한 수출 구조로 실익은 일본에 뺏기는 한국 경제를 물새 가마우지의 처지에 빗댄 말이다. 1989년 일본 경제 평론가 고무로 나오키가 ‘한국의 붕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했다. 가마우지는 물새로 과거 중국과 일본 일부 지방에서는 가마우지 낚시법이라는 것이 유행했다. 가마우지의 목 아래를 끈이나 갈대 잎으로 묶어 새가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게 한 뒤 새가 물고기를 잡으면 낚시꾼이 이를 가로채는 것이다.
고무로 나오키는 한국 경제는 핵심 부품과 소재를 일본에서 수입해 제품을 생산하여 다른 나라에 파는 수출 구조이기 때문에 수출을 하면 할수록 이득은 일본으로 돌아간다며 한국 경제를 가마우지 경제라고 지칭했다. 실제 2008년 부품 및 소재산업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액은 209억 4천만 달러를 기록해 전체 대일 무역적자에서 64%를 차지하고 있다. 적자 규모도 2001년 105억 달러 가량이었던 것에 비해 2006년 156억 달러, 2007년 187억 달러, 2008년 209억 달러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의 무역에서 발생한 커다란 적자를 다른 나라와의 무역에서 얻은 흑자로 상쇄시키고 있다. <표-1>에 나타나듯, 한국은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와의 무역에서 흑자를 얻고 있다. 개발도상국가의 무역 적자와 빈곤층 증대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인과 관계를 지니고 있다.
<표-1> 2007년 한국의 무역 통계
(단위: 억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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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
수입 |
|
일본 |
264 |
563 |
|
ASEAN |
387 |
331 |
|
아시아 |
1,888 |
1,705 |
(출처: 한국무역협회)
3. 수출 증대를 위한 원조 정책 구상
원조의 목적을 인도주의형, 식민지관리형, 경제실익형, 안보전략형으로 구분할 때, 우리나라 원조의 목적은 경제실익형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외 원조는 편협하고 국익 중심적이고 상업적 동기가 강하다. 그래서 무상원조보다 유상원조(차관)가 더 많으며, 대부분 우리의 상품, 자본, 기술 수출과 연관된 조건부 원조다. 원조 정책과 관리도 차관사업과 무상원조를 분리 시행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외교통상부가 각각 다른 목적을 가지고 '따로 따로 원조'를 하고 있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이용한 유상원조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조가 우리 국민의 소중한 세금이 개발도상국 국민의 수입으로 이전되는 특성을 갖고 있는 만큼, 개발도상국의 빈곤퇴치에 도움이 되어야 함은 물론 국민의 지속적인 지지 도출이 가능하고 우리 경제에도 보탬이 되도록 운용함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궁극적인 빈곤퇴치를 위해서는 인간기본욕구 충족보다는 빈곤 친화적 경제성장(Pro-Poor Growth)을 촉진할 수 있는 인프라 투자가 필요불가결하다고 여긴다. 인프라 분야는 대규모 재원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사업선정의 타당성 및 사후 운영의 수익성과 효율성을 위해 유상원조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많은 개발도상국이 과거의 유상원조에 대한 채무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며, 부채 상환에 국가 예산의 상당 부분을 사용하면서 빈곤층을 위한 사회복지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는 크게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으로 이루어지는 유상원조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 의한 무상원조로 나뉜다. 2008년도 대외경제협력기금 예산은 약 3,530억 원이고 한국국제협력단 예산은 3,132억 원이다. 2008년도 공적개발원조 예산 중 양자협력 부분에서 무상원조의 비율은 45%이며, 2007년도에는 42%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들이 90%이상의 비율로 무상원조를 실시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국제사회의 흐름과 권고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례) 필리핀 남북통근열차 사업
한국의 원조가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사용되면서, 오히려 현지 주민들의 인권과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2003년 필리핀 정부는 남북통근열차 사업을 추진했다. 그 중 36km에 달하는 남부철도(South Rail)에 대해서는 한국에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요청했고, 한국 정부는 이를 받아 들였다. 시공은 대우 인터내셔널이 맡았다. 그런데 남부철도(South Rail) 구간은 마닐라와 마카티 등 많은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으로, 정부소유의 토지에 6~7평 남짓한 집을 짓고 살던 철로 주변의 약 3만 가구의 주민들이 이주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필리핀 정부가 제시한 곳은 원래 거주지보다 약 50km 떨어진 까부야오의 사우스빌. 약 8,000가구 4만 여명이 그곳으로 이주했고, 나머지는 아직 철로 변에 남아 있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곳으로 개별적인 이주를 한 상황이다. 그러나 사우스빌에 재정착한 이들도, 철로 변에 남아 있는 이들도 아직 필리핀 정부와 싸우고 있다. 집뿐만 아니라 생계까지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재정착지서 이미 뎅기열로 15명이 사망했다. 철로 주변에서 살 때는, 청소와 노점 등을 해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었던데, 재정착지에는 일자리가 없어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2007년 5월 피해주민 대책위원회가 정부에 보낸 서면질의에 대한 답을 통해 재이주정착지에 대한 사회기반시설과 재이주 과정이 공정하게 처리되었는지에 대해 감시활동을 이미 2번 진행했다고 답변했고, 필리핀 정부의 분기별 보고서를 통해 적절한 재이주 보상이 실시되지 않을 경우 원조기금을 반환 조치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현지조사와 모니터링의 결과에 대해서 어떠한 추가적인 답변도 보내지 않고 있으며, 필리핀 정부로부터 재이주정착과 관련된 어떠한 사항도 보고받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한국은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이와 같은 대규모 투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투자사업으로 인해 현지의 가난한 사람들이 강제퇴거와 같은 반사회적이고 반인권적인 상황을 겪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4. 성장제일주의, 물질만능주의
가난을 탈피하기 위해 무조건 고속성장을 해야 한다는 성장제일주의에 따라 정부가 경제를 통제하면서 특정기업에 지원이 집중되었고 노동자의 권리는 억압되었다. 그리고 물질만능주의의 팽배에 따른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했다. 이와 같은 문제가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의해 재현되어 빈곤과 착취를 재생산하고 사회정의를 좀 먹고 있다.
(사례) 필리핀 한진중공업
한진중공업은 2006년 2월 필리핀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필리핀 수빅만 경제자유구역내 70만평 부지에 2006년부터 2016년까지 총 7천여억 원을 투자해 세계 네 번째의 조선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공장이 착공되기 전에 선박 수주를 따내고 착공 18개월 만에 생산시스템을 갖춘 한진중공업이 자랑하는 ‘속도경영’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2006년부터 수빅조선소에서 산재사고가 빈발해 2008년 7월까지 모두 12명이 숨졌다.
이에 필리핀 건설연맹은 한진중공업 필리핀 현지법인 측에게 수빅 시설에 직업건강안전(OHS) 기준을 국제기준에 맞추라고 요구하고,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목숨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해 직업건강안전 기준 위반을 조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를 요청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요구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 추가 사망 사고가 계속되었다.
한편, 필리핀 의회까지 나서서 한진중공업 필리핀 현지법인 산재사고에 대한 조사를 벌렸는데,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는 필리핀 의회에 한진중공업에 대한 조사를 경고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는 필리핀 상원의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진중공업에 대한 의회 조사는 (양국 관계에) “지속적이고 부정적인 여파를 낳을 것”이라고 썼다.
(사례) 인도 포스코
포스코는 인도 오릿사 주정부와 2005년 6월 자가싱프르 지역에 아시아 최대 제철소 건설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투자는 인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직접투자로 현지 언론이 보도한 바 있다. 문제는 오릿사 주정부가 이 제철소의 건설을 위해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낸다는 데 있다. 주민들은 대책 없이 고향을 버리라고 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며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그동안 자가싱프르 주민과 오릿사 주정부의 유혈 충돌이 여러 번 있었으며, 주정부와 주민의 대치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경찰은 마을을 봉쇄하고 음식 공급도 차단했다. 무장 괴한들은 수시로 마을에 진입해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주정부의 강제이주정책이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해온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환경단체들은 제철소 건설이 환경을 파괴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 단체들은 포스코가 제철소 건설의 조속한 시행을 위하여 주정부를 압박한 것이 마을 주민들에 대한 폭력사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포스코는 창사 40주년 기념일인 2008년 4월 1일에 제철소 착공을 목표로 했으나, 아직 착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긍정적 영향에 대한 희망
이 글에서는 한국의 경제발전전략이 아시아 빈곤에 부정적으로 미친 영향을 주로 언급하였다. 이는 부정적 요소들을 찾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한국의 발전전략이 아시아 빈곤 퇴치에 기여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한국의 해외직접투자와 공적개발원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역이 아시아라는 것이며, 이는 한국의 투자와 원조가 아시아 해당 국가의 일자리 창출과 빈곤 퇴치에 어느 정도 공헌하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의 해외직접투자에 있어 대(對)아시아 투자는 전체금액의 40%를 넘는다. 2008년도 투자대상국별 순위는 미국, 이라크, 중국, 홍콩, 베트남, 캄보디아,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브라질, 호주, 아일랜드, 싱가포르, 러시아다. 또한 2007년 기준, 양자간 공적개발원조(ODA)의 46.5%가 아시아에 집중되었으며, 중동 (14.2%), 아프리카 (14.2%), 중남미 (11.1%)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특히 한국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많은 개발 원조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은 한국의 발전전략 가운데 경제발전전략을 중심으로 서술되었지만, 한국의 통합적인 발전전략이 아시아 국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미래를 희망해 본다. 한국의 경제적 개발 경험뿐만 아니라 한국의 민주화 경험, 인권의 신장, 국가와 시민사회의 건설적인 긴장관계가 아시아의 다른 사회를 지원하는데 중요한 내용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제시했던 한국의 발전전략은 이런 의미에서 좋은 참조 사항이다. 한국의 발전전략 6개: ①투명하고 공정한 사회, ②혁신, ③균형발전, ④사회복지 투자, ⑤능동적 개방, ⑥평화와 안정의 구조.
- 2009년 10월 26일









